가끔식 올라오는 이브온라인글도 있고, 한때 무척 재미있게 즐겼던지라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 적어볼까 합니다.

많은 친절한 입문가이드와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접근이 쉽지 않은거 같아
아 대략 이런 게임이구나 감잡으시라고 짧지 않은글 적어봅니다. 관심없는 분들은 뒤로가기 살포시 눌러주세요.

전문용어가 많은 관계로 일반적인 게이머들이 이해하기 쉽게 용어 몇개를 변경해서 적겠습니다. 이브온 유저들은 양해바랍니다.

꽤 오래전 있었던 일이라 기억이 가물하지만 생각나는데로 적습니다.


sf를 무척 좋아하는지라 이브온라인이 처음 나왔을때부터 관심이 많았지만, 플레이를 시작한건 꽤 시간이 지난후였습니다. 대다수 유저들처럼 낯선 인터페이스와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방황하다가 우연치 않게 한국인 뉴비(초보)들로 새로 구성된 길드(이브에서는 corporation이라고 하죠)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치밀하고 계산에 밝은 리더와 현명하고 인품좋은 전투사령관, 싸움은 싫어하지만 기술개발과 알뜰한 살림꾼, 탐험전문가 고딩 꼬맹이, 츤데레를 담당하던 넉살좋은 얼굴마담, 길드원들에게 민폐만 끼치는 오프모임 술셔틀 아저씨(본인)등 착하고 매너좋은 20명 남짓한 뉴비들이 험한 이브세상에서 맨땅에 헤딩하며 알콩달콩 재미나게 게임을 즐겼죠.
책한권 쓸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많은 위기극복 사례중 꽤나 통쾌했던 사건 하나를 소개합니다.

평범한 이브에서의 하루였습니다. 파티로 미션(일일퀘스트랑 비슷한 개념)을 하거나 단체로 광물을 캐러 가거나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가거나 그런 일상이었죠. 
그러던중 어떤 길드에서 전쟁을 걸어옵니다. 

- 이브는 지역을 크게 3개로 나눌수 있는데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거대한 4개의 npc국가가 다스리는 하이섹터 지역이 있고, 그 국가들의 영향력이 다소 감소하는 로우섹터, 그리고 그들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아우터로 나뉘어집니다. 하이섹터는 국가들이 엄격하게 관리하기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면 연합경찰의 가차없는 처단이 이루어지고, 로우섹터는 관리가 매우 약해지고, 아우터는 무법천지입니다. 유저들의 자원확보와 영토확보 전쟁등등의 컨텐츠는 아우터에서 이루어집니다. -

우리는 뉴비길드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하이섹터(아마르라는 나라의 제국령안에)에 보금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 하이섹터 내에서 전쟁을 하려면 일정비용을 지불하고 전쟁허가를 받으면 경찰의 태클없이 전쟁을 치룰수 있습니다. -

가끔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 삥을 뜯거나 심심풀이로 약한 길드에 시비를 겁니다. 흔히 있는일이고 그간 뉴비길드임에도 불구하고 슬기롭게 헤쳐왔기에 이번에도 그다지 걱정 안했었는데,
이번에 시비를 건놈들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경력 2년차 이상의 정말 전투 베테랑들이 모인 깡패들이었죠.

아우터에서 활동하는 산전수전 다겪은 거대 길드 유저들에게는 동네 양아치에게 불과하겠지만,
우리 입장에선 함선수준, 전투기술등 모든면에서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초반엔 몇번 맞짱도 떠보고 했지만, 그들의 압도적인 힘에 우리측 손실만 점점 커지게 되었죠.
결국엔 길드원 모두가 본거지(우주정거장)에 갇혀서 한발자국도 못나가고, 그들은 정거장 입구를 지키며 우리를 조롱하는 상황에 이르게됩니다.

가끔 그들의 감시가 없는 틈을 노려 밖으로 나가보지만, 사실 그들은 은신으로 교대로 감시선을 배치해노은 상황이라 여지없이 털렸죠.

몇일을 아무것도 못하고 길드원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신참들의 길탈에 까지 이르는 상황이 됩니다.
정말 답답했죠.

여기까지는 일반 다른 mmo에서도 있을수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해결할것이냐? 이 부분이 다른 mmo와 이브온라인의 차이점입니다.


이브에서 전투에서 승리한다는 의미는 누가 경제적 이득을 더 많이 취했나입니다.
함선을 파괴하거나 기지를 파괴하거나하는것도 당연하지만, 누가 더 경제적 손실을 적게 입느냐가 관건이죠.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브는 돈이 전부인 세상입니다. 현실처럼 말이죠.

 
한가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 이브온라인은 동네마다 스타게이트로 연결이 되어있어서, 다른 동네를 갈땐 스타게이트를 타고 넘어갑니다.
즉, 스타게이트가 길목같은 역할을 하는거죠. 그래서 보통 포위작전을 하거나, 뒷치기를 할때 스타게이트를 중심으로 많이 이루어집니다. 스타게이트를 장악하면 길목을 차단하는것이기에 아무데도 못가게 되니까요. -

이 동네 양아치 같은놈들도 포위망을 뚫고 미꾸라지 처럼 빠져나오는 우리의 작은 함정 조차 파괴하기 위해 스타게이트마다 감시를 합니다. 우리쪽 동네에서 감시하면 우리가 겁먹고 안나올것이니, 눈치 못채게 보통 스타게이트의 반때쪽 출입구에서 대기를 하죠.
특히, 동네 깡패넘들의 우두머리는 레전드템을 둘둘 두른 값비싼 중형함선을 타고 스타게이트 주변을 유유히 감시하고 있었죠. 우리는 그 깡패 우두머리를 목표로 잡습니다. 

이 작전의 관건은 속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방심이 이 작전을 진행할수 있는 가장 큰 요소였습니다.

가장 튼튼한함선에 가장 방어적인 세팅을 하고 미끼배가 먼저 정거장을 출발합니다. 깡패들은 얼씨구나 하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듭니다. 교전을 최대한 피하면서 정거장과 거리를 벌리면서 최대한 시선을 끕니다.
음성챗에 울리는 3,2.1 카운트와 함께 깡패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 최고속의 최적의 디버프 세팅을 한 소형함선 5척이 출발합니다. 그렇게 별동대는 미리 계획된 루트로 깡패 우두머리가 있는 지점으로 최속으로 뛰쳐나갑니다. 
별동대가 정거장을 나와 스타게이트로 워프하는 순간 이미 그들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그들의 우두머리에게 경고메세지를 날렸을것이므로, 우리는 깡패우두머리의 생각하는 시간보다 더 빨리 그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기도를 하며 스타게이트를 타고, 반대편 스타게이트에 도착했을때 깡패 우두머리를 발견했습니다. 
당황한 우두머리는 반응이 느렸고, 우리는 사전에 세운 계획에 따라 우두머리를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일반템 둘둘이고 레전드템 둘둘인 우두머리였지만, 1대 5를 이길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 우두머리배를 공략하기 위한 최적의 세팅으로 왔기 때문에 그는 탈출의 방도가 없었습니다.

속도와 반응이 느린 그들의 거대 점투함선들이 이쪽 스타게이트에 모습을 드러냈을땐 이미 우두머리를 격퇴하고 잔해에서 에픽템까지 획득한 후였습니다. 그 에픽템은 그동안 우리가 당한 손실의 수배의 값어치가 있는 템이었고, 그들은 파괴당한 대장선까지 포함하면 뉴비길드 괴롭히다가 초가삼간 태운격이 되버린것이죠.

결국, 그들은 우리를 만만치 않은 길드로 판단하고 더이상의 손실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없다고 느끼고 전쟁을 철회하고 즐거운 전투였다 라는 한마디 남기고 떠납니다(외국애들은 이럴때 쿨합니다.)

우두머리배를 격침시켰을때의 길드원들의 환호성과 성취감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훗날 우리 길드가 성장하여 그들을 역관광 시키는 스토리도 있습니다만, 나중에 또 시간될때 써보죠.

아무튼, 정해진, 똑같은 매일 매일의 플레이에 지겨운분들은 한번 해보시길 권합니다.

나이들고 현실을 핑계로 게임자체를 거의 못즐기고 있는 요즘이지만,
함께한다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려준 추억이 있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