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누엘 '매니' 다피드란 파퀴아오(37?필리핀)는 복싱 역사상 전무후무한 8체급 석권이라는 전설로 그 '강함'의 대명사가 됐다. 그리고 그런 그가 복싱을 해보며 단 한 번도 져보지 않은 상대에게 첫 패배를 안길 준비를 마쳤다.

▶길거리에서 빵 팔던 소년, 평생의 동반자 로치를 만나다

1978년 12월 17일,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에서 태어난 파퀴아오의 집은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날이 허다할 정도로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집이었다. 당시 필리핀은 내전 중이라 정부군과 반란군이 파퀴아오의 집 근처에서 전투를 벌이고 병사들이 참수당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등 최악의 환경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지붕과 벽이 코코넛 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나와 어린 시절부터 물고기 그물을 당기는 일, 거리에서 도넛을 파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 좀 더 커서 도시에 나와살 때 자동차, TV를 보고는 놀라 숨었을 정도로 문명과도 먼 생활을 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채 삼촌에게 처음으로 복싱을 배워 동네 복싱대회부터 시작한 그의 복싱 인생은 일주일에 한번은 싸울 정도로 거칠었다. 무리하게 경기를 해야 했던 것도 가정형편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13살 때 수도 마닐라로 넘어가 복싱 연습을 시작한 파퀴아오는 프로 등록을 위해 나이를 2살 더 올리고, 최소 체중을 맞추기 위해 옷 속에 무게를 늘릴만한 걸 넣으며 프로데뷔에 성공했다. 항상 작은 체중에도 천부적 재능과 노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며 필리핀 복싱계를 흔들어놨던 파퀴아오는 결국 미국까지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평생의 동반자이자 역사상 최고의 콤비가 된 트레이너인 프레디 로치를 만났다. 그와 함께 한 이후 파퀴아오는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으로 세계 최고의 복서로 성장할 수 있었다.

▶파퀴아오의 위대한 업적들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 알파벳조차 발음하기 힘들어했다. 1995년 라이트 플라이웰터급에서 프로 데뷔를 하자마자 스타 탄생을 알렸던 그는 15전 이후 플라이급으로 옮겨 생애 첫 챔피언 타이틀(1998)을 따낸다. 이후 슈퍼 밴텀급(2001)-슈퍼 페더급-라이트급(이상 2008)을 정복하며 복싱계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로 떠오른다. 그리고 2008년 12월 6일, '꿈의 경기'로 일컬어지던 오스카 델라호야와 경기를 하게 된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데다 아마추어 전적 223승5패를 기록한 뒤 프로에 입문해 슈퍼페더급, 라이트급, 슈퍼라이트급, 웰터급, 슈퍼웰터급, 미들급 타이틀, 총 6체급 챔피언을 차지했던 델라호야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압도적으로 큰 체구에 '돈을 위한 이 경기에 파퀴아오가 죽을 수도 있다'며 경기 중단론까지 언급됐지만 파퀴아오는 도리어 델라호야를 상대로 8라운드 TKO승을 거두며 전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다.

                              델라호야와 기자회견 당시의 모습

이후 라이트웰터급-웰터급(2009), 라이트미들급(2010)까지 정복하며 자신이 손수 따낸 7개의 타이틀 외에도 복싱 전문 잡지 링 매거진에서도 챔피언 타이틀을 부여받아 8개급 챔피언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체급 챔피언이 된 복싱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오죽하면 모든 체급을 먹어치웠다고 해서 게임 팩맨을 따 별명도 팩맨(Pac-Ma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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