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정치질, 흐름을 주도하는 힘

언제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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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존중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다. 무서워서 존중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사실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존중을 빼앗기거나 받아냈다. 그것이 바로 신분제 시절의 사고방식. 상하관계에 따른 존중의 척도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무섭게 해서 존중을 받아낸다. 그것에 반발하여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무섭게 해서 존중을 받아내면 다시 또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무섭게 해서 존중을 받아낸다. 이런 방식은 결국 또 다른 위아래를 만들어낼 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무섭게 해서 받아낸 존중은 또 다른 공포 속에 빼앗기게 될 뿐이다.

같은 사회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런식으로 존중을 주고받아보면 서로를 상처입히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힘들더라도 같은 사회속에 살아가는 이상, 모두를 위해서라도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존중을 받아야한다. 역할존중주의. 상대가 어떤 사람이라도 상관없이 제 역할을 다하면 존중을 한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는 이미 그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천대받는 직업들이 해외에서는 잘나간다는 이야기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으로 존중을 받는 방식이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은 어디까지나 그런 방식이 통용되는 사회 혹은 사람들에게나 쓸모있는 법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더라도 같은 사회속에서 살아간다면, 법과 질서를 통해 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사회가 아닌데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식으로 존중을 받아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얕보일 우려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우리나라 영해를 침범해서 불법조업을 하는 어부들에게 한동안 대화를 시도해봤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같은 사회도 아니다. 더구나 그들은 우리의 대화를 거부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통해서라도 존중을 받아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제공격을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당방위, (이미 영해침범한 시점에서 정당방위긴 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한 채 행동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런 사건은 불법조업을 하는 어부와 우리나라만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지켜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선'이라는 입장에서 상대해야 다른 나라에게 지지받을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대화를 시도했는데 통하지 않아서 무섭게 해서 존중을 받아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행동은 '선'이다, 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우리의 행동에 명분이 생기고, 그래야 우리가 세계에 존중받을 수 있다.


이렇게 전체를 생각하여 자신이 원하는 흐름으로 주도하는 것을 정치적인 행동이라 한다.




1. 외교

우리나라 외교는 국민들에게 합격점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할 것이다. 그들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권으로 갈 수 있는 나라가 172개국으로 세계 6위라고 하니 대외적 이미지가 그렇게 나쁜편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실적이 영 좋지 못하다보니 국민들이 많은 실망을 했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해외에서 우리나라 대사관에 도움을 청하니 외면하더라, 라는 이야기들이 들려오고 있다. 심지어 다른나라 대사관에 도움을 청하라는 조언이 있을 정도니 심각함을 경험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요한 외교실책까지 더해지니 국민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 낙하산 때문이라며 불만을 표한다. 실제로 이런 사안에 대해 지적한 의원이 있다.

구글 검색어 [대사관 낙하산] 2017-03-20 검색

"정권 차원의 '보은인사'로 재외공관장을 임명하다보니 선거를 앞두고 대사직을 사임하는 등의 폐해가 있다"

공관장을 낙하산으로 투입하다보니 3대고시라 불리는 외무고시를 패스한 인재들이 낭비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재외공관장이 무능하면 그 능력을 제대로 펼치기 어려운 법이다. 특히 신분제 시절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윗사람이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수 밖에 없다.

거기에 선거를 앞두고 사임하다보니 오랫동안 재임하지 못해 매번 처음부터 다시해야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곤 한다.


우리나라가 외교적 무능이 표면상으로 드러나게 된 까닭도 이렇게 낙하산 인사들이 주요요직을 꿰차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어떤 능력을 지녔기에 낙하산으로 내려온 것일까?

외교도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일.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필요한 필수능력은 언어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험에 필요한 지식들도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능력. 익힐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필수능력은 설득하는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설득하려면 우선 상대를 알아야 한다. 사전 지식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보는 순간 정보를 수집하여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외모, 걸음걸이, 말투, 말솜씨, 억양, 시선처리, 습관, 자세, 태도, 향기, 옷차림, 주로 쓰는 손, 손톱정리, 치열, 호흡, 등 처음보더라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더구나 최근엔 사진으로 사람의 감정을 분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툴도 있다. 그것을 고려해보면 사람의 얼굴을 보고 감정을 추측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취향, 취미, 존중의 척도, 고향, 지위, 배경, 흐름, 삶의 목적, 일처리 방식, 사람의 본질, 선입견, 편견, 장점, 단점, 할일, 자존심, 체면, 결벽증, 강박증, 성격, 성향, 마음의 선 등 다양한 정보를 얻어내어 표상적 목적과 본래의 목적을 추론한다.

좀 더 나아가면 전화번호를 보고 어떤 숫자를 좋아하는지, 필체는 어떤지, 어떤 손가락을 잘 쓰는지, 컴플렉스는 어디에 있는지, 동물을 좋아하는지, 가족을 중요하는지, 나라에 대한 애정의 순위는 어디인지, 진실과 거짓말의 밸런스는 어디에 있는지. 등

상대의 정보만을 수집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목소리는 어떻게 들리는지, 이하 반복. 상대를 분석하는 것과 똑같이 고려하여 상대와 나 자신간의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주도한다.


뭐 하지만 이런 것은 어짜피 수단.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은 결국 상대를 설득할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외교관은 전세계를 상대하는 사람들. 대사관에 가서 행동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은 전세계에 공표되곤 한다. 그들의 행동이 우리나라를 대표한다. 그러니 단순히 상대만을 설득하는 능력이 아니라 전체를 고려하는 정치적인 방법으로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상대의 말이 세계에 어떻게 전파될 것인지, 자신의 말이 세계에 어떻게 전파될 것인지, 자신과 상대뿐만 아니라 모든 수를 순간적으로 가정하여 최적의 말을 선택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주도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 외교관이라 생각한다. 세계에 전파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선'의 입장을 고수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함정을 판다. 흐름을 돌린다. 언어적 유희. 신의를 얻는다. 신뢰를 받는다. 능력을 보인다. 지식을 공유한다. 가치를 증명한다. 감탄사를 만들어낸다. 멋을 느끼게 한다. 격을 높힌다.

상대방보다 더 좋은 입장인 나라의 외교관은 좀 더 편하게 설득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등하거나 상대보다 입장이 좋지 못할 때엔 어떤 수(상대방 또는 세계가 수긍할 수 있는)를 써서라도 설득해야하는 것이 외교관의 고충이다.


내가 봐도 이런 것은 몹시 피곤할 거라 생각한다. 가끔 이렇게 정보를 원하지 않아도 수집될 때가 있는데,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가능성 하나하나 체크하기엔 너무나도 피곤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피곤하기 때문에 스스로 '채널'을 닫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감각을 의도적으로 닫아 정신적 평안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낙하산이 아닌 외교관들은 다들 이렇게 능력있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교에는 이렇듯 전체를 바라보고 고려하는 정치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외교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이런 정치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상대하곤 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치적인 방식이란 게임에서 쓰이는 정치질이다. 하지만 그것은 친목질이 그러하듯, 본래의 정치와 다르게 그릇되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그런 정치와 정치질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2. 정치와 정치질

정치인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이란, 집단의 의지를 집행해주는 사람이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정치인은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의 의지를 집행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런 집행을 할 때 정치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정책 하나를 만들어도 다른 정치인들이 협조해줘야 진행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행동이란, 전체를 조망하고 본질을 찾아 자신이 원하는 흐름으로 주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달을 바라보라고 하는데 손가락을 보더라 라는 말이 있다. 실제 주장을 보는게 아니라 곁가지를 보고 트집잡는 사람을 비판할 때 쓰이는 말이다. 정치적인 사람은 이 두가지에 속하지 않는다. 한발짝 뒤로 물러서 달을 가리키는 사람, 달을 보는 사람, 손가락을 보는 사람, 아예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뒤, 애초에 보지도 않았던 사람까지 고려해서 사건의 본질을 찾아 자신이 원하는 흐름으로 주도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본다.

자신이 달을 가리킬 때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을 보는 사람만 고려할 게 아니다. 달을 보는 사람, 아예 다른 곳을 보는 사람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뒤, 애초에 보지도 않았던 사람까지 고려하여 자신이 원하는 흐름으로 주도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본다.


주도하는 방식에 따라 정치와 정치질이 갈린다. 정치질은 주도할 때 논리가 필요 없다. 정치질은 그 말이 맞든 안맞든 친목이나 다른 방식(정경유착) 등의 방법으로 흐름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질은 외부에서 볼 때 굉장이 비정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제대로 국정운영이 되는 곳이라면 정치질을 쓸 수가 없다.

하지만 게임이라면 다르다. 게임내 인원이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정치질을 당하곤 한다. 외부에서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질은 하는 그들에겐 논리가 필요없다. 친목질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참으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내에서는 그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커뮤니티에 올리곤 하는데, 대게 정치질을 시도한 사람들이 뼈아픈 비판을 받곤 한다.

이렇게 논리가 필요없는 방법을 가리켜 정치질이라 부른다.

반대로 말하자면 논리를 통해 주도하는 방법을 가리켜 정치적인 행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 현실세계

이런 정치와 정치질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보록 하겠다. 이런 정치적인 행동은 매우 피곤하므로 나 자신은 현실세계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굉장히 피곤하다. 더구나 위아래가 분명한 현실세계에선 두배로 피곤하다. 필요한 채널만 남기고 대부분은 닫고 살고 있다. 나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 종종 사용하곤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뒷담화를 싫어하는 편이다. 내 자신의 미학에도 맞지 않지만, 그런 방식은 정치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한다면 뒷담화만큼 불리한 방식이 없다. 어떻게든 뒷담화하는 상대에게 전달될 수도 있고, 내 뒷담화를 듣는 사람이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할만한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뒷담화을 하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흐름을 바꿀수는 있어도,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

어쨌든 나는 그런 뒷담화를 하기도 싫고, 듣기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내 앞의 상대가 뒷담화를 하면 그것을 중재하는 방식으로 쓰곤 한다.

나와 뒷담화를 하는 사람과 뒷담화를 당하는 사람 그리고 관계없는 사람까지 전체를 조망하여 뒷담화를 하는 사람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뒷담화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대변하면 어느정도 평화롭게 뒷담화가 끝날 수 있다. 그런식으로 평온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수차례 반복되고 나면 뒷담화를 하는 사람도 내 앞에서는 잘 안하게 되는 것을 경험했다.

뒷담 하는 사람을 상대할 때 조차 상대를 적으로 상정하면 이렇게 평온하게 끝날 수가 없다. 뒷담하는 네가 잘못이다, 라는 말투로 접근하면 설득은 커녕 싸움만 하겠지. 그런 피곤한 일은 질색이다. 그러니 이렇게 해서 나는 평온을 추구한다.

아 평화로워라-


가끔 순간적으로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할 때가 있다. 말을 한 순간에 나와 내 말을 들은 사람과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오해당한것을 직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오해로 인해 지켜보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까지 예측하였고 그 예측대로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예측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전율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른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굉장히 피곤한일. 평온을 위해서라도 그냥 평소대로 지낼 뿐이다.


정치질은 애초에 논외다. 이 방식은 친목질 같이 논리나 정당한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거나 상대방의 주장을 묵살한다. 이 방식은 상대를 적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이익을 볼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흐름을 만들 수가 없다. 단순한 방법이며 정당하지도 않고 모두를 위해서도 근절되어야할 방식이다.




4. 가상세계

사실 현실세계에서는 이런 정치적인 행동이 피곤을 부르기 때문에 쓰기 어렵다. 하지만 가상세계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같은 인터넷이라도 현실과 연결된, 그러니까 실명으로 활동하게 된다면 그곳도 현실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제약이 있을 수 있지만, 가상세계라면 모두가 동등하기 때문에 이런 정치적인 행동이 덜피곤하다.

덜피곤하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마음에 안드는 이야기가 나올 때엔 흐름을 바꾼 적이 있다. 그것에 대해 실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도록 하겠다.


정치적인 행동 수칙을 몇가지 우선 말해도록 하겠다.


첫째, 사건을 바라볼 때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하고 본질을 찾을 것.

커뮤니티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1:1이 아니다. 글이나 댓글을 통해 1:1 대화를 하는 것 같지만 지켜보는 수많은 다수가 있다. 그들을 고려하며 사건의 본질을 찾으면 흐름을 주도할 수 있다.

둘째, 정론을 근거로 할 것.

정치적인 행동은 다수에게 지지받는 행동이다. 그러니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정론을 근거로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치인은 적을 만들면 안된다. 어떤 정책이나 법안이든 다른 정치인의 도움이 없으면 진행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도 저것도 안하면 박쥐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적도 만들지 않고 박쥐도 되지 않는 방법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론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야한다.

셋째, 상대방 입장을 고려할 것.

한 교수가 초등학생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가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다가 비판받았다고 이야기한적이 있다고 한다. 그건 초등학생이 어려서 그런걸까? 아니다. 그건 초등학생의 입장이나 지식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득하려 했던 교수의 실수다. 현실세계에서 교수는 가르치는 입장으로 권위가 높은편이기 때문에 설득할 때 드는 노력이 적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교수는 그와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야한다. 그외에도 상대의 사고방식 등을 고려하여 접근해야할 것이다.

넷째, 적으로 상정하지 말 것.

설득을 하기 위해서라면 상대를 적으로 상정하는 우는 절대 범해서는 안된다. 적으로 상정하면 그 순간부터는 설득이 아닌 싸움이다. 상대가 나쁘다는 가정으로 진행하면 안된단 이야기다. 설령 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설득을 하기 위해서라면 그 순간만큼은 나쁘다는 가정으로 접근하면 설득자체가 안된다. 정치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지만, 흐름을 주도하고 싶다면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을 적으로 상정해선 안될 것이다.

다섯째, 거짓말을 하지 말 것.

거짓말을 하면 높은 확률로 틈이 생긴다. 거짓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는 있어도 흐름을 바꿀 수는 없고, 바꾼다 하더라도 거짓이 들통하면 말짱도루묵이 된다. 실제로 나는 이곳에서 글을 쓸 때 거짓을 쓰지 않는다. 프라이버시 때문에 숨기는 일은 있어도. 사실 뭐... 아무래도 좋으니까 맘대로 쓰니까 그런거 뿐이지만.


이런 다섯가지 수칙은 기본적으로 상대가 대화에 응하는 사람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다. 대화자체가 안되는 상대는 설득하기 매우 어렵다. 그런 상대는 상대를 설득하기 보단 나와 상대의 대화를 보고 있는 제3자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할 것이다.


그럼 실제 사례를 몇가지 설명하며 집어보도록 하겠다.





첫째, 매니아칼럼

나는 이곳에서 글을 쓸 때 정치적인 관점에서 썼다. 이 곳의 첫글인 민주화에 관한 글부터 그랬다. 우선 사건을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나는 리그오브레전드를 하면서 지역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사람들의 발언들이 싫었다. 지역갈등은 사람들을 싸우게 만들어 불행한 사회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어쩌면 이런 사회적 불행이 가정의 불행으로 이어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뭐 아무튼 그래서 싫었다.

그런게 싫은 나와 민주화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무리들과 그들에게 공격받는 사람들과 그 외 사람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본질을 찾아 행동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민주화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안된다.'

이 주장은 정론에 부합되며 상대를 적으로 상정하기 보다 상대의 행동이 만드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지역갈등보다 민주화에 초점을 맞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신문기사를 링크를 걸어 민주화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그릇된 인식이 자리잡을 수 있다라는 진실을 동원했다.

이를 통해 찬반여론이 있었겠지만, 나름대로 영향이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최근에 매니아칼럼에서 작성하는 대부분의 글도 이런 수칙에 따라 작성했다. 내 나름대로 어느정도 영향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음 사실 있는거 같기도 하지만 그걸 가지고 말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고... 혹시 영향이 있었다면 읽어줬다는 거니까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게임 내에서 다투는 사람을 중재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즐겼을 때 일이다. 파티 채널에서 싸우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사건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어떤 말이 가장 빠르게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분석해서 적용해봤다.

...오해가 있을수 있어 미리말해두지만, 효과적으로 중재하는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다.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비꼬는 투도 없이 담담히 지적했다. "여기는 리그오브레전드 채팅에 비하면 건전하네요. 패드립은 커녕 욕도 없구요."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그랬을 것이다. 그러자 정적이 흘렀다. 그 뒤에도 싸움은 이어졌지만 열이 식은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해졌다.

보통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즐기는 나이대는 많은 편이었다. 그 배경을 고려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어린 유저들과 비교당했다는 사실 자체에 자극받은 것이다.

그 당시에는 패드립과 욕설의 제재가 적었던 시절이어서 그 진실성은 더했다. 상대를 욕하기 보단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여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말이면 충분했다.


리그오브레전드를 즐겼을 때 일이다. 플레이 도중 싸우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사건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어떤 말이 가장 빠르게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분석해서 적용해봤다.

다툴 때엔 억지를 부리거나 꼰대질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 가르치려 든다거나, 말이다. 그걸 담담히 지적했다. 꼰대나 마찬가지네 정도로. 그 뒤에도 당분간 싸움은 벌어졌지만 얼마 안있어 흐지부지해졌다.

보통 리그오브레전드를 즐기는 나이대는 적은 편이었다. 그 배경을 고려한 상태에서 어린 유저들이 보통 싫어하는 꼰대들과 비교당함으로서 자극받은 것이다.

상대를 욕하기 보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여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말이면 충분했다.


이런 방식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화자체를 거부하는 상대에겐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엔 다양한 방법,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동원한다거나 다른 방법도 많지만 게임 한판에 그만한 노력을 기울이기는 귀찮아서 보통 넘기곤 한다. 대게 이렇게 간섭하는 경우도 드물다. 피곤해...


셋째, 트위치 채팅창

나는 리그오브레전드를 볼 때 보통 트위치 채팅창을 본다. 종종 분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피곤해서 보통은 관여하지 않지만 꾸준히 올라오는 것에 대해 지적한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색챗이다. 트위치 자체 내에 내장된 기능으로 모두가 쓸 수 있지만 다양한 이유(눈이 아프다거나, 특정사람의 글만 눈에 띄게 만들어 다른 사람이 소외받는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다들 하지 않곤 한다.

하지만 어그로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 그들의 주장은 트위치에 내장된 기능이니 쓰지 않는게 이상하다는 이유로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론을 통해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서 설득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했다.

바로 혼모노다. 너의 이름은 이란 영화가 히트하면서 혼모노라는 일부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영화관의 혼모노는 영화를 보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족을 위해 노래를 부르거나 크게 떠드는 사람들을 칭한다. 그리고 그 혼모노들은 우리 사회속에서 기피되는 대상이다.

그것을 떠올려 적용했다.

"색챗을 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노래부르는 혼모노와 똑같구나. "

정론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여 혼모노와 비교하였고 적으로 상정하여 어그로라고 규정짓기보다 똑같은 사람으로 상정하였으며 실제 있는 현상인 혼모노를 통해 진실로 설득했다.

그 말을 두차례인가 세차례인가 하고 나니 더이상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시스템으로 막은 건지, 모르겠는데 그 이후는 본 적이 없다.

최근에 해설 수준이 낮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중재를 한 적이 있다. 해설 수준이 낮은게 아니라 네가 수준이 높은 것이라고 말하자 알았다며 조용해졌다. 당연한 논리다. 다양한 사람을 상대해야하는 해설은 초보자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걸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여 지적해주니 조용해졌다.


넷째,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중재

나는 보통 가상세계에서 대화할 때 규칙이 없으면 존댓말은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상대가 반말을 하면 나도 똑같이 반말을 해준다. 동등, 대등하기 위해서라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아도 쓰곤 했다. 한 온라인 RPG게임을 즐길 때에도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반말을 하길래 나도 반말을 했더니 반응이 격하게 나왔다.

자신은 40대라며 어쩌구저쩌구라며 훈계를 하는 것이다. 순간 당황했다. 왜? 나는 상대를 모르고 상대도 나를 모를텐데 저런 당당함은 어디서 오는거지? 그렇지만 하던대로 전체를 조망했다. 그리고 나는 딱 한 문장만 썼다.

"아, 잘못 뽑았네"

그러자 다른 파티원이 이거리얼 이라며 동의해줬다.

굳이 상대를 적으로 돌리며 비판하기 보다 상대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문장만 사용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얼마 안있어 정중한 사과를 연거푸했다. 솔직히 이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사과를 하는 거보고 조금은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은채 알았다고 하고 던전을 클리어 한 뒤 해산했다.

그 문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연령대를 고려한다면 취직활동을 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 파티장이었다. 그것을 고려하여 파티원을 선별하는 일을 취준생을 선별하는 일에 대입할 수 있는 문장을 하나 골랐고, 그것이 "아, 잘못 뽑았네" 였다. 그 말을 듣고 어떤 작용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중한 사과를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스스로를 되돌아봤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섯째, 연예인 그림

나는 불행한 사회를 만드는 사람이 싫다. 혐오도 마찬가지였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별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서 특정 성별 혐오글이 나오면 지적을 하곤 했다. 어느날 연예인들을 못생기게 그리며 놀리는 인터넷 문화가 확산되었다. 내가 봤을 때엔 영 아니올씨다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것을 고려하여 댓글을 달았다.

그 당시 나는 혐오를 싫어하는 나와 그걸 그리는 사람과 그걸 즐기는 사람과 또 다른 사람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본질을 찾았다. 그것은 반격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학교왕따와 동일했다. 연예인들은 대중의 관심으로 먹고 사는 직업. 치명적인 행동이 아니라면 대중의 행동에 반격할 수 없는 것이다. 싫어한다고 하면 관심을 가져주는데 왜 싫어하냐며 말할 것이고 좋아한다고 하면 이미지에 영향이 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방치할 수밖에 없다. 반격할 수 없는 것이다.

왕따도 마찬가지다. 왕따를 못생기게 희화화하면 왕따는 반격할 수가 없다. 반격하면 놀아주는데 감히 라는 식으로 돌아올테고 즐기면 오히려 더 심해질수도 있다. 사실 즐기는 사람도 있기 어려울테고.

사실 꽤 오래전에 일이라 기억이 애매한데, 좀 더 논리적으로 접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요점은 같다. 반격할 수 없다는 부분을 기반으로 지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정치적인 행동과 같이 정론인 상대가 싫어하니까 하지 말자를 근거로 시작하여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여 왕따(경험하든 지켜보든 많은 사람이 겪어봤을 법한)와 비교하면서도 적으로 상정하지 않고 행동만을 지적하면서 거짓없는 순수한 본심만으로 적었다.

내 댓글이 영향을 준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부터 그런 그림을 본 적이 없다. 그런 그림을 허용한 한 대범한 성우를 제외하곤 말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흐름을 바꾸거나 설득한 적이 있지만 이정도로 마치겠다. 지친다. 최근에 꽤 재밌는 경험을 한적도 있긴한데, 간단히만 요약하겠다. 많은 사람에게 공격받았지만 위 수칙을 준수하면서 상대하다보니 나를 공격하던 사람을 설득해 생각을 바꾸게 한 적이 있다. 그것이 정치적인 행동의 힘이다.

이렇듯 정치적으로 행동하면 상대를 설득해 흐름을 바꾸어 주도할 수가 있다.


정치질은 뭐, 다들 알테니 적당히 쓰도록 하겠다. 정치질의 수칙은 무슨 말이든 옹호해줄 사람들을 곁에 두면 된다. 친목질이든 돈이든간 말이다. 아주 간단해서 더이상 쓸말도 없다. 논리도 필요없다. 무슨 말을 하든간에 옹호해줄 사람만 있으면 정치질은 가능하다.

하지만 정치질로는 누구도 설득하기 어렵다.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채 상대의 주장을 묵살하여 승리했다고 생각하는것을 가리켜 보통 정신승리라고 부른다.




5. 게임

게임도 사람이 활동하는 사회. 가상세계라도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는한 정치질이 없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정치질은 본질을 바꾸지 못한채 정신승리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다.

흔히 정치질에 질린 사람들이 정치적인 행동 자체를 부정하곤 한다. 하지만 정치와 정치질은 친목과 친목질과 같이 엄연히 다른 것으로 구분해야한다. 정치적인 행동은 전체를 생각하며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영리한 방법이다. 모든 도구가 그렇듯, 그 방법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느냐, 선의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라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만약 가상세계에서 어떤 사건의 흐름을 주도하거나 상대를 설득하고 싶다면, 정치질이 아닌 정치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길 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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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왕따, 적성, 생각 셋 중 하나를 쓰겠습니다.

탄핵...

하하... 두유노 탄핵? 어처구니 없고 한편은 부끄럽지만 한편은 꽤 즐거운 사건이네요. 우리나라가 자랑할만한 자랑거리가 하나 늘었군요. 외국인에게 국내정치를 묻는 것은 꽤 부끄러운 일이지만요. 그만큼 자랑스러웠나보죠. 뭐, 기뻐해도 되는일 아닌가 싶어요. 평화시위로 시작해서 결과를 만들어냈으니까요.

모든 국민들에게 칭찬을 하고 싶네요. 특보한 언론이나 촛불시위를 시작한 국민이나 묵묵히 지지했던 국민이나 가결한 국회나 인용한 헌재나 조사한 특검이나 그 외 협조적인 모든 사람들 등 모두 법과 질서를 지킨 대한민국 국민이잖아요?

하하. 잘했어요. 칭찬.


외교...

뭐 알아서 잘하겠지만서도... 이점만은 분명히 집고 넘어가고 싶어요. 지금 문제가 미국과 중국과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미국에 떠넘기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미국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다보면 우리나라의 격이 굉장히 낮아집니다.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관여된 이상 우리의 입장으로 접근해야 어느정도 격이 서지, 안그러면 호구취급이나 얕보이게 됩니다.

심지어 동맹국인 미국에게도 얕보이게 되었다는 점을 뼈아프게 상기해야할 것입니다. 일본은 동맹국, 우리는 파트너. 심각한 외교무능입니다.

나는 우리나라 외교부가 무능하다 생각하지 않아요. 낙하산을 빼면 다들 유능할거라 생각합니다. 그 능력을 가지고 우리나라 외교 능력을 증명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걸 지원하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있길 기원합니다.


LCK...

재밌게 보고 있어요. 어떤 말을 해야할까요. 하하, LCK에 대해 다양한 말을 했지만 대게 위 수칙을 전제하여 주장했어요. 주장이 상황에 따라 상충될 수도 있지만요... 이를테면 프로가 오랫동안 선수활동을 하려면 한우물을 파는 것이 좋죠.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면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사실 선수라고 해도 마음대로 해도 되긴 하죠. 다만, 그러면 다른 스포츠들을 보았을 때 아마도 ~ 이렇게 ~ 될 것이다. 지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확신은 하고 있어요. 다른 곳에서 이미 증명된 사례기 때문이지요.


농담...

이렇게 진지하고 정치적으로 행동하다보니 농담도 진담으로 받아드려질 때가 종종 있어요. 으음.. 분명 농담이었는데... 농담으로 댓글을 달았는데 글을 삭제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죠. 아.. 이런 그렇다고 해서 정색해가며 농담이라고 다시 말할 수도 없고... 그냥 다음에 조심할 수밖에 없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