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논 주르(Inon Zur)

게임 작곡가 이논 주르(Inon Zur)는 드래곤에이지 시리즈, 폴아웃 시리즈, 소울칼리버 시리즈, 사이베리아 등 셀 수 없이 많은 게임의 음악을 만들어온 게임 음악계의 거장이다. 지난해 발매한 '폴아웃4'를 통해 대단한 평가를 받고, 또 넥슨 왓스튜디오가 개발하는 '야생의 땅 : 듀랑고'의 음악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최근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그가 NDC16을 방문해 '비디오게임을 위한 작곡에서 ‘독창성’이라는 요소에 대하여(The Originality Factor in composing for video games)' 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영어로 진행되어 통역을 거친 내용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반응은 그 무엇보다 뜨거웠다. '당신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내게는 사립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셋이나 있다. 그게 내 영감이다." 라고 재치있는 답변을 하는 작곡가 이논 주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듀랑고' 작곡가 이논 주르 인터뷰 영상

※ 강연 동안 쓰인 주요 단어인 'Originality'는 모두 '독창성'으로 통일해 표기했습니다.



80% 위에 쌓아올린 20%의 독창성이 완성한다


게임 음악을 작업할 때 어떤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게임 음악을 부탁할 때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그동안 많은 음악을 만들어 오셨겠죠.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새로운, 그동안 없었던 음악을 만들어주시길 바래요. 아 물론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는 마시구요(웃음)." 하고요. 그만큼 '오리지널리티', 즉 독창성이 있는 작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듣지요.

독창성 있는 작업을 하는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만큼 독창성 있는 경험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여기서 당장 마이크를 집어던지고 나가버리면 그건 매우 독창적인 일이긴 하겠죠. 하지만 강연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을겁니다. 결국 중요한건 그겁니다. 독창성이 있으면서도, 목적에 부합해야 하죠.

▲ 전혀 예상치 못한 악기들로 만들어진 '폴아웃4'의 음악들

음악은 게임에서 명확히 쓰이는 목적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상황에 맞는 적합한 감정에 빠지고, 게임을 직접 느낄 수 있게 해야합니다. 음악은 게임에 감정을 부여하죠. 마음으로 느껴지는 음악, 이런 목표를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독창성은 예상치 못한 것이 될 수도 있고, 그 요소가 특이하고 기이할 수도 있습니다. 아예 처음 보는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음악은 언어이고, 언어는 이를 통해 서로 공감하고 연결이 되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입니다. 그래서 음악에 독창성을 집어넣는데에는 법칙이 존재합니다. 바로 비율이죠.

곡의 15~20% 가량은 새롭고 신선한 독창성이 있는 것이되, 나머지 부분은 익숙한 부분으로 채워넣어야 합니다. 이렇게 친숙한 부분이 있어야만 플레이어와의 소통이 가능하고, 그 소통이 되는 80%의 부분 위에 20%의 독창성을 쌓아올리는 겁니다.

자, 그럼 여기까지 했을 때,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됩니다.


첫번째는 음악 메인스트림에서 잘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소리를 소개할 수 있겠죠. 새로운 악기, 새로운 소리를 말입니다. 저는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아주 좋아하는데, '소드코스트 레전드'의 작업에서 오케스트라 위에 터키 악기인 '듀드크'를 추가했었습니다. 현악 오케스트라가 곡의 80% 가량을 차지하고, 듀드크가 나머지 20%를 채우죠. 이것이 이 음악의 독창성이 됩니다.

두번째로는 음악적인 소재나 기존의 연주 방식과 다른, 예상치 못한 조합을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사이베리아'의 음악을 만들 때, 어느 선장이 나오는 장면이 있죠. 알콜 중독자에 매우 너저분한 인물이지만, 선장이 바다 괴물에게 뛰어들어 스스로를 희생하며 물리치고 모두를 구하는 장면이 있어요. 여기서 예상되는 음악은 매우 뻔합니다. 엄숙하고, 장엄한 음악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죠.

전 여기서 다른 방법을 취했습니다. 설정상 이 선장은 옛날 음악들, 특히 행진곡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그가 바다에 뛰어들 때, 무섭고 엄숙한 음악 대신 신나는 행진곡을 선택했습니다. 비극적인 장면이지만, 음악 자체는 매우 즐겁고 강렬하죠. 이것은 매우 특별한 효과를 줍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질문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과연 음악에서 이 오리지널리티, '독창성'이 항상 필요한 걸까요? 일단은 아닙니다. 저도 헐리우드 출신이지만, 헐리우드의 빅 프로젝트들을 보면, 90% 정도는 기존에 있는 음악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이건 사실 좀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좀더 대담하게, 새로운 사운드를 써야할 필요가 있죠. 작곡가들이 때로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죠.


어찌됐든, 독창성을 위해서는 많이 시도하고 탐구해야 합니다. 제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여러가지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우리 집에 많은게 있더군요. 버려진 의자, 악기 스탠드, 오래된 기타, 그릇들 등등, 이런 잡동사니들이 말이죠. 이런 소재를 보면서, 이런 '악기'들을 가지고 흥미로운 음악을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플레이어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을 해야했죠.

한 번은 기타 현을 활로 켜봤습니다. 통상적으로 튕기는 방법 대신에요. 소리는 매우 독특했습니다. 새로웠죠. 그럼 이것을 활용해서 여러가지 가공을 가해봤어요. 결과적으로, 이는 '폴아웃4'에서 매우 음산하고 무섭고 두려운 장면에서 쓰였습니다. 굉장히 효과적이면서도 새롭죠. 음악 하나 안에서 온갖 종류의 긁는 소리가 섞여있습니다. 마치 내 안에서부터 긁히는 금속의 느낌이 들고, '폴아웃4'의 황량하고 척박한 환경이 바로 다가오죠.

▲ 이 음악이 바로 의자를 때려 생긴 소리로 만든 것

다른 예로는 철제 의자가 있는데, 하루는 제가 화나가 나서 의자를 때렸다고 해봅시다. 타격음이 나겠죠. 그런데 그 소리가 왠지 멋진 느낌이어서 줌 플레이어로 녹음을 했습니다. 그러고나서 소리를 역으로 돌렸다가 다시 정으로 돌리고, 효과음도 더하고, 이런저런 이펙트도 더해봤죠. 이제 이 소리는 굉장히 놀라운 드럼 소리가 됩니다. 마치 타악기 소리 같지만, 엄밀히 말해서 타악기는 아닌거죠.

그리고 다음 예로, 믿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직접 녹음한 목소리를 들려주겠습니다. 맥주 두세잔 쯤 마시고 나서 낸 목소리죠. 중국식 플롯인 자오라는 악기를 활용했는데, 옥타브를 조절하고, 피아노 음을 추가하고 나니 이런 멋진 음악이 됐습니다. 이 또한 '폴아웃4'에 사용되었어요. 어쩌면 게임을 플레이한 여러분인 이 음악을 들으면서 멋지다, 분위기 좋아! 라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한 남자의 술취한 소리였습니다(웃음).

이런 식으로 독창성을 가진 음악을 위해서, 전통적인 악기를 새롭게 연주할 수도 있고, 비전통적인 악기를 전통적으로 연주할 수도 있습니다. 피아노를 직접 내려치기도 하고, 현을 긁기도 하고, 다 다른 소리가 나고 새롭습니다. 이걸 섞어서 '폴아웃4'의 곡으로 만들기도 했지요. 피아노라는 악기는 익숙하지만, 이런 방식의 소리는 매우 낯설지요. 이 외에도 오카리나 등의 악기와 다양한 가구들 모두 활용했고, 이것들이 각 음악의 20%의 독창성이 됩니다.

▲ 이논 주르가 직접 연주하는 '폴아웃4' 테마

'폴아웃4'는 상당히 까다로운 게임이었습니다. 다양한 소재를 만들어둬야 했어요. 좀더 다르고 차별화된 것들을. '폴아웃4'는 굉장히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가지고 있었고, 플레이어들이 게임 속에 깊게 몰입할 수 있는 게임이기에 음악으로 그걸 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기타, 피아노, 현악기 등등 기존의 평범한 것들로는 원하는 소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좀더 대상을 확대했죠. 창의성이 더 필요했던 겁니다.

여기 작곡하는 분들이 꽤 있을텐데, 저나 다른 사람들처럼 되는게 목표는 아닐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각의 게임에 맞는 최적화된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거지요. '사이베리아'의 음악을 만들 때, 독창성을 많이 추구했고, 그래서 아예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사이베리아'의 주인공 케이트의 주제곡인데, 오케스트라와 음성이라는 익숙한 것으로 이루어져있죠.

이 음성이 우리에게 뭔가 말하기 시작하는데, 그 언어가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창조한 언어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정말 아름답고 아주 분위기 있죠. 이게 대체 무슨 의미지? 하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합니다. 바로 그 언어가 그 음악에서의 20% 인거죠.


결국 당신이 만들고 싶어한다면, 독창적인 음악에 대한, 게임을 위한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를 계속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음악은 모든 사람들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고, 익숙함 속에서 일부가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에게 특별하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멋진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15년 전, 제가 처음 게임 음악을 만들 때 '폴아웃 택틱스'의 음악을 담당했어요. 그리고 가수 4명이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게 했죠. 처음엔 그게 뭐냐는 반응이었고, 그 다음엔 우는 소리도 녹음했어요. 그렇게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울고 그랬죠. 이게 대체 뭐야? 라고 하는 사람에게 여긴 할리우드니까, 돈을 주면 시키는대로 하면 돼! 라고 윽박지르기도 했죠. 뭐 고소까지 갈 뻔 했지만 작업은 잘 마무리 됐습니다(웃음).

그리고 거기에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결합했을 때, 결과물이 어땠을까요? 아주 특별했습니다. 여러개의 요소 중에, 단 하나만이라도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것을 더한다면 성공할 수 있어요. 창의적으로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시도해보십시오. 제가 해온 것을 그대로 하지 마시고, 자신만의 것을 말이죠. 실패해봐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모두 열심히 시도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