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검은사막 첫 업데이트는 신규 섬 파푸아크리니와 그란디하 항구로 밝혀졌습니다. 새해부터 이런 신규 지역 업데이트라니, 전 상상조차 하지 못했네요. 1월 3일 연구소에 나온 뒤 5일만에 출시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이 소식을 듣고 아침부터 헐레벌떡 패치를 진행하여 흑정령을 불러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나 새로운 퀘스트가 하나 도착해 있더군요. 이 친구, 그냥 장비 갈아넣는 기계인줄 알았는데 가끔 보면 하는 일 참 많아요.

저는 '흑정령 메인 퀘스트'라는 타이틀 자체를 좋아해서 이번 패치에 상당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느낌 상으론 외전격이었지만 어쨌든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은 스토리텔링 덕후인 저에게 정말 즐거운 일이거든요. 발신인 불명의 쪽지를 받고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컨셉도 좋았습니다. 섬 탐험이니만큼 그런 해적스러운 느낌 좋죠.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쪽지를 수령한 다음 메인 퀘스트를 우클릭했는데 길찾기가 안됩니다. 분명히 연계되는 미수락 퀘스트인데 흑정령도 불러지지 않네요. 몇 번을 눌러보다가 안되서 퀘스트 수락 조건을 자세히 보니 '모험일지'를 완료해야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답니다. 모험일지라니, 이 말을 듣고 저는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전 길찾기가 안되면 습관적으로 불안해지는 병이 있단 말이에요. 원래 검사의 묘미는 길 찾기로 자동 이동해놓은 다음 거래소 구경하는 맛 아니었나요? 그런 사소한 불평을 토로하던 전 어쩔 수 없이 '라뮤트 유랑단의 모험일지'를 펼쳤습니다.


▲ 우유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펼친 모험일지에는 중요 부분이 주황색으로 돋보여져 있었습니다. 근데 이거 수수께끼인가요? 일단 패치노트를 봤으니 그란디하 항구로 가는건 알겠는데, 가장 밑에 우유라는 단어가 걸리적거렸습니다. '제발. 이거 뭔가 시키려나 보다.'라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순간이었죠.

저는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리고 '좋아, 길 찾기가 되지 않으니 모험일지에 나온대로 하자!'라는 생각으로 에페리아 항구로 향했죠. 네? 거긴 왜 갔냐구요? 모험일지에 자기가 어린 시절 에페리아 창고지기 '파비노 그레코'에게 쫓겨났다고 하니 거기 뭔가 단서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칼페온에 있던 저는 그란디하가 아닌 에페리아 항구로 향했습니다. 분명 퀘스트의 시작은 이곳에서 펼쳐질 것이란 직감이 왔죠. 에페리아 역시 그란디하 같은 항구 도시니까요. 뛰어난 저의 추리력이라면 무조건이었습니다.


▲ 그렇게 나는 달렸고

▲ 얘는 나보고 왜 왔냐고 했다.

낚였습니다. 물고기 같은 놈. 파비노 그레코는 저에게 '내 본업은 작가요'라며 뜬금없이 자기소개를 하더군요. 그 어디에도 라뮤트 유랑단은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본 건 그냥 모험일지에 적어 놓은 사설이었던 거에요. 그런데 대체 왜 중요한듯이 주황색으로 칠해놓았던 거죠? GM님, 제가 당신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겠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GM찾기 이벤트 말하는 겁니다.

저는 다시 서둘러 모험일지를 확인했습니다. 이제야 분명해지네요. 모험일지 1권 첫 장은 그란디하 항구에 우유를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팔르스 소농장에 항시 대기시켜놓는 우유 배달 전용 부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우유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혹시 몇 개를 원할지 모르니 넉넉히 64개정도 챙겼죠. 숫자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짜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렇게 그란디아 항구에 도착하니 제 눈에 아름다운 카마실비아식 건축물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입구에는 귀여운 파푸족이 저를 맞이하고 있더군요. 위에는 느낌표를 띄운채로 말이에요. 저는 그 귀여움에 홀려 자연스레 그에게 말을 걸었죠. 진심입니다. 절대 지식작 때문에 말을 건게 아니에요.


▲ 하지만 이 사진파일의 이름은 지식작

여전히 길 찾기는 되지 않으니 '라뮤트 유랑단은 그란디하 항구에 있다'는 단서를 보고 전체 지도 상에 조그맣게 보이는 나루터를 보고 찾아갔습니다. 사실 이것도 조금 헤멨어요. 평소에 길 찾기만 이용하다보니 금방 길치가 되어버리는 마술이었죠. 그리고 그곳에서 드디어 문제의 벤스 카터를 찾아냅니다.

벤스 카터에게 말을 걸고 우유를 주었더니 그가 아주 기뻐하며 저를 동료로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모험일지 1권 1장 완료. 보상으로 '라뮤트 유랑단의 벤스 주화'를 받습니다. 자, 그럼 이제 두번째 장으로 가야겠죠? 두번째 장은 '벤스 유렌'이라는 NPC와 동료가 되어야 합니다. 자, 그러러면 이제... 네? 녹 조각이 필요하다구요?

평소에 모험일지를 잘 안하다보니 이런 불상사가 생겨버렸습니다. 미리 뒷장까지 꼼꼼히 다 확인할 걸 그랬어요. 설마설마했는데 이거, 우유만 필요한게 아니었나 봅니다. 심지어 우유는 64개나 들고왔는데 달랑 1개만 원하더군요. 그러고나선 이제 녹 조각을 내놓으라니. 저는 어떻게든 녹 조각 대신 우유로 때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지만 NPC는 단호하기만 합니다. 이런 답정너 같은 사람.


▲ 이제서야 일지를 전부 확인하기 시작했다.

▲ 안 캐. 그냥 살거야.

그렇게 녹 주괴를 1개 사다 바치고, 이후 이어지는 일지에서 오곡 닭죽까지 바치고, NPC 3명에게 암호를 알아내서 채팅창에다가 낯부끄럽게 다른 유저들 앞에서 999를 외치고, 사진 속의 동상을 찾아 비밀의 서를 찾다보니 약간 방 탈출 게임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많이 헤메서 힘들긴 했지만 하나하나 풀려가는 것이 왠지 모를 쾌감을 안겨주더라고요. 제작진이 무엇을 노리고 이런 퀘스트 형식을 만들었는지 알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눈물겨운 사투끝에 모험일지 1권을 끝내니 기가 막히게 흑정령이 등장해서 파푸아크리니 섬으로 향하는 퀘스트를 줍니다. 감동적인 순간. 이제 섬 구경 한번 해볼 수 있는 건가요? 그 길로 저는 부리나케 선착장 관리 NPC 데렌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배가 없네요? 설마 했는데 퀘스트로 배를 안주는구나? 그리고 우리 데렌샤도 뗏목밖에 안파네요? 제 배는 벨리아 마을에 있는데요...?


▲ 아... 뗏목...

▲ 거래소에서 나룻배를 사다가 타 봤습니다.

▲ 거리봐라. 포기하자.

거래소에서 나룻배까지 구매해서 가보려했지만 거리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룻배 값만 날렸네요. 물론 나룻배로도 갈 수는 있겠지만 좀 더 쾌적하게 가려면 범선 이상급은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벨리아 주점에서 구매가능한 바탈리 범선을 이용하기로 했죠. 아 이런, 어쨌든 벨리아를 다시 가긴 가야 되는군요. 참고로, 기능성 의상인 낚시복 세트를 입고 수영해서 가시는 분도 봤습니다. 저는 아직도 정말 그분을 존경합니다.

그렇게 벨리아 마을까지 다녀오니 시간이 꽤 흐르더군요. 여기까지 제가 많이 헤멘 것처럼 썼지만 사실 더 많이 헤멨습니다. 오히려 창피해서 좀 완화시켜 놓은 거에요.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이런식으로 하다가 퀘스트 시작한지 2시간 가까이 섬 구경도 못했다는 전설입니다. 여러분은 저처럼 되지 마세요. 그러지 말라는 마음에서 신규 섬 업데이트, 가기전에 꼭 챙겨야 할 것들 이라는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 상쾌한 바람을 타고 도착한 파푸아크리니 섬

파푸아크리니 섬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파푸족과 해달족이 천년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쟁터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소꿉장난같아 보이지만 이 친구들은 굉장히 진지한 것이에요. 그런 섬에 도착해서 제가 퀘스트로 한 것은 바로 '둔갑'이었습니다. 사람 상태에서는 파푸족 또는 해달족과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으로 둔갑하는 것이죠. 이번 콘텐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배가 있는 곳에서 해달족 거주지가 좀 더 가까워서 저는 그쪽부터 진행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모험일지 상으로는 파푸족이 먼저라서 파푸족부터 진행하는게 더 편하긴 합니다. 어쨌든 저는 그렇게 밴스 모리오라는 NPC로부터 '끼쿵달 부락민 둔갑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둔갑이라는 콘텐츠를 들었을 때 '어떤 방식으로 변신하는지'가 저에겐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동안 여러 게임을 플레이하며 다양한 변신 방법을 봐 왔기 때문이죠. 그 중에선 기존 캐릭터가 그대로 멈춰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캐릭터가 생성되는 경우도 있었고, 의상 형식으로 착용하는 경우, 또는 아예 형체가 일정 시간 바뀌는 버프 형태인 경우도 있었기에 검은사막 역시 이런 방식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놀랍게도 모두 틀렸습니다. 검은사막은 정말 색다른 게임이었어요. 둔갑서를 사용하자 해달족 모양의 캐릭터가 만들어지더니, 아니, 탈 것이 만들어지더니, R을 눌러 기존 캐릭터가 그곳에 '탑승'했습니다. 이건.. 로봇..? 실제로 그런 컨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자연스러운 광경이었습니다. 왜 패치노트에서 변신하면 수영이 안된다고 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죠. 분명 방수처리가 잘 안된겁니다.


▲ 부락민 둔갑서를 사용하자

▲ 부락민 모양의 탈 것이 나타났다. 시스템 가동, 준비완료.

▲ 장렬하게 불타며 탑승. 이거 좀 무서운걸.

이렇게 파푸족 또는 해달족으로 둔갑을 하고 나서 그들과 교류하며 풀어나간 모험일지는 상당히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검은사막에서 이런 재미를 맛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 두 종족이 왜 나름대로 다투고 있는지부터, 기존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사고방식, 종족의 눈에 띄지 않게 반드시 숨어서 해야하는 컨셉의 둔갑 등을 보고 있자면 게임 세계관 내에서 다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캐릭터들의 이모저모를 파헤친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귀여운 외모는 보너스였네요.

이전에 샤이 캐릭터가 처음 출시될 당시 유저들이 '이러다가 뭐 해달족 같은 애들도 캐릭터로 나오는 것 아니냐'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그런 말을 처음 꺼내신 분이 누구죠? 예지력이 굉장하시군요. 샤이처럼 정식 클래스로 나온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제 우리는 이 두 종족마저 체험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모험일지로 헤멨던 부분은 점차 익숙해지다보니 감을 잡게 되더군요. 모험일지를 진행하면서 진주 물고기 교에 들어가기 위해 초록색 등급 물고기도 잡아다주고, 별자리에 맞는 과일을 물어보고, 삐뚤빼뚤한 지도를 보고 길을 찾고, 알쏭달쏭한 퀴즈를 맞추다 보니 어느새 모험일지가 거의 끝났습니다. 물론 그만큼 제 시간도 금방 가버렸지만요. 저도 모르게 하다보니 빠졌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너무 귀여웠던 건 '파푸족 솔잎검사'의 공격 모션입니다. 나름 공격이라고 열심히 하는데 누가봐도 때찌때찌하는 느낌. 아래에 GIF를 준비했으니 한번 감상해보세요.


▲ 아니 내가 먹고 싶구나

▲ 길을 헤메다 보니 이런 해달족 대장군도 있었다.

▲ 이걸 보고 찾아가라고?

▲ 아장아장 잘도 걷는 해달족

▲ 때찌때찌! 야! 일어나!

라뮤트 유랑단 모험 일지 마지막 부분엔 '돌멘게 훈련 레이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돌멘게 훈련을 통해서 양 진영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컨셉으로 총 5일에 걸쳐서 진행이 되는데요, 높은 단계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나중엔 파티플레이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첫 1일차에는 돌멘게가 약해서 혼자서 쉽게 깰 수 있었는데, 2일차에는 제법 세져서 싸우다가 체력이 다 떨어져 버리더군요. 다행히 그렇게 둔갑이 풀려도 돌멘게 체력은 초기화되지 않기 때문에 구석에 가서 다시 둔갑한 후에 공격을 이어 나가면 됩니다. 문제는 앞으로 맞이하게 될 다음 단계들이 되겠네요.

대신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NPC가 다양한 종류의 둔갑서를 줍니다. 공격형 둔갑서, 방어형 둔갑서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둔갑서에도 여러 종류의 클래스가 있으니 이에 맞춰 전략을 짜고 파티로 클리어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콘텐츠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저랑 같이 플레이 해주실 분 계신가요?

결론적으론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엔 해달족과 파푸족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의 GM노트를 보면 친밀도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해달족입니다만, 제 주변엔 파푸족을 더 귀여워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일당백! 저와 한번 천년 전쟁을 시작해봅시다.


▲ 근접 공격형 해달족, 장렬한 소라검사

▲ 방어형 해달족, 불락의 꽃게기사

▲ 해달 vs 파푸, 당신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