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을 갖고 있다. 어느 장르를 불문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숙련된 유저들이 늘어난다는 것. 이 유저들은 특정 게임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피드백을 하고, 게임사에서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정보들을 스스로 창출해낸다. 이에 대해 게임 개발사는 숙련 유저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며 서로 상생하는 관계가 된다.

그런데 이런 순기능 외에도 게임이 오래되면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초보 유저'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숙련 유저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 뒤늦게 들어온 초보 유저들은 숙련 유저와 자신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갭을 느끼고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그러면 게임사는 고민을 하게 된다. 신규 유저의 유입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를 위해 아이템이 중요한 게임에서는 좋은 아이템을 지급하고, 컨트롤이 중요한 게임에서는 보다 접근성이 좋은 인터페이스를 구축하거나 새로운 게임 모드를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을 기획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밸런스 때문이다. 신규 유저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자칫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오랫동안 즐긴 유저의 이점과 재미도 존중되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이들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야 할까?

검은사막이 출시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래서 검은사막도 신규 유저와 기존 유저의 격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2020년 3월 18일, 검은사막만의 스프링 시즌이 시작되었고 이는 간단히 말해서 초보 유저를 위한 '기간 제한형 성장서버'였다.

그런데 스프링 시즌이 이미 출시된 시점에서 이를 지켜보는 유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과연 검은사막의 첫 시즌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검은사막의 시즌제가 지켜나가야할 '가치'는 무엇일까. 본 기사에서는 이에 대해 조금이나마 짚어보고자 한다.


▲ 3월 18일, 검은사막의 시즌제가 시작되었다.


모두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
신규 유저, 기존 유저 모두 접근 가능한 시즌 서버

본래 검은사막은 '올비아 서버'라는 신규/복귀유저 전용 성장 서버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시즌제는 그 장벽을 허물어버리고 누구나 '시즌 전용 캐릭터'를 만들면 시즌 서버에 접속할 수 있게 했다. 대신 시즌 서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따로 만들고, 본 서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했다.

이를 통해 신규 유저는 좋은 보상을 얻으며 빠르게 정착하고, 기존 유저는 쉽게 부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스템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기존 유저와 신규 유저가 동일한 스펙에서 어우러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시즌 서버는 다소 조용했던 올비아 서버와 달리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느낌이 됐다.

실제로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도 이런 방식은 상당한 새로움을 느끼게 했다. 초보 지역에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여러 사람들이 동일한 몹젠을 기다리며 퀘스트를 해결해나갔다. 5년 넘게 서비스한 게임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기존 유저인 기자도 쉽게 시즌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다.

▲ 처음 만나는 에단 퀘스트. 기존 유저, 신규 유저 모두 시즌 서버에서 어우러졌다.


더 강화된 정착 지원
더 빨라진 레벨업, 시즌 서버만의 고스펙 장비 지급

검은사막의 스프링 시즌은 신규 유저가 빨리 성장하고 좋은 장비를 맞추는 데에 집중했다. 따라서 경험치 획득량 상승 버프를 기본으로 하면서 레벨 10부터 시작되는 스프링 시즌 도전과제를 얹었다. 이 도전과제를 통해 추가 경험치 상승 버프를 얻고, 레벨에 맞는 장비를 맞춰나가는 것이다.

도전과제로 얻을 수 있는 '성장 지원 상자'는 특정 레벨을 달성할 때마다 마치 러시아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순차적으로 보상을 준다. 실제로 이 보상을 얻으며 플레이하다보면 메인 퀘스트 진행이 굉장히 쉬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원래 일반 서버에서는 단순히 메인 퀘스트만 밀고 나가면 금새 몬스터 이름이 빨간색으로 변해 사냥 속도가 느려진다. 캐릭터 레벨업 속도가 메인 퀘스트 진행 속도를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 서버에서는 그런 점이 없었고, 설령 빨간색 몬스터를 만난다해도 보상으로 준 장비 덕에 쉽게 클리어가 가능했다.


▲ 스프링 시즌 도전과제 창

▲ 도전과제로 처음 얻는 상자 보상. 레벨이 오를 때마다 순차적으로 열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검은사막은 이런 기본 장비 외에도 특수 강화 장비를 만들었다. 투발라 장비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장비 세트는 발레노스 지역 의뢰가 끝난 시점에서 NPC 푸가르를 만나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NPC 푸가르는 40일 동안 진행되는 일일 의뢰와 강화의뢰를 통해 각종 강화재료와 스택을 지급했다. 물론 강화 재료는 몬스터에게서도 얻을 수 있지만, 스택은 얻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를 통해 투발라 장비를 고(Ⅲ)까지 강화한 유저는 스택을 얻고 그 이상도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신규 유저가 장비를 받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노력을 통해 그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것을 염두해 둔 기획이었다. 실제로 여타 RPG에서 행해지는 '소매 넣기'나 '쩔' 행위가 신규 유저의 흥미 유발과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는 합당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대 장비는 동(V)투발라 세트. 이는 일반 서버 기준 고(Ⅲ)~유(Ⅳ) 단계의 우두머리 장비들과 맞먹는 스펙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스펙이 된 이유는 초보 유저가 검은사막 월드를 속속들이 경험하는데 큰 무리가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이 장비들을 착용하면 메인퀘스트를 기준으로 최근에 나온 오딜리타 지역까지 모두 수행이 가능하다.


▲ 시즌 아이템 동(Ⅴ) 투발라 귀걸이는 고(Ⅲ) 툰그라드 귀걸이에 맞먹는 스펙이다.

▲ NPC 푸가르의 의뢰는 아주 유용한 강화재료들을 제공한다.


안정적인 일반 서버 이전
시즌 종료 후 졸업 지원, 우두머리급 장비 교환

약 3개월간의 스프링 시즌이 끝나면 시즌 캐릭터들은 모두 일반 서버로 이전된다. 이후 다른 시즌이 시작된다 해도 돌아갈 수 없다. 따라서 한번 일반 서버로 넘어온 시즌 캐릭터는 일반 서버에서 본격적인 적응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동(V) 투발라 장비가 아무리 우두머리급 장비에 맞먹는 스펙을 가졌다해도 분명히 다른 아이템이기에, 검은사막은 시즌 졸업장을 통해 투발라 장비 중 하나를 우두머리 장비로 교환할 수 있는 혜택을 부여했다. 그리고 동(V) 카포티아 반지와 귀걸이 중 하나를 무조건 획득할 수 있게 했다.

어떤 우두머리 장비로 교환할지는 졸업 시 모험가의 장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동(V) 카포티아 액세서리의 지급은 상당히 괜찮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반 서버에서도 카포티아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존 유저들도 시즌 캐릭터를 이용해 동 카포티아 액세서리를 얻고, 신규 유저는 조금이나마 더 높은 공격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 시즌이 끝난 후 지급하는 보상


완성도는 디테일에서 나온다
여전히 부족한 튜토리얼, 장비 성장에 치우쳐 떨어진 게임 몰입도

그동안 시즌 서버의 모습과 여러가지 장점들을 살펴봤다. 여기까지는 시즌 서버에 아무 문제가 없는 듯 하다. 신규 유저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일반 유저도 참여하게해서 나름대로 밸런스를 맞췄다. 그런데도 시즌 서버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는 유저들이 있는 것은 왜일까?

첫째는 결국 강화라는 랜덤 방식으로 귀결된 콘텐츠다. 사실 강화라는 것은 검은사막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요소인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강화작으로 아이템을 잃은 뒤 게임을 관둘지 고민하는 기존 유저들이 있는 판에, 신규 유저가 동(V) 단계까지 강화를 해야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일반 서버보다 강화 확률을 높이긴 했지만, 역시 '랜덤'이라는 요소는 신규 유저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신규 유저라면 사실 강화보다는 오롯이 검은사막의 세계관과 수많은 콘텐츠들을 즐기며 흥미를 느껴야 한다. 기자도 초보시절에 그랬고, 현재 많은 유저들이 그러고 있다. 하지만 3개월의 기간내에서 동(V)을 띄워야한다는 압박감은 오직 장비 강화만을 목적으로 게임을 하게 만들고, 이는 검은사막이 가진 가치를 반감시키고 만다.


▲ 신규 유저가 가장 두려워하게 될 메뉴

둘째는 여전히 불친절한 초보자 튜토리얼이다. 시즌 서버를 플레이하면서 경험치와 장비 측면에서는 크게 편해졌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은 달라진게 없었다. 퀘스트는 변함 없었고, 튜토리얼도 그대로였다. 검은사막의 튜토리얼은 W와 T를 이용해 파란 선을 따라 가는 법과 R을 눌러 상호작용하는 법 밖에 알려주지 않는다.

이를 보고 기자는 몇달 전의 경험을 떠올렸다. 당시 검은사막을 처음 시작한 지인이 크론성 주변을 멤돌며 '점프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봐 기자를 당황시킨 것이다. 퀘스트 상 돌벽을 점프해서 올라가야 하는데, 그 친구는 그동안 점프 기능이 없는 모바일 게임만 해온 탓에 보통의 MMORPG에서 SPACE가 점프키라는 당연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당시에는 그 친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조작 튜토리얼에 W와 R, T만 있었지 어디에도 점프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지적이 너무 사소한 것 아니냐 생각할지 몰라도, 사실 신규 유저는 기존 유저가 생각지도 못하는 사소한 데서 막히고 짜증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괜히 다른 게임에서 시시콜콜한 기본 튜토리얼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 정확히 그 친구가 막혔던 지형. 점프 키를 알려주지 않은 탓에, 퀘스트 진행을 못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NPC를 찾는 방법, 의뢰 타입을 설정하는 방법, 강화 방법, 세트 효과, 가공(L), 생활 등 중요한 측면의 튜토리얼이 모두 부족했다. 강화에 대한 건 칼페온 지역에나 가야 살짝 나오지만 스택에 대한 설명은 없었고, 가공 역시 남몰래 조합 아이템을 던져줄 뿐 친절한 가이드는 없었다.

물론 게임 내 도움말 또는 패치노트와 GM노트로 알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근에는 모험가 노트도 생겨서 다른 유저가 올린 공략을 보거나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사실 검은사막은 이상하게도 타 게임보다 이런 '문자 가이드'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요소는 부차적인 장치라고 생각된다. 가장 좋은 것은 인게임 내에서 '따라하기' 등의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정보를 얻어가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규 유저가 몰입할 수 있는 요소들이 부족했다. 꾸준히 지적되고 있는 메인 퀘스트의 지루한 진행 방식은 수정되지 않았다. 이전에 진행된 개편 패치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텍스트 위주의 진행'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고, 게임 몰입도를 높여주는 동영상은 초반에만 살짝 나오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다. 심지어 그런 퀘스트 문장에는 오타나 비문도 많다.

이런 방식으로 잘 짜여진 세계관을 버리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들의 공통점은 모두 세계관과 캐릭터 특유의 성격을 잘 살렸다는 점이다. 그것이 유저들을 몰입시키고 감동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다양하게 여기는 메뉴와 장비들이, 신규 유저에겐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시즌은 검은사막을 왠만큼 알고 있는 복귀 유저나 부캐작을 위한 기존 유저의 놀이터로 보인다. 빠르게 스펙을 향상시킨 뒤, 졸업한다. 이게 목표다. 그 어디에도 검은사막을 좀 더 친절하게 경험하고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는 없다. 신규 유저를 유치하려면 사실 이 점을 먼저 고려했어야 했다.

물론 이번 시즌을 통해 '전투 장비' 측면에서 신규 모험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맞다. 실제로 이를 통해 많은 신규 유저가 정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근본적으로 신규 유저를 유치하고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보다 세밀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신경 쓰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디테일이다.

검은사막의 시즌이 분명히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스프링 시즌이 있다면 서머 시즌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 제 2,3,4의 흑정령 서버가 나올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검은사막이 단순히 장비만 퍼 주는 것이 아닌, 신규 유저의 몰입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점점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기자는 분명히 얼마전 검은사막이 '몰입형 게임'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콘텐츠를 발표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 검은사막의 묘미는 장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 경치, 생활에서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