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아의 기록 #1~#25







바아의 기록 #1 : 끝없는 노력


제일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스승님을 통해 아토락시온에 들어오기 전나는 말에게 밟혀 척추가 부러졌었다그때 난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눈이 다시 떠지고 낮선 구조물이 시야에 들어왔다스스로를 데키아라고 소개한 그는 내게 새로운 사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세상을 검은 죽음으로부터 구하는 사명이었다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아토락시온의 곳곳을 모두 둘러보고 나니 그 말이 사실임이 실감되기 시작했다너무 거대한 사명이어서 견뎌낼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하지만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하나하나 적용해보면서 점점 병기를 제작하는 실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때로는 스승님께 병기의 작동 원리에 대해 묻기도 했다스승님은 한 명에게만 더 많은 지식을 줄 수 없다고 말했지만글라디우스에서 승리할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바아의 기록 #2 : 네 개의 석판


스승님은 우리의 공동 목표를 잊지 않으려면 석판을 만들어서 우리끼리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했다화합결속신뢰우정에 대해 떠올리게 해주는 내용이었다우리는 각각의 석판 중 하나를 담당하여 네개씩 만들기로 했다스승님은 각자의 구역에자신이 좋아하는 위치에 모두의 석판을 두라고 하셨다나는 훗날을 위해 가장 안쪽 구역 앞에 석판을 두었다최종 병기를 만들기 위해 지나갈 때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바아의 기록 #3 : 처음 받는 위안


검은 침탈자로부터 피해를 덜 받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수없이 전했지만스승님은 내 말을 들어주시지 않았다항상 최선을 다해왔는데도 아직이라니이얘기를 오르에게 털어놓으니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아주었다.

오르에게 위안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항상 무섭다거나괴롭다거나 하는 이유로 내게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겉모습은 굳세 보이지만 속은 누구보다 여린 오르때때로 그녀를 위한 호루 앞에 앉아있으면그녀는 자연스레 내 곁으로 와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곤 했다그녀의 말이 맞다조금만 더 기다리면스승님도 내 노력을 알아주실 것이다.



바아의 기록 #4 : 데키아의 총애


스승님이 마음을 열기 시작하신 건 한창 내 구역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기운 분산 육면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애먹고 있었는데스승님이 조용히 나타나 도움을 주셨다.

그러면서 바깥으로 나갈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아 특별히 도와주는 것이니 오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후부터는 내 질문에 답을 잘 해주실 뿐만 아니라 나만 관심있어할 내용까지 상세하게 가르쳐주셨다다른 데키마 중에서는 시카만이 스승님의 말을 열심히 받아적었다.

나는 그런 시카가 대견해 보여 따로 이것저것 가르쳐주기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시카는 자신의 병기를 내 병기와 비슷하게 만들기 시작했다하지만 완성도가 부족했다강력하지만 쉽게 과열되었고금세 힘을 잃고 쓰러져버리곤 했다.



바아의 기록 #5 : 두근거리는 밤


내일은 아토락시온을 처음으로 떠나 바아마키아로 간다바아마키아...그곳은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피부가 녹고타는 듯한 모래로 발 디딜 수 없는 고통이 극심한 환경이라고 한다과연 내가 그 환경을 그대로 옮겨올 수 있을까?

게다가 이제는 새로운 병기도 고안해내야 한다지금까지는 내 몸의 움직임을 이해하고사람 형태의 병기만을 제작했었다하지만 스승님의 말에 따르면 바깥 세상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있다고 한다어떤 생명체는 관절이 우리와 반대쪽으로 접히기도 하고또 어떤 생명체는 꼬리가 길게 늘어져 있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바아의 기록 #6 : 생명의 신비


바깥에 나가 제일 처음 본 생명체는 라는 것이었다자기 몸뚱이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한 마리를 잡아 보니그 크기에 비해 상당히 가벼운 것을 알 수 있었다이 작은 몸뚱이에서 날개를 수 없이 퍼덕일 힘이 나오다니 생명이란 참으로 신비하다.



바아의 기록 #7 : 끝없이 펼쳐진 모래


사막은 끝이 있는 땅일까가면 갈수록 동식물이 보이지 않는다가혹한 기후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들을 참고하여 새로운 병기를 만들 거라 수없이 다짐하여 발걸음을 옮겼지만점점 새하얀 뼈더미만 만나게 되니 자연스럽게 의지가 꺾인다.

간혹 나무그늘 밑에서 만나는 작은 도마뱀들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줄 뿐이었다.



바아의 기록 #8 : 작은 바아마키아


얼마나 걸었을까?

사막여우 하나가 모래 언덕에 납작 엎드려있다혹시나 살아있을까 하고 다가갔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들었다 떨구었다힘이 없는 모양이었다물과 고리를 나누어주니 금세 정신을 차리고 어디론가 향했다그렇게 그 녀석을 떠나보내고 언덕을 다 내려왔을 때 쯤이었을까...?

녀석과 녀석의 새끼로 보이는 여우들이 나를 뒤따라왔다무슨 일인가 싶어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러자 어미로 보이는 녀석이 자리에 않아 나를 간절하게 쳐다보았다그제서야 이 여우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아차렸다배가 고픈 것이었다내가 음식을 꺼내들자새끼여우들이 내 손을 향해 달려들었다.

음식을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만약 이 녀석들이 여행이 끝나도록 따라온다면아토락시온으로 데려가 볼 생각이다.

난 여기...바아마키아와 똑같은아토락시온에 작은 바아마키아를 만들거니까이 녀석들을 데려가도 거기서 잘 적응하지 않을까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바아의 기록 #9 : 수송 장치 고안


처음으로 만난 도시에서는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 도구를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선로를 이용하여 물자를 빠르게 옮기는 것이 정말 장관이었다.

손을 쓰지 않고도 병기의 성능을 자동적으로 실험할 수 있다면병기를 제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의 머릿속에는 빠르게 설계도가 그려져 나갔다두 줄의 선로를 타고 이동하는 카이벨라 육면체그리고 그 육면체들로부터 검은 침탈자의 흔적을 감지하여 동작과 정지를 반복하는 병기들이 생각이 실현된다면바아마키아 안에서는 병기를 제작하자마자 오작동이 일어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병기 제작에만 전념할 수 있겠지스승님과 오르시카오루도 좋아할 것이다.



바아의 기록 #10 : 카이벨란 육면체 개조


모두가 다시 아토락시온에 모였다나는 선로를 보았던 경험과 함께 내가 오민한 장치에 대해 설명했다다른 데키마들은 고개를 저을 뿐이였다카이벨란 육면체가 이미 아토락시온 곳곳에 설치되었는데 왜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나는 스스로 선로를 설계하고카이벨란 육면체가 선로를 따라 이동할 수 있도록 개조하기로 했다다른 데키마들은 아마 지금쯤 새로운 병기들을 만들어내고 있겠지하지만 이 작업이 끝나고 나면 이 선로가 얼마나 유용한지를 할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이미 다른 데키마들도 앞다투어 이걸 설치하려고 하겠지 


바아의 기록 #11 : 이동형 원반


카이벨란 육면체 수송 체계가 완성되었다막상 선로를 완성하고 나니 사람도 운반할 수 있는 장치가 있으면 더욱 편리할 것 같았다그러나 새로운 선로를 만드려면 너무 많은 공간이 필요해서 병기를 만들 공간까지 부족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스승님이 남긴 교본에서 원반 형태의 수송 장치 설계도를 찾은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기존과 달리 선로에 의존할 필요가 없고사람을 싣고 움직이기에도 충분할 넓이였기 때문이었다다음 글라디우스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스승님의 기록에 남아있는 이 장치를 먼저 만들기로 했다병기는 그 이후에 만들어도 된다이 쳬계만 탄탄하게 잡힌다면그 이후부터는 시간에 덜 쫓길 수 있다.



바아의 기록 #12 : 그늘진 얼굴


바깥으로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오르는 내가 무얼 하는지 궁금하다며 바아마키아에 자주 오곤 했었다그런데 최근에는 통 바아마키아로 오지 않는 데다가 표정도 멍든 달 같다.

그 이유에 대해 묻기만 하면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버린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된다오르가 방문했던 오르제키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요루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오르를 바라보는 것을 보아서는 아직 아무에게도 털어놓치 않은 것 같다오르가 걱정을 놓을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고 싶지만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우리를 믿어준 스승님을 두고 다른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분명때가 되면 오르는 내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항상 함께했던 친구니까.



바아의 기록 #13 : 친구의 변절


요루와 오르가 자신의 구역으로 가고 나자시카가 말했다나를 따로 보자고 하다니 별 일이라고 생각했다.

데키아가 기다리고 있으니 짧게 말하라고 했다그러자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너 그거 알아오르는 변절자야아토락시온에 재앙을 가져올거라고!”

그렇게 말하며 오르의 낙원에 가서 직접 두 눈으로 보라고 말했다그곳에 검은 여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상의 석상이 생겼다며,

밖에 나가기 직전에 스승님이 당부했던 말을 떠올렸다이 세상을 구원해 줄 신 같은건 없다고신이 존재하며 신의 의지대로 세상이 흘러간다고 믿는 건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그러니 신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신을 믿는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약해졌다는 뜻이라고...



바아의 기록 #14 : 서로의 고통


하지만 의아했다데키아에게 오르의 변절을 고하여 벌을 받게 할 것이지왜 내게 말한걸까시카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기만 할 뿐이었다그가 바깥에서 돌아온 후부터 짓기 시작한 기분 나쁜 표정이었다.

나는 달이 바아마키아의 심장을 지나는 시간 이후로 내 구역을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러나그 때시카의 말을 들은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눈 앞에 나타난 오르의 구역 곳곳에 검은 여신상이 가득했다뒤를 돌아보니 오르는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믿을 수 없게도 시카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왜 우냐는 물음에 그녀는 이내 숨겨왔던 말을 털어놓았다.

널 위해 견뎠어.”



바아의 기록 #15 : 오르의 고백


그동안 철저히 방문을 거절하던 것을 뚫고 들어갔다그리고 눈 앞에 나타난 오르의 구역 곳곳에 검은 여신상이 가득했다뒤를 돌아보자 오르는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믿을 수 없게도 시카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왜 우냐는 물음에 그녀는 이내 숨겨왔던 말을 털어놓았다.

널 위해 견뎠어.”

나는 당황하여 물어보았다.

무슨 소리야?”

그제야 책상 위의 양피지들이 눈에 들어왔다내가 설계한 병기를 역설계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는 데다가거기에는 시카의 글씨체로 더 많은 걸 알아오라고 적혀있기까지 했다최근에 오르가 나를 피해왔던 것을 떠올렸다.

내 기술을 시카에게 주지 않으려고 그런 선택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르를 비난할 수 없었다.

시카가 오르를 이용한 것이었다일단은 오르를 안심시켜야 한다.

괜찮아이제는 숨기지 않아도 돼.”

내 말을 듣고 오르가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내게 서서히 다가와 안겼다평행을 함께한 친구인데도 이용하려고 하다니언젠가부터 시카의 성격이 비뚤어지기 시작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이정도일 줄이야그를 멀리하고오르를 지켜줘야 한다.



바아의 기록 #16 : 균열 위의 첨탑


시카가 데키마들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고 있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카를 제외한 다른 데키마들의 신뢰는 여전히 끈끈해 보인다.

하지만 시카가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비록 시카와의 관계가 균열 위에 세워진 첨탑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지라도 모두가 하늘을 향해 마지막까지 손을 뻗어야만 한다한 명이라도 포기하면 스승님을 포함한 모두가 위험해지니까그러니 나는 더욱 연구에 몰두해서 더 강력한 병기를...(훼손)



바아의 기록 #17 : 사라진 데키마


시카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이 때문에 마지막 글라디우스는 개최하지도 못하고 중단되어버렸다데키아는 시카가 외부에서만 구할 수 있는 병기 재료를 수급하러 나갔다고 하며 우리를 안심시켰지만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오르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뿐 말이 없었다.



바아의 기록 #18 : 나타나지 않은 이들


결전의 날나는 평행을 지켜온 신념에 따라 병기 군단을 지휘했다다시 나온 바깥에는 스승님의 말대로 검은 침탈자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전혀 준비되어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침탈자들에 씌여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카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마지막 글라디우스가 열리지 않았으니 10만 아토르도 없다검은 침탈자와의 싸움은 점점 버거워져만 갔다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이들의 병기가 보이지 않았다시카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지요루는그리고 오르는 어째서 병기들을 보내지 않았지결전의 날에 보자고 약속했던 것을 잊었나그렇다면 그동안 내게 해왔던 말은모두들 멸망을 원하지는 않을 텐데 어째서어째서!



바아의 기록 #19 : 사라진 범인


아토르 군단 없이 혼자 검은 침탈자를 막아내는 것은 무리였다검은 침탈자들에게 밀려 아토락시온에 돌아와 보니이곳의 동력을 유지해주던 검은돌이 사라져 있었다게다가 데키아 또한 기억을 잃은 채아토락시온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나가고 있었다곧이어 오르와 요루도 나타났고시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병기를 이끌고 돌아왔다시카는 자신의 말을 들었어야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어처구니가 없었다스승님을 배신하고 먼저 떠난 게 누구던가혹시 검은 돌이 사라지고데키아가 기억을 잃은 것 역시 시카의 짓은 아닐까?

내 생각을 입 밖에 꺼내자마자 시카는 자기는 절대 아니라고 부정했다동시에 그는 오르를 지목했다.

아무튼이건 오르가 범인이야신을 멀리하라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한다고 경고했었잖아내 말을 왜 안 들어주는 거야!”

그 말에 오르는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요루도 아무 반박을 하지 않았다나는 필사적으로 오르를 변호했다.

아냐오르에게는 스승님도데키아도 꼭 필요해!”

그러자 시카도 요루도 의문스러운 표정을 띤 채 나를 바라보았다.



바아의 기록 #20 : 붕괴하는 신뢰


검은 여신에게 아토르 군단을 바쳐야 하니까마지막 글라디우스가 열려야 한다고그러니까 데키아의 기억이나 검은돌이 사라진 것에 오르는 관련 없어!”

그러면 답 나왔네바아 네가 침탈자들에게 진 책임을 우리한테 돌리려고 그러는 거지?”

어이가 없었다나 혼자만이 병기들을 이끌고 나갔는데 내 책임이라니그때 시카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이죽거리듯이 말했다.

그래지금까지 매번 승리만 하다가 처음으로 패배해보니 어때나도 그 기분 알아그러니까 이제 그만하고 검은돌을 제자리에 돌려놔나도 지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돌아왔잖아!”



바아의 기록 #21 : 마음에 자리잡은 것


머리가 아찔했다내 입장을 이해해주는 이가 없었다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쳤다.

오르..!”

그러나 오르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나의 결백을 증명해줄 유일한 사람이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나는 애써 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네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은내가 아니라 너의 마음 속에 자리한 검은 여신이었어그렇지?”

오르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그저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릴 뿐내면에 쌓인 분노를 멈출 길이 없었다나는 조용히 칼을 꺼내들어 내 반대편에 서 있는 오르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시카와 요루가 당황하며나를 향해 그만 두라고 외쳤다시카와 함께 온 병기가 반응하기도 전에칼이 공기를 가르고 정확한 중심에 꽂혔다.

다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리고 칼이 깊숙히 박힌 타리브레의 문은 그대로 작동을 멈췄다.

너희와 함께 침탈자를 물리칠 방법이 없다면차라리 죽는 편을 택하겠어.”



바아의 기록 #22 : 결론


내 구역으로 돌아온 나는 일지를 전부 찢어버렸다다른 데키마들을 돕겠다는 생각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이들에게는 내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그저 원망하고 탓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아



바아의 기록 #23 : 분노와 고독


바아마키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과거의 흔적을 지워도 감정이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다.

시카와 요루는 그럴 수 있다하지만 오르는 내게도 약속했었다분명함께 병기 군단을 이끌고 검은 침탈자들에게 맞서겠다고..! 오르가 왜 검은 침탈자들을 방관했는지 이래할 수 없다검은 여신을 숭배하는 건 알았지만우리 둘의 약속까지 지키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나는 오르가 건내준 증표와 편지를 구석에 던져버렸다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



바아의 기록 #24 : 절망과 고독


이대로 가다가는 미쳐버릴 지도 모르겠다점점 주변 사물들이 내게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검은 침탈자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에 나는 왜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지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어쩌면 나는 실패로부터 도피라려고 바아마키아에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비록 모든 이들이 나와 스승님을 등졌지만나마저 이 의무로부터 도망간다면 정말 이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일념으로 검은 침탈자와 맞섰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라니...

내가 사랑했던 이의 모릅을 본떠 만든 루크레시아를 바라보았다우르키오스의 등 위에 앉아 있는 모습에서 슬픈 미소가 슬쩍 보인 것도 같다시간을 되돌려서 오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바아의 기록 #25 : 카이브화 계획


이대로 멈춰만 있을 수는 없다기억을 잃어버린 데키아가 다시 한 번 아토락시온을 완성 할 때까지 우리도 버텨야만 한다그것만이 잘못을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카이브를 만들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스승님이 그러하겠다고 하였듯이우리도 때가 되었을 때 다시 깨어나 검은 침탈자를 막을 것이다하지만 카이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운 바가 없었다.

어쩌면 스승님이 만들었던 카이벨란 육면체를 응용하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내가 모든 내용을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약간이나마 개조를 해 본 경험이 있다설사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만들어내야만 한다그것이 우리의 숙명을 이행한 마지막 방법이니까.

생각이 정리되자 계획이 차례차례 떠오르기 시작했다우선 다른 데키마들을 설득해야 한다나 혼자서는 이뤄낼 수 없는 일이니까.












배경, 용어 설명







글라디우스





 데키아





데키마





아토르





바아&오르 ->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