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항로 개척에 가장 처음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당시 유럽의 소국이었던 포르투갈이었습니다.당시 향료무역은 베네치아가 독점하다시피하고 있었고 지중해의 주도권 역시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다른 여러나라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던 포르투갈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대서양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처음 나타난 것이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였습니다.엔리케가 파견한 최초의 탐험선은 1415년 카나리아 제도까지 항해하였습니다.이후 10여년 간 마데이라, 포르토산토, 아조레스 등 대서양 제도 및 그 근해까지 답사가 진행되었습니다.1434년에는 비로소 서아프리카의 보자도르곶을 회항하였고, 그 이후 세네갈강 ·제바강까지 남하하였습니다.



엔리케 왕자가 죽기까지는(1460) 코나크리 부근까지의 아프리카 서해안이 밝혀졌습니다.1471년에는 적도에 도달했고 1484년에는 디에고 캄이 콩고강 어귀에 도달했습니다.1486년에 이르러 포르투갈의 항해자인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인 희망봉에 다다랐습니다.이후로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와 향료무역을 시작한 포르투갈은 유럽의 강자로 새롭게 부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제노아인인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서쪽으로 향료군도를 찾아나서는 모험에 나서게 됩니다.하지만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은 신대륙(지금의 아메리카)이었고 이후에 다른 항해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됩니다.또한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에 이르러 캘리컷에 입항하였으며, 같은 해에 카보트는 영국함대의 함장으로서 뉴펀들랜드를 발견하여 아메리카의 북부해안을 탐험하였습니다.



그리고 1년 후 두 사람은 동시에 브라질을 발견하였습니다.16세기 초 포르투갈 탐험대 두 척이 남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라플라타 강까지 전진했고 그 중 한 함대는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인솔하였습니다.포르투갈은 계속해서 1506년에 마다가스카르를, 1507년에는 마우리티우스를 발견하였습니다.



1509년에는 말라카에 도달하였고 1511년에는 이곳을 공략해 손에 넣게 됩니다. 또한 1513년에 이르러 누녜즈 드 발보아가 다리엔 꼭대기에 올라 유럽인으로서 최초로 태평양을 내려다 보게 됩니다.1418년 엔리크의 선박이 마데이라까지 진출했던것과 비교해서 1518년에 포르투갈의 선박들은 중국의 광동이나 일본까지도 진출하게 되었습니다.불과 100년만에 말입니다.



그리고 포르투갈 사람인 마젤란이 스페인의 국기를 달고 1519년 세비야를 출발하게 되고 3년이란 시간이 걸려서 마젤란 해협을 지나 1522년 다시 세비야에 도착해 세계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하게 됩니다.마젤란 자신은 막탄섬에서 죽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1415년 - 카나리아 제도

1418년 - 마데이라

1434년 - 서아프리카의 보자도르곶

1460년 - 코나크리 부근까지의 아프리카 서해안

1471년 - 적도

1484년 - 콩고강 어귀 (디에고 캄)

1486년 - 아프리카 최남단인 희망봉 (바르톨로뮤 디아스)

1492년 - 바하마제도의 와틀링섬을 발견, 쿠바·히스파니올라(아이티)에 도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498년 - 인도에 이르러 캘리컷에 입항 (바스코 다 가마)

1498년 - 뉴펀들랜드를 발견, 아메리카의 북부해안을 탐험 (카보트)

1498∼1500년 - 트리니다드와 오리노코 하구를 발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502∼1504년 - 온두라스와 파나마 지협을 발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506년 - 마다가스카르

1507년 - 마우리티우스

1509년 - 말라카

1513년 - 다리엔에서 최초로 태평양을 보게 됨 (누녜즈 드 발보아)

1518년 - 광동, 일본

1519~1522년 - 세계 최초로 세계 일주 성공 (마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