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죽는 건가.”

샤라인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연기가 달라붙어 검게 변한 얼굴과 피에 물들어 붉게 변색되어버린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한 모습이었다. 한스나 얀, 정신을 잃어버린 세리스도 그와 마찬가지로 쉬지 않고 콜록대며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렸다. 방문 너머 창문으로 불길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그의 온 몸에서 힘이 쫙 빠져버렸다. 비록 비참한 상황이었지만 언제나 곧게 펴져있던 그의 등도 굽어버렸고 당당했던 어깨도 축 처져 재채기를 할 때 마다 들썩일 뿐이었다.

갑판에서 해적들과 싸우다가 비가 와서 더 이상 대항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샤라인은 자신이 해적들의 포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며 한낱 해적들에게 패한 사실을 부끄러워했었다.

하지만 죽음이 바로 앞으로 다가오니 그동안 그가 열심히 하지 못했던 것, 잘못했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아른아른 떠오르며 그를 괴롭혔다. 조금만 더 잘 했더라면. 조금만 더 효심 깊은 자식이었더라면!

“물소리다…….”

지원함대 전열함의 포격소리를 들었을 때보다도 몇 배는 더 반가운 물소리가 한스의 귓불을 간질이자 축 쳐져있던 한스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리자 얀과 샤라인도 그 소리를 들은 듯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금방이라도 문을 태워버리고 방 안으로 들어오려던 불길은 방금보다 그 위세가 한풀 꺾여 있었고 간간히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공자님! 제독님!”

계속되는 물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점점 많이, 크게 들려오더니 함장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외쳤다. 이젠 죽었다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던 그들은 함장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 함은 포기해야 합니다. 어서 나오십시오.”

배를 포기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얀과 샤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는 살아남게 되었다는 안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사님. 제가 하겠습니다.”

한스가 침대에 뉘었던 세리스를 안으려 하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병사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한스는 찬찬히 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복부와 팔에 붕대를 칭칭 둘러맨 그는 보기엔 그리 큰 부상이 아니었지만 피를 꽤나 많이 흘린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괜찮아. 피를 많이 흘린 것 같은데 어서 탈출해서 푹 쉬어. 적어도 나는 다치진 않았으니까 힘들지는 않아.”

한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자 그가 알았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한스는 그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여 고맙다는 말을 대신하고는 세리스를 안아들고 복도로 나갔다. 비록 연기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불길은 병사들에 의해 진압되어 있었다.

“여기에 내려놓게.”

한스와 세리스가 갑판에 도착하자 샤라인이 다급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가 세리스를 내려놓자 다른 배에서 건너왔는지 처음 보는 얼굴의 선의가 다가와 그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숨소리를 들어보기도 하고 눈꺼풀을 들어 눈동자를 바라보더니 그는 한참동안을 심각한 표정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다른 전함들의 모습을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몇 분 정도나 연기에 노출되어 있었습니까?”

선의의 물음에 산들바람 호에 타고 있던 이들 모두가 침묵했다. 얀과 샤라인, 한스를 제외하고는 그녀의 이름도, 그녀가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알고 있지 않았고 선실에 불이 언제 번졌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투가 개시된 지 4시간이 지났으며 돛에 불이 붙어 바다로 밀어버린 것이 3시간 전이지만 그 때에는 선체에 직접적으로 불이 붙지는 않았고 2시간 30분 정도 전에 후방 마스트에 불이 붙었었소.

그리고 한 시간 전 선미 쪽에 불이 붙었었다가 비가 와서 꺼졌으니 노출된 것은 최대 두 시간 정도 되었을 거요.”

함장의 말에 선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온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지원함대에서 내려 보낸 자그마한 보트들이 산들바람호의 기울어버린 측면 포대 쪽으로 다가와서는 조교를 내리고 있었다.

“344 함대의 기함 페리플로스에서 산들바람호의 함장 이하 사관들과 장병, 제독님과 공자님을 모셔오라는 명령을 받고 온 중령 겐트 프리드먼입니다. 저희가 출항하기 직전, 영지의 경계등급이 경계에서 준 전시상황으로 올라갔습니다. 최대한 빨리 귀환하시라는 영주님의 말씀도 계셨습니다.”

“준 전시라… 그렇군. 어서 돌아가야겠군.”

얀이 중얼거리며 보트로 내려가기 시작하자 샤라인을 포함한 다른 이들도 약간은 불안하다는 얼굴로 보트에 타기 시작했다. 해적들과 항시 전쟁을 치루고 있던 엠펠 영지는 항상 경계의 등급이었을 뿐 준 전시까지 간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적 따위는 문제없다는 엠펠 영지의 자신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제국 해군력의 거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엠펠 영지의 해군은 얼마 되지 않는 정규함대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기에 단순한 자신감만은 아니었다.

“남은 함선들은 모두 자침인가…….”

해안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함선들을 보고 얀이 안타까운 표정을 하며 중얼거렸다. 제독이 병사하는 바람에 해군 대제독인 그가 맡아온 함대였다. 그런 함대의 운용 가능한 절반 이상의 전력이 자침하는 모습을 보려니 그의 마음은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공자님과 얀 제독님의 승선을 환영합니다.”

보트에 타고 있던 이들이 함선들의 갑판이나 측면 장갑 부분에 화약을 잔뜩 메달아 심지로 연결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보트는 344 함대의 기함 페리플로스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페리플로스는 자신들이 맞아야 할 손님들의 지위가 높다는 것을 고려해서인지 조교를 미리 내려놓고는 사관들과 344 함대의 제독과 함장, 부함장이 갑판에 서서 얀과 샤라인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정렬해 있었다.

“하하… 지금은 나나 공자님이나 환영받을 기분이 아닌 것 같군. 일단 동방 대륙에서 건너온 상선대의 생존자인 저 레이디를 편한 곳으로 옮기고, 다른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최대한 빨리 영지로 돌아가게.”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어서였는지 자신의 불찰 때문에 병사들이 많이 죽었다며 자책을 하고 있는 것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얀은 힘없게 웃으며 344 함대의 제독에게 말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장교정장을 입고 우산도 없이 갑판에 서서 솟아오르는 짜증을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사관들은 얀의 말을 듣고는 344 함대의 제독이나 페리플로스 함장의 명령을 듣기도 전에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군대의 수직적인 위계질서 상, 해군 최고사령관인 얀의 명령은 344 함대의 제독이나 함장보다 더 우선권을 갖고 있었으니 그들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자침 시작합니다!”

난파되어버린 함선들에 화약을 설치하던 병사들이 보트로 난파된 함선들과 거리를 벌려 멀리 피하고는 길게 연결된 심지를 붙잡고 한 중갤리온의 갑판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그 곳에서 크게 복창하고는 비 때문에 그 기운이 매우 약해져 버린 횃불을 갔다 대어 심지에 불을 붙였다.

“후우…….”

정작 안타까워야 하는 이는 얀이었지만 그런 안타까운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이는  의외로 샤라인이었다. 얀은 이미 그 함대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린 듯 무표정한 얼굴로 폭발하기 시작한 화약 더미들을 싣고 있는 난파된 함선들을 바라보았다.

꽤나 큰 폭발과 함께 나무 판과 얇은 철판들이 배에서 분리되어 튕겨 날아가기 시작했다. 배가 완전히 박살난 것은 아니었지만 측면과 선미, 선수 쪽이 모두 다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나버린 이상 망가진 배들은 다시 사용하기 보다는 새로 건조하는 것이 더 단가가 저렴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잔해들이 바닷물의 표면에 떨어지며 나무 쪼가리들이 바다를 떠다니기 시작하자 얀은 쓴 웃음을 지었다. 산들바람 호에서 난파되었다던 동방 무역함대를 수색할 때 보았던 잔해들이 생각나서였다. 그때만 해도 위세 등등했던 함대가 이렇게 잔해가 되어 흩뿌려 질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산들바람이 불더니 폭풍이 불어 닥치는군.”

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리곤 선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넓은 어깨가 조금은 좁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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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인은 앞으로도 안죽습니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