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지말게! 살을 주더라도 뼈를 취하란 말이야!"

구경꾼들 사이에서 또렷히 들려오는 목소리. 처음들어보는 목소리가 날아와 박힌다. 로자레일은 
이런 식으로는 본인이 필패라고 생각했다. 그 말이 맞았다. 월등한 실력차이에서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로자레일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디를 내줘야 할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저 춤추는 검을 멈춰야 했다.
로자레일은 이를 악물었다. 그가 움직임을 멈추자 미스체인은 베기보다는 찌르기를 위주로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빠르게 찔러 들어오는 검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다. 이에 로자레일은 오히려 가슴을 내밀며
몸 정면을 미스체인에게 향하도록 했다. 마치 공격해 보란 듯한 로자레일의 자세에 미스체인이 
어리둥절해 하다가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띈다.

"포기한 모양이군. 빠르게 끝내주지."

미스체인이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공격자세를 취하며 말한다. 로자레일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로자레일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미스체인의 검이 다시 춤추기
시작한다. 베고, 찌르고, 베고, 찌르고, 연이어 검이 휘둘러 진다.
마침내 칼날이 로자레일의 왼쪽 옆구리에 깊숙히 박힌다.

"꺄악!"

"저, 저런!"

구경꾼들 여기 저기에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비올라가 창백한 안색으로 비틀거린다.
안타까워하는 듯 한 시선들이 미스체인의 얼굴을 향한다.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고 있을 줄 알았던 미스체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구경꾼들이 의아해 하며, 옆구리에 검을 꼳고 있는 로자레일의 모습을 다시 살펴 본다.

"저길 봐!"

구경꾼들 중 로자레일 가까이에 있던 남자가 손가락으로 로자레일의 옆구리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검이 로자레일의 옆구리에 박힌 것이 아니라, 왼팔과 왼쪽 옆구리 사이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로자레일의 검은 미스체인의 가슴 언저리에 닿아 있다. 사람들이 환호한다.
로자레일이 그 유명한 검은표범 미스체인 경에게 승리한 것이다.
미스체인의 검이 꿈틀거리며 비틀린다. 로자레일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물러선다.
다리 힘이 풀린듯 계속 비틀거린다. 몇 발작 더 물러서는가 싶더니 다리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데인 영감이 헐레벌떡 뛰어와 로자레일을 부축한다.
그제야 금방 쓰러질 듯 위태로운 자세로 간신히 서 있던 비올라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발롯경..."

데인 영감의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부탁하려던 로자레일이 말을 멈춘다.
미스체인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아직 검을 치켜든 채로 로자레일과 그를 부축하고 있는 데인 영감을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노려보고 있다. 미스체인은 이 승부를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의 태도에
구경꾼들도 숨을 죽이고 바라본다. 삭막한 분위기가 맴돈다. 

"발롯경!"

비올라가 치마를 올려 붙잡고 달려와 로자레일과 미스체인 사이를 가로 막는다.

"이제 저희를 보내주세요. 부탁드려요. 흐흑..."

비올라가 말을 하다말고 다시 흐느낀다. 아까부터 얼마나 울었는지 곱게 칠한 화장이 지워지고,
얼굴도 퉁퉁 부어있다. 

"귀족을 모욕하고도 무사하길 바랐더냐!"

미스체인의 경호원들이 칼을 빼들고 로자레일 일행을 포위한다. 비올라는 벌벌 떨면서도 로자레일을
보호한다. 미스체인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구경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음을 느낀다.

"훗, 주인의 보호를 받는 경호원이라.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군."

가소롭다는 듯이 로자레일을 비웃은 미스체인이 칼을 집어 넣는다. 

"흥! 돌아가자!"

미스체인과 경호원들이 구경꾼들을 밀치며 사라진다. 
다행이라는 듯 한 숨을 내쉬는 로자레일. 다리 힘이 풀린 듯 비올라가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흩어지는 구경꾼들 사이에서 장년의 사내가 그들에게 다가온다.

"미르겔에 신성이 등장했군! 과정이야 어쨌든 검은표범을 이겼으니 호사가들 사이에 회자되겠어.
물론 검은표점이 시민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일이 더 빨리 퍼지겠지만 말이야!"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로자레일이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뜬다.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흐흐, 감사는 무슨. 좋은 구경을 했으니 만족하네."

"좋은 검입니다. 이 은혜는 무덤까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로자레일이 손에 꽉 쥐고 있던 검을 사내에게 내민다.

"그건 그대가 가지고 있게. 좋은 구경을 했으니 구경값은 내야지."

"아닙니다. 은혜를 받고 어찌 은인의 검까지 취하겠습니까."

좋은 검이었다. 명검까지는 아니었지만, 균형이 잘 잡혀있고 질 좋은 쇠로 만든 듯 무척 튼튼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종류의 검은 아니었다. 

"모든 검에는 주인이 있는 법이지. 나보다 자네에게 어울리는 구만. 
대신 이번 일을 무덤까지 가져가겠다는 말이나 지키게나. 잊어 버리면 무덤까지 찾아갈테니, 흐흐"

사내가 낡아 보이는 망토를 펄럭이며 뒤돌아 선다. 그 바람에 망토에 수놓아진 하얀 사자가 포효한다. 

"잠시만요! 은인의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이름 없는 수행기사일세,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겠지. 그럼 잘 가게나, 페스체일의 예쁜 아가씨."

비올라의 물음에 사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한다. 로자레일과 비올라는 사내가 멀리 사라져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까지도 하염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      **      *      **      *      **      *      *
 

로자레일과 미스체인의 결투가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은 미르겔의 호사가들의 입에  회자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시민들에게도 알려졌다. 
미르겔 총독부의 심판관이자 유명한 기사인 미스체인의 명성은 땅에 떨어지고, 
로자레일은 작은 명성을 얻었다. 
페스체일 가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로자레일의 이름까지 알려졌지만, 
미르겔 항의 대다수 시민들은 로자레일 보다는 페스체일 가문을 칭송했다.
뛰어난 수하는 훌륭한 주인 밑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로자레일의 신분이 노예이기에 이름까지는 알려지지 못한것이다.
페스체일 상단 내에서도 로자레일의 이름이 오르 내렸다.
얼마전까지는 비올라의 일개 경호노예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상단 내에서도 알아주는 인기인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추수제가 3일 앞으로 다가 왔다. 베스체일 상단도 추수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베스체일 가문의 장원도 덩달아 시끌벅적 했다. 장원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상단의 사원이나 손님 등
많은 사람들이 오감에 따라 분주해진 것이다.

"혹시 자네가 로자레일인가?"

장원의 복도를 지나던 로자레일에게 처음보는 중년의 남자가 아는 채를 한다. 
부티나는 차림새를 보니 상단의 손님인 듯 하기에, 꾸벅 인사를 했다.

"이름은 많이 들었네. 요즘 미르겔에서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로자레일은 중년 남자의 말에 미스체인과의 결투를 떠올리고는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일하던 중인가? 바쁠테니 어서 가보게나."

로자레일의 표정을 본 중년 남자가 어리둥절해 하며 말한다. 로자레일이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곤
바쁘게 발을 놀린다. 복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아는 채를 한다. 하인들이나 같은 노예들은
호감어린 태도로 그를 대하거나 어려워한다.
베체코의 서재에 도착한 로자레일이 똑똑 문을 두드린다.

"들어오게."

로자레일이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베체코와 쥬빌라가가 서재의
응접테이블에 앉아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자네 명성이 하루가 지날수록 오르는 구만, 만나는 사람마다 자네를 찾으니 말이야."
 
"헛된 명성입니다. 오히려 저는 부끄럽습니다."

"하하, 아닐세. 자넨 그 일을 자랑스러워해도 되! 미르겔에서 검은표범에게 승리를 장담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러니 가슴을 쭉 피게나!"

"숙부님, 로자레일에게 하실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자네가 할일이 있네. 도싱에 좀 다녀와야겠어!"

"예? 무슨.....?"

베체코의 말에 로자레일이 어리둥절해 하며 되묻는다. 로자레일은 베체코에게 팔려온 뒤로
미르겔 일대를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 페스체일 상단이 이번 추수제의 축하음식을 총독부에 납품하도록 하기로 되어 있는 것은 
알고 있겠지? 자네가 그 중에서도 귀족들에게 대접할 송로버섯을 구해와야겠어. 
어제 도착하기로 되어있던 물건이 도대체 도착을 하질 않는군. 신선도를 생각해서 납품기일을
추수제 사흘 전으로 잡았던게 불찰인게지."

말을 마친 베체코가 수염을 쓰다듬는다. 베체코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쥬빌라가가 입을 연다.

"사람이 없어 자네에게 시키는 걸세.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나. 
빠른 상행을 위해 발롯 후작가에서 사람을 붙여준다고 했으니.
게다가 우리 쪽에서는 내가 책임자로 함께 간다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은 언제 입니까?"

쥬빌라가의 말에 로자레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묻는다.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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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bon 님, 질트졸트 님 댓글 감사합니다 ^^

여러분~ 다른 분들도 평 좀 남겨주세여~
재미없다고 욕하셔도 좋아여. 
대신 어떤 부분이 맘에 안든다 정도는 같이 남겨 주시길 바라요!!!

그럼 순항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