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애도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아니에요. 선장님. 어차피 그 양반은 그게 소원이셨으니, 그 양반에겐 잘 된 일이지요."


엔리케 부인은 오히려 담담했다. 하긴 깊은 심연에 깔린 사별의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먼 바다에 남편의 운명을 떠맡긴 새색시는 그 세월의 풍랑을 겪으며, 인고하고 또 인고하고, 어느새 파도 너울 같은 주름살을 가진 중년의 부인이 되어갔겠지. 그 바다를 닮은 마음 한구석엔 폭풍 속에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남편의 기억들도 살아 있겠지. 그 애잔한 아픔들이 우리 모두에게 전해져왔다. 바다에서 사는 자. 모두 같은 운명이리니.






"고반씨!!!!!!!"


"선장님, 위험해요!!!!! 그러다 선장님까지 휩쓸린다구요!!!!!!"


"이거놔!!!! 고반씨!!!!! 응? 아앗!!! 크허어어억!!!!"


"선장님!!!!!!"






헉헉-

또..... 그때의 꿈을 꾸었다. 






"고메즈님, 아무리 선장이라도 폭풍까지 어쩌진 못해요. 자책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건 제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했다면......"


"......저라도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을 거에요. 안 그랬다면, 아마 그때 고메즈님도, 다른 선원들도 아무도 그 바다에서 살아돌아오지 못했을 거에요."


속칭 '눈썹달(Eyeline of Moon)'이라고 불리우는 여선장이 날 위로했다. 물론 머리로는 그럴수밖에 없다고, 그게 가장 현명했다고, 그녀의 말에 끄덕이지만, 마음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고반씨를 구하지 못한 것. 그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이렇게 구차한 삶을 이어가는 것.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뱃사람은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죽는 법입니다. 누구라도 바다의 신을 거역할 수는 없어요. 그것이 우리들의 숙명이에요........"


"숙명이라........"


눈썹달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나는 한참이나 응접실에 앉아서 독한 럼주를 부어댔다. 몸이 휘청거릴수록 마음은 더욱 또렷해졌다. 카리브의 폭풍은 매섭게 몰아쳤고, 모두들 이것저것에 몸을 지탱하며 폭풍우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갑작스런 폭풍에 손상된 키가 제멋대로 흔들렸다. 모두가 이것저것에 자신이 목숨을 지탱하기를 기도하고 있을때, 폭풍은 카리브의 암초지대로 우리의 배를 내몰았다.






콰지직!!!!


"선장님, 암초에요!!!!!"


배의 용골에 금이 갔는지, 배가 심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암초에 부서진 밑창사이로 침수가 시작했다. 서둘러 갑판아래로 선원들을 보내 침수를 막게했다. 사나운 송곳니를 드러낸 암초들은 배의 이곳 저곳을 할퀴어댔다. 


"이러다간 난파하고 말겠어!!!! 제길!!! 선장, 일단 암초에서 벋어나야돼!!!!!"


"키가 망가졌는데!!! 어떻게 배를 빼냅니까!!!!"


"키가 안되면.... 사람이라도 가서 빼내야지!!!! 이봐!!!! 미겔!!!! 브랑코!!!! "


"고반씨!!!! 그건 위험합니다!!!! 폭풍이 진정될때까지, 좀 더 버텨보자구요!!!!!"


"장난하나!!!! 폭풍이 언제 그칠 줄 알고!!!! 모조리다 고깃밥으로 만들어 버릴 셈이야?!!! 걱정말라구!!!!!"


"고반씨!!!!!"


고반씨를 비롯한 몇몇의 선원들이 몸에 줄을 묶고, 이것저것 자재를 들고서 뱃머리로 가서, 암초를 밀어냈다. 위태롭게 폭풍을 속을 곡예하던 배는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암초의 날카로운 어금니는 서서히 그 아가리를 다물고 있었다.



처얼썩!!!!!


배가 암초에서 몸을 빼낼 때, 높은 파도가 뱃머리를 덮쳤다. 뱃머리의 선원들은 급히 몸을 숙이며 난감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고반씨!!!!!"


"선장님, 위험해요!!!!! 그러다 선장님까지 휩쓸린다구요!!!!!!"


"이거놔!!!! 고반씨!!!!! 응? 아앗!!! 크허어어억!!!!"


"선장님!!!!!!"


뒤이어 덮친 파도에 기둥에 머리를 다친 뒤 정신을 잃은 나는 이틀 뒤에 깨어났다. 배는 무사히 하바나에 도달했지만, 선원 1명을 바다에 잃었다. 밥도 가장 많이 축내고, 술도 잔뜩 취해선 난동부리기 일수고, 선장한테 제일 많이 대들고, 잔소리도 가장 많고, 나이도 가장 많아서 눈엣가시였던 선원하나를 바다에 잃었다. 가장 열심히 낚시를 하고-때론 혼자서 정어리를 낚아오기도 하고- 가장 열심히 배의 얼룩을 닦아내고, 파스타 면발 뽑아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그리고 가장 열심히 폭풍우 속에서도 암초에서 배를 밀어낸.......


"........무식한 인간같으니라구."







세비야 항구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떠들썩한 교역상들의 외치는 소리들, 술에 취해 항구바닥에 널부러진 선원들, 이곳저곳에선 빈번한 시비와 칼싸움, 은밀히 여급에게 추파를 던지는 입만 산 모험가들도 있었다. 고반씨의 소식을 전하러 말라가의 엔리케부인께 다녀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또 새로운 항해를 떠나야지. 포르투칼과 전면전이 있을 거란 흉흉한 소문도 계속되었고, 알바공의 감시의 눈길도 거세진 탓에, 더 오래 있으려야, 에스파냐엔 오래 머물수도 없었다. 


"암스는 어떨까.... 메르카토르 교수님도 뵐겸..... 응?"


항구주점 앞이 소란스러웠다. 또 술에 취한 항해자가 난동이라도 비우는 건가? 


"응? 이 가래가 끓는 듯한 거친 목소리는, 꽤 익숙한 기분인걸?"


주점 앞에선 두터운 턱 가득히 투박한 수염으로 가득한 한 뱃사람이 만취가 되어, 사람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맨손으로 리스본 닭을 때려잡고, 파스타를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달리는 핀네스 2 다시 1에서 뛰어내린 나 숙련선원, 고반에겐 카리브의 폭풍마저 지중해 봄바람에 불과하지!!! 크핫핫핫!!!!"


".................후안군, 가서 끌고오십시오."


".....네;;"




(4화. 폭풍 뒤엔, 숙련선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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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 요즘 유행하는 멘트죠. 어떤분이 자기소개글에 써놓은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한 번 써봤습니다. 정말이지, 전 선원들이 죽는 건 싫은데, 가끔씩 한눈 판 사이 -1 이 뜨곤하지요^^;; 

* ㅎㅎ 눈썹달님도 허락없이 넣어봤습니다^^ Storm님, 삘 받아서 하나 써봤어요^^

* 음... 제가 실제 항해에 대해선 전혀 모르기때문에, 순전히 상상으로 쓴 것이기때문에, 실제와는 크게 다를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