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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4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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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봉제의길] 만학(晩學) - 혹은 생각없는 진로 선택의 결과.만학(晩學) - 혹은 생각없는 진로 선택의 결과. 위대한 자 카트린느는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수십년간의 고된 수행과 초인적인 의지력의 결과였다. 깨달음이란 한 걸음, 한 걸음 서서히 정 상으로 다가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연꽃을 집듯 갑작스레 수련자의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것이다. 카트린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수련의 도중, 그는 머릿속을 관통하듯 봉제의 극의를 깨달았다. 카트린느는 돋아난 흥에 한바탕 바느질 했다. 자연과 합일되는 그 우아한 움직임이 끝났을 때, 카트린느는 자신의 수련이 끝났음을 알았다. 카트린느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 이 바느질을 초특급울트라대봑바느질이라 하리라." 어느새 하늘에는 태양은 사라지고 푸르스름한 달이 있었다. 자신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기며 카트린느는 회한에 젖었다. 바느질을 완성했다는 기쁨보다는 어떤 허탈감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난 무엇 때문에 그리도 애써 달려왔던가. 마침내 지존바느질을 완성했지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 가 있는가. 그 모든 노력이 결국은 여느 범부와 마찬 가지로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나. 그 모든 상념의 뒤에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 았다는 예감이 있었다. 결국 카트린느는 한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어찌되었건 이대로 초특급울트라대봑바느질을 묻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었다. 무언가 한 가지 정도는 내가 이 세상을 살았음을 증거해야 한다...... 카트린느는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의발을 전수할 제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삼개월 후. 카트린느는 아직 제자를 구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가능 성은 희박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로, 카트린느의 마음에 들만큼 재질이 엿보이는 젊은이를 보기 힘들다는 점이 컸다.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능력 있는 사람은 적은 법이다. 둘째로, 가끔 우연히 그런 놈을 발견해도, 그 자는 남의 제자거나 바느질에 뜻이 없 는 자라는 점도 있었다. 결국 카트린느는 제자를 구한다 는 전략을 포기했다. 대신..... 그 대신...... 레시피를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실 사람은 순간이지만, 레시피는 영원한 법이 아니던가. 애써 키운 제자가 칼침 한방에 쓰러진다면, 그걸로 카트린느의 심득은 끝이다. 하지만 레시피는 끈질기게 다음 순 번을 기다릴 수 있다. 만약을 대비해 몇 개의 필사본을 만들어 둔다면, 최소한 백년은 갈 수 있었다. 카트린느는 자신이 간 후에도 초특급울트라대봑바느질을 연마할 선남선녀 들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이론과 실제에는 큰 격차가 있 는 법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생각한 계책도 실무상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듯이. 카트린느는 문자를 몰랐다.(不立文字) 처음의 흥분이 가시자, 카트린느 본인도 자신이 문맹이라 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카트린느는 고민했다. 아무 글쟁이나 잡아다가 가필을 부탁할까나......? 그러나, 아무래도 바느질에는 문외한일 글쟁이의 오역이나 게으름이 있을까 저이 염려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 상정이었다. 일종의 전문서적인 레시피의 경우 극히 미 세한 차이만으로도 수련자를 골로 보낼 가능성이 존재하 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수가 아닌, 글쟁이의 실수로 초특급울트라대봑레시피가 폐기처분 당한다면 그는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터였다. 그렇다면...... 울분과 분노로 가득찬 카트린느의 눈에 핏발이 어렸다. (카트린느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글을, 글을 배워야 한다. 카트린느가 만학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은 그 때문이 었다. 그것은 일종의 고통이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더벅머리 아이들 사이에 끼어 중년의 상인에게 고고학과 종교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굳을대로 굳은 그의 머리로는 따라가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철없는 아이들의 놀림 과 주변의 수군거림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몇번이고 대량학살, 대형참사를 불러 일으킬 모욕적인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카트린느는 꿋꿋이 그것을 참아냈다. 참아야 하느리라. 참아야 하느리라. 그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때문이다. 대온사에 유래 없을 폭발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그의 명저. '초특급울트라대봑레시피'에 핏자국이 묻어서는 안된다. 촌락 하나를 말아먹은 놈이 지은 책이라면 누가 보겠 는가. 끝없는 인내와 자기극복 끝에 카트린느는 글을 읽 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어느정도는... 대충은... 웬만큼...(-_-;) 글을 배운 지 반년만의 일이었다. 훈작사의 길로 나갈 것이 아닌 이상, 글을 이쯤 해서 되었다....... 라고 카트린느는 생각했다.(^^;) 그는 펜과 잉크, 질 좋은 종이를 잔뜩 사서 모처에 깊이 은거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초특급울트라대봑레시피'의 저작 에만 집중할 계획이었다. 카트린느는 책의 첫장을 펼쳤다. 그리고 멋들어진 필치로 '초특급울트라대봑레시피'이라는 제목을 적어 넣 었다. 물론 글씨가 조금쯤 삐뚤거리는 것 같긴 하지만. 이쯤이면 되었지.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카트린느 저 라고 적으며 그는 더욱 흥분했다. 이야 죽인다. 죽여. 이것으로 내 이름은 대온사의 한장 을 장식할거야. 어쩌면 두장일지도 모르지...히죽~ 카트린느는 눈물까지 글썽였다...찔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카트린느는 감정이 풍부했다...^^;) 그리고 한 장을 넘겼다. 제 1장 신침합일. 멋진 제목이야. 끝내주는군. (다들 알겠지만 카트린느는...... 풍부하다..) 거기까지...... 적어내려가던 카트린느는 문득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고민하듯이 그는 펜을 든 채로 정지해 있었다. 머릿속에서 초특급울트라대봑레시피의 봉제법들이 완벽하게 재현 되고 있었지만 그는 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단 한 글자도 적어내려 갈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카트린느는 자신의 실수를 알았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 실무상의 시행착오. 카트린느의 입에선 나직한 한마디가 새어나왔다. '씨발...... 그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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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신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