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감싸쥐고 있는 에이레네에게 프레드릭이 종이를 건냈다.
 “그보다 이걸 좀 보시죠.”
 “이건?”
 “주점에서 주운 겁니다. 오슬로에 가도 좀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에이레네는 종이를 폈다.

 스웨덴과 교역을 하고 돌아오던 상선이 코펜하겐에서 출항한 이후 행방불명. 상선대를 구출할 시에는 많은 보상금이 예상. 여왕의 인장까지 찍혀있음. 
 상당히 짧은 내용의 전문이었다. 네덜란드에 있는 잉글랜드 상인을 모으기 위해 급히 보낸 듯 싶었다.
 에이레네는 그것을 잠시 보더니 프레드릭에게 돌려주었다.
 “그들도 바쁘겠군.”
 “네?”
 프레드릭이 반문했지만 에이레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평선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강풍이 돛을 수없이 때렸다. 발트해의 거친 파도는 배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게 했다. 선원들은 당장이라도 교역품을 바다에 버릴 기세였고, 에이레네는 그런 그들을 보며 조용히 칼을 빼냈다. 대포는 장전이 끝난 지 오래였다.
 “적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역시 해적인가...”
 에이레네는 이를 악물었다. 오케아노스의 절반 되는 크기의 배 두 척이 그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교역품을 잔뜩 실은 오케아노스와는 비교도 안 될 속도였다.
 적의 선원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까지 왔을 때, 도망가는 그들을 비웃듯 돛대에 해골기가 올려졌다. 그 모습을 본 선원들의 눈에 공포가 드려졌다.
 “교역품은 버리지 마라!”
 에이레네가 교역품 상자를 짊어진 선원들에게 다그쳤다. 그들은 잠시 홀린 듯한 표정을 짓더니 스르르 상자를 내려놓았다. 

 에이레네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적이 최소사정거리에 들어오면 갑판을 겨냥해서 쏴라! 그리고 알카디우스!”
 에이레네가 알카디우스를 불렀다. 무기를 잔뜩 들고오던 알카디우스가 에이레네에게 달려갔다.
 “어차피 저 배는 우리보다 갑판이 훨씬 낮고 대포도 없어. 올라오는 갈고리와 사다리만 막으면 이길 수 있다. 이 정도면 너희들만으로도 할 수 있겠지?”
 “그럼 에이레네님은?”
 알카디우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에이레네가 치켜든 레이피어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우로 선회하라!”
 에이레네는 대답 대신 조타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선회를 한다는 건 도망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조타수는 머뭇거렸다. 에이레네의 작은 입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퍼졌다.
 “우로 90도 선회!”

 귀를 찢는 듯한 그 소리에 겨우 조타수는 반응을 했다. 느릿느릿하게 거대한 카락이 선회를 시작했다. 해적선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에이레네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폭발을 꾹 참고 있는 듯한 목소리. 우왕좌왕하던 선원들도 그것을 보고는 자리를 지켰다.
 이윽고 배의 우현이 완전히 드러났다. 에이레네의 입에서 고함이 터졌다.
 “발포하라!”
 “발포하라!”
 알카디우스가 에이레네의 말을 받아 외쳤지만 포수들은 이미 심지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괴성과 함께 팰컨 세 문이 포문을 열었다. 
 “모두 명중했습니다! 재장전을!”
 “아니, 필요 없어. 알카디우스! 제로스!”
 갑판 한복판에서 제로스라는 이름의 선원이 뛰어왔다.

 “선원을 모두 우현에 모아서 엎드려 있게 해라! 불이 나더라도 교역품에 붙은 것만 끄도록! 굳이 얼굴을 내밀어서 화살이나 투창을 맞을 필요는 없다! 올라오는 녀석 한둘쯤은 너희만으로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알카디우스와 제로스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자기 어깨에도 오지 않는 여자에게 명령을 듣는 품이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웃을 틈은 없었다. 해적선은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럼 너희들에게 맡긴다. 전원 충격에 대비하라!”
 ‘콰앙!’
 거대한 충격이 전해졌다. 하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도 뱃사람이었다.
 곧이어 화살비가 하늘을 덮었다. 간간히 불화살이 있었지만 배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선원을 공격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럼 부탁한다.”
 덜컹거리며 갈고리가 배 한 켠에 걸리자마자 에이레네는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