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매직엔 피시방을 운영하고 있는 장성욱(36) 씨는 지난주 토요일, 사업장의 반 이상을 대회 장소로 할애했다. 한국에서 피시방 점유율 1위(34.89%, 39주 연속)를 달리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PC방 토너먼트를 개최하기 위해서였다.
한눈에도 ‘젊은 사장’으로 보이는 장씨는 라이엇 게임즈에서 개최하는 LOL PC방 토너먼트에 일찍부터 관심이 많았다. 즐겨 했던 게임은 ‘아이온’이나 ‘블쏘’같은 MMORPG였지만 업주의 처지에서 LOL을 찾는 손님들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을 보고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지금도 한 번 둘러보세요. 손님들이 거의 다 LOL만 하잖아요. 다섯 명씩 왔다가 자리 없어서 가는 친구들도 종종 있어요. 처음에는 서버랑 과금 문제 때문에 라이엇에 불만을 품은 분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LOL 때문에 먹고 사는 피시방도 많다고 봐야죠.”
성황 이루는 LOL 피시방 대회
아마추어 대회를 개최하려는 피시방이 쇄도하고 있다고.
매직엔 피시방 체인점이 18개인데 그중에 LOL 대회를 여는 건 우리 가게가 처음이에요. 작년부터 계속 신청했는데 인제야 됐죠. 대회를 알리려고 포스터 좀 왕창 갖다 달라고 했는데 저같이 얘기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면서 흔쾌히 주더라고요. 라이엇 게임즈처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게임사도 없어요. 오늘 같은 경우 대회 때문에 자리가 없어서 돌아가는 분들도 있었지만, 저희 피시방 손님들한테도 좋은 이벤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단골 손님들이랑 알바도 참가했거든요(웃음).”
정말 피시방 곳곳에는 LOL PC방 토너먼트 개최를 알리는 ‘렝가’ 포스터가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라이엇 게임즈에서 밝힌 PC방 대회 지원자 수는 지난 2012년 5월부터 현재까지 3만 6000명이 넘는다. 이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참가 선수의 1만 명의 3배가 넘는 엄청난 숫자다. 또 올해에만 약 2만 5000여 명의 플레이어가 서울, 인천, 광주를 비롯한 13개 지역에서 PC방 대회를 치른다고 하니 LOL의 저변이 얼만큼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지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LOL의 국내 유통사인 손오공 IB 관계자는 “초반에는 대회 홍보를 위해 발로 뛰어야 했으나 요즘 서울-경기 지역은 게시판을 열어 놓으면 순식간에 정원 160명을 채우는 일이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사실 PC방 대회의 경우 혜택이 크지는 않다. 참가자 전원에게 마우스패드, 우승팀에게는 ‘프랑켄티버 애니’ 스킨과 ‘로지텍 게이밍 마우스 G100 PC방 에디션’을 상품으로 준다. 이 밖에도 입상하면 IP 부스터를 주기도 하지만 따로 상금이 있거나 하지는 않다. 하지만 1등을 하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팀들이 연달아 참가를 신청할 정도로 피시방 대회의 인기는 매우 뜨겁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피시방 대회, 누가 참가하나
모두에게 열려 있는 LOL 피시방 토너먼트.
이날 대회가 치러진 피시방은 학원가에 있는 탓에 주로 학생 참가자가 많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지만, 평소 각자 게임을 하다가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 팀으로 뭉쳤다는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은 “금장이 넷, 다이아가 하나”라며 LOL 실력을 자랑했다.
금장과 다이아 등은 LOL의 랭크 게임에서의 실력을 나타내는 등급으로 금장(골드)만 달아도 상위 10% 이상에 드는 고수급 유저들이라고 볼 수 있다. 고등학생 팀은 이날 대회에서 아쉽게 4강에서 탈락하고 말았지만, 함께 떨어진 다른 팀과 곧바로 친선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원래 아는 사이냐고 물으니 ‘오늘 처음 본 형들’이라며 ‘씨익’ 웃는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말하는 ‘대세’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어떤 게임을 얘기하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는 것. LOL은 그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피시방에서 만난 한 학생은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말해주기도 했다.
“나쁘게 말해서 LOL 못하면 왕따죠. 근데 왕따 중에서도 LOL 잘하면 애들이랑 어울릴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해요. ‘너 LOL 잘해?’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만약에 다이아 정도 되면 학교생활 폈다고 봐도 되고요(웃음).”
피시방 대회를 운영하다 보면 군복을 입은 참가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LOL은 학생들 뿐 아니라 군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해병대의 기운으로 우승하겠다’는 해병대 소환사들도 있었다, 학군단으로 구성된 5명도 꾸준히 도전하는 팀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혹시 여성 유저들도 있을까?
피시방 대회 운영을 맡고 있는 손오공 IB 측 관계자는 “여성 유저들이 한 명씩 들어가 있는 팀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며 “아직까지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팀은 없었지만 여자 셋, 남자 둘로 이뤄진 팀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는 날이 장날? 피시방에서 만난 링트럴과 모쿠자
LOL을 하다가 알게된 동생들과 나오게 됐다는 모쿠자. 참가자들은 더욱 즐거워했다.
놀랍게도 이날 결승에 올라간 팀 중에는 여성 유저가 원거리 딜러인 팀도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팀의 정글러가 전 프로게이머 ‘모쿠자’ 김대웅이었다는 사실! 여기서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상대 팀에도 전 프로게이머 ‘링트럴’ 정윤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애들이 사인받으러 가길래 알았죠. 학생 손님들이 ‘형, 저 사람 링트럴 맞아요?’ 라고 묻는데 저는 그냥 우리 피시방에 오는 손님인 줄만 알았지 프로게이머 출신인 건 몰랐어요. 모쿠자라는 분은 아는 동생들이랑 우연한 기회에 나오게 된 것 같고요.”
피시방 사장 말에 따르면 링트럴은 원래 가끔 와서 게임을 즐기는 손님이라고 했다. 둘 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끝내고 평범한 일반 유저로 돌아가긴 했지만 순수 아마추어만 참가하는 대회에 이런 사람들이 참가해도 되는 것인지, 다른 참가자들이 항의는 없었는지 궁금해졌다.
“저희도 숱하게 대회를 치러 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다행인 건 같이 하는 참가자들이 오히려 프로게이머 출신과 게임할 수 있게 돼서 좋다고, 영광이라고 해 주시더라고요. 또 본인들도 아는 친구, 동생들이랑 나와서 그런지 계속 질뻔한 경기를 역전하면서 결승까지 오는 것 같던데요? 어쨌든 오늘 제대로 취재 오신 것 같네요. 결승전에서 두 팀이 붙었으니까 엄청 치열하고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귀추가 주목됐던 이날 결승전에서는 결국 ‘모쿠자’ 김대웅이 속한 ‘원딜짱짱걸’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킬을 기록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가 진행됐고, 대회가 끝나자 양 팀 선수들이 서로 상대팀 정글러에게 사인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는 등 묘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에코시스템의 뿌리가 되는 LOL 피시방 토너먼트
피시방 대회를 취재하면서 상상했던 그대로 참가자들의 열기가 뜨거웠다는 점과 매끄럽게 대회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온라인에서 멘붕하는 유저들이 많다고 하지만 피시방 대회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사실 LOL이 대단한 점은 단순히 피시방 점유율이 1위라거나 온게임넷 챔피언스 리그가 흥하고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LOL을 취미로 즐기는 플레이어부터 시작해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은 유저들까지, 언제든지 본인의 의사와 실력에 따라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에코 시스템’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LOL만의 강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대다수의 사람이 즐기는 탓에 신규 유저들의 유입이 쉬운데다가 원칙적으로 무료 게임이라는 점에서 LOL의 에코 시스템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라이엇 게임지는 게임 속 대회라고 볼 수 있는 랭크게임부터 각종 아마추어 대회, 인터넷 방송국인 나이스게임TV NLB와 온게임넷 LOL 챔피언스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e스포츠 리그를 꾸렸다. 나아가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글로벌 월드 챔피언십까지 더하면 LOL로 구현한 e스포츠 생태계가 얼마나 탄탄해져 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에코 시스템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많은 아마추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피시방 토너먼트다. 최근에는 본격적으로 대회를 위해 팀을 구성해 경합하는 클랜배틀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흥미롭게도 이날 대치동 매직엔 피시방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원딜짱짱걸’ 팀에는 전 프로게어머,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는 여성 BJ, 취미로 게임을 하는 학생, 그리고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열심히 연습 중인 세미프로까지 각각의 유저층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건강 악화로 프로게이머를 은퇴해야 했던 ‘모쿠자’ 김대웅은 우연히 만난 기자에게 “내가 프로게이머를 할 수 있었던 것은 (LOL을 통한)e스포츠리그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은 경쟁이 심해서 프로게이머가 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프로게이머 지망생 참가자는 “기자님이라고요? 오늘은 피시방 대회에서 만났지만 훗날 대회장에서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기다리고 계세요”라며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