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은 스토리를 전개할 때에 있어서, 여러 신화나 전설등을 모티프로 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데몬에서 제른으로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이 지닌 신화적, 철학적 은유를 통해 메인 스토리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왜 데몬인가

이 글을 본 사람들은 제목을 보고서 상당히 의문을 느꼈을 것이다. 왜 검은마법사가 아닌 데몬부터 시작하는 것일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이유는 검은마법사를 상징하는 영지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데몬과 데미안: 신의 자손

데몬과 데미안은 신의 자손, 신을 상징하는 여러 은유를 가지고 있다.


수백 년 후 알에서 깨어난 데몬, 난생설화는 흔히 태양의 자손이라는 천손신화로 이어진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세계를 상징하는 알을 깨고 신에게로 날아가는 새.



데몬은 시간의 초월자 륀느를, 데미안은 생명의 초월자 알리샤를 유폐시켰는데,


이는 제우스가 아버지이자 농경(생명)의 신인 크로노스를 몰아낸 것을 연상케 한다.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와 동일 시 되었다.)

하지만 이 것들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신적 존재가 있는데,


바로 요르문간드와 펜리르 이다.


3. 데몬: 완전무결한 철인



데몬을 상징하는 요르문간드. 북유럽 신화에서 세계를 둘러안고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다고 한다.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우로보로스이다. 우로보로스는 그리스어로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으로, 이러한 원형의 모습은 곧 영원성, 완전함을 상징한다.

데몬이 지닌 완전무결성을 보여주는 증거는 더 있다.


데몬의 스킬인 오르트로스와 서버러스. 이들의 공통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는 것이며,



헤라클레스에게 크게 당한 전적이 있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올림포스의 신들과 가이아가 보낸 괴물들 간에 벌어진 기간토마키아라는 대전쟁을 끝내기 위해 예비된 자로 제우스가 추구한 궁극의 초인이다.

즉, 메이플 세계관에서 데몬은 요르문간드(=우로보로스)로 대표되는 영원함과 완전함, 제우스와 헤라클레스로 대표되는 궁극의 초인의 특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데몬이 마족에 가까운 혼혈마족이라는 점이라는 사실을 더하면, 데몬은 영원하고도 완전한 존재가 인간을 통해 자신의 신성을 물려준 존재가 된다.



이러한 완전무결한 초인을 주장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있다.



플라톤이다.

플라톤의 이론은 이 세계는 이데아(감각이나 시간, 현상등을 초월하는 이상적인 것)를 투영한 그림자에 불과하며, 이러한 이데아를 인지할 수 있는 철인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져야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이데아의 개념과 우로보로스는 어느 사상에 짙은 영향을 주는데,



바로 영지주의이다. 어째서 검은마법사 이전에 데몬을 짚고 넘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검은마법사의 상징인 영지주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데몬의 상징인 '완전무결한 이데아와 이를 인지하는 초인'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4. 검은마법사: 신의 도시를 탐한 오만



"보여... 나는 드디어 도달했다... 이제야 우리는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부조리를 벗어나 완성된 세계, 신의 도시로...!"- 하얀마법사. 

검은마법사는 부조리가 없는 완성된 세계를 추구해왔으며, 이는 영지주의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영지주의를 간단히 요약하면 "신의 피조물인 영혼이 악마의 창조물인 물질(육체)에 갇혀 고통받고 있으므로, 구원에 대한 영적인 앎(gnosis. '지식'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을 통해서 탈출해야 한다" 는 사상이다.

바로 여기에서 검은마법사가 데몬을 배신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데몬은 "완벽한 철인에 의해 통치되는 신의 도시(=세계에 이데아를 온전히 투영하는 것)"을 추구했지만, 검은마법사는 더 나아가 "어떠한 부조리도 구속도 없는 신의 도시(=이데아 자체를 세계로 만드는 것)"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데몬의 사상은 신의 도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았고 상대적으로 온건했기 때문에, 검은마법사는 자신의 사상을 데몬의 사상으로 위장하여 데몬과 구와르를 회유할 수 있었다. 

다만, 적당한 시점에서 데몬을 배제시켜야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검은마법사의 창세는 불완전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재의 세계가 전제로 하는데  완전한 세계를 온전히 투영시킬 수 있는 철인인 데몬의 존재는 검은마법사의 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검은마법사는 데몬의 사상에 기생하여 세력을 넓히다. 륀느를 유폐시켜 세계의 융합을 위해 자신의 봉인만 남았을 시점에 데몬을 배제해 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신화적 은유를 찾을 수 있다.

악한 존재가 뱀의 형상으로 완전한 존재를 추방되게끔 하는 것.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이지 않은가.



바로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으라 유혹한 에덴의 뱀(사탄으로 표상됨)의 이야기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이 사건은 신학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긍정한 것 이라고 해석되는데,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계략을 통해 배신당한 데몬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 검은마법사에게 승리한다는 점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