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들리는 작은 아기 울음소리......

내가 만들어 낸 환청인가? 진정 저 소리가 이 사건의 모든 진실인가?

나는 어떡해서든 이 환각같은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한 참을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차량이 기우뚱하더니 강물 쪽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밑으로 보이는 강물이 죽음의 사신처럼 다가왔다.

순간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나의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눈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너무나도 기뻤던 임관식 날, 한 때 내 영혼을 바쳐 사랑했던 여자,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예전 공수부대에 있을 때 교관의 말이 떠 올랐다.

"사람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판단되며, 과거의 기억을 한꺼번에 쏟아내어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았던
모든 것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지.

그러나 최소한 군인이라면!!!

안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을 가진 특전부대 용사라면!!!

그 파노라마를 되돌릴 줄 알아야 한다.

죽음 직전의 너에게 최소한의 무엇인가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있다면!!!

너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기 울음 소리를 들었고,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러나 미처 들이마시지 못한 숨으로 인해 활용할 공기의 양이 부족하다.

귀가 아파오고, 폐에 물이 차오르는 것 같다.

예전 해상특수훈련 때 힘이 빠져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꺼내 준 교관이 있었다.

그는 숨가쁜 소리를 내며 헐떡거리는 나를 눕히더니 내 얼굴에 수건을 덮고 그 위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마치 얼굴에 비닐 봉지를 씌운 것처럼 전혀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발버둥치며 괴성을 지르던 나를 강제로 제압하며 그 교관이 말을 했다.

"수심이 깊어지면 수압으로 인해 평형감각을 잃게 되지...위 아래가 어디인지 몰라.

살려고 발버둥 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하지만 실상은 강바닥을 파헤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 수 있는데도 죽을 것이라는 공포감에 정신을 잃고 헛 짓거리 하다가 그렇게 죽는거야.

지금 너는 물에 빠져 죽기 전의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살고자 한다면 정신을 잃지 마라..."

"쿵....."

묵직한 작은 충격음이 내 귀에 들려왔다.

차량이 강 바닥에 닿은 듯 했다.

수압으로 인해 고막은 터질 듯이 아팠고, 들이 마신 숨이 없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그제서야 파손된 차량 앞유리를 통해 차량의 여기저기를 더듬 듯이 빠져나왔다.

수심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이대로 몇 초만 더 있으면 곧 물귀신이 될 것 같았다.

폐 속의 마지막 공기가 다 소비되었는지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바로 그 순간 나의 뇌는 마지막 구원의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벨트 뒷쪽에 숨긴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오른쪽 앞 타이어를 손으로 확인한 후 탄알 한 발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근접 사격임에도 물 속이라 그런지 두꺼운 고무재질을 총탄이 뚫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난 이제 죽는걸까?

그 때 내 왼손에 뭔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공기 주입구의 돌출된 핀이었다.

나는 이제 몇 발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권총을 들고, 마지막으로 그 핀을 향해 미친 듯이 총탄을 쏟아 부었다.

"텅! 텅! 텅! 텅! 텅!"

둔탁한 총소리가 몇 번 울리자 갑자기 생명의 공기방울이 화염방사기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주입구에 입을 대고 폐 깊숙히 공기를 집어넣었다.

두 세번을 반복한 나는 그제서야 내 머리쪽에서 어렴풋이 비춰지는 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은 죽음의 사신에게 지배당한 내 머리가 상상한 허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빛은 느낄 수 있었지만 수심은 족히 20미터는 넘어 보였다.

나는 서둘러 헤엄을 쳤고 이별할 것 같았던 물 밖 세상으로 고개를 내 밀었다.

물 밖의 신선한 공기가 내 가슴 속 깊이 스며 들어왔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거구나....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이거구나....

나는 수면 위에서 몇 초 동안 생존의 기쁨을 만끽한 후 강 밖으로 헤엄을 쳤다.

강 밖으로 빠져 나온 후에야 나는 하루 전 쏟아진 비로 인해 강물이 상당히 불어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수 차례의 기침과 구역질이 멈추자 나는 물 속에 두고 온 김병장이 생각났다.

"이런...........젠장"

그를 구하러 가야 된다.

그런데 순간 나는 사고 직전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이 떠오르면서 구조를 주저했다.

솔직히 김병장이 무서웠다.

김병장이 있는 저 깊은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다니....

1초...2초...3초....

나는 딱 3초를 고민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생각을 지워버리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강의 중앙부가 아닌 비교적 가장자리임에도 수심이 상당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량이 강의 가장자리에 빠졌기 때문에 내가 다시 뛰어들었을 때 그 차량을 찾기가 쉬웠다는 것이다.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김병장을 꺼내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그가 깨어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앞 머리는 크게 찢어져 과도하게 피를 쏟아낸 것 같았고, 손과 입술은 이미 파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숨은 멎어 있었고, 심장도 뛰지 않았다.

나는 곧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정신 차려 임마....정신 차려!!!"

나는 그를 깨우려 소리치며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복부 전체가 파랗게 멍든 것으로 보아 운전대에 복부를 부딪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미 그의 장기는 파열됐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았다.

늘어진 시체를 붙들고 장난질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나처럼 죽음의 문 앞에서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느끼고만 있다면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나지 못했다.

뒤늦게 구조된 나와 김병장은 똑같이 의무대로 이송되었다.

나는 부상자로 그는 사망자로........

내 얼굴은 유리 파편으로 인해 산탄을 맞은 것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또 오른쪽 머리는 5센티 가량이 찢어져 있었다.

다른 부위는 크게 다친 곳이 없어서 그냥 부대로 복귀하려 했지만, 군의관의 권유로 나는 의무대 입원실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수 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잠시 나의 잠자리를 방해했지만, 그 날은 엄청난 피로감으로 인해 깊은 수면에 빠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