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Ly5RH


BGM은 포기할 수 없어서 넣었네요 ㅠ.

 

그리고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지적을 받아 반말이 아닌 서술형으로 쓰겠습니다.

 

드립도 나름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서 넣은 것들인데 무리했나 봅니다. 최대한 역사적인 사실들만을 객관적으로 풀어서 서술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쟁의 서막.

 

1918년 11월 11일. 제 1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허나, 3년여에 걸친 전란으로 전 유럽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또한 패전국인 오스만 제국이 분할되어 터키 공화국 및 수십개의 중동국가들로 분립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합스부르크 제국이 몰락함으로써 발칸반도와 유럽 중부지방의 거대한 영토에는 민족주의 국가들이 들어선다. 세계의 판도를 180도 뒤집어놓아버린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승전국들은 당연한 듯 자국의 이권을 외쳤고, 민족주의 열풍은 그들의 식민지에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렇게 다시금 전 세계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전후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 뿐만 아닌 연합국들까지도 생산기반과 국토에 피해를 입음으로써, 국력과 생산력이 이루 말할 데 없이 피폐해졌고 유럽 전역은 경제적 붕괴가 일어나게 된다. 

 

거리에는 실업군인들과 상이군인들이 넘쳐났으며, 파괴된 생산시설들로 인해 일자리는 턱없이 감소한 상태였다. 전쟁을 거침으로써 국가에 유통되는 돈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돈이 줄자 상업이 마비되었으며, 상업이 마비되자 그 물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같은 생산시설들까지도 다시금 마비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식량과 같은 생활필수품들은 점차 가격이 높아져만 갔고, 경제는 다시금 회복할 수 없을듯이 붕괴해버렸다.

 

그리고 전쟁에서 진 장본인인 도이치 민족은 전쟁에서 패배한 민족이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혔고, 설상가상으로 겹친 경제위기까지 겪음으로써 국민들은 불행해져만 갔다.

 

암울한 대공황의 구름은 전 세계를 휩쓸었고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의욕이 없었고,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할 뿐이었다.

 

-일본의 야망.

 

유럽 강토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전쟁이 끝나고 유럽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울 즈음. 동쪽의 일본은 아주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주변의 국가들을 식민화 시켰으며, 제국주의적 욕망을 멈출 줄 몰랐다. 그리하여 한반도를 놓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위력을 떨쳤던 중국과 전쟁을 벌였고, 1895년 4월 17일. 동북아시아의 맹주. 청나라를 무너뜨렸다. (청일전쟁) 이후 동아시아의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르게 된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을 벌이게 되고, 1905년 9월 5일.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마저도 승리하게 된다. (러일전쟁) 

 

그리고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도장이 찍힌다. 이 도장 소리와 함께 일본은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고 병합함으로써, 5백년을 이어오던 조선왕조를 몰락시키고 한반도를 집어삼켰다.

 

이후 일본은 중국에 대해 직접적인 침략을 개시한다. 1932년 3월 1일. 만주를 군사적으로 장악한 일본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를 황제로 하는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가를 창설한다.

 

일본은 여기서 야망을 그칠 줄 몰랐고, 중국 전체와 동남아를 집어삼켜 대동아 공영권을 만들고자 하는 야심까지 품게 된다. 

 

군국주의 성향의 도조 히데키 내각은 무력에 의한 군사팽창 주의만을 지향했고, 천황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통해 전국민을 규합시켜, 일본을 하나의 전쟁병기로 만들게 된다.

 

1937년. 일본 군 수뇌부는 중국 침공을 결정하게 되고, 본격적인 중국 침략을 개시한다. 막강한 일본의 대군을 맞이한 중국은 분열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각각 공산당과 국민당으로 분열되어 반목하고 대립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제 1차 국공합작이 체결되고, 본격적인 중국과 일본의 전면전에 돌입한다.

 

-이탈리아의 새로운 바람.

 

1922년. 이탈리아 왕국은 새로운 국무총리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베니토 무솔리니.

 

1922년 10월 28일.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 휘하의 검은 셔츠단은 로마로의 진군을 시작했고, 무혈 쿠데타를 성공시킨다. 국왕인 베마누엘레 3세는 이탈리아의 내각을 구성해달라 요청했고, 그는 파시즘 내각을 구성한다.

 

이후 그는 자신을 최고통치자라는 뜻의 두체로 칭했고, 그 이름에 걸맞게 모든 권력을 장악한다. 이는 그의 독재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으며, 절대권력을 획득한 베니토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왕국을 파시즘 국가로 개조한다. 

 

국가 파시스트당의 창당자인 그는 파시즘만이 국가 부강의 열쇠라고 생각했고, 점차, 독일, 일본과 같은 군국주의 성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는 언론 검열과 절대권력 행사에보이지 않는 적 '공산주의자' 를 효과적으로 잘 이용해 당위성을 부여했고,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도자로써 막강한 지지율을 보유하게 된다.

 

이후 그는 파시즘 정권을 앞세워 이탈리아의 경제 성장을 추진했고, 이탈리아 왕국의 경제는 단시간에 성장한다.


-아돌프 히틀러와 독일 노동자당.

 

전후의 독일. 피폐해진 강토와 초점을 잃은 눈을 가진 국민들. 무엇하나 좋은 것 없이 암울하던 이 시기에 독일에는 새로운 신흥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독일 노동자당. 일명, 나치당.

 

히틀러와 그의 동지들은 독일 노동자당의 세력을 키우길 원했고, 뮌헨에서 봉기를 일으킨다. 그러나 지지기반을 얻지 못했던 쿠데타는 순식간에 실패하고, 나치당은 해체된다.

 

이후 독일 경제는 나날로 회복하였고, 극우와 극좌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정당들의 빛은 차츰 바래져갔다. 

 

그러나 1929년 검은 목요일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대공황이 불어닥치기 시작했고, 독일 경제는 강한 타격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독일 정계는 혼란스러워 졌고, 그 틈을 이용해 히틀러와 나치당은 민주주의 정당들을 밀어내고 과감한 공약들로써 정계에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1933년 1월 30일. 대통령이던 힌덴부르크는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는 어마어마한 실책이었다. 히틀러는 총리가 아닌 그의 절대독재를 원했던 것이다.

 

이후,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능함을 연설하였고, 정치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세뇌시켰으며, 자신의 정적들을 차례차례 제거해나갔다. 

 

1934년. 대통령이던 힌덴부르크가 죽고, 아돌프 히틀러는 총리와 대통령을 겸하는 직책인 총통에 취임한다. 지방 의회들과 사회민주당을 불법화시키고, 일당체제로써 나치당의 독주를 법으로 합법화했다. 이후 도이치 제 3제국하의 모든 조합과 시민단체는 나치당의 휘하로 편입되는 법까지도 발행된다.

 

또한 전권 위임법에 의해 바이마르 공화국은 종말을 고했고 도이치 제 3제국이 창건되었다. 히틀러는 강경한 주장과,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연설하였고, 전후의 패배감과 경제적 위기에 찌들어있던 독일 국민들은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나치 전당대회]

 

그는 '증오'의 힘이 막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후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라는 실체 없는 적을 만들어 국민들의 증오를 규합했다. 거기에 더해 그는 국민들의 자신감을 북돋았고 제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연설들로 규합한 국민들의 힘과 민주제 정부 당시 마련된 자금들을 바탕으로 독일을 발전시켜나갔고 도이치 제 3제국은 다시금 유럽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히틀러는 군사에 의한 팽창주의를 맹신했고, 군비를 대폭 확대하면서 베르사유 조약에 작별을 고한다. 더불어 강력해진 군사력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와 체코 슬로바키아를 합병하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


[1939년 유럽의 판도]

 

『증오는 단시간에 가장 큰 힘을 낸다. 하지만 가장 빨리 무너진다. - 에이미 추아』

 

에이미 추아의 말처럼 증오는 미친듯이 강력한 힘을 냈고, 변질된 민족주의와 그로 인한 국민의 규합은 3국을 막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이와 같은 군국주의 및 팽창주의는 일본, 이탈리아, 독일 3개국의 입장을 맞춰주었고, 이들은 이후 동맹을 맺게 된다. 

 

날이 갈수록 강대해지는 막강한 독일, 이탈리아 세력이 손을 잡자, 영국과 프랑스는 당황했고 빠르게 독일과의 외교를 우호적 노선으로 바꿔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축국들은 팽창을 원했으며, 전쟁을 착실히 준비해 나갔다.

 

이젠 이들을 막기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 영국과 프랑스는 다시금 국방을 튼튼히 했고, 프랑스 정부는 마지노 요새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1939년 9월 1일 새벽. 

 

난데없는 굉음과 함께 폴란드의 서쪽 국경은 함락당했고, 도이치 제 3제국의 기갑사단이 물밀듯이 폴란드로 들이닥쳤다.

 

이에 폴란드는 자신의 동맹국가였던 영국과 프랑스에 구원을 청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전쟁 중지를 요구한다. 

 

그러나 도이치 제 3제국은 이 협상을 결렬시키고, 결국 1939년 9월 3일. 프랑스와 영국이 도이치 제 3제국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한 달도 못되어 폴란드 전역은 정복당하고, 독.소 조약에 의해서 독일과 소련에게 양분된다.

 

소련은 독.소 조약에 의해서 서부전선의 병력을 북부의 핀란드로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핀란드에게 선전포고를 개시해 겨울 전쟁을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독일은 독.소 조약에 의해서 동부전선에 병력을 배치할 필요성을 상실했고, 거의 모든 병력을 서부전선의 프랑스 공략에 투입한다.

 

독일은 파죽지세로 프랑스로 진군해 나갔으나, 그들 앞에는 마지노선이 있었고, 제 아무리 독일군이라 하더라도 이 요새를 깨부수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독일은 정면돌파를 시도하지 않았고, 중립국인 베네룩스 3국을 침공해 우회했다. 마지노선은 프랑스 방어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고, 아르덴 숲을 통해 우회한 독일군은 미친듯한 속도를 내며 진군한다.

 

이에 결국 프랑스는 격파당하고, 프랑스를 지원하러 왔던 영국 원정군은 덩케르크 해안의 다이나모 작전으로 겨우 철수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후 이탈리아는 프.영 에 선전포고를 하고 프랑스 남부를 침공하고 프랑스 영토를 독일과 양분한다. 

 

-1940년. 프랑스의 함락.


[1940년 유럽의 판도]

 

그렇게 1940년 6월 22일. 프랑스는 무너진다. 하지만 프랑스의 수뇌부와 정부는 망명했고 그들의 식민지 병력은 건재한 상태였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프랑스를 침공하는 동안 소비에트 연방은 발트 3국을 침공해 점령했고, 핀란드와의 협상을 체결한다. 

 

프랑스를 함락시킨 이후, 독일의 주된 적은 영국이 되었고, 영국 본토에 상륙하려는 바다사자 작전을 구상함과 동시에 동유럽과 중부 유럽의 군소국들을 차츰 합병해나갔다.

 

영국과의 항공전 계획이 무산되어버린 독일은 대서양 해군으로써 승부를 보려 했다. 그러나 영국의 유서깊은 해군 전력에는 상대가 되질 않았고 이후 U-보트를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전술을 바꾸게 된다. 

 

U-보트는 향후 1년여동안 대서양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독일이 이러한 작전들을 펼치며 세를 넓히는 동안,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 침공을 개시했고, 영국령 식민지였던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 대해 대규모 정복전을 펼친다.

 

같은 년도,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에서 고전했고, 결국 중국을 고립시키고자, 중국 남부의 인도차이나 반도를 침공한다. 

 

또한 이 기간동안 미국은 중립을 표명했으나, 실상 무기와 자본은 연합국에 지원하는 형세였다. 이미 제 1차 세계대전의 전쟁특수로써 많은 수익을 올린 미국은 다시금 특수경제를 이룩한 것이다.

 

1940년 9월 27일. 베를린에서는 추축국간의 동맹이 체결되었고, 이로써 이탈리아, 독일, 일본은 확실한 연합세력으로 자리매김한다.

 

1940년 중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는 발칸반도에 대한 대대적 침공을 개시하게 되고, 이에 영국은 발칸 반도국들을 지키려 병력을 급파한다. 영국군은 지중해에서 이탈리아 해군을 격파하고, 그리스에 지원하는등의 성과를 올렸으나, 

 

-1941년. 북아프리카 전선으로의 확장. 전쟁의 고착화.


[1941년 일본의 판도(파란색이 일본)]

 

1941년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장군이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어 제 7 기갑사단과 함께 영국군의 요새인 토브룩을 격파하자 다시금 수세에 몰리게 된다. 

 

연합군은 북아프리카에서 수세에 몰리며 시리아에 병력을 투입하고,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를 점령하는데는 성공한다. 또한 대서양에서는 독일 해군의 상징이었던 비스마르크함을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린다. 

 

그 무렵 중.일 전선에서는 소규모 전투들이 일어나나 일단락 교착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1941년에 돌입하면서 전 세계에 퍼졌던 전쟁의 열기는 어느정도 사그라들고, 다시금 전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중국에서는 국공합작이 폐기되고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내전이 발발했으며, 일본은 이 기회를 틈타 인도차이나 반도를 손쉽게 정복하게 된다. 

 

소련은 이와같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직접적인 개입의 뜻을 보이지 않았고, 일단락 강대한 추축국들과 동맹을 맺은 상태에서 조금씩 영토를 늘려나가는 정책을 취했다.

 

1941년에는 독일에 이어 일본과도 중립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에서 중립적인 위치를 취하게 된다.

 

 

-

이제 전설로 남는 1942의 서막이 될텐데요. 이 부분은 나중에 서술하겠습니다. 꽤나 길어질 것 같아서 말이죠.

 

태클과 지적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옳다고 생각되면 언제나 수용합니다. 

 

항상 응원해주시고 봐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097&query=view&p=1&my=&category=&sort=PID&orderby=&where=&name=&subject=&content=&keyword=&sterm=&iskin=lol&mskin=&l=216760

우리가 잘 모르는 역사 이야기 10 (제 2차 세계대전 2편) 링크



http://blog.naver.com/kimcs4675862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