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반복해도 쉬워지지 않아. 매일 똑같은 흙투성이 옷을 걸치고 몇 시간이고 놈들이 돌진해 오길 기다려. 그 놈들이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나타나면, 어깨가 뻐근할 때까지 칼을 휘두르지. 나 자신을 베지나 않을까, 아군을 베지는 않을까, 아니면 내 척추에 칼이 꽂히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떨면서. 결국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어딘가에 파 놓은 참호 안으로 기어 들어가 몸을 누이고, 누가 죽었는지, 또 누가 살았는지 곱씹어 보곤 하지. 그리고 누군가 흔들어 깨우면, 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거야. 때로는 그 전에 행군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새파란 신병은 얼빠진 표정으로 탈로를 바라봤다. 누군가 전쟁이 끝났다고, 얼라이언스가 승리했다고 얘기한 모양이다.


그래, 적어도 얼라이언스가 놈들보다는 형편이 조금 나았다. 오그리마는 붕괴되고, 오크의 우두머리는 구속되었다. 호드는 꼬랑지를 내리고 웅크린 채 상처를 핥고 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판다리아는 유린당했다. 이 땅을 괴롭히던 망나니들이 쫓겨난 이후, 원주민들은 수없이 감사의 말을 늘어놓았지만, 탈로는 그게 그저 인사치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향 땅이 전쟁에 휘말린 상태에서는, 그 전쟁을 유발시킨 장본인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호드는 파괴된 것이 아니다. 그저 패배했을 뿐이다. 새로운 대족장이 취임했고, 그 녀석이 자리를 잡고 나면 새로운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식인 트롤이 호드를 평화와 상생의 시대로 이끌 거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건 아마 잔달라 트롤을 만나보지 못한 녀석일 거다.


그래, 얼라이언스가 이겼다.


탈로 몬단은 판다리아 대장정이 시작되던 때, 긴급 소집령에 자원해서 참전했다. 물론, 그는 그전에도 수없이 많은 전투를 겪어 왔다. 오크, 썩어 문드러진 언데드, 인간 두개골을 뒤집어 쓰고 뒤틀린 뿔이 달려 있던 괴물들까지. 그는 모두와 싸우고 살아남았다.


그 결과 무엇을 얻었을까? 머리를 빡빡 밀어야 할 정도로 많은 상처들? 은행에 숨겨 놓은 전리품? 아이도 없고 부인도 없이, 내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고, 벽에 걸어둘 그림 한 점도 없다. 내세울 것이 없다. 지금은 수호자의 긍지호라는 전함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전리품과 신병으로 가득 차 있는 어느 배가 됐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깨끗한 제복을 입고, 싸구려 메달은 목에 건 채로,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다음 긴급 소집을 기다려야 하나?


그 녀석도 이제는 깨닫는 편이 좋을 거다. 더 늦기 전에, 멍청한 호드 황소가 달려드는 걸 혼자서 막아서야 하기 전에. 적어도 아직 젊을 때 그만둘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지 못했다. 오늘 밤의 세 번째 거대한 파도가 함선 갑판에 쏟아져 들어왔을 때, 꼬마는 그 멍청한 표정을 얼굴 가득 담고 있었다.


세찬 파도에 탈로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 흰 거품이 가득한 물살이 모든 것을 휩쓸었다. 물은 그의 입을 가득 채우고, 해진 잇몸을 쓰라리게 했지만,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꼬마 녀석에게 집중했다.


반쯤 찢어진 돛이 펄럭거렸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선원들은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지르고, 비명을 지르고, 몸을 일으켰다. 수호자의 긍지호는 휘청거렸고, 탈로는 뱃속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녀석을 향해 달렸다.


갑판을 반쯤 지나갔을 때 신병의 표정이 왜 그대로인지를 깨달았다. 녀석은 배 측면에 기댄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넘쳐 들어온 바닷물이 그를 앞뒤로 흔들었다. 물에 젖은 갈색 나무 조각들이 그 녀석의 옷을 온통 뒤덮고 주위에 고인 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푸른 조끼는 피로 흠뻑 젖어 역겨운 보랏빛으로 변했다. 아마 함포가 미끄러지면서 아이를 덮쳤을 것이다. 어쩌면 돛대가 그의 두개골을 부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탈로가 생각에 잠긴 사이, 또 한 번 파도가 배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의 몸이 휙 떠올라 갑판 너머로 내동댕이쳐졌다. 그의 아래에는 온통 바다뿐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 그가 마음껏 소변을 보던 그 바다였다.


탈로는 등부터 바다에 떨어졌다. 공기는 이미 반쯤 폐에서 빠져나갔고, 휘도는 물살이 그의 팔다리를 인형처럼 좌우로 흔들어 댔다. 그는 가라앉았다.


안 돼.


추위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창날처럼 그를 꿰뚫었다.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눈이 따가워 뜰 수도 없었다.


안 돼.


아래로. 그의 몸은 빙글빙글 계속해서 돌았다. 물이 사방팔방에서 그를 때렸다. 그의 팔다리가 무력하게 떠돌았다.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공기를 내보내지 않으려는 폐가 뜨끔거리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물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어 막고 허우적대며, 주위에 피어나는 공기방울 속에서 몸부림쳤다.


폐가 점점 더 뜨겁게 타올랐다. 목덜미의 핏줄이 두근거리면서 마치 배의 돛대줄처럼 딱딱하게 긴장했다.


폐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몸뚱이는 꼭두각시가 되었다. 다리는 부러지기라도 한 듯,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거웠다. 익사하는 걸까? 수십 번의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그가, 배에서 겨우 몇 초 거리에 떨어진 여기서 죽어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얄궂은 일인가.


입을 열어야 했다. 무언가 갑자기 그를 강타했고,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소금물과 뜨거운 소금이 입으로 밀려 들었다. 고통 때문에 숨을 들이쉬어야 했다. 그런 자신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기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공기와 물과 콧물을 내뿜었다. 그제서야 탈로는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숨을 쉬고 있었다. 등과 옆구리는 마치 불이 붙기라도 한 듯 뜨겁고, 팔은 끔찍이 아팠지만, 영원처럼 긴 시간이 지난 끝에 처음으로 앞을 똑바로 볼 수 있는 것만 같았다. 머리 위의 쌍둥이 달이 빛을 뿌렸다. 탈로는 등을 무언가에 기대고 물살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위다. 날카로운 바위. 다리로 바위를 밀다가, 그는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헐떡였다.


기침을 하자 붉고 짠 물이 입으로 넘어왔다. 아팠다. 좋은 징조였다.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멀리 수호자의 긍지호가 보였다. 잔뜩 부서진 채 돛을 펄럭이며 불안하게 떠가고 있었다. 이 폭풍우 속에서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탈로라도 그랬을 것이다. 물에 빠진 한 명의 목숨이 일백 명의 목숨보다 귀할 리는 없다.


물은 얼음장 같았다. 슬금슬금 밀려오는 파도는 아무래도 그를 바위에 내동댕이치고 싶은 것 같았다. 탈로는 애써 등의 고통을 잊어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타박상에 그친 것 같았지만, 손을 돌려 등을 만져 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물은 소용돌이치며 사방에서 솟아올랐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수호자의 긍지호를 찾았다.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파도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크기로 보아 얼라이언스 함선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은 함선일 것 같진 않았지만, 홀몸인 그라면 곤경에 처할 수도 있었다.


탈로는 숨을 들이쉬며 몸을 떨었다. 파도는 계속해서 밀려왔다. 이번 파도가 아니면 다음 파도겠지.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가까이에 있던 파도가 살포시 낮아지고 다시 솟아오르려는 사이, 그 물마루를 향해 오르는 무언가가 보였다. 난파선의 잔해인가? 기다란 널빤지처럼 생겼는데?


파도가 잦아든 후 저걸 붙잡을 수 있다면, 어쩌면...


파도가 내리쳤고, 그는 물을 뒤집어 쓴 채 바위에 짓눌렸다. 바위가 그의 등을 할퀴었고, 탈로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억눌렀다.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왠지 그는 점차 널빤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구원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건 방금 그 파도를 어떻게 견뎌내고 떠 있는 걸까?


그제서야 그는 널빤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달빛 아래 일어서는 파도를 뚫고 점점 커진 그 물체가 이제 똑똑히 보였다. 다가오는 그것은... 배?


작은 배였다. 탈로가 지켜보는 사이, 점점 커진 널빤지는 측면으로 그물을 끄는 작은 배의 모습이 되었다.


배를 모는 이들은 덩치가 크고 목이 두꺼웠다. 앞으로 몸을 기울인 그들의 커다란 손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만 방망이처럼 보이는 노가 물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오크!세 놈이다.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탈로는 생각했다. 칼이 없는 게 아쉬웠다.


솟아오른 파도가 배의 우현을 강타했고, 세 형체는 재빨리 움직여 자세를 바꿨다. 몸을 꼿꼿이 세우고 마치 창대를 내리듯 노로 바다를 내리치며 그들은 배가 뒤집어지지 않게 하려 애썼다. 탈로는 딱딱 부딪히는 이를 다잡고 숨도 멈춘 채 곰곰이 생각했다. 얼어 죽거나 물에 빠져 죽는 게 붙잡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니, 오크가 아니다. 그들의 얼굴과 손은 온통 축축하게 젖은 털로 덮여 있었다. 두 눈까지 축축해 보였다. 잿빛과 갈색 망토를 두 겹으로 두르고, 마치 구겨진 누더기 같은 모습으로, 털이 덥수룩한 앞발로 배 측면에 매달려 있었다.


판다렌?'


그들 중 하나는 입을 쩍 벌리고 있었지만,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소리만 질렀다. 배 뒤쪽에서 파도가 솟아올랐고, 배는 뒤로 당겨지며 고물이 위태롭게 치솟아 올랐다. 배가 물살에 휩쓸려 휘돌았고, 소리를 지르던 형체는 앞발 하나를 치켜들고 신호를 보냈다. 그 입은 절대로 닫히지 않았다.


혹시... 환호하는 건가?


판다렌의 배는 몇 초 동안 파도의 물마루를 타다가 철썩하고 떨어져 내렸다. 이제 그와 배 사이의 거리는 5미터도 되지 않았다. 세 선원은 물에 흠뻑 젖었지만, 커다란 판다렌이 통통한 앞발을 들어 탈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입은 여전히 벌린 채였다. 배 뒤쪽에서 다시 파도가 솟아오르고, 곧 바위를 향해 달려들 참이었다.


탈로는 두 발로 바위를 박차고 살아남고자 헤엄을 쳤다.


***


세 판다렌이 그를 배 위로 끌어올렸고, 그는 몸을 덜덜 떨며 구역질을 해댔다. 하지만 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탈로는 다시 바닷물을 삼켜야 했다. 솟아오르는 파도를 뚫고, 판다렌들은 억세게 나아갔다.


그들은 기합을 넣듯 소리를 질렀다. 두 번 빠르게 소리친 후, 파도가 솟아오르는 사이 노래를 부르다가, 물에 흠뻑 젖은 채 파도를 헤쳐나오면서 환호성을 올렸다. 잠시 전에 죽음의 위기를 헤쳐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서로의 등을 두드리면서. 배가 물의 장벽을 지날 때마다 탈로는 그들이 당장이라도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노래는 계속되고 배는 파도를 뛰어 넘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바다를 두들기기라도 하듯 사방에서 물이 넘쳐 들어왔지만, 판다렌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파도가 사라지고, 환호성만이 남았다.


탈로는 배를 전복시킬 뻔 한 파도의 횟수를 세는 것을 중단하고, 그저 자리에 누워 기다렸다. 어디 심각하게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갈비뼈에는 금이 갔을까? 옆구리가 아렸지만, 앉아 있어도 생각만큼 아프진 않았다. 그는 판다렌들이 덮어 놓은 망토 안에서 몸을 움츠렸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비는 쏟아져 내렸으며, 배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래도 파도는 조금 잦아든 것 같았다. 어디에서도 수호자의 긍지호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멀리 바위투성이 절벽이 보였다. 배의 판다렌들이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 가려고 했던 목적지가 저곳이 아닐까?


배를 들러보며, 탈로는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제 안전했다. 아니, 조금 더 안전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그는 나직이 말했다.


판다렌 중 하나,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던 덩치 큰 이가 잠깐 말을 멈추고 퉁명스럽게 알았다고 답했다. 작고 통통한, 턱이 두꺼운 다른 판다렌이 배 바닥에서 술잔으로 물을 퍼냈다. 귀를 덮는 두건을 쓴 세 번째 판다렌은 두 개의 노를 교대로 놀리며 배를 저었다. 등은 거의 사람 덩치만 한 맥주통에 기댄 채였다. 그 판다렌은 노를 멈추지 않고 말을 했고, 그 소리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빗소리 때문에 거의 들리지 않았다.


"당신은... 얼라이언스인가요?" 평범하고 약간 쉰 목소리. 남성인가?


"네." 탈로가 잠시 말을 멈췄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판다렌들이 노를 멈추자 배가 잠시 동안 순항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탈로를 바라봤다. 두건 아래 황금빛 눈이 마치 깜짝 놀란 동물처럼 환하게 빛났다. 덥수룩한 턱수염과 삐죽한 볼수염이 경련하듯 씰룩거렸다.


"낚시하러요."


흠뻑 젖은 탈로는 도무지 몸이 마를 것 같지 않아, 담요를 한 장 더 머리 위까지 끌어올렸다. 판다렌들은 노를 거두고 잠시 쉬면서, 배가 파도에 흔들리게 내버려 두었다.


절벽은 더욱 멀어져 있었다. 이제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수호자의 긍지호가 난파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판다렌들은 수다를 떨고, 밧줄을 묶고, 그물의 구멍을 수선하고, 낚시 바늘에 미끼를 끼우느라 바삐 움직였다. 늘 소리를 지르는 덩치 큰 판다렌은 술통의 마개를 뽑고 술잔을 한번에 두 잔씩 채우고 있었다.


"이봐요, 고맙긴 합니다만," 그는 덩치 큰 판다렌에게 말했다. "저를 저 절벽 근처에 내려줄 순 없겠습니까?"


"제 사촌 시 가가 낚시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술 한 잔 드시겠습니까?"


그녀...그녀의—목소리는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탈로는 지금까지 계속 자신을 놀래키던 우렁찬 목청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거품이 이는 에일 맥주잔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이가 딱딱 부딪히는 와중에 몇 모금을 들이켰다. 따뜻했다… 나쁘지 않았다.


"어, 고맙습니다. 탈로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메이 파 입니다. 함께 술을 나누게 되어 기쁘군요. 여기는 제 남동생 쿠오입니다." 활짝 편 그녀의 손이, 체격이 다부지고 얼굴이 큰 판다렌을 향했다.


커다란 앞발 하나로 두 개의 술잔을 붙들고 배의 그물을 펴던 쿠오가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마침 쿠오가 비취 숲 해안에서 폐어를 잡았던 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탈로, 낚시 좋아하십니까?"


탈로는 낚시를 싫어했다. 낚시는 더할 나위 없이 지루했다. 앉는다. 기다린다. 지켜본다. 그리고 조금 더 기다린다. 낚시는 그가 떠올릴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게으른 행위였고, 사람들은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자신을 낚시꾼이라고 지칭했다. 봄철에는 누구나 낚시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바다 한 가운데에 떠도는 작은 배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와중에 죽을 듯한 추위에 떨며 낚시하는 일은 지루하지 않았다. 멍청했다.


"딱히 낚시에는 취미가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좀 아시겠죠?"


"이야기요? 아, 그럼요. 몇 가지 압니다."


그 즉시 메이 파와 시 가의 눈이 맹렬하게 그에게 집중했다. 그 눈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탈로가 그들과 어떤 공통의 관심사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어디 축축하지 않은 곳으로 그를 데려다 달라고 설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탈로는 목을 가다듬었다.


"음, 몇 년 전 저습지에서 복무하고 있을 때, 어떤 유서 깊은 마을을 발견했죠. 그때 우리 소대에는… 여덟 명의 병사가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아마도 드워프가 만들었을 듯한 버려진 요새였죠. 정찰 임무에 나섰다가 그곳을 발견한 우리는 내부를 수색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호드도 그 소식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머지않아 호드 전투부대 두 무리가 정문 앞에 모여들어 시설에 들어올 방법을 찾더군요. 놈들이 그곳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발각되지 않고서는 빠져나갈 방법도 없었고요. 놈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 망할 못생긴 녀석들이... 모두 거대한 도끼와 칼 같은 무기를 들고 있더군요."


메이 파가 커다란 눈썹을 찡그렸다.


"그런데 그릴리가 괜찮은 생각을 떠올렸어요. 벽에서 온갖 융단과 조각상을 모두 끌어 내리고, 깨끗한 것들을 앞뜰에 쌓아 두었죠. 몇 개는 일부러 찢어서 도둑들이 남기고 떠난 것처럼 보이게 하고요. 그 가운데 동전도 몇 개 던져 놨습니다. 오크들은 돈이라면 쓰레기 더미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니까요."


판다렌들은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시 가는 낚싯대를 내려놓고 돌아앉아서 탈로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전리품 더미에 폭탄을 대여섯 개쯤 설치했죠. 네, 아래쪽에 잘 묻어 두었어요. 그리고 우린 숨었습니다. 오크들이 들이닥쳤을 때, 전 미친 듯이 땀을 흘리고 있었어요. 농담이 아닙니다. 놈들이 함정에 빠질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탈로는 말을 이었다. "놈들은 잠시 동안 서로 입씨름을 하더군요. 그리고 결국엔 고블린 몇 마리가 앞으로 나섰어요. 그... 몸은 초록색이고 귀가 커다란 작은 녀석들 아시죠? 고블린들이 전리품을 뒤졌습니다. 우린 전리품 더미 사이에 놈들이 더 많이 들어설 때까지 기다렸어요. 여섯, 여덟, 열... 그리고 쾅! 아마 스무 명 쯤은 처치했을 거예요. 쇠창살문과 정면 벽도 함께 날아갔죠. 제 평생 들어본 중 가장 시끄러운 소리였어요. 그 멍청이들이 머리를 감싸쥐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내려던 사이, 우리는 서쪽 문으로 밧줄을 내려서 몰래 빠져나갔습니다."


끝. 쿠오는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요?" 그가 물었다.


"네?" 탈로가 다시 물었다.


메이 파가 끼어들었다. "제 동생이 궁금해하는 건, 당신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일 거예요."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교훈이라고? "그, 우리는 미끼를 써서 놈들을 유인했습니다. 우린 놈들보다 영리하게 행동했고, 그래서 빠져나갈 수 있었어요. 우리 동료들은 아무도 다치지도 않았습니다. 거의 10대 1의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탈로의 얼굴이 점차 붉어졌다.


"알... 겠습니다." 메이 파는 분명히 언짢은 표정이었다.


"아시겠지만, 전쟁 중이었다고요." 탈로는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판다렌들은 돌아앉아 낚싯대를 만지작거리고, 낚싯줄을 다시 꿰고, 폭풍이 몰아치는 검은 바다를 내다보았다. 배는 미친 듯이 흔들렸지만,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폭풍우 속에서 바다에는 왜 나왔습니까?" 탈로는 자신을 구해준 이들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물었다. "우리 배를 찾고 있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데요."


"저도 이야기 하나로 그 질문에 답해도 될까요, 탈로?" 메이 파의 부드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불친절하지 않았다. 탈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때? 어차피 비는 맞아야 할 테니.


***


아주 오래 전,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 시앙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곳에 살던 판다렌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낚시꾼들이라, 모두 바다의 과실로 배를 채웠다. 식생활을 거의 전적으로 물고기에 의존하던 그들 중에는 농부와 사냥꾼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고 건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례 없는 기근이 마을에 몰아쳤다. 마을 근처의 바다에서 물고기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빗물과 맥주를 마시고 나무에서 과일을 따 먹으며 버텼지만, 곧 저장해 둔 식량이 모두 떨어졌고 물고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몇 주 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며 비축된 식량으로 버틴 끝에, 마을 주민들은 모두 절망에 빠졌다. 이들은 수도에 사절을 보내 식량 원조를 요청했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주민들은 떼지어 자 시앙을 떠나기 시작했다. 판다렌들은 몇 시간이고 부두에 앉아 뭐라도 잡히기만을 기다렸지만, 낚시 바늘을 건드리는 물고기는 단 한 마리도 없었고, 항상 앞발이 텅 빈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열두 살 정도 된 어린 소년 슌만이 예외였다.


슌은 고집이 셌다. 아이는 자기 가족뿐 아니라 마을 주민 전체의 배를 채울 물고기를 잡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이는 낚시의 '낚'자도 몰랐다. 그래서 그저 부두에 앉아서 물고기를 소리쳐 부르고, 그 소리에 물 위로 올라오는 물고기가 없는지 두리번거리며 찾을 뿐이었다. 막대기에 줄을 대충 묶어 만든 낚싯대를 들고는 있었지만, 이웃들이 미끼로 쓸 것들까지도 모두 먹어버리는 통에 미끼가 없었다. 그래서 슌은 물고기들을 속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돌을 반짝거릴 때까지 문질러 닦고 물수제비를 던지며 물고기들이 그 뒤를 따라 뛰어오르길 기대했다. 하지만 당연히, 물고기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슌은 잠도 자지 않고 일주일 내내 돌을 던지고 나서야 포기했다. 그 다음, 슌은 물고기를 물 밖으로 꾀어내려고 했다. 바다에 입을 넣고 물고기의 말로 농담을 했다. 하지만 물고기는 우리 농담을 알아듣지 못했고, 슌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단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3일이 더 지났고, 바다에는 아예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는 것만 같았다. 슌은 화가 났다. 그는 돌을 모두 치우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몸이 차가워지고, 그는 어느새 물 위를 걷고 있었다. 해안과 그의 집이 점점 멀어지다가, 이제는 그의 뒤쪽으로 작은 점이 되어 있었다.


그는 숨을 참으며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따가움을 무릅쓰고 눈을 뜨고 물고기를 찾고, 앞발로 잡으려 했다. 진흙 속에서 그는 작은 갈색 물고기를 발견했다. 숨어 있기라도 한 듯 흙탕을 덮고 있었다. 슌은 재빨리 헤엄쳐 다가가 물고기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가 다가가는 순간, 거대하고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태양빛을 가렸다. 그리고 거대하고 굶주린 뱀의 주둥이가 쏜살같이 그의 곁을 지나쳐 물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이 보였다.


슌의 물고기를 잡아먹은 거대한 괴물은 마치 밧줄처럼 휘휘 감긴 뱀장어였는데, 몸 전체를 길게 뻗을 수 없기라도 한 듯 비틀거리며 움직였다. 놈의 배는 크게 부풀어 있었고, 살아 있는 물고기가 그 은색 이빨에 꿰어 있었다. 슌은 이 괴물이 자 시앙의 물고기를 모두 잡아먹고 있었음을 깨달았고, 그제서야 마을 최고의 낚시꾼들도 물고기를 전혀 잡을 수 없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했다.


그 생물의 주둥이는 슌의 몸 전체를 삼킬 만큼 컸다. 덩치도 어찌나 큰지, 같이 물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슌이 겁에 질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너무 화가 나서 집에 갈 수가 없었고, 어느새 괴물을 따라 헤엄쳤다. 팔다리는 괴수의 지느러미와 같은 박자로 물살을 저었고, 놈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하며 슌은 바다를 가로질렀다.


숨을 꾹 참으며, 슌은 괴수의 열린 주둥이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주먹이 통째로 들어갈 만큼 틈이 넓은 이빨 사이에 팔을 집어넣어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꺼냈다. 그 후에는 숨을 내뿜으며, 괴수가 그를 덮치기 전에 수면으로 쏜살같이 올라갔다.


그는 물고기를 집으로 가져가 식탁에 내려놓고, 부모님과 형제 자매에게 마을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저 물고기를 잡을 다른 방법을 찾기만 하면, 모두를 먹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슌은 깨달았다. 낚시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응당 알아야 하는 사실을. 낚시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


등은 계속 아프고, 비와 추위를 비롯하여 이 미친 판다렌들이 무시하고 있는 모든 것이 불쾌했지만, 탈로는 고개를 숙이고 맥주를 입에 대며 웃음을 감춰야 했다.


그래, 판다렌 소년이 바다 한가운데까지 헤엄쳐 갔을 수도 있다. 몸놀림이 무척 날래서 어떤 커다란 뱀장어의 아가리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끌어낸 후, 잡아먹히지 않고 도망쳐 허기진 마을 주민들을 구했을 수도 있다. 그래, 틀림없이 그랬을 거다.


탈로는 그저 이 말만 남겼다. "흠.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메이 파는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묘한 미소를 보냈다. "그냥 이야기에요, 탈로. 게다가 이제 시작일 뿐이고요. 하지만 분명히 중요한 이야기랍니다."


판다렌들은 친절했다. 그의 목숨을 구해 주고 이야기를 들려줬을 뿐 아니라, 작고 구부러진 낚싯대와 미끼도 나눠 주었다. 마치 꼬마 아이에게 가지고 놀 목검을 주는 것처럼. 메이 파가 이야기를 계속하는 동안 그는 한 손으로 낚시를 물에 던지고 빼기를 반복했다. 낚시라고. 그래. 낚싯줄을 바다에 드리우고 있자니 덜덜 떨리는 몸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졌다. 한 시간 내내 기다리며 듣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입질도 전혀 없었다.


이제 그녀도 조용해지고, 탈로는 두 다리를 바다 위로 내밀고 맹렬히 노려봤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왜 아무 것도 잡히지 않을까? 쿠오와 시 가는 향기로운 황금 잉어를 그물 가득 건져 올리고 있는데.


"탈로, 걱정하지 마세요. 물고기가 다가오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탈로는 장난감 낚싯대를 물 밖으로 휙 당겨 꺼내고 잠시 바라본 후, 무심한 척 끙 소리를 내며 낚싯대를 갑판에 내려 놓았다. 판다렌들이 낚시를 끝냈다면, 더는 볼 일이 없다. 이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곧, 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탈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가 더 거세게 퍼부었다. 담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추위와 축축한 물기를 붙잡아두는 것 외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는 절벽을 마지막으로 봤던 것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봤다. 4시간 전? 5시간 전인가? 날은 아직 어두웠다.


"어디 육지로 향하고 있는 겁니까?" 그는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아직 낚시를 한참 더 해야 해서요." 시 가가 거친 목소리로 답했다.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구름이 다시 모여들었다.


탈로 자신의 실수로 죽게 된다면야 받아들이겠지만, 다른 이의 잘못된 판단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비록 부상당한 몸이지만, 바다 너머 어딘가 헤엄쳐 갈 곳은 없는지 내다봤다. 유목이나 커다란 산호 덩어리, 아니면 그 무엇이라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눈을 뜨기도 힘들 만큼 거세게 쏟아져 내리는 두터운 비의 장막뿐이었다.


아니, 뭔가 보였다. 수면 아래에서 매끈한 검은색 형체가 우아하게 움직였다. 언뜻 지느러미가 보인 것도 같았지만, 물 속 깊은 곳에서 움직이기 때문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배가 가볍게 흔들렸고, 탈로는 배 측면을 붙잡았다.폭풍 때문에 흔들리는 거야. 뭔진 몰라도, 저것 때문은 아냐.


"저기…" 그가 입을 여는 순간, 쿠오와 시 가는 노를 바다에서 꺼내 올렸다. 배는 맥없이 느려지다가 서서히 멈춰섰고, 비가 그들을 내리쳤다.


"수면을 건드리지 마세요." 시 가가 애연가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나갈 거예요."


검은 형체가 그들 아래에서 완전한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바라보며, 탈로는 과연 그럴까 생각했다. 목이 뭔가 걸린 듯 근질거려 기침을 하고 싶었지만, 저런 녀석이 돌아다니는 걸 보니, 어지간해서는 아무 소리도 내고 싶지 않았다..


쿠오는 개의치 않았다. "탈로, 슌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드릴까요? 지금이 딱 좋을 것 같아요." 그의 통통한 앞발이 또 맥주를 한 잔 들어올렸다. 쏟아져 내리는 빗물과 맥주 거품이 잔 위에서 찰랑거렸다.


미쳤어.


***


슌이 잡은 물고기는 자 시앙 마을 주민 모두의 배를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그의 가족이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물고기를 잘 다지고, 지느러미로는 국을 끓이고, 남은 비늘을 씹으며 허기를 달랬다.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초보자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데, 평생 낚시를 해온 달인들이라면 어떨까? 마을 주민들은 밤낮으로 낚시를 던졌다. 자그마한 항구로는 낚시꾼들을 다 감당할 수가 없어서, 바글바글 모여든 낚시꾼들의 줄이 서로 엉키고 말았다. 그렇게 낚시를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부두를 새로 짓기 시작했고, 그렇게 온 마을 주민이 나란히 서서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 함께 일을 해도 식량은 늘 부족했다. 매일 물고기 한두 마리가 잡힐 뿐이었고, 판다렌들은 마을 가운데 모여 줄지어 서서 생선을 요리하고 한 입씩 서로 나눴다. 그들의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바다 위로 울려 퍼졌다. 모두 등과 팔과 얼굴에서 살이 빠지고 핼쑥해진 모습으로 잠도 못 잔 채 이리저리 걸었다. 바다는 텅 빈 것만 같았다.


슌은 우울했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열심히 식량을 구하려고 일했지만, 그는 그가 마주쳤던 괴물이 물 밑에 도사리고 있음을 알았다. 놈이 물고기들을 모두 잡아먹으면서,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배고픔에 떨게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사람들이 겁을 먹고 낚시도 하지 못할까 봐 자신이 본 괴물에 대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밤, 그는 혼자 카누를 타고 바다로 나섰다. 배에는 텅 빈 통과 냄비를 잔뜩 쌓아둔 상태였다. 마을에서 목재는 대부분 부두를 건설하는데 써버렸기 때문에 그는 창으로 배를 저었다.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벗어나기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외투도 없던 그는 무척 추웠다. 누구도 슌을 현명하다고 할 이는 없었다.


집이 보이지 않을 즈음, 슌은 고함을 치고 비명을 지르며 창으로 바다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는 무거운 냄비와 통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온 힘을 다해 바다에 던졌다. 그 물건들이 바닥에 내려앉으며 진흙탕을 피워올리는 순간, 해저를 짓밟는 거인의 발소리 같은 소리가 울렸다. 그는 밤을 지새고 아침까지 바다를 두드렸고, 마침내 장어처럼 생긴 괴물이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놈의 움직임과 함께 파도가 밀려났다.


슌은 창을 붙잡고 놈이 배에 다가오는 즉시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 순간, 그 뒤로 또 다른 형체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장어 괴물과 같은 크기인 것도, 심지어 더 큰 것도 있었다. 부리 달린 주둥이와 거대한 껍질, 지느러미 같은 꼬리까지, 자 시앙의 집 한 채보다 더 큰 괴물들이 모두 슌이 일으킨 소란에 깨어나 다가왔다.


슌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가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놈들은 다가와 주둥이로 배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슌은 차가운 바다로 뛰어들어, 거대한 야수들의 틈바구니에서 허우적댔다.


굶주림에 시달린 괴수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잔뜩 드러내며 다가왔고, 슌은 작은 창을 좌우로 흔들며 빠르게 발을 찬 덕분에 마치 뛰어오르는 물고기처럼 물 밖으로 솟아올랐다. 계속해서 허공에 입을 놀리면서 화가 나기 시작한 생물들은 이제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기회를 틈타 슌이 괴물 한 마리를 창으로 찔렀지만, 강철 창은 마치 바나나 껍질을 벗기듯 네 방향으로 갈라졌다.


광란은 계속됐고, 태양은 솟아오르고 다시 내려앉았다. 슌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다섯 마리 괴물들이 그를 둘러싼 채, 그를 잡아먹으려고 서로 견제를 했다. 그러던 중 거대한 바위 거북이 그의 아래에서 지느러미를 휘두르고 뱀 같은 그 입을 크게 벌렸다. 마치 땅 위에 거대한 문이열린듯 슌은 휘몰아치는 바닷물과 함께 그 주둥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


"그래, 그 이야기에서 뭘 배워야 합니까, 쿠오?" 탈로는 바다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바다 한 가운데로 작은 배를 끌고 가지 말라는 건가요? 그런데 당신들 셋도 그 교훈을 따르지 않는 것 같은데요."


쿠오는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봤다. "아, 그게 아닙니다. 슌이 깨달은 것은, 아무리 큰 물고기를 봐도 항상 그보다 더 큰 고기가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


소리가 메아리칠 만큼 넓은 야수의 목구멍 속은 차갑고 바닷물이 가득했다. 슌은 어둠과 자신을 눌러오는 그 생물의 아가리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물이 가득 차 있어서 주먹을 강하게 내리칠 수도 없었다. 괴수의 강철 같은 턱은 굳게 닫힌 채였다.


슌은 싸워서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또한, 괴물이 슌이 목 안으로 넘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입을 한껏 벌리고 마지막으로 크게 숨을 들이키고, 공기를 폐 안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가슴을 붙잡은 채, 거대한 괴수의 목구멍 표면에 몸을 밀착시켰다. 그 생물은 이리저리 헤엄치며 혀를 휘둘러 슌을 목구멍 깊이 끌어내리려고 했다. 슌은 기운이 빠지고 두려움으로 떨어야 했지만, 눈을 꼭 감고 묵묵히 기다렸다.


며칠 뒤, 자 시앙의 마을 주민 대부분이 항구에 모여들어 낚시를 하고 있을 때, 늙은 판다렌 하나가 해변을 거닐며 흘러온 나무 조각과 해초를 찾고 있었다. 그는 해안선에서 커다란 집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고 그 "집"이 거대한 용거북임을 깨달았을 땐 더 크게 놀랐다. 거북의 머리는 뱀처럼 가늘고 길었고, 껍질이 몸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마을 주민 모두가 매달려서 겨우 그 생물을 바닷가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주민들은 망치를 가지고 밤 늦게까지 껍질을 깨뜨렸고, 그 소리는 모두의 뱃속에 가득한 공허 속을 고고하게 울렸다. 껍질이 깨지자 드러난 부드러운 거북이 고기는 주민 모두가 먹을 만큼 많았다.


커다란 망치 소리가 슌을 깨웠다. 마을 주민들이 야수의 배를 가른 틈으로 슌이 나타나자, 그의 가족을 비롯하여 자 시앙의 모두가 크게 기뻐했다. 슌만큼 고집이 셌던 그 괴물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입을 벌리지 않았고, 그는 식도 안에서 괴물이 익사할 때까지 숨을 참고 기다렸다. 결국 괴물은 목숨을 잃었지만, 슌의 폐 안에 담긴 강력한 공기의 소용돌이 때문에 가라앉지 않았다.


슌은 바다에서 작은 잉어부터 거대한 야수까지 무엇이든 잡을 수 있으니,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고 마을 주민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용거북 고기를 요리했고, 마침내 오랜만에 모두의 배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


이야기가 끝나고, 탈로는 어느새 자신이 울부짖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파도 위로 비가 떨어지는 기계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두려움도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다. 노를 단단히 움켜쥔 그의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바닷속 커다란 형체는 가만히 머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공격할 준비가 된 것 같군, 하고 탈로는 생각했다. 시 가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배 측면 너머로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빗물이 그의 두건, 그리고 마치 두 개의 쥐 꼬리처럼 빳빳하게 그의 볼에 붙은 볼수염에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갑작스럽게 그 형체가 물러났다. 그 괴물은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사라졌다. 판다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몇 분 후 노를 다시 물 위에 내렸다.


그저 상어 한 마리였을 수도 있다. 지금 그가 걱정해야 할 것은 추위였다. 폭풍우를 맞으며 탈로는 계속해서 벌벌 떨었고, 뼈가 고드름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손이 그의 의지와 상관 없이 부들부들 떨렸다. 판다렌들이 그에게서 흠뻑 젖은 망토를 벗겨내고, 강철 상자에서 꺼낸 다른 망토 두 장을 덮어 주고는 맥주를 더 따라 주었다. 어쩌면 곧 육지에 상륙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동안에도 배는 계속 움직였다. 그리고 어리석고 대책 없는 호기심이라는 녀석이, 늘 그렇듯 탈로를 사로잡았다. 슌이라는 아이가 고향 마을을 구하려고 했다. 마침 운이 좋아서 적당한 곳에 나타났고, 그렇게 다치지 않고 거대한 물고기와 싸웠다. 그리고 한 달음에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고, 집 근처 해안으로 밀려 올라왔다. 그리고 삶이 평범하게 돌아갔다고? 퍽이나 그랬겠다.


그는 쿠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게 끝입니까? 커다란 생물들을 발견하고, 그 중 한 마리에게 잡아 먹혔다가 기적처럼 살아남아서, 해안으로 밀려 올라온 후 마을 주민들을 모두 구해줬다고요?"


쿠오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슌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랬겠죠." 탈로는 성을 냈다. "항상 끝나지 않았다고 하고는 그때그때 지어 내고 있군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니 기분 참 좋겠습니다! 그래, 슌이 얼마나 오랫동안 숨을 참았죠? 이틀입니까?"


탈로는 쿠오의 얼굴에 상처를 받은 기색이라도 나타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흠뻑 젖은 털 사이로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니 기쁘군요. 나머지 이야기는 시 가가 잘 합니다. 그가 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쿠오와 메이 파가 노를 잡고, 시 가가 탈로 옆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어디일지 모를 곳으로, 또 왜인지 모를 이유로 배가 떠가는 동안 그저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시 가의 눈은 언제나처럼 환하게 빛났고, 그의 쉬고 작은 목소리는 탈로가 마지못해 가까이 다가가게 했다.


"슌이 마을 주민들을 구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는 항상 변화가 따르지요…"


***


오랫동안 슌은 마을을 먹여 살렸다. 자 시앙의 주민들은 용거북과 거대한 여덟 눈 박이 오징어와 막강한 장어를 먹었다. 아무도 슌보다 많이 먹지는 않았고, 그는 그 야수들의 기름도 섭취했다. 성인으로 자라면서 그는 점점 더 키가 크고 더 강인해져서, 마을의 집 위로 그의 얼굴이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가 길을 걸을 때면 마치 곧고 단단한 참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는 남자 판다렌들이 으레 그렇듯, 슌도 긴 수염을 길렀고, 수염은 바닷가의 소금기를 맞아 마치 야생 동물의 가죽처럼 거칠어졌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고, 동공은 물고기처럼 축소되어, 물 속에서도 열 리 앞을 내다볼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슌이 윗옷을 입고 바다에 들어서면, 그의 존재를 느낀 바닷물이 벌벌 떨며 그의 옷 속으로 도망쳐 들어와, 며칠이고 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는 십수 명의 마을 재봉사들이 만든 그 커다란 윗옷을 벗고 해안에서 말리려고 했지만, 소금물에 젖어 뻣뻣해진 옷에 어린 판다렌들이 자꾸만 걸려 넘어지곤 했다. 더 끔찍한 것은, 그가 잠결에 돌아 눕기라도 하면, 넓은 어깨 때문에 집이 무너졌다. 결국 슌은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윗옷을 벗고 돌아다니고, 부둣가에서 잠을 잤다.


다 자란 슌은 혼자서도 바다의 거대한 야수를 잡아올릴 수 있었다. 그는 셀 수 없이 많이 이빨에 물리고 침에 쏘였고, 하얗게 바랜 상처들이 가슴과 턱에 즐비했다. 판다리아의 살아 있는 것을 모두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상어가 슌의 귀를 물었을 때도 있었다. 그걸 떼어낼 수 없던 슌은 해저를 걸어 고향으로 돌아와 괴물을 바다 밖으로 꺼내 숨을 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상어를 끌고 자 시앙으로 돌아왔고, 그 길은 그대로 강이 되어 아직까지도 흐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상어를 떼어냈을 때, 그의 귀도 조금 떨어져 나왔다. 그렇게 말린 가죽 같은 흔적이 귀에 남았고, 슌의 가족은 커다란 고리를 가져와 슌이 그곳에 끼울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 모두는 낚시를 그만두었다. 더는 낚시를 할 필요도 없었다.


슌은 모든 일을 자신이 해결한다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서서히 늙어가면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자 시앙 주위의 바다에는 여전히 물고기가 많지 않았고, 어린 시절 이후로는 한 번에 몇 마리 이상을 본 적도 없었다. 슌이 붙잡은 거대한 야수들을 먹고 지내온 주민들의 식욕은 점점 더 왕성해졌지만, 다른 판다렌은 슌처럼 크게 자라지 못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바다의 거대 생물들을 잡아 올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죽고 나면, 마을 주민들이 바다의 괴물들에게 패해 고향 마을을 등지거나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현명한 판다렌이라면 슌에게 마을 주민들 모두를 이끌고 땅을 건너 새로운 삶을 찾으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슌과 같은 체격과 힘을 지닌 영웅이라면, 지금껏 수많은 일을 해낸 그라면, 충분히 뛰어난 사냥꾼이 되거나 가족과 친구들에게 더 큰 도시를 마련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슌은 현명하지 못했다. 고집이 세고 고향을 사랑한 그는 자신이 직접 영원히 자 시앙의 모두를 먹이겠다고 결심했다.


부두에서 잠을 자던 밤, 그는 늙은 낚시꾼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어린 아이였을 때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변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계속 반복한 한 가지 이야기가 슌의 머릿속에 박힐 지경이었다. 그것은 바로 바다만큼 거대한, 이름 없는 괴물 이야기였다. 몸통의 폭이 삼백 미터에 이르는, 지금까지 육지로 끌어 올려진 그 어떤 괴물보다 더 큰 괴물이었다.


처음 슌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생물은 날카로운 이빨이 겹겹이 돋은 거대한 상어였다. 다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생물은 독침으로 뒤덮인 유리 색깔 해파리에 가까웠다.


슌은 그렇게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결국 그 이야기가 거짓임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어느 쪽이 진실이든 그 야수는 모두가 나눠 먹어도 충분할 만큼 크고, 또 마을에는 소금과 땔감도 충분하니, 한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비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느러미와 촉수로는 든든한 국 요리를 만들 수 있고, 뱃살로는 푸짐한 구이 요리와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육포를 만들 수 있다. 저며 먹고, 튀겨 먹고, 향료를 뿌려 먹고, 속을 채워 먹고, 장조림을 해서 먹고, 야채와 함께 버무려 먹고, 포를 떠서 먹고, 석쇠에 구워 먹고, 꼬치구이를 해 먹고... 이 괴물을 잡으면 몇 달이고 먹을 수 있다. 어쩌면 몇 년, 아니 몇 세대를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생물에 대해 그가 들은 것 중 하나는 그것이 어느 판다렌도 가보지 못한 아주 깊고 깊은 바닷속에 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슌은 마을 근방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앉아 입을 향해 불어오는 돌개바람을 몇 시간 동안이나 들이마시며 폐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무거운 물통을 다리에 묶어 몸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했다. 그가 바다를 향해 걸어 나가자, 그 묵직한 걸음에 휩쓸려 조류가 일어났고, 모래톱이 수면으로 휩쓸려 올라왔다. 그의 수염에 둥지를 틀었던 갈매기들은 마치 흰 화살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광경이었기에, 그들은 갈매기들에게 인사를 하듯 손을 흔들었다.


***


배가 다시 멈춰섰다. 딱히 아무런 생각 없이, 탈로는 낚싯대를 물에 담갔다. 생각은 멍하니 떠돌았다. 메이 파와 쿠오도 마찬가지였다. 만족할 때까지 여러 번 낚싯대를 드리우고, 비가 내리는 와중에 석상이 된 듯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탈로가 처음 군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는 젊고 어리석었다. 얼라이언스를 위해 싸우다 보면, 언젠가 싸움터가 아닌 어딘가로, 공허한 넝마와 시체가 즐비한 전장이 아닌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젊고 어리석은 시절의 생각은 옳은 법이 없다. 항상 새로운 적, 그리고 양측이 함께 나눌 수 없는 전리품이 나타났다. 전쟁은 결국 여러 세대에 걸친 전쟁만을 낳았다. 죽음은 더 많은 죽음만을 낳았다. 모두 그랬다.


대체 왜 군대를 떠나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는 멈췄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분명히 낚싯줄을 당기는 느낌이 왔다. 그가 추위에 떨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한 번 그 느낌이 왔다. 그는 두 손으로 낚싯대를 붙잡았고, 시 가도 이야기를 중단하고 입을 다문 채 탈로가 낚시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 조심하세요..."


탈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마치 창을 쥐는 것처럼 낚싯대 아래쪽을 붙잡은 손에 힘을 단단히 줬다. 다시 당겨진다. 또 다시. 그는 날카롭게 낚싯대를 위로 끌어올렸고...


... 텅 빈 낚시 바늘이 파도 아래에서 뛰쳐나와 탈로의 어깨를 때렸다. 축축한 낚싯줄이 그의 귀 옆에 엉켰다.


망할 물고기 녀석이 미끼를 떼어 먹었다. 어쩌면 두 마리가 함께 미끼를 둘로 나눠 물고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잔뜩 화가 나서 놈들을 쫓아 바다로 뛰어들 태세였지만, 그 순간 시 가의 털이 덥수룩한 얼굴이 묘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다. 판다렌도 비웃을 줄 아나?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탈로가 으르렁거렸다.


***


슌은 파도 아래로 가라앉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이, 키의 천 배는 되는 곳까지 가라앉았다. 물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물고기는 점점 더 적어졌다. 주위 시선이 닿는 곳은 모두 어둠에 휩싸였다.


그는 전에도 바다 밑으로 헤엄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파도가 전혀 닿지 않고, 마치 협곡 같은 해구에 둘러싸인 이런 곳까지 내려온 적은 없었다. 바닷물이 귀를 채웠고, 머릿속 어딘가를 누군가 꽉 붙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내 귀 안쪽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소금물 때문에 쓰라렸지만, 그는 심연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았다.


슌은 눈이 쓸모가 없어질 때까지 내려갔다.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굴 앞으로 들어올린 앞발이 겨우 보일 지경이었다. 고래처럼 거대한 생물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어둠 속에서 그는 비늘투성이 거죽을 스쳐 지나갔지만, 괴물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지나치게 거대했다.


그는 하룻밤을 온전히 자고 깨는 동안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희미한 온기가 아래쪽으로부터 올라왔고, 그는 앞발이 검푸른 진흙에 닿을 때까지 헤엄쳐 내려갔다. 그의 밑으로 바위투성이 표면이 갈라지며 거대한 해자가 입을 벌렸고, 그 틈을 지나가면서 그는 자신이 아제로스의 중심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해자 안쪽에서, 슌은 물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느꼈고, 그의 움직임을 따라 일어나는 메아리 소리가 그의 부서진 귀에도 들렸다. 이 동굴은 지나치리만큼 거대해서 그 자체로도 바다라고 할 수 있었고, 양쪽 벽도 너무 멀리 떨어져서 한쪽 끝에서 다른 쪽까지 헤엄쳐 가려면 슌이라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듯이 보였다.


가만히 앉은 그의 눈이, 세계의 바닥에 드리운 어둠에 서서히 적응했고, 이내 흐릿한 윤곽선과 흔들거리는 형체, 그리고 머리 위로 거대하게 돌출된 바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위 앞으로는 거대한 협곡이 있었고, 슌은 그 안에 이름 없는 거대 괴수의 서식지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금껏 이보다 더 깊은 곳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동굴 주위의 작은 산이 수상해 보였다. 그것은 해저 바위와 같은 청갈색이 아니라 마치 지렁이 같은 창백한 유백색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도 슌은 그 색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당황했다.


그 순간, 그 산의 아가미가 펄럭이며 돌들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슌은 그것이 살아 있는 생물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슌의 마을만큼 컸고, 그것이 내뿜는 열기는 바다 깊은 곳의 해자를 따뜻하게 데울 만큼 강렬했다. 괴물은 슌 때문에 잠에서 깨기라도 한 듯 몸을 움직였고, 거대한 나무 가지와도 같은 몸통 아래에는 수백 개의 촉수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끝에는 다 큰 성인만큼 커다란 침이 달려 있었다.


그 아가리는 모래톱이나 산호만큼 거대했고, 그 이빨 사이에서 꿈틀거리며 남은 먹이를 먹고 있는 상어들조차 코로 슬쩍 밀기만 해도 배를 뒤집을 수 있을 만큼 컸다. 매끈한 피부에 잔뜩 돋아난 흔들리는 가시들이 검은 물 속에서 흔들렸다. 그 생물은 일어나서 몸을 흔들며 흙을 털어내고, 오랜 세월 동안 죽음과 부패가 쌓여 형성된 숨결로 바다를 가득 채웠다. 슌은 정말 오랜만에 무척 피곤함을 느꼈다.


한때 날카로웠던 그의 눈과 귀도 흐릿한 진흙탕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거칠어진 수염에서도 그는 세월의 흔적을 부인할 수 없음을 느꼈다. 벌써 며칠 동안이나 상쾌한 공기나 시원한 바람을 느껴 보지 못했다. 그에게 다가오는 괴물과 비교해 보면 그는 태양 앞에 선 강아지처럼 초라했다.


슌의 맨주먹이 거대한 이빨 하나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빨은 뿌리에서부터 갈라지기 시작했다. 또 한 번, 주먹이 물살을 뚫고 내달렸고, 이빨은 산산이 깨어지며 그 조각이 마치 작살들처럼 괴물의 입 안에서 퍼져 나갔다. 이름 없는 괴물의 이 사이에 낀 물고기들을 주워 먹고 있던 상어들 중 적어도 네 마리가, 마치 보이지 않는 회오리에 휘말린 것처럼 괴물의 식도로 빨려 들어갔다.


슌은 고개를 숙이고 계속 주먹을 휘둘렀다. 끔찍한 쩍 소리와 함께, 이빨 여섯 개가 쪼개지며 바다로 뿜어져 나갔다. 이들은 해초와 물고기, 고래를 꿰뚫으며 위로 솟아올랐다. 이빨이 꿰뚫은 동식물과 함께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나무로 만든 해산물 꼬치구이 같았다.


그 순간 괴물이 주둥이를 다물었고, 슌은 마치 유사 같은 놈의 잇몸에 발을 단단히 박은 채, 위턱을 들어올리고 버티며 주둥이가 완전히 닫히지 않게 했다. 손목이 고통스럽게 뒤틀리고 뼈가 부스러졌지만, 그는 괴물의 입을 벌린 채 버텼다. 놈은 쉴 새 없이 배에 붙은 촉수를 이빨 사이사이로 보내 슌의 목과 사지를 휘감고, 그의 배를 거듭 찔렀다.


그의 거죽에 붉은 관통상을 남긴 그 고통은 끔찍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건 독이었다. 슌은 몸 속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끔찍한 주둥이가 닫히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려고 팔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촉수 하나를 매섭게 깨물었다. 고통을 느낀 촉수가 꿈틀거리며 물려나려 할 때, 그는 촉수를 단단히 붙잡고 바닷속으로 빠져나왔다.


괴물의 주둥이 속에서 살던 상어들이 슌의 팔과 다리에 매달렸다. 하지만, 상어들에게 물린 상처를 통해 괴물의 독이 일부 빠져나갔고, 그는 상어들을 방패처럼 들어 올려서 꿈틀거리며 눈을 찔러 오는 촉수들을 막았다. 그리고 그는 괴물의 입 위로 헤엄쳐 올라, 머리 꼭대기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 생물은 마치 거대한 복어인 것처럼 껍질에서 가시가 튀어나왔고, 슌이 주먹을 날릴 때마다 천이 찢어지는 것처럼 그의 피부가 갈라졌다. 광활한 해저에서 그가 주먹을 휘두르는 소리는 마치 찢어지는 천둥 소리 같았다. 괴물의 가시가 깨어지고, 그 주먹의 위력으로 살점이 지글지글 타올랐지만, 괴물은 오징어처럼 조용히 있었다.


며칠 동안이나 둘은 쉬지 않고 싸웠다. 슌은 괴물의 머리와 배를 때리다가, 촉수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그를 끌고 가거나 뼈를 부러뜨리려고 하면 물러나곤 했다. 격전이 어찌나 치열한지, 이곳으로부터 퍼져 나간 파도가 자 시앙의 주민들을 공포에 질리게 할 만큼 높이 치솟았다. 부두는 부서지고 바다에 휩쓸려 사라졌으며, 주민들은 집안으로 대피했다.


결국 슌이 지치기 시작했다. 독이 그의 심장을 갉아먹고, 팔을 뻣뻣하게 굳혔다. 십여 개의 남은 촉수가 그를 둘러싸고, 그의 팔다리를 거듭 휘감아 조였다. 슌은 주먹을 휘두르기만 해서는 촉수들을 쫓아내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팔이 완전히 무력화되기 전에, 그는 꿈틀거리는 촉수 두 개를 붙잡고 발을 지면에 꽂은 후 괴물을 들어올렸다. 슌은 뱃속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거대한 몸체가 물 속에서 솟아올랐다. 헤아릴 수 없이 긴 괴물은 줄에 매달린 연처럼 촉수 위에 매달렸다. 슌은 뒤이어 온 힘을 짜내어 끌어당겼고, 산처럼 거대한 덩어리를 해저 지면에 내리꽂았다. 슌 자신에게는 자신에게는 들리지 않는 충격음과 함께 탁한 잿빛 흙먼지가 사방 수 킬로미터까지 퍼져 나갔다.


시간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고, 슌은 거대한 촉수를 자신의 손목에 두 번 휘감고 그 생물을 끌어당겼다. 한번 들어올리기도 했었으니, 수면까지 끌고 올라가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는 촉수를 잡아당기며, 그 거대한 형체가 어떻게든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슌의 눈에는 거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움직임은 진흙탕을 거슬러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의 폐는 공기를 갈망했다. 먼저 몸을 회복해야 했다. 그 후에 다시 한 번 시도해 보리다. 메아리치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희미하게 들으며, 그는 커다란 괴물이 도사리고 있던 돌출된 바위 위로 몸을 끌어 올렸다.


어둠 속에서 작은 물고기 무리가 그의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흔들거리는 지느러미는 무척 작고, 비늘은 창백한 금빛이었다.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도, 슌의 가슴 속에 동정심이 피어올랐다. 이곳에 붙들려 있던 황금빛 물고기들뿐 아니라, 이들을 붙잡고 있던 괴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거대한 야수는 작은 물고기들을 대부분 잡아먹고, 나머지는 자신을 위해 아껴 두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기근이 그의 고향에 찾아온 것도, 결국 다른 이의 굶주림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지만,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잠시 몸을 쉬고, 저 괴물을 다시 들어올릴 것이다. 해저에 누운 그는, 밝은 빛깔 물고기들이 주위를 맴도는 가운데, 마지막 남은 숨을 천 개의 공기 방울에 담아 내뿜었다.


슌은 자신이 정말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을 찾은 것인지 궁금했다. 그는 그 이야기들이 정말 사실인지 궁금했고, 그렇게 궁금해 하는 사이 그의 영혼이 몸을 떠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눈이 감기기 직전, 동굴에서 빠져 나온 물고기들이 대양을 향해 헤엄쳐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


시 가가 일어섰다. 아마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일 거라고 탈로는 생각했다. 하지만 판다렌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슌이 싸우는 동안, 자 시앙의 사람들은 그저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하지만 낚시란 단순히 물 위의 것만을 보는 게 아닙니다. 그 아래의 것, 물고기가 보는 것을 보는 게 낚시입니다. 그건 삶과 죽음의 투쟁입니다. 당신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요."


탈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 속의 물고기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슌은 몰랐겠지만, 그 물고기들이 바로 황금 잉어의 조상이었습니다." 시 가가 거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물고기들은 위험이 사라진 후 바다로 돌아와 크게 번식했습니다. 이제 황금 잉어가 우리 바다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가 되었고, 아이들과 노인들, 크고 작은 이들이 모두 즐겨 먹는 요리 재료가 되었습니다."


탈로는 배 위에서 낚은 물고기를 담은 양동이를 들여다봤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물고기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래. 이제 그도 이야기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슌은 우연히 새로운 식량의 근원을 찾아 마을을 구했다. 깜찍한 이야기였다. 몇 군데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슌이 그 동굴에서 죽었다면, 그 전투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게 된 거죠?" 탈로가 물었다. 빗소리 사이에선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였다. 괜시리 그 부분을 지적하기가 미안했다. 분명히 그 이야기는 판다렌들 사이에서는 소중한 이야기일 것이다. 슌은 아마 누군가의 고조부쯤 될 것이며, 그 당시에는 이 이야기에 깊은 의미가 있었을 거다.


"흠." 시 가의 대답은 마치 그런 질문이 처음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두 판다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노를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시 가도 비가 계속 쏟아지는 와중에 자신의 노를 집어 올렸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 노를 저었다.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고, 그들이 육지와 더 가까워진 것 같지도 않았다. 세 판다렌은 한 몸으로 노를 저었고, 배는 똑바로 앞을 향해서만 나아갔다. 어느 순간, 시 가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노를 물 밖으로 꺼냈다. 나머지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배가 흔들거리며 제 자리에 멈췄고, 그는 말했다.


"여깁니다."


***


탈로는 이미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파도가 휘몰아치며 바닷물을 흩뿌렸을 때, 추위 따위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메이 파는 배 중앙에 고인 물 한가운데에 놓인, 자물쇠로 잠긴 강철 상자에 다가갔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상자에서 꺼낸 것은, 애초에 어떻게 거기 들어갈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큰 물건이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할 때 내리는 닻처럼, 두툼한 녹슨 사슬에 커다란 갈고리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그물이 마치 꽃봉오리처럼 사슬에서 늘어졌다.


메이 파는 일어섰다. 자그마한 배의 뱃머리에서 그녀는 언제라도 넘어질 듯 위태롭게 균형을 잡았다. 작지 않은 체격이었지만 배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사슬 낚싯줄을 머리 위로 크게 호를 그린 후 바다에 던졌다. 낚싯줄이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 탈로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움츠렸다. 또아리를 튼 사슬 뭉치가 그녀의 어깨를 넘어 바닷속으로 달렸다.


탈로의 머리가 아파왔다.


메이 파는 한참 동안 가만히 파도만 바라봤다. 그러다가 갑자기 긴장하는 순간, 탈로는 그녀가 바다로 뛰어들기라도 하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사슬을 끌어올렸고, 첫 번째 그물이 갑판 위에 펼쳐졌다. 그물은 금색과 흰색,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물고기들로 가득했다. 쿠오와 시 가가 물고기를 떼어내서는 배 여기저기로 집어 던졌다.


탈로는 절뚝거리며 아이용 낚시를 다시 물 속에 던졌다.


판다렌들이 일을 하는 동안, 맥주잔과 냄비, 그물, 미끼 양동이까지 모두 꿈틀거리는 물고기로 가득 찼다. 물고기는 그의 발 아래 고인 웅덩이에서도 헤엄치고 있었다. 배에는 이제 물고기를 담을 자리가 없었지만, 판다렌들은 여전히 낚싯줄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얼굴이 납작하게 눌리고 머리 위에 촉수가 달린 갈색 물고기와, 식어가는 용암 바위처럼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상아색 물고기, 또 몸통이… 윤이 나는 얇은 얼음으로 덮인 작고 푸른 물고기도 있었다.


"이것들은... 정말 맛있답니다." 메이 파가 말했다. 사슬을 붙잡고 있느라 꽤나 힘을 쓰는 탓에 말을 잠시 멈춰야 했다.


가득 찬 그물이 몇 개 배 위로 올라온 후, 메이 파가 사슬을 붙잡았다. 쿠오와 시 가가 도와주러 달려왔고, 셋은 다시 함께 소리를 지르고 답가를 부르며, 거대한 낚싯줄을 끌어올렸다.


탈로 자신도 많이 힘이 들었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주위가 소란스러울 때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는 깜짝 놀라게 되거나, 목숨을 잃거나, 아니면 그 두 가지를 차례대로 겪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었다. 그래서 그녀를 도와주려고 발을 옮기려는 찰나…


낚싯줄이 펄쩍 뛰어올랐다.


이 녀석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뜨거운 번개처럼 찾아온 충격을 떨쳐 버리고 팔을 긴장시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 때문에 얼굴과 목에 배어 나온 땀을 서늘한 바람이 식혀 주었다.


미끼를 문 놈이 낚싯줄을 날카롭게 왼쪽으로 끌어당겼고, 탈로는 낚싯대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등이 여전히 아팠지만, 그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일어섰다. 낚싯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바닷속의 존재가 조종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반대쪽으로 낚싯줄을 잡아당기려 했지만, 낚싯대를 가만히 들고 있기도 벅찼다.


탈로도 힘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전신에 갑옷을 갖춰 입은 거대한 타우렌과도 맞서 싸웠다. 곤봉과 검을 맞부딪히며 마치 기둥 같은 적의 손을 목덜미에서 떨쳐내려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뭔가 달랐다. 그가 물 밖으로 꺼내려 하는 생물은 뻘을 가로질러 헤엄치며 잔뜩 체중을 싣고서는, 갈대에 묶인 가느다란 줄을 사이에 두고 그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낚싯줄을 당겼다. 하지만 상대를 수면을 향해, 배를 향해 끌어당기는 것은 고사하고, 그저 똑바로 움직이게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얼굴이 붉어지고, 숨을 헐떡이면서도 그는 버텼다. 작은 낚싯대는 탈로의 손 안에서 앞뒤로 마구 흔들리며 손바닥을 온통 긁어댔다. 성벽을 칼로 두들겨댈 때와 같은 뻐근한 감각이 서서히 팔을 타고 올라왔다. 뒤쪽에서 물이 첨벙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놀랍게도 그는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낚싯대가 아래쪽으로 홱 휘고, 부들부들 떨리며 점점 더 고개를 숙였다. 탈로는 안간힘을 쓰며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조금이라도 힘을 더하기 위해 발끝으로 일어서 힘을 보태면서. 낚싯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잠깐 동안 줄 위의 풀린 실밥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어느 한 쪽이라도 끊어질 것임을 직감했다.


그게 물고기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그의 팔에 가해지던 압력이 사라지고, 물고기는 물에서 빠져 나와 탈로의 손 위에서 황금빛 비늘을 반짝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작았다. 싸우는 동안에는 훨씬 클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물고기는 배 주위에 몰려다니는 수십 마리 황금 잉어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탈로가 손에 힘을 주지 않아도, 물고기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세 판다렌 모두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으로 사슬을 끌어올려 거대한 낚시 도구 상자에 담았다. 하지만 탈로가 전쟁에서 승리하기라도 한 듯 활짝 웃으며 잡은 물고기를 들어올리자, 모두 하나가 되어 행동을 멈췄다.


판다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는 물고기의 두툼한 주둥이에서 낚시 바늘을 빼고, 배 구석에 놓인 양동이에 물고기를 넣고는 느긋하게 자리에 앉았다.


하나가 되어.


***


저녁에 잡은 물고기들을 정리하는 동안, 마침내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빗방울도 작아져서, 얼굴에서 빗물을 닦아낼 수도 있었다. 탈로는 시 가 옆에 앉았다.


그가 말하려던 것, 아니, 그가 질문하려던 것은 이것이었다. "이제 해안으로 돌아갈 겁니까?"


하지만 그의 입에서 불쑥 나온 말은 많이 달랐다. "제게 왜 그 이야기를 들려줬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흠?" 시 가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들이 미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겠죠. 그리고 또... 제게 가르침을 주고 싶었죠?"


시 가는 미소를 지었다. "그저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속에서 더 많은 걸 얻어냈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여기 나와 있는 겁니까? 낚시를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우린 슌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저 먹을 것을 구하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유산을 찾아내고 있어요. 우리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요. 당신들이 여기 온 이유도 같지 않습니까?"


탈로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판다리아에서 무엇을 찾아내고 싶었을까?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쓸쓸히 죽고 싶었을까? 싸움의 끝을 보고 싶었을까? 저녁거리를 낚아 올릴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폭풍우 속 심해 낚시에서는, 온갖 것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그는 노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판다렌들과 함께, 네 번째 노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