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라 타우릿산 섭정 여왕께서 즉시 알현실로 들라 하셨습니다. 서두르십시오.


페넬라 다크바이어는 왕실의 거대한 떡갈나무 문 앞에서 머뭇거리며 그 말을 되새겼다. 그리고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며, 검댕으로 더러워진 손을 금속세공 작업복에 슥슥 닦았다. 아이언포지의 심장부에 있는 모루에서 한창 망치질을 하던 중에 왕실 급사가 그 말을 전했다. 조금 더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누구도 모이라 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페넬라는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라." 안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기다려, 코베스." 페넬라는 고개를 살짝 돌려 뒤에 선 거대한 골렘을 보며 말했다. 금속과 마법, 검은무쇠만의 비법이 담긴 산처럼 거대한 피조물.


"지시 확인." 골렘이 우르릉 소리를 냈다.


페넬라의 손에 문은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녀는 지금껏 왕실에 들어선 적이 없었다. 사실 들어가본 이가 드물었다. 역사적인 사건들을 수놓은 섬세한 드워프 융단이 벽에 가득 걸려 있었다. 모이라는 등을 곧게 세운 채, 상선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커다란 나무 탁자 뒤에 앉아 있었다. 그 표면에는 부러진 깃펜과 두루마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약속과 협박, 절반의 진실로 싸우는 전투의 희생자들이었다. 정치라는 이름의 전쟁.


페넬라는 침을 꿀꺽 삼키며, 먼저 말을 꺼낼지 말지 고민했다. 지금껏 모이라를 몇 번 만난 적이 있긴 했다. 그 중 한 번은 어둠의 괴철로에서, 이제 유명한 건축물이 된 루비 수정회랑을 만든 직후였다. 그래도 여왕을 알현하는 것은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었다.


"페넬라."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모이라가 말했다. 여왕은 손에 소용돌이치며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을 조각한 작은 비취 조각상을 들고 있었다.


"예, 폐하."


"와 줘서 고맙구나. 이 친구들은 알고 있겠지?" 모이라는 방 한쪽을 가리켰다.


여왕에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페넬라는 왕실 안에 다른 드워프들이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는 괴물처럼 커다래서 다른 동족보다 적어도 머리 두 개는 더 큰 브론즈비어드였다. 또 하나는 황갈색 피부에 수십 개의 푸른색 문신이 새겨진 건장한 와일드해머로, 등에 거대한 망치를 메고 있었다. 그는 페넬라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잘은 알지 못합니다, 폐하." 페넬라는 거짓말을 했다. 여왕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드워프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녀도 당연히 그들을 알았다. 와일드해머, 브론즈비어드와 검은무쇠 부족이 하나가 된 이후, 아이언포지는 석공과 대장장이들로 가득 찼고,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명성과 영광을 얻을 운명임을 확신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였다. 저 둘이 대용광로가 마치 자기네 것인 양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면서, 다른 이들의 작품을 깎아내리는 것을 그녀는 매일같이 보아왔다.


"그렇다면 인사를 시켜줘야겠군."


불편한 기운이 페넬라를 감쌌다. 왜 여기 불려 온 걸까? 저들은 왜 여기 있는 걸까?


"여긴 캐릭 아이언그린." 모이라가 와일드해머 드워프에게 손짓했다. "전설적인 힘을 지닌 대장장이이자 광부지. 바위와 대화할 수 있다는 소문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 캐릭?"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긴 '카즈의 손', 펜드릭 레드비어드." 모이라는 브론즈비어드 드워프를 향해 돌아섰다. "탐험가 연맹의 일원으로, 울다만과 북풍의 땅, 바엘 모단 등 수많은 위험한 장소에서 광물을 캤지. 모든 면에서 그의 용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한다."


펜드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이곳에 와 있어야 하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듯이.


"마지막으로, 우리 검은무쇠 부족의 페넬라 다크바이어..." 모이라는 잠시 말을 멈췄다. "석공이자 대장장이, 기계공학자에 유능한 건축가기도 하지."


그리고 배신자의 딸. 모이라는 그 부분은 생략했다.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페넬라가 검은무쇠 부족의 옛 수석 건축가인 파이너스 다크바이어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았다. 비열한 속임수로 그 자리에 오른 후 평생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한 몸에 받아야 했던 드워프.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캐릭이 조용히 뭐라고 투덜거렸다. 페넬라는 무시했다. 검은무쇠 드워프이자 파이너스의 딸로서, 그녀는 조롱 당하는 데 익숙했다. 개의치 않았다. 이미 오래 전에 혼자서 일하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와 다른 모두에게 그 편이 더 쉬웠다.


"내가 왜 다들 여기로 불렀는지 궁금하겠지." 모이라는 손에 든 조각상을 빙빙 돌렸다. "내가 직접 너희 셋을 골라 팀을 꾸렸다. 아이언포지 최고의 석공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을 맡기려고 말이야."


"팀이라고요?" 캐릭이 폭발했다. "이 둘하고요?"


"저보고 팀장이 되라는 말씀이시죠?" 펜드릭이 크게 웃었다.


"아니." 모이라는 페넬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페넬라에게 맡기려고 한다."


페넬라의 뱃속이 조여 왔다. 하마터면 말도 안 된다며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그녀는 혀를 깨물며 말을 삼켰다. 여왕에게 공개적으로 거역해서 좋을 일은 없다.


"검은무쇠가? 말도 안 되지!" 와일드해머 드워프가 소리쳤다.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펜드릭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어리석은 장난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중요한 일이 많아요."


"이번 일을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라딘한테 얘기해 주면 무척 좋아하겠는걸. 그 양반이 전적으로 지지한 일인데 말이야."


브론즈비어드 부족의 지도자 이름을 입에 올리자, 펜드릭이 멈춰섰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섰다.


"세 망치의 의회는 이번 임무에 대해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모이라가 말을 이었다. "세부 사항은 내가 관장하기로 했고." 여왕은 조심스럽게 용 조각상을 옆으로 치워 놓고, 긴 두루마리를 펼치며 석공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석공들이 책상 주위에 둘러서며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했다. 무라딘과 모이라, 그리고 와일드해머 부족의 지도자인 폴스타트의 인장이 서류 하단에 찍혀 있었다. 세 석공의 이름도 굵은 검은색 글씨로 적혀 있었다.


"내 이름이... 난 아무데도 동의하지 않았다고요." 캐릭이 코웃음을 쳤다. "이 말도 안 되는 장난은 대체 뭡니까?"


"이 장난은 얼라이언스에게 우리의 위대함을 증명할 기회다. 우리가 옥신각신하며 서로 싸우기만 하는 오합지졸이 아니라 통일된 하나의 드워프로 이루어진 국가임을 증명할 기회다. 너희가 거절한다면..." 모이라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 칙령은 모든 드워프들을 위한 새로운 미래를 벼려내려는 의회의 노력을 너희가 짓밟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펜드릭은 팔짱을 끼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협박처럼 구린 냄새가 나는데요."


"협박은 도박이다. 절박한 자들이 사용하는 도구지." 모이라는 활짝 웃었지만, 그 눈은 얼음 단검 같았다. "난 확실한 일만 한다. 너희 이름을 적어 놓은 건, 그 보잘것없는 적의 때문에 우리 모두의 대의를 저버릴 만큼 멍청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왕의 시선이 캐릭과 펜드릭 사이를 오가며 그녀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라고 종용했다. 와일드해머는 불편한 듯 자세를 바꾸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브론즈비어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모이라는 페넬라를 바라봤다. 브론즈비어드와 와일드해머와 함께 일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지만, 달리 어쩔 수 있겠는가? 모이라는 그녀의 여왕이었다. 부족의 수호자였다.


페넬라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이 짧은 것이기만을 바라면서.


"좋아. 이제 그 문제가 해결됐으니, 구체적인 논의를 할 수 있겠군." 모이라는 책상에서 비취 조각상을 들어올리며 왕좌에 기대 앉았다. "판다리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위대한 천신회의 판다렌 시종 하나가 물었다. "이 땅이 천신을 낳았습니까, 아니면 천신들이 이 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까?"


스승은 제자가 그 질문을 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쿡쿡 웃었다. 한때 자신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그에게 지혜를 주었다. "조금 더 쉬운 질문을 생각해 보렴. 이 질문에 답하면 네 물음에 대한 답도 알 수 있을 거다." 그는 되물었다. "어느 것이 먼저더냐,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지는 것 중에?"


—천신의 두루마리


일은 간단했다. 용의 심장 조각상을 다시 세울 것. 솜씨만 나쁘지 않다면 수습 석공이라 해도 쉽게 마칠 수 있는 일이었다. 페넬라는 비취 숲에 삼 주 동안 머물면서도 그럴듯한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했다. 판다렌 석공들은 달팽이 같은 속도로 움직였지만, 그녀는 재촉하지 못했다. 모이라가 말하길, 그녀는 검은무쇠 드워프의 "사절"이었다.


"날 자랑스럽게 해라." 페넬라가 아이언포지를 떠날 때 여왕이 명령했다.


숲 동쪽의 공터에 있는 건설 현장으로 향하며 페넬라는 그 말을 되새겼다. 판다렌 선임 석공인 현장감독 레이키가 회의를 소집했는데, 안건이 무엇인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일이 계속 진척되기만을 바랐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판다렌들은 이미 잔뜩 모여 있었다. '괜찮은걸.' 페넬라는 햇빛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며 바위에 기대섰다. 멀리 옥룡사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었고, 초록색 기와를 얹은 그 지붕 위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레이키가 모여든 이들의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다들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알지?!" 그는 근처에 있던 잔해 더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거대한 원형 바위 기둥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그 주위에는 용의 심장이 부서진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비취 조각상은 전설적인 네 천신 중 하나인 옥룡의 형상으로 세워졌었다. 페넬라가 기억하기로, 천신이란 판다리아 고유의 신적인 존재라고 했는데, 그녀도 그들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얼라이언스와 호드가 이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용의 심장은 파괴되고 말았다. 모이라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조각상이 다시 세워진 후, 옥룡이 자기 생명의 정수를 조각상에 불어넣고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일을 계속하려면 비취가 더 필요해." 레이키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비취 사냥 대회를 열자고!"


판다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번져갔지만, 모두의 흥분은 페넬라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석공들 위를 떠돌던 그녀의 눈은 하얗게 쌓인 눈 위에 떨어진 새빨간 피처럼 돋보이는 펜드릭에게 멈췄다. 브론즈비어드도 늘 그렇듯 거들먹거리고 잰 체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건설 지점 다른 한 편에서는 캐릭 역시 분노로 움찔거리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판다리아로 오는 배 위에서였다. 저 망할 녀석들은 페넬라가 팀을 지휘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언포지에서 평등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 댄다 해도, 그건 옛 증오에 의해 순식간에 잊혀지고 말았다. 검은무쇠 드워프의 지시를 따른다는 건, 그들이 오를 수 없는 너무 높은 산과 같았다.


페넬라는 생각했다. '이 편이 더 쉬워. 빨리 일을 끝내고 잊어버리고 말아야지.'


"사냥 대회는 동이 트는 동시에 시작되고 해가 지면 끝나. 손수레 사용은 금지되지만, 가방이나 자루 등은 마음대로 사용해도 괜찮고. 다들 행운을 빌게!" 레이키가 말을 마치고 회의가 끝나자 우렁찬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판다렌들이 서로 모여 팀을 꾸리는 사이, 작업반장이 그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며 말했다. "페넬라, 사냥 대회에 대해 뭐 궁금한 건 없나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들 기운을 차리게 하는 전통 같은 거니까."


"검은무쇠 드워프는 채광 솜씨를 보이는 일을 가볍게 여기는 법이 없답니다, 친구." 그녀는 무심한 듯이 말했다.


레이키는 사람 좋은 웃음을 껄껄 웃고 말했다. "그렇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 유명한 드워프들의 솜씨를 좀 보고 싶은 거랍니다." 그는 펜드릭을 돌아보고, 다시 캐릭에게 시선을 돌렸다. 둘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과 팀 여러분께 쓸 만한 채광 지점 좀 알려 드릴까요?"


페넬라는 "팀"이라는 말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을 느꼈다. 드워프들 사이의 갈등을 판다렌들도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저 사려 깊은 마음 씀씀이 때문에 그 문제를 들추지 않았을 뿐.


"괜찮아요. 어떻게든 되겠죠."


"그럼 즐거운 사냥 되세요. 옥룡이 당신을 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레이키는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야영지로 돌아가기 전, 페넬라는 펜드릭과 캐릭을 바라봤다. 그들은 드워프였다. 형식적인 문제야 어찌 됐건, 이번 비취 사냥 대회는 그들의 피도 경쟁의 열기로 끓어오르게 했음이 분명했다. 검은무쇠 드워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둘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목을 좌우로 흔들어 우드득 소리를 내면서.


펜드릭은 하품을 했다. 캐릭은 땅에 침을 뱉고 그녀 쪽으로 흙을 차올린 후, 성큼성큼 걸어 자리를 떴다.


덤벼라.


코베스는 경비 태세가 활성화된 상태로 야영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페넬라는 소지품을 뒤적이다가 유명한 채광 지점이 표시된 지도 묶음을 찾아냈다. 그녀가 처음 판다리아에 도착했을 때 레이키가 준 지도였다. 그녀는 두루마리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괜찮아 보이는 지점들에 숯 조각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이동 시간을 계산하고, 필요한 보급품을 추려 보며...


"안녕하세요."


흑요석처럼 까만 머리를 양갈래로 둥글게 묶어 올리고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꼬마 판다렌이 숙소 입구에 서 있었다.


"어이쿠." 페넬라가 짐짓 긴장된 목소리로 웃었다. "깜짝 놀랐네."


"아이언포지에서 오신 드워프시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꼬마 판다렌이 물었다.


"그래."


"세 분은 늘 서로에게 화가 나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드워프에 대해 배워야 할 게 많구나, 꼬마야." 페넬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도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꼬마가 떠나 주기를 바랐다.


"그럼 가르쳐 주세요."


"뭘?"


"드워프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요."


페넬라는 한숨을 쉬었다. 무슨 얘기를 하라고? "아주 오래 전, 우린 모두 아이언포지에서 함께 모여 살았어. 그러다가 싸움이 나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가, 이제는 다시 모여서 아이언포지에 같이 살고 있단다." 그녀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제외했다. 예를 들어, 검은무쇠 드워프가 최근까지 불의 정령 군주 라그나로스의 노예가 되어 거침없이 악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라든가...


"하지만 진짜로 함께 사는 건 아니죠."


"우린 서로 달라." 분을 이기지 못하고 검은무쇠 드워프가 답했다. "언제나 그럴 거야."


"그러면 다른 분들하고 같이 사냥 가시지 않을 건가요?"


대체 이 꼬마는 언제까지 질문을 하려는 거지? "그들이 원한다면 함께 가겠지. 상관없어. 난 그 둘이 일주일 내내 캘 양보다 비취를 더 많이 가져올 테니까."


꼬마 판다렌이 눈살을 찌푸렸다. "알겠어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페넬라를 향해 다가와, 그녀 손에 있는 지도를 가리켰다. "그렇다면 거기는 다 피해야 해요. 판다렌들이 우글거릴 테니까요. 그리고 비취도 조금밖에 안 나오거든요. 제가 아무도 가지 않는 괜찮은 광산을 아는데요..."


"정말이니?"


"여기요." 소녀는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용의 심장 북서부였다. "입구는 잡초와 바위로 가려 있지만, 계속 찾다 보면 눈에 띌 거예요. 다른 광부들이 가져올 비취보다 훨씬 아름답고 순수한 보석이 가득한 고대의 광산이랍니다."


페넬라는 그 지점에 표시를 했다. "그렇게 특별한 곳이면, 왜 다른 광부들은 안 가는 거지?"


"판다렌에 대해 배우셔야 할 게 많네요."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다들 자기들이 아는 곳으로 가요. 익숙한 게 편하거든요."


페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질 때 날 찾아오렴, 꼬마야. 어쩌면..."


고개를 들어 소녀를 보다가 아이의 눈을 처음으로 마주하고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두 눈은 기이한 붉은색이었다. 엘레멘티움 같은 고대의 눈. 이렇게 작고 순수한 어린아이의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검은무쇠 드워프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을 마쳤다. "너한테 비취를 조금 나눠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정말 좋겠네요."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소녀는 깡총거리며 천막을 떠났다.


페넬라는 이후 한 시간 동안 지도를 뒤적였지만, 판다렌 꼬마가 알려준 지점으로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다른 광부들이 가져올 비취보다 훨씬 아름답고 순수한 보석이 가득한 고대의 광산.' 그녀는 모르는 이가 채광에 대해 가르치려 드는 것을 무척 싫어했지만(상대가 어린 아이라면 더더욱!), 이 땅에서 그녀는 이방인이었다. 이건 다른 이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게 해 줄 아주 작은 이점인지도 몰랐다. '성공이란 위험을 동반하는 법이지.'


"코베스." 페넬라가 골렘을 불렀다. "보석 좀 캐러 갈까, 친구?"


골렘의 두 눈이 보랏빛으로 번쩍였다. "지시 확인."


***


페넬라는 동이 트기 전에 숙소를 나섰다. 규정에 따르면 일출과 함께 대회가 시작된다고 했지만, 그 시작이 준비와 이동이 시작된다는 것인지, 실제 채광이 시작된다는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일출이 가까워질 무렵엔 광산을 찾아냈다. 바위와 둥글게 얽힌 두꺼운 가시덩굴이 입구를 반쯤 막고 있었다. 열린 틈을 가로질러 작은 초록색 형체가 잽싸게 움직였다.


녹옥거미다.


페넬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판다렌들은 단단한 바위까지 갉아먹고 삼켜버리는 이 성가신 벌레들에게 "갈갈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거미들이 우뚝 멈춰 서더니 코베스를 향해 다가왔다. 그 턱이 흉포하게 딸깍거리는 소리를 냈다.


"해석: 녹옥거미가 코베스를 잡아먹으려 함." 골렘은 늘 그렇듯 요점만 간단히 말했다.


"그래. 그렇게 내버려 두진 않을 거지?"


질문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코베스는 앞으로 달려나가며 정확하게 계산된 강타로 녹옥거미를 걸레로 만들었다.


"앞장서." 페넬라는 코베스와 함께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팀"은 이 골렘 하나면 충분했다. 의지할 수 있고,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석공 열 명보다 더 많은 보석을 캐낼 수 있다.


골렘이 강철 주먹을 휘둘러 남은 덩굴과 바위를 치워 버리고, 아가리를 벌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선 페넬라는 허리춤에 매달린 주머니에서 작은 보라색 수정을 꺼내 벽에 몇 번 부딪혔다. 아이언포지에 있는 검은무쇠 마법사가 만든 보석이 달가닥거리며 살아나, 환하게 빛나며 통로를 비췄다. 동굴을 따라 나아가는 동안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고, 그녀의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기 시작했다.


난 왜 여기 있는 거지?


검은무쇠 드워프는 최근 흉포한 트롤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다른 부족의 수많은 드워프들을 구출함으로써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큰 승리를 거뒀지만, 페넬라는 여전히 모이라가 원정대의 지휘관으로 자신을, 그것도 다크바이어의 자식인 그녀를 선택했다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뭔가 놓친 게 있나?


"비취." 코베스가 지면을 가리켰다.


십여 개의 작은 물체가 바닥에 흩어진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나는 옥룡 조각상이었고, 나머지는 백호 쉬엔, 흑우 니우짜오, 주학 츠지 등 다른 천신들이었다. 그녀는 옥룡 조각상을 집어 들었다. 열기가 느껴졌다.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도 느낄 수 있는 묘한 따스함이었다.


'마법이군. ' 마음 한구석에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느낌이 비명을 질렀다. 여기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검은무쇠 드워프답군..."


페넬라가 뒤로 펄쩍 뛰었다. 코베스가 몸을 웅크리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앞쪽 어둠 속에서 캐릭이 나타났다. 강철 보호모에서 한 줄기 불꽃이 타올랐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페넬라가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물론 답은 알고 있지만 말야. 날 따라온 거겠지!"


"적대적 의사 감지." 코베스가 거칠게 말했다. "대상을 소멸시킬까요?"


"거기 꼬마 친구가 주먹을 휘두르기라도 하면, 내가 고철로 만들어 버릴 거야." 캐릭은 망치를 들어올리며 자신의 말에 힘을 실었다. 창백한 푸른 빛이 망치 주위에서 지글거렸다. 광부들은 보통 곡괭이를 사용하지만 캐릭은 달랐다. 번개의 힘이 주입된 뾰족한 폭풍망치를 사용했다. 같은 부족 동료들은 주로 무기로 사용하는 장비였다.


"가만히 있어, 코베스." 페넬라가 명령한 후, 와일드해머 드워프에게 말했다. "내가 직접 이곳을 찾아낸 거야, 이 고집쟁이야."


"그래? 사기꾼 파이너스의 딸이 하는 말이라면, 그리핀 똥구멍에 박힌 지푸라기만큼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징징대지 좀 마. 둘 다 자기 힘으로 여길 찾아온 건 아니잖아." 페넬라가 지나온 통로 뒤쪽에서 펜드릭의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대한 브론즈비어드 드워프가 태평스럽게 걸어나와 다른 드워프들을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그 꼬마 판다렌이 우리 셋 모두를 찾아왔었나 보군."


"그 아이가..." 캐릭이 망치로 벽을 내리쳤다. "원하는 게 뭐지?"


"그냥 우릴 도와주려는 거겠지." 페넬라가 말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앙금이 있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세 드워프는 침묵 속에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겨 얼굴을 찌푸린 채 서로를 노려봤다. 페넬라는 그들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다른 광부들이 가져올 비취보다 훨씬 아름답고 순수한 보석. 지금 이곳을 떠나는 건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뭐해?" 캐릭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둘 다 가봐도 돼."


펜드릭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이 땅에선 우린 모두 이방인이니, 너나 우리나 이 광산에 대한 권리는 똑같아."


땀에 젖은 캐릭의 관자놀이에서 핏줄이 툭 불거져 나왔다. "너희 둘이 내 뒤를 따라오고 싶다면 맘대로 해. 그냥 내 앞길을 막지나 말라고!" 그렇게 소리친 후, 그는 쿵쾅거리며 동굴 안쪽으로 들어섰다.


페넬라는 펜드릭의 얼굴에서 한순간, 늦겨울 쌓인 눈 틈새로 드러난 검은 흙처럼 불안한 표정을, 두려워하는 기색을 읽었다. 검은무쇠 드워프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눈치챈 그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너희 둘이 고군분투하는 꼴을 보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는 이 말을 남기고 터벅터벅 걸었다.


검은무쇠 드워프는 코베스와 둘만 남겨진 채 입술을 뜯었다. 이제 동은 텄을 것이다. 쓸 만한 다른 광산을 찾아내려면 몇 시간은 더 필요할 것이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하겠지만.


"가자." 그녀는 코베스에게 손짓했다.


산의 목구멍을 따라 내려가는 그녀의 뒤를, 골렘은 아무 말 없이 따랐다.


판다렌의 역사에서 암흑의 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모구 제국이다. 그 시기에 우리 조상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끔찍한 모구는 판다렌의 문화를 짓밟았다. 천신에 대한 숭배도 금지시켰다. 천신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고문과 죽음이라는 극형에 처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천신을 알고 있던 이들까지도 그들의 현명한 가르침을 잊어 갔다.


—천신의 두루마리


'그 꼬마 말을 듣지 말고 내가 직접 광산을 찾았어야 하는데.'. 캐릭은 분에 겨워 씩씩거렸다.


주위에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도 그의 화를 돋우기만 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그의 재능, 바위와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알아보셨다. 와일드해머 부족의 장로는 그가 주술사 훈련을 받는 게 어떻겠느냐고도 했지만, 그건 캐릭의 삶이 아니었다. 그는 뼛속까지 광부였고, 정령과 소통할 수 있는 내면의 교감은 그를 부족 최고의 광부 자리에 올려 놓았다. 아니, 세계 최고의 광부 중 하나였다.


예전엔 그랬었다. 그가 바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던 시절까지는. 이제는 자연의 침묵만이 날카로운 쐐기처럼 그의 가슴 한복판에 박혀, 그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었는지를 계속해서 상기시켜 주는 고통스러운 유물이 되어 있었다.


캐릭은 이런 생각을 곱씹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가, 커다랗고 둥근 방 안으로 들어섰다. 보호모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방 반대쪽까지 환하게 비췄다. 백호 쉬엔을 그린, 갈라지고 빛 바랜 벽화가 온 벽을 뒤덮었다. 그중 하나에서 쉬엔은 갑옷을 차려입고 온 몸에서 번개가 번쩍거리는 거대 모구와 싸웠고, 다른 하나에서는 산 꼭대기에서 사슬에 묶여 있었다. 쉬엔은 족쇄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억누를 수 없는 분노에 얼굴이 뒤틀린 채 포효했다. 먼 곳에서 모구 거수들이 두 팔을 쳐들고 승리의 함성을 외쳤다.


"여긴 어디지?" 페넬라가 골룸과 함께 어슬렁거리며 방에 들어섰다. 검은무쇠 드워프가 손에 든 보석을 흔들자 역겨운 보라색 빛이 방을 가득 채웠다.


펜드릭이 그 뒤를 바짝 따라왔다. "여기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조사를 해 본 사람은 하나도 없는 건가? 그럴 줄 알았지." 브론즈비어드가 한숨을 쉬며 벽에 새겨진 판다렌 룬 문자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허리띠 밑에서 긴 두루마리를 꺼냈다. 낡은 종이 위에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기호들과 드워프 문자가 짝을 이루고 줄지어 적혀 있었다.


캐릭은 알 수 없는 문자들을 바라봤다. "뭐라고 적혀 있는데?"


"알고 싶으면 네 발로 직접 뛰어야지." 펜드릭은 와일드해머를 향해 등을 돌리고 계속 룬문자를 살폈다.


캐릭은 빠른 속도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 주먹이 펜드릭의 커다란 턱을 후려갈겨, 그 의기양양한 웃음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반가운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방 건너편에 선 페넬라는 투덜거리며 혀를 찼다. 으르렁거리는 거대한 모구 모양으로 조각한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광산 깊은 곳으로 통할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 꼬마, 이런 얘긴 안 했는데."


"몇백 년 동안 아무도 여기 오지 않은 것 같아. 개나 소나 들락거리기를 바라지 않은 모양이지. 아무래도 이걸 뚫고 가야겠는데." 펜드릭이 답했다.


캐릭은 바윗덩어리를 살폈다. 굳고 단단했다. 가까이 다가가 손바닥을 얹고 시험 삼아 밀어 보았다. 피부가 돌에 닿았을 때, 번개처럼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기운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대기가 갑자기 따뜻해지고, 마법과도 같은 힘으로 들끓었다.


눈앞에서 모구의 얼굴이 서서히 다른 것으로 변했다.


사나운 상처투성이 얼굴, 용아귀 오크였다.


캐릭은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크는 가만히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구슬 같이 반짝이는 바위의 눈으로 그를 도전적으로 바라봤고, 캐릭의 심장은 마구 뛰었다. 그는 목 근육을 풀며 팔을 죽 뻗었다. 근육이 투둑거리며 풀어졌다. 거대한 망치를 들어올리고, 온 힘을 실어 앞으로 휘둘렀다.


천둥 같은 소리와 눈부신 빛을 흩뿌리며 강철이 바위와 격돌했다. 그리고 캐릭이 놓쳐버린 망치가 공중을 날았다.


펜드릭은 키득키득 웃었다. "네가 바위를 때린 건지, 바위가 널 때린 건지 모르겠는걸." 브론즈비어드 드워프는 아무렇지도 않게 곡괭이를 들어올렸다. "내가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주지."


"너도 부수진 못할걸. 내가 처리하겠어." 페넬라는 지옥불 골렘을 손짓해 불렀다.


캐릭은 망치를 들어올리고 다른 드워프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물러서!"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용아귀 오크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또 휘둘렀다.


그리고 또 휘둘렀다.


돌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지만, 캐릭은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녹아내릴 듯 뜨거운 분노가 그의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주위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는 어느새 푸른 언덕에 돌아와 있었다. 노르테론이었다.


연기 냄새가 코를 채우고, 전투의 소리가 귀를 채웠다. 드워프 그리핀 기수들이 재가 가득한 하늘로 날아오르고, 저주받을 붉은 용에 올라탄 오크 기수들과 충돌했다. 캐릭은 용아귀 오크가 떼 지어 언덕 아래,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로 날아드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마을이었다.


이 기억을 머릿속에서 수천 번이나 되새겼었다. 마을이 공격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산에서 달려나와 불타는 집까지 언덕을 내달리던 기억. 하지만 아무리 빨리 달리고 어떤 지름길을 택해도 제때 돌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번 기억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생생했고, 그래서인지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봐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붉은 머리카락에 갈색 그리핀 깃털이 하나 엉켜 있는, 흰 튜닉을 입은 어린 와일드해머 드워프가 캐릭에게 다가왔다.


'말도 안 돼.' 그는 눈을 비볐다. 하지만 소녀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로나!" 캐릭은 딸을 안아 올려 품에 꼭 안았다. 마음 한쪽에서 이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어떤 꿈에도, 어떤 기억에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딸의 머리에서 이 언덕의 데이지 꽃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그의 품에서 내려온 소녀가 물었다.


캐릭은 언덕 아래 불타는 마을을 바라봤다.


"저기까지 가려는 거야."


"너무 늦었어요." 로나는 머리에서 깃털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서 빙빙 돌렸다.


"아냐. 이번엔 달라. 느낄 수 있다고."


"똑같아요." 로나는 이게 무슨 놀이라도 되는 것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무언가 캐릭의 마음 속에서 뚝 부러졌다. 그가 통제할 수 없는 깊은 곳에 담긴 무언가가.


"그렇게 말하지 마!" 그는 고함을 쳤다. 하지만 분노는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로나는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미... 미안하다." 캐릭은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뻗었다. "제발, 얘야... 날 용서해 주렴."


"하나만 약속해 줘요."


"뭐든지 하마."


로나가 다가와 아버지의 목을 감싸 안았다. 데이지 꽃 향기는 사라졌다. 불타는 살점과 잿더미로 변한 꿈, 매캐한 죽음의 냄새가 캐릭을 휘감았다. 딸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시는 오지 마세요. 여긴 남은 게 하나도 없으니까."


로나는 그의 볼에 입을 맞추고 춤을 추며 멀어져 갔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딸의 손에 있던 깃털을 낚아챘다. 아이는 깔깔 웃으며 그걸 쫓아 언덕을 달렸다.


"기다려!" 캐릭이 소리쳤다.


그는 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지만,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그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눈을 깜박이자 노르테론이 사라졌다. 그는 다시 판다리아 지하의 빌어먹을 구렁텅이에 돌아와, 바닥에 널브러진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고통이 팔을 타고 피어났다. 두 주먹에서는 피가 흘렀다. 망치는 조금 떨어진 곳에 뒹굴었다.


"이봐!" 페넬라가 말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주먹으로 바위를 뚫어보려고?"


"뭐?" 캐릭은 자신을 뒤덮은 혼란의 안개를 뚫고 가까스로 말했다.


"용아귀 부족 얘기는 뭐야?" 펜드릭이 물었다.


"놈들이 여기 있다는 듯이 비명을 질렀잖아." 페넬라가 덧붙였다.


캐릭은 손을 흔들어 그들을 물러나게 하려고 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고 쏘아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내려다본 자신은 먼지투성이 바닥에 피와 멍투성이가 되고, 몸속의 모든 불길이 빠져나간 채로 주저앉은 모습이었다. '강대한 자, 캐릭 아이언그린.' 이제 그가 얼마나 초라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는지 감출 방법은 없었다.


용아귀 부족의 공격에 대해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이제야 입을 연 순간 말은 저절로 쏟아져 나왔고, 그는 너무 지친 탓에 막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모양이었다. 터진 둑으로 흘러 나오는 물처럼, 그 이야기는 자유로이 흐르길 원했다. 그래서 그도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날 이후로, 난 바위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 이야기를 마치고 그가 말했다.


다른 드워프들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그를 비웃지는 않았다.


"여기서 기다려." 펜드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위는 내가 어떻게 해 볼게."


"잠깐." 캐릭은 먼지를 털고 바위를 향해 다가갔다. 오크는 아직도 으르렁거리며 거기 있었다. 그는 그 바위의 시선에 눈을 맞추고, 얼마나 더 오랫동안 이 분노가 자신을 잡아먹게 내버려둬야 할까 생각했다. 그 성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떠나보내야 할까 생각했다. 말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사실 그는 노르테론에서의 그 날 이후 쓸 만한 건 아무 것도 만들지 못했다. 이제 무언가를 만들 만한 인내심이 부족했다.


얼마든지 용아귀 부족을 미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바뀌는 것은 없다.


캐릭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손바닥을 바위에 대고 그 오크를 노려보았다. 용아귀 오크의 역겨운 웃음이 더 커졌다. 분노가 되돌아오고, 연기가 캐릭의 콧구멍을 다시 채웠다. 기억과 싸우고 싶은 충동이, 그 기억을 무언가 그 이상의 것으로 바꿔 놓고 싶은 마음이, 돌을 캐내 조각할 준비를 하던 때처럼 그를 뒤덮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욕망과 싸우며, 기억이 마음껏 떠돌게 내버려 뒀다.


'이제 너와는 끝이야.'


손끝으로 무언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바위는 떨리고 있었다. 오래 전 익숙했던, 바위가 노래를 부르는 느낌. 순수한 흥분과 안도의 마음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캐릭은 거의 손을 뗄 뻔했지만, 애써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열고, 한때 그랬던 것처럼 정령이 자신을 이끌게 했다. 바위 하나하나, 산 하나하나에는 모두 약점이 있었다. 바위와 산이 그에게 보여줬었다.


캐릭이 눈을 뜨자, 모구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손은 조각상의 코 오른쪽에 놓여 있었다. '거기 있구나.' 와일드해머 드워프는 손바닥의 아픔 때문에 입술을 깨물며 망치를 휘둘렀다.


빠직.


거대한 바위는 무너져 내리지 않고 옆으로 구르며 그 너머의 어두운 통로를 드러냈다.


캐릭은 다른 드워프들을 먼저 통로로 들여보냈다. 그들이 멀어진 후, 그는 오랫동안 벽에 기댄 채 온몸의 근육을 격렬하게 떨었다. 지금껏 강철이 가득한 주머니를 등에 지고 있다가 마침내 내려놓은 것만 같았다.


어떤 판다렌은 복수를 원했다. 그래서 모구를 공격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힘을 키웠다. 분노가 그들이 숨쉬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힘이 무슨 소용인가? 불쌍한 노예들은 격노의 도구가 되어 자신들의 증오를 모든 것, 모든 이들을 향해 돌렸다. 그들은 쉬엔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진짜 적은 바로 너 자신이다."


—천신의 두루마리


땀방울이 천천히 펜드릭의 목을 따라 흘렀다. 공포가 서서히 돌아와 그의 뱃속을 쥐어짜고 먼 곳의 천둥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는 빛의 저주를 받은 이 산 속 깊은 곳에서, 폭풍이 마침내 그를 압도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폭풍을 멀리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었다.


머릿속에서 검은 생각이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이곳이 정말 안전한 곳인지 누가 알까? 판다렌들은 광산에 어떤 안전 장치를 해 놓을까? 어쩌면 이 동굴이 만들어진 당시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을지 모른다. 혹시 그래서 판다렌 석공들이 여길 피하는 건 아닐까?


펜드릭은 야영지에 머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졌겠는가? 검은무쇠와 와일드해머 드워프가 돌아와 그가 아무것도 캐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카즈의 손"이 벌써 1년 넘게 광산엔 들어가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앞쪽에 또 방이 있어!" 검은무쇠 드워프가 소리쳤다.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삐죽삐죽한 벽이 점점 좁아지며 그를 짓눌러 오던 중이었다. 숨쉬기가 점점 더 힘들었었다. 잠시 마음을 다스리며, 그는 매일같이 반복하여 이제는 능숙해져 버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직사각형 구역은 조금 전 방보다 훨씬 컸다. 다행히 반대편 끝에도 문이 열려 있었다. 천정과 벽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아주 섬세하게 만들어진 평면이었다.


이곳에 대해 꽤 조사를 했지만, 펜드릭은 이 방의 용도를 알아내지 못했다. 판다렌이 천신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음은 분명했지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벽에 새겨진 룬 문자도 답을 주지 못했다. 모두 수수께끼 같고 의미가 모호했다. 대부분은 판다렌의 옛 속담이었다.


전사의 방패만한 크기로 니우짜오의 머리를 새긴 부조가 방의 중앙에 있었다. 청옥으로 만들어진 흑우의 눈이 펜드릭의 보호모 꼭대기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페넬라가 방을 가로지르다가 원반을 밟았다. 골렘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캐릭이 방에 들어서서 잠시 주위를 둘러본 후 검은무쇠 드워프 뒤를 따랐다.


펜드릭은 그들을 보지도 못했다. 벽에 섬세하게 그려진 벽화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흑우 니우짜오를 그린 그림이었다. 판다리아로 오는 배 위에서 이 천신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적 한 부대와도 혼자서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존재였다. 판다렌들이 흑우를 숭배한 것도, 그 인내를 품으려 했던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 벽화 속 니우짜오는 두려움을 모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흑우는 언덕 꼭대기에서 모구 전사 무리에 포위된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 전사들은 흙으로 만들어진 석상이었다. 진짜 모구는 벽화의 가장자리 부분에서 즐거운 듯 이 모습을 바라봤다.


갑작스럽게 대기가 강력한 힘으로 가득 찼다. 그 힘이 펜드릭의 뱃속에서 똬리를 틀었다. 이곳은 부자연스럽다. 그는 조사를 하면서 뭔가 놓친 점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모구가 이 동굴을 발견하고, 뭔가 저주를 내렸을 수도 있다.


자신이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펜드릭의 몸에 전율이 흘렀다. "어이! 둘 다 어디 간 거야?"


"터널 안쪽이야!" 페넬라의 목소리가 입구 쪽에서 메아리쳤다.


브론즈비어드 드워프는 서둘러 입구 쪽으로 달렸다. 발이 바닥에 튀어나온 홈에 걸렸다. 아래를 내려다본 그는 자신이 니우짜오의 상징을 밟고 있음을 깨달았다. 당당했던 흑우의 얼굴은 어느새 벽화 속 모습처럼 공포에 질려 있었다.


펜드릭은 뒤로 펄쩍 뛰었고, 원반은 한 바퀴 돌고 나서 멈췄다. 바위가 바위에 스치는 소리가 방 전체를 울렸다. 벽 너머에서 톱니바퀴와 도르래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낡은 나무의 삐걱거림과 굵은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도 들렸다.


"무슨 소리야?" 페넬라가 동굴 안쪽에서 소리쳤다.


"이건..." 펜드릭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우르릉 소리는 귀가 먹을 듯 커졌다. 두꺼운 바위 판이 방의 입구 두 곳에서 깜짝 놀랄 속도로 내려왔다. 그는 모루처럼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발을 삐끗하며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채광용 보호모가 바닥에 떨어지며, 그 충격으로 타오르던 불이 꺼졌다.


"브론즈비어드!" 페넬라가 소리쳤다.


고개를 든 펜드릭의 눈에 검은무쇠 드워프의 보석이 내뿜는 보라색 빛이 보였다. 석판은 계속해서 내려왔다. 쪼그리고 앉은 페넬라와 캐릭, 골렘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셋 모두 문이 닫히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문을 향해 달릴 수도 있었지만, 그저 갓 태어난 양처럼 문이 닫히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둠이 그를 삼켰고, 마음 속에 남은 바위 스치는 소리는 어느새 다른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세계가 쪼개지는, 산과 고대의 분노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였다.


"펜드릭! 너 어디 있어?" 보이지 않는 존재가 외쳤다.


하지만 누구 목소린지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목소리였다. 그 때 이후로...


"무너진다!" 다른 누군가 소리쳤다.


펜드릭은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가 풀렸다. 어둠 속에서 그는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빙빙 돌았다. 얼음처럼 서늘한 기운이 폐를 가득 채웠고, 그는 지금 이곳이 어딘지 잘 알 수 있었다.


눈마루 통로.


"안 돼, 여긴... 아니야..." 펜드릭은 주위를 돌아보며 혼잣말을 했다. 아직 어두웠지만 방은 낯설 만큼 거대해져 있었다. 이곳은 이제 판다리아가 아니었다. 드워프의 영토 깊은 곳에 있는 산을 관통하는 통로였다. 대격변이 몰아쳤을 때, 지진이 그의 세계를 산산이 찢어 놓았을 때 그가 열두 명의 광부들과 함께 일하던 곳이었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횃불이 흔들거리며 방을 비췄다. 그 짧은 순간, 그는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짐마차 크기만한 바위가 천정에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봤다.


"펜드릭은 어디 있지?"


다시 그 목소리였다. 더 컸다. 귀에 익은 다른 목소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아직 저 안에 있어! 내가 들어갈게!"


"나도 간다!"


"아냐." 펜드릭은 숨이 막힌 듯 말을 내뱉었다. "너희라도 살아!"


그들은 듣지 않았다. 횃불이 점점 더 밝아졌다.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쪽이야!" 한 명이 소리쳤다. "펜드릭이..."


날카롭고 역겨운 충격음과 함께 그 목소리는 영원히 잦아들었다.


그래도 다른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펜드릭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씩 하나씩, 거대한 바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광부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횃불 빛이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펜드릭은 내내 못박힌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일어서지도,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를 찾아 앞으로 나서지도 못했다. 벌벌 떨면서도 떨어지는 바위들이 형성한 공간 안에 안전하게 서 있었다. '멍청하고 치욕스러운 행운 같으니.'


시작했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지진이 멈췄다. 온통 침묵뿐이었다.


펜드릭은 이건 꿈일 뿐이라고 말하며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주위의 그 무엇도 변하지 않았다. 목구멍 속 공기는 여전히 살을 에듯 차갑고 바짝 말라 있었다. 바윗덩어리가 가루가 되어 혀에 가득 달라붙었다.


"어이." 장화를 신은 발이 그의 옆구리를 강하게 찼다.


펜드릭은 고개를 들었다. 눈마루 통로의 잔해 속에서 그를 발견한 구출대의 모습을 볼 거라고 기대하면서. 그날 광산에 들어갔던 광부 열세 명 중에서 그만이 살아 나왔다. 자신의 두 발로 걷지도 못했다. 걸을 힘도 없었기 때문에 구출대가 그를 안전한 곳까지 실어 날라야 했다.


하지만 이건 그가 기억하는 구출대가 아니었다.


희미한 빛으로 반짝이는 증기 같은 형체들이 그를 둘러쌌다. 채광용 장비를 차려 입은 열두 명의 모습. 펜드릭이 알았던 가장 용감한 드워프들이었다.


***


"코베스, 그만." 이마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페넬라는 동굴 벽에 기대어 섰다.


골렘은 굳게 닫힌 방으로 통하는 석문에서 물러났다. 꽤 오랜 시간 문을 내리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동안 페넬라와 캐릭은 동굴을 샅샅이 뒤지며 문을 열 수 없는 방법이 없는지 찾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멍청하긴... 기회가 있을 때 도망쳤어야지." 캐릭이 그녀 곁에서 중얼거렸다.


페넬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와 캐릭이 빠른 속도로 터널을 나아가고 있을 때, 문이 갑자기 닫히기 시작했다. 그들이 황급히 빠져나왔을 때 바윗덩어리는 이미 절반 정도 내려왔고, 코베스의 강력한 힘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페넬라는 일단 펜드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방 안의 산소가 다 떨어지기 전에 화약을 갖고 돌아오거나, 판다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검은무쇠 드워프가 코베스에게 손짓을 하고 동굴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안에 그냥 내버려 둘 거야?" 캐릭이 물었다.


"구해주려면 도움이 필요한데, 여길 빠져나가기 전엔 어떻게도 할 수 없잖아."


캐릭은 문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페넬라의 뒤를 따랐다.


***


펜드릭은 광부의 유령들을 바라봤다. 복수를 하러 온 것일까? 지금까지 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무엇을 했던가? 판다리아에 오기 전까지 그는 광산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이런 류의 임무에서는 무슨 거짓말을 해서라도 발을 빼곤 했다. 그리고 먼 옛날 광산에서의 탐험에 대한 이야기를 며칠씩 늘어놓으며, 두려움을 모르는 남자라는 평판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제 그가 잘하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뭘 원하는 거야?"새된 목소리로 펜드릭이 말했다.


유령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까이 다가왔다. 브론즈비어드는 그들을 향해 무턱대고 무기를 휘둘렀다.


"널 해치진 않을 거야, 친구." 유령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널 도와주려는 거야. 거기 너무 오래 누워 있었어."


펜드릭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흐릿한 형체들이 그를 붙잡는 대로 몸을 맡겼다. 소용돌이가 그의 몸을 밀어올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유령들은 브론즈비어드를 똑바로 세웠다.


"이제 됐어."


"미안해, 친구들." 펜드릭은 눈을 똑바로 들지 못했다. 부끄러워서 도저히 유령들을 바라볼 수 없었다. "눈마루 통로에서 너희들한테 갔어야 하는데... 뭐든 했어야 하는데... 뭐라도... 난... 두려웠어..."


"우리도 그랬어. 두려웠지만 우린 멈추지 않았을 뿐이야. 너도 한때는 그랬었잖아. 이제 놔줄게." 유령들이 그를 놓았다. 날카로운 공포가 소용돌이치며 펜드릭을 꿰뚫었다.


"안 돼!" 그도 모르게 말이 뛰쳐나왔다. "난 여기 갇혔어. 나가는 길도 모른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널 일으켜 세우는 것뿐이야, 친구. 다시 드러누울지 계속 서 있을지는 모두 네게 달렸어."


펜드릭은 침을 꿀꺽 삼켰다. 통로의 서늘한 산 공기 때문인지 목이 칼칼했다. "난..." 그는 무슨 말이라도 떠올리려 했지만, 그건 유령들을 곁에 붙들어 두려는 핑계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살아가야 할 시간이야." 유령들이 말을 이었다. "준비됐어?"


펜드릭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빨라졌다. 그의 시간이 다하고 이 세상 너머의 세계에 도착하면, 열두 유령들에게 뭐라고 말하게 될까? 지금까지 종종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남은 날을 살았노라고 이야기할까? 아니면 눈을 부릅뜨고 피 끓는 열정으로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았노라고 이야기할까?


지금, 그들이 여기 함께 있었다.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 준비됐어."


유령들이 그를 놓았다.


펜드릭은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나며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의 발은 아직도 눈마루의 바위에 갇혀 있었다. 끔찍하게 지친 그의 다리는 불이 붙기라도 한 듯 아팠다. 하지만 그 고통은 반가웠다.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희미한 푸른 빛이 방 어딘가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니우짜오의 부조가 눈에 들어왔다. 황소의 청옥색 눈이 매섭게, 점점 더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돌아보지 않고, 그는 앞으로 나서며 원반을 힘껏 밟았다.


***


페넬라가 동굴을 한참 내려가던 중, 뒤쪽에서 바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코베스와 캐릭과 함께 서둘러 돌아간 그녀의 앞에, 니우짜오의 방 문이 스르륵 미끄러지며 열렸다. 빛나는 보석을 들고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선 검은무쇠 드워프는 펜드릭을 보았다.


묘한 미소가 브론즈비어드의 얼굴 전체에 활짝 퍼졌다.


"어떻게 된 거야?" 캐릭이 서둘러 방으로 들어섰다.


펜드릭은 호탕하게 웃었다. "나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친구." 그는 그가 서 있는 니우짜오의 조각을 가리켰다. "이게 무슨 가동 장치인가 봐. 내가 들어왔을 때 건드렸던 모양이야."


페넬라는 의심에 찬 눈으로 원반을 바라봤다. 방으로 들어섰을 때 분명히 밟았던 기억이 있었지만, 그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당시와 조각의 모양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굳건하고, 포기와 두려움을 모르는 흑우를 새긴 조각일 뿐이었다.


"그럼 괜찮은 거야?" 그녀가 다시 물었다. "여기 우두커니 서 있었잖아."


"아, 그래, 잠깐... 넋을 놓았나 봐." 펜드릭은 검은무쇠 드워프와 눈을 맞췄다. 지금까지 보였던 냉랭함은 어딘가 사라지고, 뭔가 다른 것, 뭔가 진실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기 뭔가 마법이 드리워 있어. 진짜야."


브론즈비어드는 캐릭을 바라봤다. 그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괜찮아." 펜드릭이 말했다. 거대한 드워프가 부싯돌을 때려 강철 보호모의 횃불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리고 고개를 당당히 들고 산속 깊은 곳으로 향하는 길을 이끌었다.


다른 판다렌은 공포에 질렸다. 고통을 주는 자들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공포가 삶의 모든 곳에 스며들었다. 모든 그림자를, 모든 소리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삶 그 자체를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자신이 만들어 낸 감옥에 갇혀 삶을 낭비해 버리는 것에 만족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니우짜오의 잠언을 기억하지 못했다. "두려워하면 나약해질 뿐이다. 두려움을 극복해 자신의 진면모를 드러내라."


—천신의 두루마리


동굴은 계속 구불거리며 뻗었다. 주학 츠지의 벽화가 양쪽 벽에서 반짝였다. 처음 몇 개의 벽화에서는, 기뻐하는 판다렌 노예들의 머리 위를 츠지가 날고 있었다. 펜드릭이 그 천신은 '희망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굴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동안 그림은 점점 더 음울해졌다. 모구 전사들이 츠지를 사로잡아, 사슬로 그 날개를 묶은 채 당당하게 판다렌들 사이를 행진했다. 판다렌들은 그저 두 눈을 내리깔고 슬피 울고 있었다.


벽화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반짝이는 보석의 바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루비 수정이 벽과 천정을 가득 뒤덮고 드워프들의 불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멋지군." 페넬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땅 위에서 자라나는 숲이나 꽃과는 다른 진짜 아름다움이었다. 수정과 보석은 영원한 시간의 시험을 견뎌내는 물체였다.


벽에 어두운 녹색 점이 보여 가까이 다가갔다. 두 개의 수정 사이에 커다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반짝이는 보석을 천정 쪽으로 돌리자 이 기이하지만 완벽한 형체의 보석이 천정에도 여럿 박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그녀는 손을 뻗어 보석 하나를 만졌다.


보석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가시 같은 다리들이 혈암거미의 몸통 아래에서 뻗어 나오자, 페넬라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껍질이 달가닥거리며 떨렸다. 초록색 겹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그 소란 때문에 다른 거미들도 깨어났다. 천정과 벽에서 수십 마리가 살아나 다리를 달각거리며 부딪혔다.


"코베스!" 페넬라는 소리쳤다. "공격!"


"지시 확인." 골렘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거미 떼를 강타해 모두 터뜨렸다.


하지만 거미는 많았다. 드워프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다리로 몸 여기저기를 찔렀다. 천정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며 페넬라 키의 절반 만한 커다란 거미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무 많아!" 캐릭은 망치를 휘둘러 큰 거미 하나의 껍질을 부쉈다. "뛰어!"


그와 펜드릭은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렸다. 페넬라는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꿈틀거리는 거미 떼가 그녀를 막아섰다. 일부는 떨어져 나와 브론즈비어드와 와일드해머 뒤를 쫓았다. 페넬라는 고개를 돌려 방 반대쪽을 바라봤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코베스!" 새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방어 태세로 후퇴!"


페넬라는 그대로 달렸다. 골렘의 발소리가 쿵쿵거리며 뒤를 따랐다.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달릴 수 있을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대로 갈림길에 도착할 때까지 달렸다. 그곳에는 수정 벽 위 높은 곳에 츠지 조각상이 있었다. 날개를 묶이고 오른쪽 동굴을 향해 고개를 돌린 주학의 눈에 눈물이 고여들었다.


페넬라는 잠시 멈춰 숨을 돌렸다. 코베스 말고는 아무것도 그녀를 따라오지 않았다. 골렘의 강철 몸통에는 온통 긁힌 자국이 가득했다.


둘이 지나온 방향에서 날카로운 울음 소리가 울렸다. 드워프의 비명이었다. 페넬라의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동굴의 공기에 마력이 가득 차며 갑자기 주위가 따스해졌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마음 속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던 그 생각이 다시 기어 나왔다. '다시 돌아가면 우리 셋 모두 죽을 거야. 난 우리 부족의 명예를 실추시킬 거고. 모이라 님이 내게 지휘권을 주셨어. 아이언포지의 드워프들이 내가 이번 일을 어떻게 망쳤는지, 내가 브론즈비어드와 와일드해머 드워프를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수근거릴 거야. 하지만 나만이라도 살아 남는다면, 다른 드워프들이 실패한 임무에서 검은무쇠 드워프만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되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이쪽이 논리적이었다. 캐릭과 펜드릭도 이런 상황에서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둘은 그녀를 싫어했으니까. 그건 그들이라는 존재에 찍힌 낙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경험을 함께 한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페넬라는 갈라진 통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날 자랑스럽게 해라." 모이라 님이 직접 말했었다. 이게 그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파이너스 다크바이어의 딸에게 이 팀을 이끌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페넬라의 눈에 움직임이 보였다. 벽에 붙은 수정들의 각 면에 그녀 모습이 비쳤다. 손을 흔들어 그녀를 부르고, 오른쪽 갈림길로 이끌고 있었다.


페넬라는 반영의 손짓을 따라 걸었다. 코베스가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다. 동굴은 꾸준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서늘해졌다. 그러다가 바닥에 어지러이 널린 무언가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뼈였다. 두개골의 모양으로 보아 판다렌의 유해 같았다.


"이쪽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얘야. 그냥 빙빙 돌게 될 거야."


유령의 속삭임 같은 희미한 목소리였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페넬라는 빙글 돌아섰다. "거기 누구야?"


"어휴, 너 아빠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


그때 아버지가 보였다. 십여 개의 수정 표면에 비친 파이너스 다크바이어였다. 모두의 미움을 받은 그 석공은 언제나 그랬듯이 즐겨 쓰던 외눈 안경과 멋들어진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기억 속에서 달콤한 연기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아주 오래 전, 외부인 한 무리가 검은무쇠 영토를 침략하여 부족의 악당들을 학살했던 때였다. 물론 그녀의 아버지도 악당 중 한 명이었다.


'진짜가 아냐.' 페넬라가 고개를 저었지만 파이너스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얘야, 그 두 녀석은 그냥 죽게 내버려둘 거니?" 아버지가 다시 한 번 물었다.


페넬라는 그 말을 무시했다. 그저 묵묵히 걸어 나갔다. 그녀의 반영은 여전히 손을 흔들었지만, 그 움직임은 어느새 다급해져서 거의 미친 것만 같았다. ’서둘러.'


"내가 네게 두 번째 기회를 줬는데, 이렇게 버리려는 거니?"


페넬라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서며 파이너스의 위선을 비난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그가 보였던 수정에는 그녀의 어린 모습만이 비쳤다. 타오르는 듯한 주황색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땋아 내린 꼬마였다. 그 어린 페넬라는 설계도를 한아름 안고 어둠괴철로 도시의 통로를 기었다. 여러 유명 건축가들에게서 훔쳐낸 후 아버지의 인장을 찍어 위조한 설계도였다. 페넬라는 자신의 반영이 검은무쇠 드워프의 수도를 가로지르고, 설계도를 타우릿산 황제에게 전해주는 모습을 지켜봤다.


부족의 지도자는 그 설계도면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즉시 파이너스를 수석 건축가 자리에 앉혔다. 뒤이어 그가 직접 설계도를 그리지 않았다는 소문이 퍼지자, 타우릿산은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페넬라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천 번 다듬은 다이아몬드처럼 세밀하고 정밀하게 계획된 그녀의 범죄는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그녀 자신의 의지로 해낸 일이었다.


파이너스는 이 사실을 알고도 크게 화를 내지 않았지만, 페넬라는 그의 눈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을 봤었다. 후회나 죄책감, 슬픔이라는 한 가지 감정이 아니었다. 셋 모두가 하나로 합쳐진, 그의 심장을 움켜쥔 어둠을 찢고 나타난 감정의 혼합물이었다.


"네가 한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파이너스의 반영이 다시 나타났다. "모든 비난과 조롱을 내가 받았어. 결국 난 악당으로 죽었다. 불평하는 건 아냐. 너도 알겠지만, 이 아빈 그렇게 잘난 드워프가 아니잖니. 비록 잠깐이었지만 내가 대단한 인물이 된 것 같았어. 그래서 뭔가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어. 네게 미래를 줄 수 있었다고."


페넬라는 파이너스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가 환상 속 존재이거나 그저 알 수 없는 어떤 마법의 산물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녀가 저지른 일과 아버지가 그녀에게 해준 일은 단 하루도 그녀 마음을 떠난 적이 없었다. 모루 주위에서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때, 아버지의 이름이 진흙탕을 구를 때면 늘 죄책감이 그녀를 때렸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이, 아버지의 고귀했던 행위를 기리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하지만 달리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다른 이들을 믿고, 또 그들 역시 그녀를 믿을 것임을 확신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아무 의미도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녀는 어둠괴철로의 하수구를 기어 한 국가를 배신했던 그 도둑일 뿐이었으니까.


"난 다크바이어라고요."


"이름은 상관없어. 사실 내겐 변화를 택할 기회가 없었단다. 하지만 넌 달라. 한 걸음만 내디디면 돼. 그렇게 놀라운 일을 많이 한 네가, 그렇게 간단한 걸 하지 못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잖니."


파이너스는 파이프 담배를 뒤집어 안에 든 것을 쏟았다. 유령 불씨가 수정들 속에서 사라져갔다. "오늘 얘기해줄 건 그게 전부야.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아버지는 서서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후에도 페넬라는 파이프 연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


막다른 길.


펜드릭은 수정 벽에 등을 기댔다. 팔에 난 상처에서 뜨거운 피가 쏟아져 나와 가죽 장갑을 적셨다.


캐릭이 이를 드러낸 채 옆에 서 있었다. 펜드릭은 와일드해머 부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곁에 있는 이 친구는 그래도 괜찮았다. 용감하고 성격이 불 같았다.


"또 온다!" 펜드릭은 곡괭이를 단단히 그러쥐었다.


앞쪽에서 혈암거미들이 몰려왔다. 캐릭은 거미를 향해 망치를 집어던졌다. 삐죽삐죽 퍼져 나가는 번개 줄기가 가장 큰 거미에 내리꽂힌 무기 뒤로 길게 이어졌다. 빛과 굉음이 폭발하며 거미는 잿더미로 변했다. 검게 변했던 펜드릭의 시야가 걷히고, 망치가 공중을 날아 캐릭의 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거미들은 개의치 않았고 공격을 멈추지도 않았다. 드워프들이 아무리 많은 거미들을 죽여도, 동굴 속 틈과 구멍들 사이에서 점점 더 많이 나타날 뿐이었다.


언뜻 보라색 빛이 반짝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검은무쇠 골렘이 거미들 사이를 뚫고 돌진했다. 거미들을 수없이 짓밟고, 거대한 손으로 때려 부쉈다. 거미들은 새로운 위협을 향해 달려들었다. 떼 지어 골렘의 다리에 달라붙고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 강철 거죽을 물어뜯었다.


골렘 뒤에서 빛나는 보석을 흔들며 페넬라가 소리쳤다. "다들 움직여!"


펜드릭과 캐릭이 달리기 시작했다. 거미들을 뛰어 넘고 페넬라의 뒤를 쫓으며 통로를 따라 내려가 동굴 속 갈라진 길 앞에서 멈춰섰다. 머리 위로 거대한 주학 석상이 앞쪽으로 난 두 길 위로 날개를 죽 펴고 있었다. 츠지의 머리는 왼쪽을 향했고, 부리는 노래를 부르듯 활짝 벌어졌다.


"골렘은 어쩌려고?" 캐릭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기다릴 수도, 돌아갈 수도 없어." 페넬라의 목소리는 강철처럼 단단했지만, 펜드릭은 그 눈동자에서 반짝이는 물기를 보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캐릭은 고개를 숙이고 꽉 쥔 주먹을 경건하게 가슴에 댔다. 와일드해머식 경례인 모양이라고 펜드릭은 생각했다.


"우릴 구하러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펜드릭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그를 바라봤다. "나도 몰랐어."


검은무쇠 드워프는 그게 무슨 뜻인지 달리 설명하지 않았고, 펜드릭도 딱히 해명을 기대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녀를 만나 반가웠다. "뭐, 어쨌든 왔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아직 끝난 게 아냐." 캐릭이 말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른다고."


"난 알아." 페넬라는 츠지 조각상을 바라본 후, 다시 오른쪽 동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펜드릭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지만,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든 보석의 보라색 불빛이 수정 벽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이쪽이야." 그녀는 왼쪽 길을 택했다.


하지만 다른 판다렌들은 모구를 이길 수 없는 적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희망을 잃고, 모든 감정이 무뎌지고, 자기 비하라는 고치에 갇혔다. 노예들은 꿈꾸는 힘까지도 잃어버렸다고 했다. 이미 파멸이 결정되었다면, 꿈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이 할 일은 오직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 자신의 힘을 믿는 것뿐이었다. 츠지가 말하듯, "폭풍우가 몰아치는 먹구름 뒤에는 희망이라는 태양이 숨어 있다. 이처럼 마음에도 희망이 숨어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천신의 두루마리


좁은 길이 점점 위쪽으로 올라갔다. 경사는 점차 급해졌고, 길은 꾸준히 위를 향했다. 몇 번 정도 좌우로 구불구불 이어지기도 했지만, 길은 대체로 직선이었다. 머지않아 세 드워프는 어떤 문 앞에 도착했다. 바위를 깎아 만든, 똬리를 튼 옥룡이 문을 둘러싸고 있었다.


페넬라가 먼저 통과하여 거대한 동굴에 들어섰다. 숨이 턱 막혔다.


바닥과 벽에 비취 광맥이 우뚝우뚝 솟아나 있었다. 다듬지 않은 보석들이었지만 짙은 초록색으로 시리게 빛났다. 생명력이 고동치듯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을 냈다. 줄지어 박힌 사파이어들이 천정에서 삐죽삐죽한 번개 모양을 그렸다.


캐릭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 꼬마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던 모양인데?"


세 드워프는 경이로운 표정으로 동굴을 거닐었다. 중앙에 서 있는 커다란 원형 기둥에는 판다렌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페넬라의 팔뚝만 한 굵기로 길게 잘라낸 대나무가 기둥에 기대 있었다.


펜드릭은 대나무를 주워들어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살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두루마리 뭉치들을 꺼냈다. 브론즈비어드가 옆에 있던 바위에 앉아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펴자, 줄지어 적힌 우아한 판다렌 문자가 나타났다. 펜드릭은 문자표를 꺼내 새로 발견한 두루마리의 룬 문자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건 뭐야?" 페넬라가 물었다.


"천신의 두루마리. 읽어볼까?"


"그래." 페넬라가 말했다. 캐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브론즈비어드 옆의 바닥에 앉았다.


펜드릭은 종종 문자표를 확인하며 띄엄띄엄 두루마리를 읽었다. 천신의 역사와 모구 제국의 태동, 그리고 그 끔찍한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판다렌들이 어떻게 분노와 공포, 절망, 의심에 굴복하여 뒤틀린 존재가 되었는지가 적혀 있었다.


"천신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노예들을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이 천둥왕의 분노를 샀다. 모구 황제는 귀찮은 천신들을 차례로 제압했고, 어느새 옥룡 위론만이 남았다. 그녀는 비취 숲의 광부들에게 자신의 지혜를 널리 전파했고, 그들 중 일부는 지식을 좇아 자신들의 임무를 저버리기도 했다. 위론이 노예 작업장 한 곳을 방문하는 사이, 천둥왕은 하늘에서 한 줄기 천둥을 불러내려 옥룡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위론은 숲의 나무들 사이로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


"그녀는 땅속 깊은 곳에서 깨어났다. 판다렌 광부들이 모구 군주들은 모르는 가장 신성한 장소에 그녀를 숨겨 주었던 것이다. 위론의 가르침에 고무된 그 판다렌들은 비밀리에 천신을 숭배하는 도피처를 세웠었다. 무척 감동한 옥룡은 그곳에 자신의 마법을 부여하여 광부들이 잃어버렸던 지혜와 희망, 인내, 힘을 얻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광부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옥룡의 조각상을 세우라고 했군..." 페넬라가 불쑥 말했다. 그녀의 손이 바위 기둥을 더듬었다.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용의 심장 건설 현장에 있는 것과 거의 동일했다.


"그래." 펜드릭이 두루마리를 계속 읽었다. "수백 년 동안 광부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일했다. 그 시간 동안 내내 옥룡은 천둥왕의 공격으로 입은 부상 때문에 점점 죽음에 가까워졌다. 조각상이 세워지는 순간, 그녀는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옥룡을 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광부들은 슬픔에 겨워 울었다. 하지만 그 순간 조각상이 움직였다. 눈을 떴다. 똬리를 틀었다. 조각상이 새로운 옥룡이 된 것이다. 다시 태어난 위론은 눈물을 흘리는 광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니,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광부들은 위론의 지혜를 세상에 널리 알렸고, 다른 판다렌에게도 천신들의 위대한 가르침을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설 속 첫 새벽의 주먹이자 위대한 노예 캉이 모두를 이끌고 자유를 되찾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샤오하오 황제는 모든 판다렌들에게 공포와 의심, 절망, 분노를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광부의 자손은 천신을 기리기 위해 거대한 사원들을 건설했다. 그리고 천신의 가르침을 지켜나가려 위대한 천신회를 조직했다."


페넬라는 두 눈을 감고 모든 것을 음미했다. 고대의 공기가 자신을 둘러싸게 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고, 캐릭이 키득키득 웃었다. "있잖아, 난 여기서 너희 둘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어. 하지만 오히려 내가 바보가 되고 말았네."


"우리 모두 바보가 됐지." 펜드릭이 답했다. "우린 다들 그저 한물간 석공일 뿐이야.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의회에서 왜 우리에게 이 일을 맡겼냐 하는 거지."


정말 왜일까? 페넬라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모든 게 모이라와 의회의 정치적인 계략은 아닐까 의심했다. 아이언포지의 퇴물 석공들을 도가니에 몰아넣고, 살아 나오기를 기다려 본 걸까. 그들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건 그저 부족들 사이의 불편한 갈등 관계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들이 성공한다면? 그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셋 모두 과거에 위대한 일을 이루었던 드워프였다. 어쩌면, 추측일 뿐이지만, 모두들 그들이 다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지도 모른다.


그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페넬라가 말했다. "의회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가 알겠어? 어떻게든 우린 살아남았잖아."


"해가 질 때가 다 됐겠는데." 캐릭이 덧붙였다. "보석을 캐낼 시간은 없겠어."


"그런 건 상관없어." 페넬라가 장갑 낀 두 손을 각각 앉아 있는 드워프들을 향해 뻗었다. "조각상을 세워야 한다고. 물론 너희들이 그럴 생각이 있다면 말이지만."


캐릭과 펜드릭은 활짝 편 그녀의 손바닥을 잠시 바라보고, 다시 서로를 바라봤다. 와일드해머 드워프는 살짝 어깨를 으쓱하고는 페넬라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브론즈비어드도 마찬가지였다.


"가서 세우지 뭐." 캐릭이 말했다.


페넬라는 크게 솟아나온 비취를 향해 다가가 그 크기를 가늠했다. 그리고 망치를 내리쳐 솜씨 좋게 주먹만한 비취 조각을 떼어냈다. "이걸로 시작하지." 그녀는 비취 조각을 캐릭에게 던졌다.


와일드해머 드워프는 비취를 허리띠에 달린 주머니에 넣었다. "들어오는 것보다는 빠져 나가는 게 쉬웠으면 좋겠는데."


"그건 괜찮을 것 같아." 펜드릭은 여전히 천신의 두루마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두루마리에는 이 방으로 직접 통하는 다른 통로를 만들었다고 써 있어."


셋은 재빨리 흩어져 사방의 벽을 뒤지며 구멍이 뚫린 곳이 없는지 찾았다.


"여기야!" 캐릭이 동굴 한쪽 끝에서 소리쳤다.


페넬라와 펜드릭이 양 옆으로 달려갔다. 검은무쇠 드워프 키의 두 배 정도 되는 높이의 둥근 바위 판이 바닥에 박혀 있었다. 페넬라는 장갑 한 쪽을 벗고 맨손을 그 가장자리로 가져갔다. 산들바람이 피부를 간질였다. 바위 자체는 특별한 점이 별로 없었지만, 가운데 작게 위론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캐릭이 한숨을 쉬었다. "꼬마가 이 얘기를 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도 두루마리에서 읽어봤을 뿐이야." 펜드릭이 어깨를 으쓱했다.


"해 보자고, 친구들." 페넬라가 온몸으로 힘껏 바위를 밀었다.


캐릭은 다친 손에 침을 퉤 뱉고 양 손바닥을 바위에 댔다. 펜드릭은 쪼그리고 앉으며 거대한 상체를 바위에 바짝 붙였다.


"셋… 둘… 하나…" 페넬라가 신호를 했다. "영차!"


바위가 조금 움직였다.


"영차!"


신음 같은 소리를 흘리며 바위는 동굴 안쪽으로 미끄러졌다.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오며 페넬라를 휩쓸었다. 앞쪽에서는 칠흑처럼 검은 통로를 지나 햇살이 반짝였다.


***


드워프들이 돌아왔을 때, 대회는 이미 끝나고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오 만이라는 판다렌이 이끄는 팀이 커다란 가방 다섯 개 가득 비취를 담아 오며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석공들이 하나가 되어 축하하는 모습을 보면,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드워프들이 가져온 광물을 보고 레이키 작업반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다른 판다렌들을 불러모았고, 시끌벅적한 축제는 잠시 중단되었다. 판다렌들은 입을 떡 벌리고 반짝거리는 비취를 멍하니 바라봤다. 모두들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은 처음이었다.


축하의 시간이 한창이던 때, 야영지 반대편에서 그 판다렌 소녀가 눈에 띄었다.


"저기 봐." 페넬라는 펜드릭과 캐릭을 쿡 찔렀다. "그 꼬마야. 가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겠지?"


"그럼." 다른 두 드워프가 답했다.


그들이 소녀에게 다가가자, 아이는 날쌔게 북쪽으로 달아났다.


"어이! 기다려!" 페넬라가 소리쳤다.


드워프들이 판다렌 석공들 사이를 뚫고 건설 현장의 반대편에 도착했을 때, 소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텅 빈 언덕만이 멀리까지 펼쳐졌다.


"그 꼬마는 어디로 갔지?" 펜드릭이 물었다.


페넬라가 뭔가 이야기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머리 위 하늘에서 무언가 스쳤다. 옥룡이 드워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천신과 시선을 맞춘 순간, 페넬라는 위론의 기이한 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엘레멘티움 같은 고대의 눈이었다.


다이아몬드 같은 하늘에 한 줄기 비취의 흐름이 되어 점점 더 높이 날아오르는 천신의 모습을, 검은무쇠 드워프는 다른 드워프들과 함께 아무 말도 없이 오랫동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