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예언자 벨렌과 드레나이는 아웃랜드에서 벌어지는 불타는 군단의 살육을 막기를 바라며 아제로스에 다시 정착하였습니다. 드레나이는 얼라이언스의 커다란 용기를 느끼고 이 고귀한 진영에 가담하기로 맹세하였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웃랜드에서 불타는 군단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벨렌은 드레나이를 불확실한 미래로 인도하고, 만약 드레나이가 얼라이언스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된다면, 과연 어떠한 역할을 할 지 결정해야 합니다.



나루의 보좌에서 솟아오르는 빛은 피에 굶주린 전사의 마음 속에도 평화를, 피로에 찌든 아제로스의 거주민에게도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이 빛의 기둥을 바라보며 평온을 얻으려 하는 존재가 있었다. 보좌를 바라보는 명상실의 공중에 떠 있던 벨렌은 오늘도 빛을 바라보며 우주를 구성하는 크고 작은 연결 고리 모두를 이해할 수 있기를, 또 그 안에서 미래의 실타래를 알아볼 수 있기를 소망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런 실타래들은 조각조각 찢어진 채로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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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의 보좌에서 솟아오르는 빛은 피에 굶주린 전사의 마음 속에도 평화를, 피로에 찌든 아제로스의 거주민에게도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이 빛의 기둥을 바라보며 평온을 얻으려 하는 존재가 있었다. 보좌를 바라보는 명상실의 공중에 떠 있던 벨렌은 오늘도 빛을 바라보며 우주를 구성하는 크고 작은 연결 고리 모두를 이해할 수 있기를, 또 그 안에서 미래의 실타래를 알아볼 수 있기를 소망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런 실타래들은 조각조각 찢어진 채로 보일 뿐이었다.



정좌한 채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는 무릎 위에 두 손을 얹은 드레나이 예언자가 명상을 하는 동안, 그의 힘을 담은 수정이 빛을 일렁이며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 움직임에는 일정한 규칙이 없었다. 혼돈스러웠다. 그리고 미래의 환영, 즉 내일의 무한한 가능성들이 그를 공격했다.



지치고 초라한 행색의 노움이 묘한 기계 장치를 아웃랜드의 흙먼지 속에서 질질 끌고 있었다. 한 쌍의 바퀴 자국이 뒤쪽 모래 언덕을 지나 뱀처럼 구불거리며 길게 이어졌다. 자신들의 에너지를 천으로 둘러싼 에터리얼들은 힘겹게 몸을 움직이는 그녀의 발걸음을 돕지도 막지도 않고,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구원자 마라아드는 거대한 수정 망치를 들고 보이지 않는 적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결국 검디 검은 어둠의 창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고, 그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핏빛으로 번들거리는 창날에서는 역병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방어구에 둘러싸인 데스윙의 거대한 형체가 하늘을 가득 채웠다. 불에 탄 세계를 가로지른 파괴자는 잿더미가 되어버린 거대한 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그 크기를 보면 나무는 놀드라실이 분명했다. 어두운 보라색 로브를 입은 백성들은 줄지어 서서, 화염이 솟아오르는 갈라진 대지의 틈으로 몸을 던졌다.



티리스팔의 수도자 메단은 울었다. 오크와 유사한 그의 모습에 눈물은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나도 연약하고 상처 입은 그의 눈을 바라보는 이라면 누구라도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벨렌은 그렇지 않았다.



예언자는 오래 전부터 환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법을 배웠다. 그러지 못했다면 아마도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는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예언의 세 번째 눈과 함께했기 때문에, 이제 미래의 징조를 보는 것은 마치 호흡과도 같았다. 아타말 수정 조각은 그를 무한한 다층적 세계의 파수꾼으로 변형시켰고, 수많은 세계가 암흑이나 얼음, 불길 속으로 저물어 가는 모습도 늘 목격해야 했다. 벨렌은 이런 미래에 대해 슬퍼하거나, 이들의 멸종을 애도하거나, 이들의 승리에 기쁨의 함성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그 모습을 읽고, 융단처럼 엮인 미래를 바라보고, 생명과 빛이 어둠에 맞서 싸우며 모든 것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하는, 그런 궁극의 승리를 향하는 길을 찾았다. 드레나이를 비롯하여 필멸자 대부분이 소중히 여기는 사건들도, 모든 창조를 지켜내야 한다는 그의 막대한 책임에 비하면 그저 모두 사소한 일이었다.



벨렌은 빠르게 움직이는 영상의 잔해를 살피며, 자신이 찾는 길의 이정표를 붙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 길은 거듭해서 그를 따돌릴 뿐이었다.






* * *







안두인 린은 부드러운 대지에 무릎을 꿇고, 자기 앞의 덩굴손에 두 손을 얹고 있었다. 이 덩굴손은 엑소다르가 아제로스에 추락하며 생겨난 돌연변이들 중 하나였다. 드레나이 두 명이 이 생물을 붙잡고 왕자를 공격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둘의 힘 때문에 덩굴손은 어린 소년이 내뿜는 빛을 피하지 못했다. 드레나이는 자신들이 이 세계에 나타날 때 초래한 피해를 회복시키는 것을 일종의 의무로 생각했고, 이런 일이 대부분 끝나자 자신들의 힘을 다른 곳에 쏟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불타는 군단과 전쟁을 치렀고, 그 뒤에는 리치 왕의 얼음 궁전을 향해 행군했으며, 이제... 대격변의 여파를 이겨내야 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과정에 돌연변이로 변한 괴수들은 방치되었고,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천성을 잃어버린 채, 광기와 고통에 사로잡혀 비극적인 방황을 계속해야 했다. 안두인이 이런 괴수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혐오감이 아니라 슬픔을 느꼈다. '도와줘야 해. 실패하더라도.' 벨렌의 가르침을 받던 도중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게 되었을 때, 왕자는 하늘안개 섬의 황야로 달려나갔고, 드레나이 경비병들은 황급하게 그를 뒤따라야 했다. 이제 그들은 안두인이 돌연변이를 치유할 빛의 힘을 불러내는 동안, 괴수의 광기를 누그러뜨릴 굴레가 되었다. 안두인은 이 생물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알 필요도 없었다.



빛은 알았다. 그 힘은 젊은 왕자를 통해 흘렀고, 그를 매개체로 하여 그의 손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생물을 바르게 돌려놓으려 했다. 치유 행위는 언제나 안두인에게 자물쇠 안의 열쇠 같은 기분, 마치 적절하게 사용되는 도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는 드레나이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의 재능을 증명해 보였다. 이들 고대 종족, 특히 그 중에서 영원한 존재인 예언자의 지도 아래 그의 자신감은 자라났다. '아버지, 아버지는 보지 못하셨지만, 제가 옳았어요. 마그니가 옳았어요. 이게 제 길이에요.'



이 생각은 그를 슬프게 했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하지만 바리안과 안두인은 그 기질과 경험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너무나도 달랐다. '아버지, 왜 보지 못하세요? 전 아버지와 달라요. 그게 뭐 어때요? 그 다름 속에도 뭔가 배울 게 있지 않을까요? 제게서 배우실 게 있지 않을까요?'



안두인은 아버지와 멀어진 것이 아쉬웠다. 아버지는 그를 계속해서 어린 아이로 대했다. 하지만 예언자와 마그니, 그리고 다른 이들은 그를 달리 봤고, 점점 커지는 그의 잠재력을 인정했다. 안두인과 그의 아버지는 다르나서스에서 열린 얼라이언스 정상회담 기간 중에 크게 다퉜고, 바리안은 그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마치 악의에 찬 듯 그의 팔을 고통스럽게 붙잡았었다. 그런 다툼의 여파를 견뎌내고 있을 때, 예언자가 신비할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두인에게 자신의 제자가 되어 엑소다르에서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했을 때가, 그에게 있어서는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제가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왜 모르셨나요? 아버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회인지 왜 알지 못하셨나요?'



안두인은 다시 현재로 주의를 돌렸다.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덩굴손에게로. 그는 이 경험이 주는 경외감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치유 행위는 일상적인 것, 소박한 기적이라고 여겨지곤 했지만, 안두인은 치유의 근원인 빛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삶은 하나하나 모두 기적이었다.



이제 왕자의 앞에는 넓은 꽃잎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보라빛과 초록빛이 섞인 줄기가 강인하게 우뚝 선 식물형 생물이 나타났다. 드레나이 경비병들 붙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둘 중 하나는 소년이 이루어낸 업적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뒤쪽이 소란스러워졌고, 안두인은 깜짝 놀라 치유가 불러 일으킨 최면 상태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고귀한 엉덩이로 진흙 구덩이에 주저앉아 있었다. '꽤나 위엄 있는 모습이군. 아버지께서 보시면 무척이나 기뻐하시겠어.' 안두인은 생각했다.



왕자는 벌떡 일어섰다. 그의 앞에는 탄탄한 방어구를 갖춰 입은 키 큰 드레나이가 서 있었다. 방패병, 즉 벨렌의 개인 경호원 중 하나였다. "예언자님께서 만남을 청하셨습니다, 안두인 왕자님." 그가 전한 말은 그뿐이었다.



피난민들은 처음에 패배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특유의 부끄러워 하는 태도로 하나 둘씩 찾아왔다. 물이 새어 들어오는 배나 간이 뗏목을 타고, 미지의 위험을 무릅쓰고 끔찍한 현실을 탈출한 이들이었다. 드레나이는 세계의 파괴를 견뎌낼 수 있었으니, 하늘안개 섬에서는 구원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하지만 이들 망명자들을 맞이한 것은 소문보다 못한 현실이었다. 드레나이는 힘 닿는 데까지 이들을 도우려 했다. 엑소다르 밖에 머물 곳을 마련해 주고, 치료해 주고, 음식과 물을 함께 나눴다. 그러자 피난민들은 친구와 가족들을 찾으려고 바깥 세상에 전갈을 보냈고, 그에 화답하는 메아리가 칼림도어 전체에 울려 퍼졌다. '예언자가 하늘안개 섬을 지킨다. 예언자는 대격변을 예견했고 모든 일을 바로잡을 것이다.' 하나둘은 곧 열, 스물이 되었고, 이내 수백 명으로 불어났다. 이제 난민촌에서는 수천의 사람들이 우글거렸고, 도움을 구하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곧 드레나이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난민촌의 수근거림은 음울하게 변해갔다. '예언자는 우리를 만나려 하지 않아. 드레나이는 그를 배 깊은 곳에 숨겨두고 있어. 가만히 보면, 다들 발굽 달린 악마처럼 보이지 않아?'



안두인은 피난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열심히 치료하고, 영원한 빛에 대한 믿음을 북돋우고, 조용하게 고민을 들어주며 사람들을 이끌었다. 성인들도 그와 함께 있을 때는 경외감을 느꼈고...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는 다소 불편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왕자는 까탈스러운 피난민들에게 왜 자기 아버지에게 보호를 청하지 않았냐고, 왜 스톰윈드의 힘에 기대지 않았냐고 여러 번 물어봤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시선을 외면하며, 그의 아버지가 분명히 위대하고 진실한 국왕이지만, 예언자처럼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 않느냐고 답했다. 그 목소리는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기분 나쁘게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왕자님의 아버지도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이라고요. 예언자는 그 이상이에요.'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내듯, 얼마간의 시간 동안 여러 번의 논의를 거친 끝에, 안두인은 피난민들의 행동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예언자에 대한 숭배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사회의 변두리 출신이었다. 이들에게 있어 정당한 정부 질서는 보호자가 아닌 두려워해야 할 존재였다. 결국 왕자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어울리는 동안, 안두인이 벨렌을 만나기 위해 경호원들과 함께 난민촌을 지나가는 모습은 익숙한 것이 되었다. 익숙하지만 다른 이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거리감을 느꼈다. 왕가 태생이라는 점, 그가 지닌 빛의 힘,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에 의해 생겨난 간극을 느꼈다. 때로는, 안두인은 자신이 조금 더...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기이한 힘을 지닌 사춘기라는 시기에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동안, 그도 이런 차이가 필요한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독특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백성들을 이끌고 보호하는 역할, 그것은 어떤 특권이나 개인적인 권력의 근원이 아니었다. 의무였다.



피난민들은 모두 인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는 자부심이 너무 강해 고향을 등지지 못했다. 나이트 엘프는 데스윙의 분노마저도 의연하게 이겨냈다. 노움은... 노움다웠다. 사소한 물건이라도 순간의 부주의로 인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을 늘 겪고 있는 그들이 용암과 지진 따위를 두려워할 이유가 있겠는가?



피난민들은 두렵고, 허기지고, 아팠다. 열병은 주기적으로 날뛰었고, 이렇게 전염병이 난민촌을 휩쓸 때면 왕자도 능력을 한껏 발휘했다. 이런 노력을 생각해 보면, 자신이 지나칠 때 사사로운 잡담 말고 다른 일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 피난민들이 툭툭 던지는 이야기가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외계인의 애완동물 같으니..." 피난민 하나가 말했다. "예언자가 저 꼬마는 만나면서 우리는 외면한다고?" 누군가 맞받았다. 안두인이 서둘러 걸은 탓에 나머지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안두인은 사람들을 관찰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영혼의 움직임을 조용히 지켜봤다. 그리고 피난민 여럿의 눈에서, 조금 전 들려왔던 비난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난민촌은 그를 비난하고 있었고, 그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돕기만 했는데...' 왕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 의혹이 따라왔다. '벨렌 님은 왜 저들을 만나지 않으시는 거지?'






* * *







칼림도어의 온화한 기후 속에서 비행하는 동안, 서리 맺힌 대기와 죽음이 어린 북부의 기억은 그리핀 기수에게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 기수는 그리핀이 평소에 익숙했던 것보다 더 무겁고 조용했다. 일반적으로 지상 종족들은 비행 중의 새로운 시각적 충격에 경탄하거나, 하늘을 향해 치솟고 움직이는 동안 겁에 질리기 마련이었다. 일반적인 여행객들이 소리 내어 말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작은 소리와 다리의 긴장만으로도 예민하고 눈썰미 좋은 그리핀은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 반해, 현재 기수는 평온과 고요함이 전부였다.



수많은 세계를 마주하고, 불타는 군단과의 끝없는 투쟁을 겪은 이라면 아제로스를 가로지르는 비행에서 아무 감흥도 느낄 수 없을 터였다. 구원자 마라아드는 아름다운 경치도 빛을 바래게 할 만큼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북부는 확보되었다. 리치 왕의 어둠도 사라졌다. 이제 그의 힘을 다른 곳에 돌릴 때다. 파괴자가 돌아왔다는 소식, 아제로스가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드레나이였다. 하나의 세계에 대한 위협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불타는 군단의 악마들은 여전히 뒤틀린 황천을 맴돌며, 마주치는 모든 생명체를 파괴하고 있을 것이다.



달빛을 받으며 하늘안개 섬 위를 비행하는 동안, 그는 별빛이 초라한 모습으로 땅에 내려온 듯, 작은 불빛이 무수히 번져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주 잠시 동안, 기이한 생각에 빠진 마라아드에게는 그 불빛 하나하나가 나름의 작은 세계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관심사는 하늘이었다. 언제나.



엑소다르 인근에 적군이 주둔한 것일까? 왜 이 이야기를 그에게 전해준 이가 없었을까?



그리핀은 엑소다르의 선체에 있는 강철 관문을 통과해서 히포그리프 조련사 스테파노스의 손에 다다랐다. 스테파노스는 짧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북부에서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구원자님. 고향에 돌아오신 모습을 뵈니 기쁘군요."



"고향이라니? 형제여, 우리에게 고향은 없다. 진정한 고향 따위는 없다. 우리는 우주의 방랑자이자 사라진 아거스의 난민이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밖에 있는 모닥불들은 다 뭐지? 감히 우리 섬을 쳐들어온 적군이 있더냐?"



"아닙니다, 구원자시여. 모두 대격변의 공포를 피해 달아난 피난민들입니다. 예언자님께 구원을 바라는 자들입니다."



마라아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묘하게 이목구비에 새겨진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 모두 그러하다, 형제여."



구원자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움직여 멈추지 않고 보좌를 향해, 벨렌의 거처를 향해 곧장 걸었다. 그의 발굽이 수정 바닥을 디디며 낭랑한 울림을 일으켰다. 입구 밖을 지키고 선 방패병 둘을 지나치며, 그는 혹시 경계를 게을리 하는 자는 없는지 살폈다. '다시는 반복할 수 없어.' 그는 생각했다. '드레노르 만으로 충분하다.'



예언자의 접견실 입구에 다다랐을 때, 마치 조각상 같이 서 있던 방패병 중 하나가 움직였다. 경비병은 앞으로 나서 그를 가로막았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구원자 마라아드, 노스렌드의 전 얼라이언스 사령관이다." 마라아드는 마치 예식처럼 말했다. "예언자님을 만나 뵙기를 청한다."



"예언자님께서는 아무도 만나시지 않습니다, 구원자 마라아드 님.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 오셨는데,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건 분명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 아니냐. 예언자께서 날 만나기를 거절하신다는 말인가? 노스렌드에서부터 이곳까지 왔는데, 그분께 여쭤보지도 않다니."



방패병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구원자님. 지금은 아무도 만나시지 않습니다."



"아침에 다시 오면 되겠느냐?"



"그러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구원자님. 예언자께서는 벌써 여러 주 동안 인간 왕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접견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 찾아오셨음을 기록에 남기고, 예언자님께서 마음을 바꾸시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마라아드는 속 모를 표정을 짓고 방패병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온 길을 되돌아갔다.






* * *







안두인은 침묵 속에 사색에 잠긴 스승의 앞에 섰다. 벨렌의 나이와 지혜를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소년다운 마음가짐으로, 왕자는 그를 마치 태양과 달들처럼, 자연 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예언자는 왕자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있었고, 지난 몇 주간 여러 번이나 보아온 명상 자세로 공중에 떠 있었다.



"대격변이 올 거라고 세계에 경고하지 않으신 것은 왜지요?" 안두인이 갑작스럽게 물었다.



그를 향한 등에는 미동도 없었다. 벨렌의 생각을 드려내 보일 만큼 움찔거리거나 처지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질문의 뒤를 이은 침묵에는 무언가 담겨 있었다. 아주 무거운 무언가가.



"나는 길을 찾는다. 불타는 군단과 그들의 파괴적인 행위를 넘어, 빛이 우리의 길을 비춰 주실 수 있게. 오직 나만이 길을 볼 수 있다. 나만이 빛의 힘을 길에 드리울 수 있다."



안두인의 예언자의 말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끔찍한 짐이겠어요."



예언자는 공중에서 서서히 회전하여 왕자를 마주했다. "그게 내가 내일의 길을 걷는 이유란다. 불타는 군단과 고대 신들은 미래로 엮은 천을 불태워 구멍을 뚫어 놓았다. 내가 그 구멍을 볼 수 있다면, 필멸의 종족들을 대비시켜 끔찍한 재앙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패하신다면요?"



영겁의 시간을 초월한 벨렌의 침착함이 잠시 깨어지고, 짧은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드러났다. 그 감정을 사이에 둔 앞뒤의 차분함 때문에 더욱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아픔이었다.



"네게 보여주고 싶구나." 고대의 드레나이가 속삭였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땅에 조금 더 가까이 내려섰다. 여전히 엑소다르의 강철 바닥에서 몇 센티미터 정도 뜬 상태로, 예언자는 안두인에게 다가와 왕자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미안하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로구나." 예언자가 말했다.



엑소다르가 무너져 내리듯 사라졌다. 남은 건 광활하게 펼쳐진 어둠과 간간히 드러나는 빛, 그리고 신비한 힘 뿐이었다. 갑자기 안두인은 낯선 하늘 아래, 기이한 땅 위에 서 있었다. 네 개의 달이 경쟁하듯 그의 시선을 끌었고, 호박색 대기 속에, 푸른빛 대지 위의 바위들은 수천 가지 다채로운 형태로 뒤틀려 있었다. 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화려한 바위들은 마치 굽이치는 파도를 어떤 신적인 예술가의 변덕스러운 기분에 맞춰 얼려버린 것 같았다. 대지 위에 흩어져 배회하고 하늘을 휘도는 생물들은 아제로스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기이했다. 춤인지 전쟁인지 모를 이유로 펼쳐지는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움직임은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고, 안두인은 마치 멋진 추상화 같은 혼돈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그리고 빛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는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제로스에서만큼 강한 빛이 외계 생물들 사이에서 공명하며 비추고 있었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마치 파멸의 전조처럼, 붉은 빛이 호박색 하늘을 점령해 나갔다. 잠시 후, 하늘의 색은 역겨운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오염된 하늘에서 불타는 유성이 쏟아져 대지를 때렸고, 불쌍한 생물들이 공포에 질려 흩어지게 만들었다. 유성은 충돌 지점에서 그 거대하고 흉측한 몸을 일으켜, 무자비할 만큼 효율적으로 죽음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왕자 옆의 공간이 일그러져 찢어지더니, 공포스러운 존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날개 달린 악마와 매혹적인 서큐버스들이 녹황색 불꽃과 강력한 마법을 쏟아내며 앞길에 놓인 모든 것을 파괴했다. 어둠의 병력이 배치를 끝낸 후, 그 찢어진 틈에서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드레나이와 매우 유사한 형태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지막 존재는 주위의 바위 지형을 평평하게 짓밟았다. 그리고 그 파괴 행위의 결과물로 생겨난 먼지 구덩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다란 손톱이 달린 손가락으로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도형을 그렸다. 그가 도형을 완성했을 때, 학살이 멈추고 온 세계가 공포에 질린 정적 속에 기다리는 가운데, 완벽한 침묵의 시간이 잠시 흘렀다.



그리고 세계는 폭발했다.



그렇게 방출된 힘은 세계의 표면을 찢었고, 안두인은 자기도 모르게 겁에 질려 팔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마법은 아무 상처도 남기지 않고 그를 통과했다. 군단은 차원문을 향해 다시 행진했고, 악마들의 거주지인 어둠의 차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살아 있는 것은 없었다. 바위로 이루어진 아름다웠던 대지까지도. 안두인은 그 대지가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인지, 앞서 봤던 외계 생물들이 만들어낸 것인지 궁금했지만, 이제 알 길은 없었다. 잿더미와 부서진 물질뿐이었다. 하늘에도 구름이 자욱했고, 네 개의 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환영은 끝났다.



안두인은 다시 예언자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화를 내면서도, 처량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많은 것이 사라졌는데, 슬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벨렌이 상냥하게 말했다.



"어떤 세계였나요? 언제 일어난 일인가요?" 눈물을 쏟으며 왕자는 물었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저 생물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세계의 필멸자 중에서 저곳을 걸어본 이도 없다. 나는 '판린데스코르', 즉 '경이로운 바위 위의 호박색 하늘'이라고 부른다. 군단이 희생자들에 대한 기록을 남길 리는 없으니, 아니, 그들을 기억하지도 않을 테니, 저 세계가 존재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온 우주에 너와 나 뿐일 것이다."



"슬픈 일이군요." 안두인이 말했다.



"그래. 빛의 뜻에 따라, 최후의 승리를 이룬 후에, 나는 사라진 저 세계들 중 하나에 탑을 세우고, 그 안에 앉아 이들에 대한 기록을 남길 것이다. 그게 내 속죄의 길이다."



"속죄라니요? 무엇에 대한 속죄인가요? 지금까지 그저 돕기만 하셨잖아요, 벨렌 님?"



"나는 오래 전, 내 형제들이 가는 길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창조가 그 대가를 치렀다." 벨렌은 손을 저어 말을 그치고, 다시 본래의 용건, 즉 안두인에게 환영을 보여준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네게 패배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대격변이 무척이나 끔찍한 것으로 드러났고, 데스윙 또한 가공할 만한 적이지만, '우리' 전쟁은 더욱 거대한 투쟁이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계를 지키는 것이다."



예언자가 다시 명상 자세를 취하고 보주에서 솟아오르는 빛을 바라보면, 안두인은 가르침의 시간이 끝났음을 알았다. 왕자가 거처의 문을 열고 빠져나가는 순간, 예언자의 마지막 말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래, 어린 왕자야, 정말 끔찍한 짐이란다."






* * *







마지막 말의 담백한 말투가 한밤중까지 내내 안두인을 괴롭혔다. 그는 평소와 달리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마침내 잠에 빠져들었을 때, 그 꿈은 날카로운 색채로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악마의 불길과 부서진 세계가 태양과 달이 없는 검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았다. 마치 차가운 바람의 입맞춤이 성역의 촛불을 꺼버린 듯, 우주의 빛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았다. 하지만, 안두인을 더 불편하게 만든 것은, 사라진 빛이 아니라 완전한 침묵이었다. 살아 있는 우주는 이렇게 조용할 수 없었다. 아니, 이래서는 안 됐다.



세계의 끝과 마주한 그의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가 아버지를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 둘 사이에 자리 잡은 거대한 틈을 메울 기회가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뛰어난 공감의 능력에 의해 이 생각은 확장되어, 온 우주의 모든 아들들이 각자의 아버지에게 "사랑해요", 또는 치유의 말인 "미안해요"와 같은 말을 할 수 없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침묵과 불 꺼진 별들을 넘어, 그러한 가능성, 희망의 죽음이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그저 밤의 진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미세한 공기의 흔들림은 순수하고 강하고 깨끗했다. 한 점의 빛이 태어나고, 곧이어 여러 빛무리가 떠올랐다. 진동의 수가 늘어났고, 모두 그 음조가 달랐다. 빛과 소리는 하나로 합쳐져 무지개와 음악의 해일이 되었다. 빛의 존재가 안두인을 둘러싸고, 어둠으로부터 그를 구원하며 우주를 복원할 희망의 찬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피난민 중 하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왕자가 여러 번 만났지만 이름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안두인 주위의 존재들이 말했다(노래했다). "삶은 하나하나 모두 우주이니."



안두인은 강렬한 꿈(아니, 환영이었다)을 꾼 탓인지,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카락이 얼굴에 착 달라붙은 채 깨어났다. 하지만 자신이 본 광경으로 인해 마음이 놓였다. 다시 잠든 그는 다행히 달리 기억에 남는 꿈을 꾸지 않았다.






* * *







마라아드는 커다란 원형 방에 서 있었다. 둥근 벽에는 빛나는 룬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패배를 모르는 고대의 드레나이 셋이 방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방어구는 환한 빛을 발할 정도로 윤이 났다. 몇몇 성기사와 구원자가 이들을 둘러싸고,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이런 복종의 모습은 정상에서도, 말단에서도 개인의 자아를 용인하지 않는 권위의 피라미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 셋은 대리인의 삼두연합행정부, 보로스, 쿠로스 아에솜이었고, 방 안의 다른 자들은 드레나이 정예병들, 아르거스의 대리인이었다. 마라아드는 이곳에 도착한 후 삼두연합이 그와 마찬가지로 엑소다르로 돌아왔음을 알았다. 아제로스의 형제들과 다시 연결을 맺고, 최근의 사건을 바탕으로 종족의 다음 갈 곳을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마라아드가 삼두연합의 앞에 나선 것, 드레나이의 지도자들과 함께 마주한 것은 너무 오랫만이었다. 그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정갈한지, 얼마나 침착한지를 잊을 정도였다. 그 합리적인 흐름이 얼마나 편안한지 잊고 있었다. 얼라이언스의 다른 종족들에게서 볼 수 있는 언어 유희나 예상할 수 없는 반응이 없었다. 이런 차이점은 구원자 롬나르가 피난민들과 그들의 고난에 대한 긴 대화를 갑자기 중단시켰을 때 더욱 돋보였다. 롬나르는 차원을 넘나드는 드레나이의 함선 엑소다르 복원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다. 섬으로 밀려 들어오는 외지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들 정중하지만 모호한 방식으로 외면하고 있을 때, 그는 말했다.



"이 문제는 조만간 고려할 필요도 없는 것이 됩니다. 엑소다르의 복원이 거의 끝났습니다."



그렇게 중대한 발표를 만약 노스렌드의 얼라이언스 지도부가 하늘파괴자호 위에서 했더라면, 마치 천둥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란 모두가 우렁찬 목소리로 환호했으리라. 하지만 지금 이 소식에 화답한 것은 기분 좋은 미소와 롬나르의 어깨에 놓인 손 하나였다. '잘했소.' 방 안의 분위기는 조용히 이 말을 하는 듯했다.



"'거의'라고 하면 예정이 언제입니까?" 마라아드가 물었다.



"일주일입니다. 핵심 장비는 모두 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겉으로 드러난 약한 부분들을 정비하고 강화하는 중입니다."



"일주일 내에 우리 함선을 깨울 수 있다고요? 예언자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라아드가 다시 물었다.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알지 못하십니까?"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마라아드가 말했다.



"예언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만나려 하지 않으십니다." 아에솜이 답했다. "방패병에게 기별을 남겼습니다만,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이 문제가 불쾌한 것이 저뿐입니까?" 마라아드는 이렇게 말했지만, 이 말을 내뱉은 것을 후회했다. '내가 엑소다르를 너무 오래 떠나 있었구나.' 물론 그들 모두 불쾌해 하고 있었다. 이들의 침묵은 마라아드에게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예언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누구도 대답하기 전에, 마라아드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드레나이 하나가 끼어들었다.



"피난민들이 관문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예언자님을 뵙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러하다.' 씁쓸한 마음으로 마라아드는 생각했다.






* * *







'대격변이 올 거라고 세계에 경고하지 않으신 것은 왜지요?' 필멸자 아이에게는 단순하고 논리적이었던 질문이 그를 비난하는 듯 방 안에 울려 퍼지며, 빛과의 명상에 빠진 예언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벨렌은 답하지 않고 피했고, 명확히 하지 않고 모호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그런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직 다른 이를 속일 수 있다는 말인가? 내면과 외부 모두에서 이렇게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언자가 그 재앙에 대해 왜 경고하지 않았을까?



그는 보았었다. 갑옷으로 무장한 밤의 어둠이 아제로스를 뒤덮고, 불과 고통으로 세계를 암흑에 휩싸이게 하는 모습을. 그는 또한 아제로스가 십여 가지 방식으로 멸망하는 모습도 보았다. 굽이치는 미래 속에서 수천 가지 소소한 승리와 패배를 보았다. 그러나 빛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채 넘실거리는 환영의 바다 위에서 그를 이끈 등대이자 나침반이었던 빛은, 대격변을 직접적으로 가리키지 않았다. 데스윙의 귀환이 불러온 파멸은 그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진정한 미래의 모습과 거짓된 모습을 구분하지 못하는 예언자가 무슨 쓸모가 있다는 말인가?



벨렌은 온 힘을 다해 소년의 질문을 마음에서 밀어냈고, 다시 끝없는 환영들 속에서 진실을 골라내는 능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그가 미쳐버리거나, 너무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의 방을 수호하는 방패병이 다시 한 번 삼두연합이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왔을 때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수리를 끝낸 엑소다르가 황천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리고 어둠에 삼켜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수리를 끝낸 줄 알았던 엑소다르가 출발 직후 폭발하여, 드레나이가 대부분 희생당하고 하늘안개 섬 위에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엑소다르가 아웃랜드에 무사히 착륙하고, 드레나이가 자신들의 옛 고향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드레나이가 차원 비행선을 수리한 후, 아제로스에 묶어 두는 모습을 보았다. 어떤 때는 그 끝이 어둠이었고, 또 다른 때는 그렇지 않았다.



벨렌은 추측하지 않았다. 길을 보여주는 빛이 없다면, 그는 제 자리에 얼어붙은 기분이었다. '삼두연합의 선택을 따르리라.' 그는 생각했다.



외부에서 그를 방해하는 요인이 사라지자, 그는 다시 내면으로 돌아갔고, 애타게 가야 할 길을 찾았다.






* * *







마라아드는 가만히 서서 혐오감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인간들은 종종 성급할 때도 있긴 했지만, 용맹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할 노스렌드의 얼라이언스 영웅들이었다. 하지만, 듬성듬성 빠진 이를 내보이며 꽥꽥 고함을 지르고, 또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예의와 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너저분한 생물들이 자신과 함께 행진했던 인간과 같은 종족이라는 사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예언자를 만나게 해 주쇼." 그 중 한 명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알아듣기 힘든 공용어로 말했다. "그 양반이 모두 바로잡아 주겠지, 뭐."



"이 자가 너희가 임명한 대변인인가?" 마라아드는 소리 내어 물을 수밖에 없었다. 살포시 경멸을 담은 그의 말을 들은 이도, 그에 답한 이도 없었다.



"예언자님은 아무도 만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우리도 역시 이와 같은 암흑의 시기에는 그분의 현명한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때가 되면, 예언자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실 겁니다." 엑소다르의 사절이 말했다.



"거짓말! 스톰윈드 꼬맹이 왕자는 매일 보잖아!"



"안두인 왕자님은 예언자님의 가르침 아래 빛의 길을 배우고 있습니다. 영원한 존재께서 여러분의 동족을 가르친다는 것을 명예롭게, 아니 영광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 여러분께 어떤 축복이 찾아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 거만한 자식이! 네가 뭔데 우리한테 우리한테 영광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는거야? 너 뭐야? 내가 보기엔 발굽 달린 악마일 뿐인데!"



드레나이의 모습이 불타는 군단의 에레다르와 유사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보다 더한 모욕은 없었다. 사절의 눈은 위협적으로 가늘어졌고, 손은 서서히 허리에 찬 빛나는 수정 검을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라아드는 자신의 거대한 망치 손잡이로 손을 뻗었고, 다른 드레나이 몇몇도 피난민들의 구질구질한 "대표단"을 향해 다가섰다. 마라아드는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어리석은 마음의 소유자라고 해도, 그 안의 짐승은 상황 파악을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피난민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눈치채고, 드레나이 사절은 긴장을 풀고 손을 내렸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의 생활이 힘드시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굶주리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예언자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입니다. 친구여, 믿어 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의 걱정을 해결해주시는 것은 저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이해해 주십시오. 그분의 길은 무한합니다. 그분은 의지에 따라 당신을 찾아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분께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은 야영지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슨 집? 그딴 건 집이 아냐." 부루퉁한 대답이 돌아왔다. 대표단은 음울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슬그머니 물러났다. 인간들은 자신을 반겨준 은인들과 주먹다짐을 할 뻔 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대체 저들이 피난민의 슬픔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는 겁니까?" 차분한 태도로 경악하며 사절은 말했다.



"그래, 대체 뭘 안다는 걸까?" 마라아드가 호응했다.






* * *







아르거스의 대리인과 지도부들에 둘러싸여, 마라아드는 자신의 의견을 소리 높여 말했다.



"예언자님께서 저희와 지혜를 나누려 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결정은 우리 몫입니다. 불타는 군단과 전쟁을 시작합시다! 혹시 실패한다면, 불운하게 고문당한 아웃랜드로 돌아가, 그 땅을 되살리는 작업을 마무리합시다. 사라진 고향들이 황무지가 되어 방랑하듯, 우리 두 번째 고향이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삼두연합은 침묵으로 마라아드의 말에 답했지만, 얼굴과 육신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지도자들이 이성과는 달리 자신에게 동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불안한 느낌은 떨칠 수 없었고, 구원자 역시 그 느낌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그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예언자님께서 말씀하셔야 한다. 우리의 결의를 축복해야 한다.'



"일주일 후, 엑소다르의 위상 피스톤을 시험 가동합니다. 그 때까지 예언자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제로스를 떠날 것입니다!"






* * *







"배움은 어떠하냐, 안두인? 빛을 더 이해하게 되었니?"



몇 달 동안, 왕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관심에 감사하고, 아제로스 전체에서 가장 빛에 가까운 존재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였다. 하지만 지금, 벨렌의 느긋하고 나직한 질문이 머릿속에 메아리치자, 분노가 차올랐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시나요?" 안두인이 물었다.



"밖에는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고 있단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상냥한 말투였지만,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날이 숨어 있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길이다."



"대체 '길'이라는 게 뭔가요? 멀리 떨어진 외딴 세계에서의 전쟁인가요? 예언자님은 이곳에 필요해요. 바로 지금. 그래서 대격변에 대해 경고하지 않으신 건가요? 알아채지 못할 만큼 보잘것없는 일이었나요? 예언자님께서 보시기에 우린 모두 벌레일 뿐인가요? 아니면, 장기 말인가요?"



마지막으로 누군가 예언자에게 반발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는 빙글 돌아 왕자를 마주봤고, 인간들을 대할 때면 종종 그렇듯 깜짝 놀랐다. 아이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성인이 되고 있었고, 그에게 던진 말에는 그런 성인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안두인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세계는 '변화'했다.



예언자의 앞에 선 것은 왕자가 아니라 무장한 전사였다. 판금 투구와 가슴 방어구는 빛 그 자체의 정수로 빛나고 있었다. 방어구와 같은 물질로 벼려낸 검을 들고, 전사는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다른 세계의 모습인지, 아니면 아제로스의 모습인지, 벨렌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검은 하늘에서 아제로스의 여러 종족들로 이루어진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블러드 엘프, 오크, 트롤, 타우렌, 심지어 저주 받은 언데드와 교활한 고블린까지, 각종 비행 탈것을 타고 있었다. 바라보는 벨렌의 눈을 아프게 할 만큼 강한 힘으로 빛나는 마법의 무기와 방어구로 무장하고 있었다. 호드 군단 곁에서, 최초 얼라이언스의 구성원었던 고대의 나이트 엘프와 함께 인간, 드워프, 노움이, 그리고 변신하는 늑대인간까지 함께 날았다. 벨렌의 동족 드레나이도 이세계의 금속 방어구로 무장하고 수정 철퇴와 검을 들고 군단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얼라이언스와 호드는 혼자가 아니었다.



용들이 대형을 이뤄 휩쓸고 치솟았다. 이들이 뒤덮은 하늘은 마치 화려하고 거대한 파충류의 날개 같았다. 이들은 물리적으로 방대한 크기와 막대한 숫자를 바탕으로 수평선을 뒤덮었고, 용들이 도전의 함성을 내뿜었을 때는 벨렌이 서있는 땅과 함께 온 우주까지 흔들렸다.



하지만, 벨렌에게 가장 큰 충격은 용군단 너머에서 비행하는 존재였다. 세계가 어떻게 견뎌냈을지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루가 전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빛의 존재가 지닌 힘은 벨렌의 가슴에 희망을 채웠다. 홀로 외로이 견뎌야 했던 수백 년의 세월을 잊게 했다. 아무리 끔찍한 어둠이라도 이런 세계를 지배할 수가 있겠느냐며, 벨렌은 절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순간 어둠이 내렸다.



광대하고 공허한 어둠은 접촉한 모든 빛을 삼켰다. 벨렌은 그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다가 결국에는 자기 자신까지 집어삼키고, 세상 너머의 거대한 어둠까지도 갉아먹으며, 가슴을 울리는 교향곡과 시선을 사로잡는 석양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의미를 없앨 것임을 알았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군단은 어둠을 향해 전진했다. 그리고 빛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예언자의 앞에는 그저 인간 어린아이가 서있을 뿐이었다. 크고 열정적인 눈으로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그에게 늘어놓았다.



예언자는 안두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의 마음은 빛을 부여잡고, 조금 저 그가 보았던 환영의 가닥을 붙잡으려 했다. 깨어진 가능성 속으로 뻗은 길을 보려 했다. 그는 억지로 대격변 직전의 몇 주를 떠올렸다. 그는 왕자가 방을 떠나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 * *







피난민들은 일주일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드레나이는 꽤나 분주했다. 사랑하는 비행선을 시험 가동할 준비를 하고, 예언자의 침묵에 대해 걱정했다. 피난민들은 드레나이의 활동이 증가했음을, 그리고 뭔가 이상한 조짐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음을 느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전혀 구할 수 없자, 이들은 더욱 음침한 생각에 잠겼고, 근거 없는 소문만이 무성했다. 지금까지 드레나이의 친절했던 모습을 상기시키는 이들도 있었지만, 필멸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능적으로 의심하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자신들을 보호하는 이들의 발굽과 푸른 피부가, 오히려 보급품과 치유보다 더 큰 문제로 느껴졌다. 하늘안개 섬의 조용한 어둠 속에 보호받으며 안전하게 누워 있는 이들은, 도움을 구하던 드레나이가 다른 얼라이언스 진영으로 피난했을 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엑소다르라는 이름의 거대한 구조물이 웅웅거리며 진동을 시작했을 때, 주위의 대기가 전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을 때, 피난민들의 본능은 그 지성이 알아채지 못한 것을 느꼈다. 함선이 움직이고 있었다.



'드레나이가 떠난다!' 많은 사람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고, 이 생각이 난민촌을 오염시켰다. '놈들이 예언자를 데려간다!'



보이지 않는 예언자는 피나민들의 구원자였다. 대격변의 공포를 막아낼 수호부였다. 폭도들이 늘 그렇듯, 이들 중에는 지도자가 한 명도 없었고, 공포와 걱정이 끓어올라 행동으로 폭발한 시점이 언제였는지 명확히 지적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난민촌의 모두가 무모하게 엑소다르를 향해 돌진했다.






* * *







시대의 부름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지루하게 반복되지 않고 매일 새로워지는 도전, 그것도 슬픔으로 결말을 맺어야 하는 그런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벨렌이었던, 이제 예언자이자 힘, 신화, 추상이 된 존재에게 있어 가장 무거운 짐은 바로 홀로 이해하는 이의 외로움이었다. 이미 본 것을 보지 않은 것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피로, 어느 하루도 확신할 수 없는 삶은 한때 그의 형제였던 자가 그에게 대항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수많은 세계에 죽음을 불러오는 것도 이제는 지겹지 않더냐?' 벨렌은 잃어버린 친구, 킬제덴에게 묻고 싶었다. '네 영혼의 어둠 속에서, 네가 내린 선택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단 말이냐?'



하지만 이런 것도 아주 오래 전의 걱정거리이자 고대의 사색이었다.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미래에서, 그는 아서스나 넬쥴보다 더 끔찍한 다음 리치 왕이 얼어붙은 왕좌에서 일어나, 수천의 해골 전사들과 함께 이 땅을 휩쓰는 모습을 봤다. 불타는 군단이 돌아왔을 때, 이 땅은 이미 죽은 뒤였고, 악마들은 죽음에서 되살아난 드레나이들을 비웃으며 가지고 놀았다. 우주를 가로질러 도망친 벨렌의 노력을 비웃으려는 짓이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대지의 수호자, 그 파괴자가 세계를 불태우고 자신의 아이들, 검은용군단의 죽음을 떠올리며 자신의 이상 심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세계에 종말을 불러오려는 것을 보았다.



'제발...' 그는 빛에 애원했다. '제게 길을 보여주소서.'






* * *







떼를 지은 성난 군중은 무리 특유의 열의 때문에 지성을 상실했다. 드레나이는 이들을 달래려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보가 울리고, 성기사와 구원자, 사제, 마법사들이 이들 성난 폭도를 막아내려 했을 때, 비극적이지만 예측 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막아내려는 자들은 선택이 불가능한 문제에 직면했다. 열등한 적의 손에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상대방을 제압하고 밀어낼 것인가, 아니면 죽이고 싶지 않은 동맹이지만 처단할 것인가. 구원자 롬나르가 자신의 실험이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 확인하려고 관문에 다가섰을 때, 폭도의 해일이 그를 덮쳤다. 다른 드레나이들이 황급히 그를 끌어내서 안전선 뒤로 이송했지만, 그는 이미 성난 군중의 손에 위중한 부상을 입은 후였다. 전쟁에서는 진심으로 싸우든가, 아니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음을 드레나이는 인정해야 했다.



롬나르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마라아드는 언데드와의 전투를 떠올렸고, 이제 그의 수정 망치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수준을 넘어, 침입자를 무시무시한 힘으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가 자비의 끈을 끊어내자, 다른 드레나이들도 그를 따랐다. 그리고 학살의 서막을 피난민들의 피로 써 내려갔다.






* * *







"예언자님! 이리 와보세요! 어서요!" 안두인은 공중에 뜬 벨렌의 등을 향해 외쳤다. 소년의 목소리에 담긴 공포가 그의 환영들을 뚫고 벨렌에게 도달했고, 벨렌은 억지로 주의를 현재로 돌리며, 뒤로 돌아 제자를 마주봤다.



"무슨 일이지?" 나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벨렌이 물었다.



"피난민들이 엑소다르로 몰려들고 있어요. 드레나이가 그들을 공격하고 있고요! 무고한 이들을 공격한다고요!"



벨렌은 그걸 느꼈다. 길. 두 개의 갈림길이 있었고, 소년이 자신을 한 쪽으로 이끄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길의 끝에는 어둠이 있었다. 작은 선택들에 의해 이렇게 많은 것이 변화할 수 있다는, 그런 책임의 무게... 그렇다면 이것이 그가 앞서 보았던 환영들의 의미였을까? 황야에서 벨렌을 이끌어낼 이정표였을까? 이 아이와 함께 뻗은 길로 빛을 이끌 수 있게?



"저 밖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예언자님의 전쟁이 무슨 상관인가요?" 소년이 소리쳤다. 그리고 앞서의 꿈을 되새기며, 그는 말했다. "삶은, 하나하나 모두가 우주라고요!"



'나는 이렇게나 길을 잃었었나?' 벨렌은 생각했다. '필멸자 소년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만큼?'



그리고 자신의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답이 들려왔다. 빛의 가르침은 어느 곳으로부터 오든 축복이리니.



"가겠다." 벨렌은 말했다.






* * *







전투 중인 양측은 다른 모든 문제를 지워버린 급박한 투쟁에 얽혀 있었다. 피난민들은 자신들이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 되돌릴 수는 없는 상태였다. 그들은 살아 남기 위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싸웠다. 드레나이는 자신들의 행동, 즉 아군일 뿐 아니라 자신들보다 약한 이들을 해치는 행위의 끔찍한 공포 때문에, 비극적이게도 자신들을 향한 분노에 빠져들었다. 대학살을 막아내는 것은, 어지간한 일을 통해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벨렌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었다.



세계가 빛에 휩싸이며 성난 폭도와 방어군 모두의 눈을 멀게 했다. 룬 문자 같기도 하고 기하학적인 문양 같기도 한, 마치 폭발하는 태양 같은 빛무리 안에 흐릿한 형체가 떠올랐다. 예언자의 수정이 그의 곁에서 빛을 뿜고, 그의 목소리가 천지를 울리자, 싸움을 벌이던 자들 중 일부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만!"



드레나이는 모든 공격을 멈췄다. 대부분은 마음을 놓았지만, 그 중 일부는 공포에 질려 무기를 땅에 떨어뜨려야 했다. 피난민들은 전설 속의 예언자가 현실적인 존재로서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몸이 굳어버렸다.



벨렌은 서서히 땅으로 내려와, 하늘안개 섬의 피로 물든 토양 몇 센티미터 위까지 다가왔다.



"이것이 우리가 형제를 대하는 방식인가?" 벨렌은 슬픔에 잠겨 동족에게 물었다. 그의 실망스러운 목소리를 들은 드레나이 중에는 수치심에 눈물을 흘리는 이도 많았다. 마라아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너희는, 우리의 도움과 친절한 환대를 즐기는 너희는 아무런 이유 없이 친구를 공격해야 했나?" 그와 같은 영원의 눈동자에 서린 비난을 견뎌낼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예언자는 진흙과 피투성이의 짓밟힌 대지에 발굽을 딛고 내려섰다.



예언자의 로브 끝자락이 진흙으로 더러워지는 모습을 본 드레나이들은 하나가 된 듯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벨렌은 쓰러진 이 중 하나 곁으로 다가가, 더러운 땅에 무릎을 꿇고 부서진 육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으깨진 가슴에 닿은 그의 한쪽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수정 망치의 낯익은 흔적을 어루만지며 상처를 씻었다. 그 인간은 치명적인 부상에서 회복되어 눈을 떴다.



'안두인이 옳았다.' 벨렌이 온 힘을 쏟아 모든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우주에 어떤 희망이 있겠는가? 숨쉬는 모든 것을 희생한다면 드레나이의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벨렌은 일어섰다. 더러워진 로브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 자신의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아제로스의 필멸자들을 향해, 우리의 동맹을 향해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대격변으로 부서진 세계를 치유하는 임무를 도울 것이다."



마라아드가 말했다. 그럴 수 있는 자는 그밖에 없었다.



"엑소다르가 마침내 복원되었습니다, 예언자님. 이제 불타는 군단과의 전쟁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웃랜드로 돌아가 피난 중 우리의 고향이었던 땅을 치유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뜻이 있다." 예언자가 답했다. "하지만 이 말만은 하고 싶구나. 우리의 전쟁은 모든 곳에서 벌어진다. 모든 행위와 숨결 속에서. 우리는 이 세계의 모두가 힘을 모을 수 있게 준비시켜야 한다. 악에 맞서기 위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이런 봉사를 통해, 모두를 일깨워 어둠의 세력에 맞설 궁극의 연합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종족들의 속으로 뛰어들어라. 대격변으로 겪은 고통을 보살펴라. 미래를 대비하여 강한 존재가 될 수 있게 도와줘라."



다른 드레나이는 예언자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고, 부상당한 피난민들에게 다가갔다. 안두인은 자신의 재능을 그들의 선한 행동에 보탰고, 벨렌까지도 부상자를 치유하고 다독였다. 왕자가 벌써 어떤 존재로 자라나고 있는지, 벨렌은 놀란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엑소다르는 드레나이에게 하나의 기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존재였다. 다른 종족들은 이해하지 못할 형제였다. 그리고 그 형제의 고통이 치유되었고, 그 정수가 회복되었다. 예언자는 동족 전체와 함께 이 승리에 기뻐했다.



피난민들은 암멘 골짜기 주위의 언덕에 서서히 모여들어 논의를 계속했고, 결국에는 자신의 동족과 함께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벨렌의 극적인 등장에 감동한 인간들 중에는 사제가 되기를 원하는 이도 많았고, 나머지는 모두 데스윙의 파괴를 이겨내고 있는 스톰윈드에 자신의 힘을 보태려 했다. 드레나이와의 생활이 어땠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 피난민들은 남은 여생 내내, 예언자를 만나고 대격변을 이겨낼 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답할 것이었다.



그 답은 봉사였다.



하지만 피난민들에 대한 비극적인 폭력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바로 영원의 존재 자신과 언젠가 왕이 될 인간 소년이었다. 안두인이 스승을 찾아왔을 때, 예언자는 그를 마주보고 갈라진 발굽으로 땅을 딛고 서 있었다.



"나를 깨워 이 길로 이끌어 줘서 고맙다. 대격변에 대해 왜 경고하지 않았냐고 물었었지? 나는 내 안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췄던 탓에...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밖에 지나치게 집중했던 탓에 대격변이 가져올 위협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현재의 세계에 사는 개인들과 그들의 필요를 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래서 빛의 등불이 내게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의 살아 있는 존재들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미래의 모든 갈림길을 어떻게 여행할 수 있겠느냐?"



"너는 언젠가 위대한 사제가 될 것이다, 안두인 왕자. 그리고 현명한 왕이 될 것이다."



안두인은 아버지가 이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