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아크는 떨어지고 있었다. 가늠할 수 없이 두꺼운 구름과 비의 층을 뚫고 떨어져 내리는 동안, 지면은 여전히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었다. 주위 하늘엔 용이 가득했다. 피처럼 붉은 비늘과 녹아내린 금빛 눈을 지닌, 영원한 폭풍 같은 진홍빛 유령이었다. 코아크는 용들의 끓어오르는 증오가 오크인 자신의 몸을 뒤흔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용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올리고, 용아귀 부족의 권위를 담아 소리쳤다. "내게 복종해!" 하지만 그 목소리는 공포와 의심으로 얼룩져 있었다.


"안 돼!" 용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포효했다. 그 무수히 많은 그림자가 얽히고 뭉쳐, 하늘보다 더 큰 하나가 되었다. 번개가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코아크의 눈에 멀리 그림 바톨이 보였다. 한때 그가 집이라 불렀던 곳은 이제 연기가 피어오르는 폐허였다.


"코아크!" 누군가 소리쳤다.


용의 숨결이 거대한 불길을 낳고, 하늘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폭풍 구름이 불타 사라지고 화염이 온 세계를 집어삼키는 사이, 코아크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갑자기, 아무런 경고 없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졌고, 어느새 용서를 모르는 대지가 그를 맞이했다...


"코아크!"


그는 충돌하는 순간 깨어났다. 폭발의 메아리가 여전히 귓속에 울렸다. 그의 밑에는 매끈하게 닦아 윤을 낸 갑판이, 위에는 고블린 비행선의 둥그스름한 풍선이 있었다. 비행선은 타오르는 불지옥이었고, 선원들은 비행선을 추락시키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뛰었다.


"배를 버려라!" 선장이 비명을 질렀다.


코아크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깊게 난 상처에서 흐른 피가 이마를 지나 흘러내렸다. "얼라이언스가..." 지친 목소리였다. 선체 너머를 바라보자, 비취 숲 위에 높게 걸린 구름 속으로 적 함선이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삐걱거리며 뒤틀리는 금속의 비명 소리와 함께, 비행선의 육중한 선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우현 뱃머리 너머로 안개장막 바다가 눈에 보이자, 코아크는 서둘러 무엇이라도 붙잡으려고 버둥거렸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폭발이 일어났고, 그는 난간을 넘어 공중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선장의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묻혀 잦아들었다.


***



보슬비가 내리고 바닷바람이 살랑거리며 그의 귀에 속삭일 때, 코아크는 해안가로 밀려 올라왔다. 다리가 끈질기게 욱신거렸다. 물살이 그를 바위에 내던졌을 때 다친 곳이었다. 모래 위에 피를 흘리며 누워, 그는 헬스크림이 코아크를 비롯한 병사들에게 "이 신대륙을 붉게 물들여라!"라고 명령하면서 지금과 같은 일을 생각했었을지 궁금했다.


그가 밀려온 곳은 작은 섬이었다. 봉우리 하나가 섬 중앙에서 솟아올라 하늘 높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주위엔 온통 비행선의 불타는 잔해와 거기서 나온 폐기물들이 해안을 따라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바다 위, 한때는 그의 동료였던 그을린 시신들과 함께 떠 있었다.


'호드를 위하여.'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이 코아크에게 정말로 무언가를 의미하던 때도 있었다. 애써 일어서려 하자 다리의 고통이 확 타올랐다.


간이 목발에 기대어, 코아크는 절뚝거리며 생존자를 찾아 내륙으로 향했다. 비행선의 파괴된 연료 저장고에서 솟아나오는 매캐한 연기에 눈이 따갑고 가슴이 콱 막혔다. 엉망이 된 비행선 선체의 일부를 빙 돌아 가면서 그는 연기에 질식할 뻔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진홍빛 비늘이 피에 젖어 반짝이는 무시무시한 운룡이 나타났다.


코아크는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다친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운룡은 봉우리 아랫 부분의 납작한 돌에 지어 놓은 둥지에 내려앉아 있었고, 몸에는 온통 화상과 멍이 가득했다. 용은 커다란 머리를 들어올리고 코아크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가만히 있어..." 코아크는 최대한 달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운룡은 십여 미터 길이에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졌고, 거대한 아가리로 코아크를 둘로 찢어 놓는 동시에 그 커다란 앞발로 그의 몸통을 갈비뼈째 구겨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운룡은 움직이지 않았고, 코아크는 그것이 죽어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는 둥지 주위를 둘러싼 뒤틀린 강철과 불탄 나무를 훑어봤다.


'우리가 이런 거야.' 그는 생각했다.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서서히, 마치 그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운룡은 또아리를 풀었다. 둥지 중앙에는 코아크의 몸통만 한 알이 하나 있었다. 흠도 다친 곳도 하나 없는, 그 반짝이는 껍질은 잘 연마한 석류석 같았다. 운룡은 부드럽게 알을 쓰다듬었다. 무시무시한 외모와는 사뭇 다른 상냥한 모습이었다. 끔찍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지만, 알을 보호하려고 이 자리에 남았던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그 모습에 코아크는 온몸 가득 분노를 느꼈다.


"네 희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네 새끼는 버림받아 홀로 남은 채 어차피 죽고 말 테니까." 고통의 화살이 다시 한 번 다리를 훑고 지나가,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피가 강물처럼 흘러나와 발 아래 땅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함께 죽고 말겠지.'


운룡은 꼬리를 들어올려 코아크의 손목에 감고, 그를 둥지 쪽으로 끈질기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의 곁으로 기어와서는 뒤쪽에서 떠밀었다. 어느새 그는 알 앞에 서 있었다.


'나더러 이걸 보살펴 주라는 건가? 내가?'


"안 돼." 코아크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둘 사이의 공간은 마치 폭풍을 앞둔 밤처럼 무겁고 끈적였다. 알을 만지자, 따끔한 충격이 마치 뱀처럼 그의 팔을 따라 올라왔다. 손바닥 아래로 알의 떨림이 느껴졌다. 처음엔 미약했지만, 곧 떨림이 너무 강해져 코아크도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야 했다.


갑자기 알의 윗부분이 폭발하며 깨진 알 껍질이 코아크에게 쏟아져 내렸다. 그 틈으로 환하게 빛을 발하는 붉은 연기가 피어나와 마치 안개처럼 땅 위를 흘렀고, 알에서는 반짝이는 아기 운룡이 나타났다. 홍옥 같은 비늘과 청옥 같은 눈이 반짝였다. 운룡의 눈은 깊고 깊은 액체 같아서, 마치 깊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새끼 운룡은 코아크와 눈을 맞추고 가만히 바라봤다. 코아크는 손을 뻗었다. 새끼 운룡은 그를 향해 기어나와, 그 자그마한 주둥이로 그의 손바닥을 물었다. 그는 피하지 않고 새끼 운룡이 마음 편히 그의 팔에 몸을 휘감을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어미가 그를 바라보는 모습이, 그 얼굴에 선한 슬픔이 눈에 박혔다. 어미는 마지막으로 코아크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눈도 깜빡이지 않는 그 시선에 코아크는 약해졌다. 그리고 운룡은 눈을 감았다. 힘겨운 마지막 호흡으로 그 몸이 한 번 들썩이다가, 마침내 가만히 멈추었다. 새끼 운룡이 어미를 바라봤고, 고통스러운 울음 소리를 들은 코아크는 새끼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새끼 운룡이 세상을 떠난 어미를 향해 쭈빗쭈빗 다가가 애처롭게 코를 부비며 어미의 그림자 안에서 똬리를 트는 모습을, 코아크는 묵묵히 지켜봤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코아크는 온 힘을 다해 자신과 새끼 운룡을 지키며 구조대를 기다렸다. 하지만 어느덧 나즈그림 장군이 구조대를 보낼 생각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피어났다. 그래, 왜 구조대를 보내겠는가? 헬스크림에게 오크 하나의 목숨 같은 건 알 바가 아니었다. 용아귀 부족에게 용 한 마리의 목숨 따위는 알 바가 아닌 것처럼. 코아크의 목숨은 오로지 자기 손에 달려 있었다.


내리는 비로 충당할 수 있는 물은 한계가 있었다. 또 아무리 설탕 송사리를 잡아도, 운룡의 게걸스러운 식욕을 채울 수는 없었다. 다친 다리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고, 이 새끼 운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5일째 되던 날 비가 그쳤다. 구조대에 대한 코아크의 희망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새끼 운룡이 그 곁에서 추위에 떨며 앉아 있던 때, 환하게 개어가는 하늘에서 두 형체가 눈에 띄었다. 다 자란 운룡 두 마리가 편안한 모습으로 높이 솟은 봉우리 주위를 날았다. 각각의 등에는 판다렌 기수가 타고 있었다. 둘은 능숙하게 산봉우리 주위를 선회하다가, 숨이 턱 막히는 속도로 비취 숲의 절벽으로 돌아갔다. 몇 주 전 이곳 원주민 중 하나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가 코아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운룡단'.


***



바람이 몰아치는 비취 숲 절벽이 안개장막 바다 위로 높게 솟았다. 코아크와 새끼 운룡은, 비행선의 부서진 선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숲을 향한 가파르고 좁은 길을 힘겹게 걸어가는 중이었다. 코아크의 다리는 묵직한 통증과 날카로운 고통으로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고통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닳아 해진 줄로 묶어 놓은 운룡이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린다는 사실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만히 좀 있어라." 코아크는 씩씩댔다. 기진맥진한 기색이 그의 목소리에 묻어났다. "곧 도착할 거야. 그러면 운룡단이 알아서 하겠지."


호드의 전초 부대가 판다리아 해안에 도착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코아크는 이미 운룡단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었다. 흉포한 야수의 등에 올라탄 막강한 전사들, 즉 운룡 기수들은 정말 바람처럼 하늘에서 전장으로 날아들어 폭풍과 하늘의 힘으로 그들을 공격했다. 코아크는 그들을 만나고 싶다는 비밀스러운 욕망을 감추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 그 힘을 직접 보고, 용아귀의 힘에 보태고 싶었다.


물론, 코아크도 용아귀 부족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았다. 붉은용군단이 그림 바톨을 파괴했을 때 그는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부족의 다른 이들이 황혼의 고원으로 달아났을 때에도 너무 약해서 얼라이언스에게 붙잡혀야 했던 극소수 인원 중 하나였다. 그가 자신의 부족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모두 제2차 대전쟁의 참전 용사들이 들려준 이야기 속 내용과, 휴식이라고는 없는 그의 밤에 찾아오는 꿈 속에서 본 것들이었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용을 뜻대로 다스려 보지 못했고, 지금 언덕을 끌고 올라가는 고집 센 새끼 운룡 역시 꽤나 골치 아픈 짐이 될 것만 같았다.


운룡단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전사들일 거야. 이렇게 사악한 야수를 길들이다니...' 코아크는 곰곰히 생각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코아크는 잠시 동안 언덕을 잘못 올라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무쇠와 강철로 이루어진 요새와, 방어구를 차려입고 전쟁 준비를 마친 운룡에 둘러싸인 강대한 성채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나무와 돌로 이루어진 소박한 초가집과, 진창과 건초 더미에 둘러싸인 시원한 정자였다.


"여기일 리가 없어." 그는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가 새끼 운룡을 데리고 초가집 모퉁이를 지나가는 순간, 온갖 크기와 색의 운룡이 그를 반겼다. 몇몇은 활짝 열린 우리에서 둥실 떠돌며 솔질을 받거나 먹이를 먹었다. 또 몇몇은 오후 산책을 거니는 일행 곁을 차분히 따랐다. 몇몇 새끼 운룡은 잔잔한 시냇가에서 평온하게 명상하는 판다렌의 품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코아크는 완전히 당황했다. 전설 속 전사들은 어디에 있지?


"아, 손님이군!" 뒤에서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로 돌아선 코아크는 나이 지긋한 판다렌이 정자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봤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털은 희끗희끗하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그 눈에는 젊음이 반짝였다. 그녀와 함께 판다렌 몇이 나타났고, 모두들 서로 다른 색의 운룡을 데리고 있었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 정중히 인사했다.


"우리 마을에 잘 왔네, 여행자여."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안리 장로이고, 우리는 운룡단이라고 하네."


"괜찮으십니까?" 그녀와 함께 나타난 판다렌 중 하나가 물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군요."


"오, 이 꼬마 친구는 누구인가요?" 다른 판다렌이 활달한 목소리로 물었다.


새끼 운룡은 코아크의 다리 뒤로 물러나, 주위 판다렌들의 시선을 피했다. 코아크는 옆으로 비켜서 새끼 운룡을 내보이고는, 판다렌들이 여기저기서 운룡을 달래고 불러대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리둥절한 마음 속을 꽉 채운 안개를 떨쳐내려 애썼다.


"데리고 계시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밧줄 한쪽 끝을 안리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난 괜찮지 않소. 부상을 당한 터라 가장 가까운 호드 전초기지로의 이동 수단이 필요하오. 혹시 여러분이 제공해줄 수 있다면, 신세를 좀 지고 싶소."


안리는 생각에 잠긴 채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네."


"우리의 갈등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거로군." 코아크는 목소리에 스며나오는 경멸의 기색을 애써 억누르며, 목숨을 잃은 어미 운룡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그렇다면 나를 새벽의 꽃에라도 데려다 주시-"


"아니," 안리가 말을 끊었다. "이 운룡을 그냥 맡기고 떠날 수는 없다는 뜻이네."


코아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판다렌?"


"자네한테 애정이 각별한 모양이야." 그녀는 차분하게 답했다. "알에서 깰 때 자네가 지켜준 모양이군. 그렇다면 자네가 이 아이를 키워야 하네."


그녀는 코아크에게 한 걸음 다가서서는, 그의 손에 밧줄을 쥐어주고 다시 그걸 그의 가슴에 안겼다. 운룡단의 판다렌들이 그를 바라보며, 각자의 운룡이 마치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듯 비늘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코아크는 실망을 감추지 않고 그들을 바라봤다. 운룡단은 위대한 전사여야 했다. 하지만 이곳은 보육 시설일 뿐이다. 그가 이런 곳에 몸담을 일은 없다.


"그럴 수 없소." 그는 오만하게 말했다.


코아크는 밧줄을 땅에 떨어뜨리고 돌아서 떠나려 했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갑자기 고통이 다리를 꿰뚫었다. 목발에 몸을 기대며, 코아크는 한쪽 무릎을 꿇고 다친 다리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 때 무언가 그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날 새벽의 꽃에 데려다 주지 않겠다면..." 코아크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자 그의 곁에는 판다렌이 아니라 새끼 운룡이 있었다. 그 자그마한 꼬리로 그의 팔목을 붙잡고, 애원하는 눈길로 다른 이들을 향해 잡아끌었다.


운룡도 그가 떠나기를 원치 않았다.


코아크는 한 쌍의 기수가 머리 위 구름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구불구불하게 이리저리 회전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아슬아슬한 움직임을 자랑하며 경주를 했다. 운룡단은 코아크가 기대했던 것 같은 투사는 아니었지만, 제대로 하늘을 날 줄 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코아크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새끼 운룡을 바라봤을 때, 그는 짐이 아니라 기회를 보았다. 마침내 진정한 용아귀 오크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자신만의 전투 탈것을 길들이고, 그걸 타고 전장에 뛰어들어 하늘을 지배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다른 이들이 운룡에게 평화와 놀이를 가르치건 말건, 그는 자신의 운룡에게 전쟁을 가르칠 것이다.


"좋소." 그가 말했다. 안리에게 하는 말이자 자신의 새끼 운룡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운룡을 붙잡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태양빛이 반사된 비늘은, 그의 부족이 오래 전 지배했던 용과 같은 진홍빛으로 반짝였다.


'용아귀 부족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해 주겠다.' 코아크가 맹세했다.


'내 운룡을 복종시키겠다.'


***



훈련을 시작한 처음 한 주는 코아크의 기대와 많이 달랐다. 그의 운룡은 제멋대로에 고집쟁이였고, 다른 이들이 보살피는 새끼 운룡들보다도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언제나 코아크가 주는 먹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을 물어뜯고 집어삼켰고, 그를 따라오라고 부르면 늘 주둥이를 덜컥거리며 다른 새끼 운룡의 뒤를 쫓았다. 운룡은 날쌔고 기민했고, 코아크의 다친 다리가 계속해서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항상 붉어진 얼굴로 고함을 질러댈 뿐이었고, 그 모습을 운룡단의 다른 수련생들은 우려와 즐거움이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판다렌들의 보살핌 덕분에 그의 다리는 회복되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요란한 말썽장이 야수를 타고 비행하는 단체라면 부러진 뼈를 치료하는 기술도 남다른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운룡단과 함께 머문지 8일째 되던 날, 바다에 솟은 봉우리 위로 태양이 떠오른 후, 코아크는 왠지 새끼 운룡의 우리가 텅 비어 있음을 깨달았다. 울타리 옆에는 안리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오늘은 내 새끼 운룡이 일찍부터 말썽을 부리러 간 모양이군." 코아크는 투덜거렸다.


"아, 그렇지 않네." 안리가 설명했다. "오늘은 제노바가 자네 운룡을 보살필 걸세. 자, 나와 함께 산책이나 하세."


둘은 조용히 구불구불한 길을 걸었다. 안리는 도원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을 따라 그를 이끌었고, 군데군데 햇살이 드리우고 차분한 산들바람이 어루만지는 산책길은 바람봉 다리로 이어졌다. 그 이름에 어울리게, 다리는 바닷속에서부터 솟아나온 자연적으로 형성된 봉우리들을 연결했다. 아치를 그린 그 다리는 하나하나가 건축학적 경이에 가까웠고, 중력을 거부하고 쉴 새 없이 달려드는 바닷바람을 굳건히 견뎌낸 거대한 석조 예술품이었다. 다리는 운룡과도 비슷해 보였다. 나무와 돌을 깎아 만든 거대한 생물이 안개장막 바다 위를 구불구불 지나며 영원까지 비취 숲을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거대한 다리를 거의 다 지나간 지점에서, 안리는 그를 향해 돌아섰다.


"운룡에게 이름은 지어줬나, 코아크?" 그녀가 물었다.


"아니," 코아크가 답했다. "이름을 받을 자격이 될 때까지는 붙이지 않을 것이오. 그게 용아귀 부족의 방식이니까."


"우린 용아귀 부족이 아니야." 안리가 답했다. "그리고 우리 방식은 그들과 다르고."


코아크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나는 용아귀의 방식으로 하거나, 아니면 아예 하지 않겠소. 다른 길은 선택할 수 없소."
"자네에게는 꽤나 중요한 일인가 보군." 그녀가 말했다.


코아크는 잠시 멈춰 서서 말을 고른 후 다시 걸었다. "얼라이언스가 날 포로로 붙잡았을 때, 난 우리 부족에게서 떨어져야 했소. 대격변 이후에 부족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땐 내가 붙잡지 않았지."


"그건 왜지?" 안리가 물었다.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소." 코아크가 답했다. "난 사슬에 묶임으로써 나 자신과 용아귀 부족의 명예를 실추시킨 거요. 그러니 내 가치를 먼저 증명해 보이지 않고서, 내가 어떻게 다시 부족을 만날 수 있겠소?"


코아크는 안리에게서 돌아서 바다 건너 북쪽을 바라봤다. 동부 왕국 방향이었다. "나는 용아귀의 이름을 지녔지만 그에 걸맞은 행동은 하지 않았소. 내 운룡을 '우리의' 방식으로 길들이면 그걸 바꿀 수 있고, 그렇게 난 다시 부족과 함께하게 될 거요."


"그렇군." 안리는 중얼거렸다. 그들은 다리의 끝, 육지에서 가장 멀고 가장 높은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화려한 제단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 뒤로는 판다리아의 해안선과 너른 하늘과 대양 위로 구불거리는 다리, 그리고 옥룡사의 황금 탑이 어우러진 장관이 저 멀리 뽀얀 안개 너머로 펼쳐졌다.


코아크는 봉우리 가장자리이자 바다를 향한 길고 끔찍한 추락의 시작점에서 시선을 돌리려 애썼다.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가까스로 자신의 안에 뿌리내린 공포를 감출 수는 있었다.


"운룡단은," 안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천 년 전, 새벽의 꽃 출신의 지앙이라는 어린 소녀가 만들었네. 소녀는 다친 새끼 운룡을 발견하고 '로'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잘 보살펴서 건강하게 회복시켜 주었지.


"그 당시만 해도, 판다리아의 모든 종족은 운룡을 두려워 했네. 워낙 거칠고 공격적인 생물이라, 운룡에게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내놓고 장난을 치는 것과 같았거든. 모두들 지앙의 행동이 끔찍한 재앙을 낳을 거라고 생각했네."


"괴수를 길들이는 건 어린 소녀의 몫이 아니오." 코아크가 으르렁거렸다.


"아, 하지만 모두가 틀렸지." 안리가 말을 이었다. "잔달라 트롤이 판다렌 제국을 공격했을 때, 그리고 우리 병력이 지금 이곳과 비슷한 다리에서 패색이 짙어 있을 때, 지앙은 로의 등을 타고 나타나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네. 지앙과 로는 함께 하늘에서 박쥐기수를 제압하고, 다리 위에 선 트롤을 물어 난간 밖으로 던져 버렸지. 그 직후 지앙은 운룡단을 설립했고, 그 이래로 줄곧 판다렌은 운룡을 보면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진다네. "


코아크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이제 다들 소녀의 본보기를 따르는 거요? 운룡은 본디 사냥하고 살육하는 동물이오. 애정으로는 야수의 본성을 바꿀 수 없소. 전쟁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코아크, 이건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네." 안리는 다시 돌아서 그를 마주봤다. "운룡은 천성적으로 거칠고 격정적인 동물이네. 잘못 기른다면 결국에는 그런 동물로 성장하지. 하지만 운룡은 자네나 나와 마찬가지로 그 천성에 얽매여 있지 않네. 지앙이 로를 싸우게 만든 게 아니었어. 로가 싸우기로 '선택' 한 것이지. 지앙이 그를 신뢰하는 길을 '선택'하고, 애정으로 보살폈기 때문이야. 그게 우리가 소녀의 본보기를 따르는 이유라네. 우린 모두 자신의 모습을 선택하는 거야."


코아크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의 생명과 사지를 걸고 비행하는 기수가 고삐를 놓아 버리고, 용이 그의 뜻을 따를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 그건 미친 짓이다.


"흥미로운 생각이군." 오랜 침묵 끝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난 사슬이 선택보다는 더 효과적이라고 믿소."


"정말 그럴까?" 안리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다가, 봉우리 가장자리로 떨어졌다.


"안 돼!" 코아크는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다리의 통증은 잠시 잊혀졌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안리는 사라졌고, 남은 건 바람에 실려 춤추는 그녀의 웃음소리뿐이었다. 이상했다. 추락할 때 안리는 웃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웃고 있었다. 다리의 가장 가까운 아치 아래에서, 그녀는 자신의 흑마노 운룡에 올라탄 채 나타났다. 운룡은 코아크의 앞으로 다가와, 마치 액체로 이루어진 연기처럼 느긋하게 흔들리며 떠 있었다.


"미쳤소?!" 코아크가 외쳤다. "운룡이 당신을 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겠소?"


"강철과 쇠의 차이점이 뭔지 알고 있나? " 그녀가 차분히 물었다.


코아크는 당황했다. '이 여잔 제 정신이 아니야.'


그리고 답했다. "강철이 더 강하오. 실력 있는 전사라면 누구나 그 사실을 알지."


안리의 입꼬리에 신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군."


그녀는 운룡의 목에 손을 댔다. 그러자 운룡은 멀리 떨어진 해안선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은 찾을 수 있겠지, 코아크!" 그녀는 어깨 너머로 소리치며, 나타났을 때처럼 빠른 속도로 비취 숲을 향해 날았다. "옥룡이 자네를 인도하길!"


코아크는 다리 끝에서 목발에 기대 그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머리에는 바람이, 마음에는 생각이 가득했다.


***



"이런 일에 동의한 적 없어!" 코아크가 소리쳤다. "의도적으로 내 말을 곡해한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에이스가 물었다. "안리 장로님이 네가 우리 방식대로 훈련을 받는 데 동의했다고 하셨는데!"


에이스 롱포우는 운룡단의 다른 수련생들과는 달랐다. 다른 이들은 소박한 태도와 친근한 성품으로 늘 겸손한 모습을 보인 반면, 에이스는 좋은 비단 셔츠와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하기를 좋아했다. 기름을 바른 콧수염을 섬세하게 기르고, 머리에도 단단히 힘을 주고, 하늘 경주와 깜찍한 이성과의 관계에 있어 자신의 유능함을 자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코아크는 그의 활기 넘치는 태도가 꽤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운룡단의 모두가 에이스와 그가 닮은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리는 에이스를 코아크의 개인 지도자로 지정했고, 몇 주 동안이나 새끼 운룡의 보모 노릇을 한 끝에 코아크는 이제 진짜 훈련을 시작하고자 하는 열의가 넘쳤다.


하지만, 이건 그가 마음 속에 그리던 것이 아니었다.


"난 '훈련'을 하기로 동의했었는데." 코아크가 언성을 높였다. 그는 에이스가 가져온 가방에 손을 집어넣어 십여 개의 가죽 공 중에서 하나를 꺼냈다. "이건 애들 놀이잖아!"


"그러면 너희 둘한테 딱 맞겠네." 에이스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놀리다가 설명을 시작했다. "운룡단 기수는 모두 자기 운룡하고 공놀이를 해야 해. 서로의 움직임을 읽고, 운룡과 기수에게 꼭 필요한 상호간의 협력 관계를 구축해 주거든. 아주 중요한 교훈이라고!"


"멍청한 짓이야." 코아크는 비웃었다. "전투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생각을 하느라 단 한 순간만 지체해도 죽음에 이를 수 있어. 주인이 있고, 종이 있어야 해. '협력' 따위를 할 여유가 없다고."


"야, 코아크," 에이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한 번만 해 봐. 알았지?"


코아크는 코웃음을 치며 공과 새끼 운룡을 번갈아 바라봤다. 에이스가 그를 이곳, 운룡단으로부터 걸어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까지 끌고 나왔으니,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운룡의 주의를 끌기 위해 휘파람을 불며, 그는 운룡을 향해 공을 던졌다. 새끼 운룡은 공을 머리로 들이받아 코아크를 향해 튕겼다.


"거 봐." 에이스가 참견했다. "그렇게 나쁘지 않잖아. 안 그래?" 그는 운룡단의 본거지를 향해 돌아섰다. "이걸 스물 다섯 번 이상 해 봐. 물론 연속으로. 마을에서 보자고."


"스물 다섯 번?" 코아크는 으르렁댔다. 하지만 에이스는 이미 멀어지는 중이었다. 코아크와 가죽 공 가방, 그리고 그의 하루를 힘들게 만드는 게 장기인 새끼 운룡만 남기고.


"어서 끝내 버리자." 코아크는 투덜거리며 공을 다시 새끼 운룡에게 던졌다. 운룡은 빠르게 원을 그리며 돌아, 꼬리 측면으로 공을 때렸다. 돌아온 공은 코아크에게서 멀찌감치 빗나갔다. 너무 멀리 날아가는 바람에, 그가 붙잡으려 하자 아픈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고 말았다. 목발에 의지한 채 몸을 일으킨 후 들판 너머의 새끼 운룡을 바라보자, 그 녀석은 틀림없이 짓궂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 꼬맹이가...' 코아크는 생각했다. '일부러 그랬어!'


"너 지금 크게 실수한 거다." 코아크는 으스스하게 말했다. 새끼 운룡이 그를 유심히 바라보는 사이, 그는 가방에서 공을 또 하나 꺼냈다. 그는 공을 낮게 들고 엉덩이 뒤로 감췄다.


"어디," 그는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 나, 둘이서 시합을 한 번 해 보자."


코아크는 팔에 힘을 잔뜩 주고 새끼 운룡을 향해 강하고 빠르게 공을 던졌다. 운룡의 눈이 커지며 화들짝 비켜서자, 공은 커다란 쾅 소리와 함께 지면을 강타하고 먼지 구름을 자욱하게 피어 올렸다. 새끼 운룡은 그를 바라보며 끼익 소리를 냈고, 코아크는 껄걸 웃었다.


"그럴 줄 알았지!" 코아크는 소리쳤다. "다음 번에는 네 상대가 누구인지 잘 생각하는 게-"


새끼 운룡은 꼬리로 공을 휘감아 코아크의 가슴을 향해 총알 같은 속도로 집어던졌다. 펑 소리가 울리며 공이 가슴을 강타하자, 폐에서 공기가 다 빠져 나가는 동시에 그의 눈 앞에는 번쩍이며 꿈틀거리는 빛망울이 가득 나타났다.


'세상에,' 코아크는 숨을 헐떡이며 생각했다. '저 작은 게 어떻게 이렇게 강하지?'


다시 공을 쥐고 일어선 그는, 눈앞에 번쩍이는 별을 떨쳐내려 애쓰며 들판 너머를 노려봤다. 운룡도 마찬가지였고, 코아크는 그 녀석이 이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전투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코아크는 끌어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모아 공을 던졌다. 새끼 운룡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힘을 모아 공을 받아쳤다. 공은 포탄처럼 그에게 돌아왔다. 충돌 직전 코아크는 공을 받았고, 가죽이 손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주변 숲을 온통 울렸다. 그는 다시 새끼 운룡을 향해 공을 던졌고, 전투는 반복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코아크와 새끼 운룡 모두가 지쳐 버리자, 격정이 피로에 자리를 내줬다. 공을 이용해 복수하려는 생각은 사라지고 이제 둘은 건성으로 공을 주고받았다. 태양이 지고 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자, 둘은 그저 서로가 던진 공을 붙잡아 되던지는 일만 반복했다. 새끼 운룡은 이 놀이를 즐기는 것 같았고, 코아크가 공을 붙잡고 다시 던지지 않기로 결심하자 진심으로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만." 코아크가 말했다. 그는 난투극의 시작이었던 공을 향해 걸었다. 새끼 운룡이 멀리 비켜 던져버린 공이었다. "이제 뭐라도 좀 먹어야겠다."


공을 집어들려고 무릎을 꿇는 순간,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 너머로 돌아보자, 새끼 운룡이 가방을 끌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방끈을 입에 물고, 지친 몸을 힘겹게 끌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선 후, 새끼 운룡은 가방 입구를 젖혀 열었다.


그 행동에 깜짝 놀란 코아크는, "고마워," 하고 조용히 말했다.


코아크는 공을 가방에 넣고 닫았다. 새끼 운룡은 그의 팔에 몸을 감고 눈을 감았다. 운룡은 이내 잠이 들었고, 그 콧구멍에서 수증기가 서서히 피어 올랐다. 코아크는 잠깐 동안 조용히 운룡을 바라보다가,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운룡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며칠이 몇 주가 되고, 몇 주가 몇 달이 되었다. 판다리아의 계절은 변화가 크지 않았고, 코아크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운룡단에 머물렀는지 계산하기를 포기했다. 그의 운룡은 빠르게 자라, 이제는 처음 알에서 나올 때보다 열 배는 더 커져 있었다. 정수리에서는 길고 날카로운 상아빛 뿔이 솟아나왔고, 한때 매끈하고 둥글던 얼굴은 여위고 사나운 형태가 되고, 길고 여린 수염은 무시무시한 이빨 바로 위에서 흘러내렸다. 자그마하던 발톱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자라나 단단한 방어구도 넝마로 잘라낼 수 있게 되었다. 넓은 가시투성이 지느러미가 두껍고 무성한 갈기가 뒤덮은 긴 목을 장식하고, 홍옥색 비늘은 이제 어슴푸레한 진홍빛으로 짙어졌다.


코아크는 운룡이 성장하는 모습을 하루하루 지켜보았다. 그리고 가끔씩은 도원 내의 목가적인 생활에 익숙해 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상처도 나은지 오래인 지금, 그는 점점 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가 없어도 전쟁은 계속되었고, 그 소식은 시냇물처럼 판다리아를 흘러 그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호드는 크라사랑 밀림의 해안에 거점을 구축했고, 헬스크림의 요원들이 이 대륙에 묻힌 고대의 힘을 지닌 유물을 찾으며, 영원꽃 골짜기를 파헤치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었다. 볼진과 검은창 부족은 공개적으로 대족장에 대한 반란을 시작했고, 모두가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서 호드는 쪼개지고 있었다.


코아크는 용아귀 부족이 어느 쪽에 설지 알았다. 잴라 장군은 가로쉬의 지배 방식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용아귀 부족은 가로쉬와 마찬가지로 저항 세력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헬스크림을 위해 하늘을 날 것이다. 그리고 코아크가 그의 힘을 증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그가 하늘을 날아야 할 시간이었다. 비록 그것이 포로수용소에서 그를 지켜주고, 아무도 곁에 없을 때 헤어진 그의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던 바로 그 오크들과 싸워야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용아귀 부족은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다.' 코아크는 생각했다. '나도 그래야 해.'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은데." 에이스가 경고했다. "내가 보기엔 너도 네 운룡도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지금쯤이면 진정한 용아귀 오크는 동료들과 함께 하늘을 달리고 있어야 해." 코아크가 답했다. 그는 안장을 손에 들고 운룡단의 하늘 경주 결승선이 표시된 언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하!" 에이스는 낄낄대며 웃었다. "용아귀 친구들이 시합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있잖아, 네가 운룡을 탈 수 있으면, 내가 경주를 한 번 해 줄게."


"좋아." 코아크가 동의했다. 그 허세와 잘난 체와는 별개로, 에이스는 가끔씩 꽤 좋은 말동무가 되기도 했다.


조금은 힘겹게, 코아크는 언덕을 올랐다. 체중을 실으면 아직 다리가 아팠고, 언덕의 경사도 그렇게 만만한 편이 아니었다. 그는 막연히 카 솔트보일이 어떻게 매일 언덕 꼭대기로 수레를 끌고 올라오는지가 궁금해졌다.


나무 그늘에서 태연히 둥둥 떠 있는 운룡이 눈에 띄었다. 결승선 옆의 관객석과 언덕 주위에는 운룡단의 수련생들과 기수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노려보는 코아크의 시선을 느끼고, 에이스는 짐짓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녀석들에게 네가 운룡에 안장을 얹을 거라고 얘기했던 것도 같은데." 그는 소심하게 고백했다.


"상관없어." 코아크는 중얼거렸다. 너무 많은 이들이 그를 바라보고, 이리저리 재어보는 것 같았다. "심심하게 금방 끝날 테니까."


관중들을 무시하면서, 코아크는 운룡에게 다가갔다. 운룡은 고개를 들더니, 안장을 보고 의심스러운듯 눈을 가늘게 떴다. 운룡은 모든 면에서 자랐지만, 그 짙푸른 눈만은 그대로였다.


코아크는 안장을 운룡의 등에 얹으려 했지만, 용은 옆으로 슬쩍 비켜났다. "가만히 있어." 코아크가 말하며 다시 한 번 시도했지만, 이번엔 꼬리로 안장을 붙잡아 밀어냈다. 운룡은 코아크를 보며 혀를 내밀었고, 그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주위의 판다렌이 수근거리며, 그의 자부심을 상처 입힌 대가로 낄낄 웃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은 이제 끝이야." 코아크는 으르렁거렸다. "이게 우리가 훈련을 한 이유라고!"


그는 안장을 들어 다시 한 번 운룡의 등에 올려놓고, 손을 뻗어 녀석을 단단히 붙잡았다. 운룡은 큰 소리로 울면서 물러나 코아크를 넘어뜨렸다. 그는 다시 한 번 두 팔로 그 몸통을 단단히 붙잡고 안장의 끈을 채우려 했다.


운룡은 완강히 거부했다. 격렬하고 짜증스럽게 그를 밀쳐내고 꼬리로 주위의 나무를 때려 나무를 거의 송두리째 뽑아 놓았다. 코아크는 상황을 통제하려고 고군분투했지만, 운룡은 유연하고 강인했다.


"가만히 있으라고!" 그는 명령하며, 운룡의 단단한 등을 찰싹 때렸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상황이 격해지면서, 주위의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숨을 들이켰다." 코아크, 좀 살살 하는 게 좋겠어!" 떠들썩한 사이로 소리치는 에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코아크와 운룡은 씨름을 계속했고, 서로를 나무에 내던지고 주위 단상으로 굴러다녔다. 관중들은 재빨리 자리를 피해 언덕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아무리 애를 써도 코아크는 운룡의 등에 손을 뻗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운룡이 몸을 뒤틀자 그는 결승선의 바둑판 무늬 깃발이 묶인 막대에 격렬하게 부딪혔다. 그 순간 막대는 부러지며 조각났고, 밧줄과 깃발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코아크의 머리 속에는 온통 가까스로 회복된 다리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넘어질 때 다리는 그의 밑에 깔리고 말았다.


고통이 그를 꿰뚫었고, 코아크는 뜨거운 피가 볼까지 흘러내리며 한쪽 시야를 흐릿한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것을 느꼈다. 감히 저 짐승이 내게 거역하다니! 지금까지 어떻게 훈련을 시키고 보살펴 왔는데! 그는 떨어진 밧줄을 붙잡고 들어올린 후, 머리 위로부터 휘둘러 마치 채찍처럼 운룡의 얼굴 바로 옆을 때렸다.


"내게 복종해!" 그는 포효했다.


충격을 받은 모두의 침묵 속에 그의 말이 메아리쳤다. 갑자기 폭발한 그의 모습에 놀란 운룡은 움직이지 않고 그의 앞에서 몸을 웅크렸다. '좋아!' 코아크는 생각했다. '날 두려워하는 법을 깨달아라! 네 처지를 알고! 내게 복종하는 법을 배워!' 코아크는 긴 밧줄로 다시 한 번 공중을 때렸고, 운룡은 그가 다가오자 뒤로 물러났다. 코아크는 몹시 화가 났다. 그의 심장이 무겁게 쿵쿵 뛰는 소리가 귀에 가득했다.


그는 운룡의 등 위에 안장을 올리고 끈을 묶었다. 운룡은 애처롭게 울면서 버둥거렸다.


"내 말에 복종해!" 코아크가 거칠게 말했다. 그는 밧줄을 휘둘렀고, 이번에는 운룡의 비늘을 때렸다. 그 생물은 고통으로 울부짖었고, 생생하고 끔찍한 그 고통이 도원 가득 메아리쳤다.


'날 미워할 거야.'


코아크는 그 생각을 잠시 떨쳐버렸다. 물론 운룡은 그를 미워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고, 코아크는 상관하지 않았다. 용이 용아귀 부족을 미워한 것처럼, 그리고 그가 헬스크림을 미워하게 된 것처럼, 운룡도 그를 미워할 것이다. 모든 노예가 그 주인을 미워하는 것처럼. 코아크는 운룡의 뿔을 잡아당겨 그 고개를 돌렸다. 그 미움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채 이겨내겠다고 다짐하면서.


하지만 그 눈을 들여다봤을 때, 미움은 보이지 않았다. 배신감과 혼란이 가득한 가운데, 그 슬픔은 어찌나 깊은지 코아크가 익사할 것만 같았다. 길들여야 할 끔찍한 괴수가 아니라, 어미가 목숨을 바쳐 자신의 생명을 구한 날 목이 쉴 때까지 울던 새끼 운룡의 겁 먹은 얼굴이 보였다. 운룡의 눈에서 눈물이 보인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에야 그것이 자신의 눈물임을 깨달았다. 그의 분노가 목구멍에서 사라지고, 밧줄은 손에서 떨어졌다.


조상님들이시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그런..." 그는 더듬거렸다. "그게 아니..."


운룡의 끔찍한 포효에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뼛속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용은 깊은 숨을 들이쉬어 가슴과 목을 크게 부풀린 다음, 폭풍과도 같은 분노를 내뿜었다. 코아크가 엎드리는 순간 번개가 머리 위로 지나가며, 그의 머리카락을 태우고 빳빳이 일어나게 했다. 운룡은 나선 모양으로 회전하며 하늘로 올라가 그를 내려다봤다.


코아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조용히, 안장이 운룡의 등에서 미끄러져 내리고, 땅에 떨어져 수백 조각으로 부서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운룡은 몸을 돌려 바다를 향해 떠났다. 코아크는 떨리는 몸으로 일어섰다. 군중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 갑자기 수치스러운 감정이 온 몸을 뒤덮었고, 그는 애써 화를 내며 이를 감추려 했다.


"뭘 기대했소?" 그가 물었다. "뭘 기대했냐고?! 난 용아귀 오크야! 이게 우리 방식이라고! 이게 나라고!"


군중을 바라보다가, 그는 회색빛 머리와 젊은 눈동자를 발견했다. 가만히 선 안리의 눈동자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우린 모두 자신의 모습을 선택하는 거야.'


판다렌들은 그의 곁을 떠났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언덕길을 터벅터벅 내려갈 뿐이었다. 코아크의 실패가 먹구름처럼 결승선을 뒤덮었다. 에이스가 잠시 자리에 남아 기다렸지만, 안리가 앞발을 그의 어깨에 얹고 고개를 저었다. 결국 그 둘도 말 없이 떠나고, 코아크는 홀로 남았다.


그는 바다를 향해 돌아섰다. 운룡이 떠나간 곳이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았다. 끔찍했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모든 생물은 자신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심장이 산산이 깨어졌을 때, 어느 한 곳으로 가기 마련이었다.


그의 운룡은 집으로 가고 있었다.


***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비취 숲의 하늘을 검게 물들이고, 장대비가 바다로 쏟아져 내렸다. 운룡이 떠난 뒤로 몇 시간이 지나 밤이 찾아왔고, 코아크는 비에 옷이 젖어들면서 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다행히 몇 달 전에 숨겨둔 뗏목을 찾아냈는데, 그게 도둑의 손이나 자연의 힘에 사라지지 않은 것만도 기적이었다. 코아크는 자연의 힘에 크게 신경을 쓴느 편은 아니었지만, 뗏목이 섬에 도착한 후, 그 힘이 건방진 그를 처벌할 때만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과 비의 힘에 시달리면서, 코아크는 낡은 목발을 손에 들고 진흙탕을 터벅터벅 걸어, 운룡의 알을 발견했던 그 운명적인 밤의 행보를 되짚었다. 이내 그는 운룡을 만날 것이라고 짐작했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둥지의 돌은 코아크가 처음 나타났던 날과 마찬가지로 깨지고 부서져 있었다. 하지만 어미 운룡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코아크의 운룡은 둥지 중앙에 똬리를 틀고 앉아, 갈기에서 빗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코아크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운룡은 쉿 소리를 내며 둥지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코아크는 가슴이 아파지는 동시에 다시 한 번 수치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널 다치게 하려는 게 아냐!" 코아크는 쏟아지는 빗소리 위로 소리쳤다. 진심이었다. 그는 양팔을 벌리고 천천히 둥지로 다가갔다.


운룡은 그를 향해 울부짖으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를 지나쳐 높은 곳에 튀어나온 바위에 올라앉은 후 계속해서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코아크는 짜증이 난 듯 두 팔을 들어올리며 빗방울을 사방으로 튀겼다.


"아직도 그러는 거야?" 그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내 자존심 따위 다 포기하고 이렇게 널 데리러 와서, 용서를 구하겠다는데? 아직까지도 그렇게 버티는 거냐?" 그가 둥지 반대편으로 건너가자 목발이 떨어졌고, 바위에 부딪혀 챙 소리를 냈다. "왜 그렇게 못돼 먹은 거지? 명령만 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무조건 반항하고. 지금도 그래. 난 이 끔찍한 폭풍을 뚫고 널 찾아 왔는데! 진정한 용아귀 오크라면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아! 진정한 용아귀 부족이라면..." 하지만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빗줄기와 떨칠 수 없는 의심 때문에 그의 열기가 다 식어버렸다.


"진짜 용아귀 부족이라고,"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꼭 그게 뭔지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난 '용아귀 오크'가 아냐. 절대로 그렇게 될 일도 없고."


그는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고, 이 말은 떨어지는 빗소리에 섞여 둘 사이에 음울하게 머물렀다. 코아크는 갑자기 무척이나 피곤해졌다. 한껏 젖은 손은 쭈글쭈글해졌고, 머리카락은 머리에 착 달라붙었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일생의 고통을 차가운 밤 공기를 향해 내뱉었다. 그리고 비가 머리와 수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난 포로수용소에서 자랐어." 코아크가 침묵 속에서 말했다. "하지만 태어난 곳은 그림 바톨이었지. 아버지께서는 내가 언젠가 거대한 용의 등을 타고 날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어. 용아귀 부족이 하늘을 지배할 거라고, 그리고 나머지 세계가 그 뒤를 따를 거라고 하셨어."


목이 메어와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바로 그 용들이 들고 일어나 우리 부족을 산 채로 태워버릴 줄은 몰랐지. 우린 힘을 잃었고, 약했기 때문에 그걸 되찾지도 못했어."


"그 후에 인간이 나를 발견하고 사슬에 묶었어. 내가 우리 부족과 함께 달아날 힘이 없었기 때문이야. 노예 생활은 스랄이 수용소의 벽을 무너뜨리고 나서야 끝났지. 붉은용군단이 용아귀 부족에게 했던 짓과 똑같았어. 그래, 이게 세상의 법칙이야. 자유를 위해선 힘이 필요해. 약한 자는 노예가 될 뿐이야.


"이제 용아귀 부족은 헬스크림 거야." 이렇게 인정하는 것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중요한 자원과 군사적 지원을 모두 그에게 의존하고 있으니까. 그에게 거역하는 것은 부족이 파괴되는 것과 같아. 사슬을 볼 수는 없지만, 거기 있는 것만은 분명해. 그게 다 깨질 때까지 우린 모두 헬스크림의 명령을 따를 뿐이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 하나를 찾고 있어. 나 자신을 되찾을 힘..."


코아크는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쉬고, 폐에 공기가 모자라 타들어갈 때까지 숨을 내뱉었다. 그는 하늘을, 폭풍우를 몰고 온 구름을 올려다 보고, 쏟아지는 비를 바라봤다. 그는 지금 울고 있었다. 그의 부족이 파괴되었던 그 밤처럼 눈물이 쏟아졌고, 한편으로 그 당시의 영혼들이 그와 함께 울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머리 위로 뭔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들자 봉우리를 기어 내려와 그에게 다가오는 운룡의 모습이 보였다. 운룡은 그의 곁에 내려앉아, 똬리를 틀고 바람과 비를 피했다. 코아크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운룡의 머리에 놓고, 부드럽게 그 갈기를 어루만졌다. 운룡은 잠시 긴장하다가 몸의 힘을 풀었다.


둘은 조용히 함께 앉아, 운룡이 태어난 후 처음 5일 동안 그랬던 것처럼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잦아들자, 코아크는 해수면 위로 달들이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운룡은 평화롭게 잠잤고, 가느다란 연기가 그 콧구멍에서 가만가만 피어올랐다.


코아크는 운룡의 몸에 팔을 두르고 눈을 감은 후, 깊고 고요한 잠에 빠져들었다.


***



코아크는 큰 비가 내린 후 맞는 아침을 좋아했다. 폭우에 이어 나타나는 그 정갈한 공기와 반짝거리는 초목에서, 마치 대지가 다시 태어난 듯한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잠에서 깬 그를 회색빛 하늘과 비 냄새가 맞이했고, 이른 아침의 짙은 안개 때문에 온 세계가 구름의 장막에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치 꿈 속의 유령처럼 안리 장로가 안개 속에서 나타났을 때, 코아크는 깜짝 놀랐지만 동요하지는 않았다.


"찾기가 어렵지 않더군." 판다렌이 말했다. 그녀는 봉우리 옆의 구불거리는 좁은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코아크와 운룡은 판다렌을 따라갔지만, 코아크는 운룡이 그저 안리의 말을 따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운룡은 대부분 바람맞이 섬에 둥지를 짓지." 안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중 일부, 그러니까 독립과 고독을 소중히 생각하는 고집스러운 녀석들은, 섬을 둘러싼 외로운 봉우리에 둥지를 짓고는 한다네."


"내 운룡이 어미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거로군." 코아크가 말했다.


안리는 웃었다. "아니면 그 기수를 닮았을 수도 있고."


그 말에 코아크는 화가 났다. "난 기수가 아니오. 그 점 하나는 분명히 보여줬던 것 같은데."


"그러면 왜 여기까지 찾아왔지?"


코아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비행선을 추락시킨 얼라이언스 전함과 결국 오지 않았던 수색대를 떠올리며 답했다. "헬스크림은 날 이 섬에 버려두었소. 내 운룡에게 같은 짓을 하고 싶지는 않소."


"이 헬스크림이라는 친구를 싫어하는 모양인데." 안리가 그를 바라봤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코아크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호드는 그의 군대지만, 그의 백성은 아니오." 이런 말을 하는 건 반역 행위이었지만, 지금 여기엔 안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가로쉬는 충성을 요구하지만, 그에게 그 말은 그저 자기 명령에 따라 죽는 것을 의미할 뿐이오. 충성이라는 게 뭔지도 모를 거야. 스랄은 우리에게 충성이 뭔지 가르쳐 줬소. 가로쉬는 그저 복종을 원할 뿐이오."


안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이 항상 같은 건 아니지."


코아크는 자신의 운룡을 흘긋 바라봤다. "그래, 아닌 것 같소."


그들은 묵묵히 걸었고,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바람봉 다리에서 바라보던 거친 산과 푸르른 해안선이 이미 바다 안개에 가리운 지 오래였다.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마치 안개처럼 시원하게 코아크의 어깨와 가슴에 내려앉았다.


"처음 우리를 찾아 왔던 건," 안리가 말했다. "아마 우리가 위대한 전사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우리가 운룡에게 애정을 쏟는 모습을 보며, 그 이야기가 거짓이었다고 생각했을 테고.


"그리고 내가 강철과 쇠의 차이를 물었을 때," 그녀는 말을 이었다. "강철이 더 강하다고 답했었지."


"그렇소. 기억이 나오." 코아크는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답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안리는 한가로이 봉우리 가장자리로 걸어가 뚫을 수 없는 안개 속을 바라봤다. "자네는 보살핀다는 행위를 꺼리지만, 코아크, 가장 강인한 강철은 사랑으로 벼려지는 것이네. 대장장이가 끝없는 애정으로 수백 번 또 수백 번 접어 줘야 하거든. 이게 운룡단의 방식이네. 우리는 대장장이고, 운룡은 우리 강철이야."


안리는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그가 다가가자, 그의 가슴에 앞발을 얹고 그의 눈을 바라봤다.


"하지만 쇠는," 그리고 그를 향해 말했다. "대장장이가 달구고 망치로 두드려 원하는 형태로 바꾸어 놓지. 하지만 그런 쇠가 식으면, 검게 변하고 이내 부러지고 말아. 잠깐 동안 강해 보인다 해도, 가장 필요할 때 부서져 버린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나, 코아크?"


가슴 아픈 이야기였지만, 코아크는 그것이 진실임을 알았다. 용아귀 부족이 그랬고, 오크와 용 사이의 쓰라린 결속이 그랬다. "알겠소." 그는 곁에서 한가로이 떠돌고 있는 운룡을 흘긋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대장장이가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오?"


"바로잡아야지." 그녀가 답했다. "쇠가 뜨거울 동안에 말이야."


안리는 봉우리 가장자리로 뛰어내렸다. 코아크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가 자신의 운룡을 타고 다시 나타났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선택보다는 사슬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었지. 그래, 자네 운룡을 사슬에 묶어 보려고 해봤으니, 이제 선택할 기회를 주는 건 어떻겠나."


코아크는 안리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그와 똑 같은 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녀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코아크만이 운룡과 함께 남았다. 안개가 그의 주위를 감싸 세상을 감췄다. 하지만 그는 한 발짝 앞에서 땅이 끝나고, 그의 꿈에 나타나던 곳과 꼭 닮은 무시무시한 낭떠러지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일생 동안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며 살아왔다. 이제 정말 지긋지긋했다. 안리가 운룡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라고 했지? 정말 대단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주지.


"운룡," 코아크는 입을 열었다. 문득 그가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운룡은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채고는, 입을 벌리며 반대하려 했다. 그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코아크는 봉우리 가장자리를 넘어 소멸을 향해 뛰어 내렸다.


순식간에 그는 구름과 안개를 뚫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안을 향해 머리부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악몽이 끔찍한 현실로 살아났다. '운룡은 날 구하지 않을 거야.'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이게 내 최후다.'


익숙한 울음 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고, 그가 고개를 들자 길게 꿈틀대는 그림자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운룡이 안개 속에서 나타나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선택을 한 것이다.


코아크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던 것이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운룡이 다가오자, 그 비늘 덮인 피부 위에는 안장이나 고삐처럼 그가 붙잡을 것이 없다는 끔찍한 사실이 마치 파멸의 선고처럼 그를 덮쳤다. 공포가 코아크의 심장에 깊이 발톱을 박았다. 그는 절망적으로 운룡을 향해 손을 뻗어, 미친 듯이 붙잡으려 했다.


운룡은 크게 포효하며 목을 길게 빼고, 그와 눈을 맞추며 가만히 바라봤다. 코아크도 그 눈을 들여다봤다. 공포나 의심, 절망이 보일 것을 기대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가 본 것은 힘이었다.


코아크는 손에 힘을 풀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운룡은 재빨리 그의 아래로 날아가 등 오목한 곳으로 그를 받았다. 코아크는 본능적으로 그 움직임을 읽고, 둘이 만나는 순간 운룡의 몸에 팔을 감았다. 어린 운룡이 그의 팔에 수도 없이 몸을 감았던 것처럼.


하늘을 뒤흔들고 바다 너머까지 울려퍼지는 포효와 함께, 운룡은 온 힘을 다해 솟구쳐 날았다. 파도에 스치는 순간 코아크의 얼굴에 물보라가 튀었고, 이내 둘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벨벳 장막과도 같은 안개가 걷히고, 바다와 해안이, 봉우리와 바람봉 다리가, 그리고 이제 비취 숲 전체가 멀어지며 작아졌다. 코아크는 웃었다. 반쯤은 기뻐서, 또 반쯤은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운룡이 그를 구했다.


"고마워." 코아크는 웃으며 말했다. 운룡이 그를 돌아봤고, 녀석은 틀림없이 짓궂은 웃음을 웃고 있었다.


그들은 구름을 뚫고 환한 태양빛 아래로 나섰다. 운룡은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았지만, 고삐나 안장 없이도 코아크는 떨어지지 않았다. 둘이 번개처럼 자유롭고 강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동안 그는 운룡을 꼭 붙잡았다. 운룡의 비늘이 태양빛을 받아 광을 낸 강철처럼 환하게 빛났다.


"강철." 코아크가 무심코 말했다. 운룡은 고개를 돌려 다시 그를 바라봤다. "네 이름은 강철이다."


운룡은 반갑게 포효하며 이름을 받아들였다. 둘은 눈이 멀 듯한 속도로 구름 아래로 강하했고, 코아크는 고함을 치며 바람을 즐겼다. 코아크는 날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날고 있었다. 함께, 하나로 벼려져서. 그건 코아크가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달랐고, 그가 항상 바라던 그대로였다.


강철은 그를 동부 해안으로 데려갔고, 둘은 함께 도원 위를 지나갔다. 코아크는 운룡단이 열린 우리 곁에 모여 활짝 웃으며 그에게 손짓하는 모습을 보았다. 에이스는 코아크의 승리가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앞발을 높이 들고 있었고, 안리는 스승 특유의 자랑스러움이 가득한 웃음을 얼굴 가득 담고 있었다.


"나랑 시합 한 번 해야지!" 에이스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코아크도 웃으며 소리쳤다. "얼마든지!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강철은 계속 날았다. 도원에 펼쳐진 숲을 지나고 새벽의 꽃에 옹기종기 모인 지붕을 지나, 영원꽃 골짜기와 두 달의 제단으로 향했다. 코아크는 결정을 내렸다. 그의 동포들에게는 그가 필요했다. 용아귀 부족이 아니라 호드에 그가 필요했다.


운룡단은 코아크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 진정한 충성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운룡을 먹이고 길렀다. 보살피고 신뢰했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운룡은 그의 목숨을 구했다. 호드도 그에게 같은 일을 해 주었다. 그를 받아들이고, 혼자였던 그에게 가족을 주었다. 이제 코아크는 그들 곁에 서서 헬스크림과 용아귀 부족에 맞설 것이다.


그러면 코아크는 부족에서 쫓겨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드는 원래 쫓겨난 자들과 반란군, 고향을 잃고 의지할 데라곤 서로밖에 없는 피난민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자신들의 고향을 세웠다. 그게 오그리마였다.


이제는 함께 되찾을 차례다.


"호드를 위하여!" 코아크는 외쳤다. 이제 이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호드를 위하여 싸우는 것은 자신의 형제자매를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 하나하나의 힘을 접어 포개어 여럿의 힘을 만들고, 결코 깨지지 않는 유대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것이 진정한 호드의 힘, 강철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