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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9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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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그 역사를 알아보자!ㅡ자료가 많습니다만, 그 일부만...-_-
10일전까지 읽을거리 찾으시는분은 한번 읽어보세요. ^~^ 자료는 경제학사전을 이용했습니다.(__) 중세경제 中世經濟 [영] medieval economy 중세라는 시대구분의 개념과 봉건이라는 개념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럽에 관해서만 중세사회를 봉건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세경제사란 고대의 노예제도가 붕괴한 이후 새로운 사회형태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때부터 15세기 혹은 18세기까지에 걸친 봉건사회의 경제사를 가리킨다. 즉 봉건사회는 노예제사회의 붕괴 후에 성립하여 자본주의사회가 성립하기에 앞서서 존재한 일정한 사회경제체제이다. 봉건제도하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인 토지는 영주의 소유로 되어 있으며, 영주는 그것을 봉토로 가신에 배분하였다. 또 보통의 지주들도 봉건영주와 신종(臣從)관계를 맺고 소유지를 영주에 기진한 다음 이를 다시 영주가 하사한 형식을 취한다. 이 토지 위에서 직접생산에 종사하는 자가 바로 농노로서, 그들은 봉건영주와 지주에게 토지이용의 대가로 노동지대나 생산물지대 혹은 화폐지대를 바쳤다. 당시 농노들은 토지에 긴박되어 전직할 수도 없었으며, 때로는 토지의 부속물로서 토지와 더불어 타인에 양도되었다. 봉건제도의 초기단계에서 경제는 주로 자급자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장원 내 농민들은 주식·부식물·조미료는 물론 의복과 주거 그리고 도구와 무기까지도 자급하였다. 그러나 분업이 발전하면서 의복·주거·도구·무기 등을 제조하는 장인들이 일정한 지역에 밀집하여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장인(master)들은 동직조합(guild)을 만들고 상공업을 독점하였다. 장인 밑에는 여러 명의 수습공(apprentice)이 일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일정기간 동안 기술을 습득한 다음 직인(journeyman)을 거쳐 장인이 되었다. 봉건제도하에서는 직업의 대부분은 세습적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전직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직업은 안정되나 사람의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없으므로 생산력은 정체되는 것이다. 봉건사회는 처음에 자급자족경제였으나 사회분업의 발전에 따라 생산물의 교환과 화폐의 유통범위도 점점 확대되면서 농촌과 도시의 상품유통은 화폐를 매개로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대도 점차 현물지대에서 화폐지대로 발전하였다. 한편 외국무역의 발전과 지리상의 발견을 계기로 유럽무역이 확대되자 종래의 도시공업의 생산력으로서는 이것을 뒷받침할 수 없게 되자 길드는 쇠퇴의 운명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 지방분권적인 봉건국가에 대하여 근대적 통일국가가 출현하고 경제도 초기 자본주의사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길드 [영] guild [독] Gilde [프] guilde 중세 유럽에 있어서의 상인 또는 수공업자의 동직조합을 말한다. 길드에는 상인길드(merchant guild)와 수공업길드(craft guild)가 있으며 상업길드가 수공업길드보다 먼저 발생하여 수공업길드의 규범이 되었다. 상인길드라 함은 상인에 의하여 조직된 것으로서 주된 목적은 상호 공동이익의 도모에 있었으나 그 밖에도 사교적·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상인길드의 구체적인 업무로는 상업의 관리, 상품의 질과 용량의 검사, 조합원에 대한 대금, 조합원간의 쟁의조정, 빈궁한 조합원의 구조, 교회의 건설 등을 들 수 있다. 수공업길드는 동종의 수공업에 종사하는 수공업자에 의하여 조직된 것으로서 그 목적은 수공업자 상호간의 부조와 이익의 증진에 있었다.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길드는 여러 가지의 방책을 채택하였다. 즉 완성된 상품을 검사하기 위하여 독일에서는 감독청이 설치되었으며 영국에서는 감독관이 선출되었다. 그리고 원료의 구매와 상품의 구매를 공동으로 행하였고 상품의 가격까지 길드가 결정하였다. 또한 길드는 이른바 길드금제권을 행사하였다. 즉 길드에 소속되지 않는 자는 동종의 수공업을 행할 수 없다든지 또는 길드의 성원은 다른 길드의 직업을 가질 수 없다든지 하는 것이 길드금제권이다. 수공업길드는 이와 같은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된 단체일 뿐만 아니라 조합원의 불행을 상조한다든가 또는 병자·고아·과부·불구자를 공동으로 부조하는 우애단체이기도 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길드는 각자 1개의 신을 숭배하는 종교단체이기도 하였다. 길드수공업자에는 장인(master)·직인(journeyman)·견습공(apprentice) 등의 3계층이 있었는데 수공업길드라 함은 장인들에 의하여 조직된 동직조합을 말한다. 상인(商人)길드 [영] guild merchant 10세기 중엽부터 유럽 각처에 발생하기 시작한 도시를 기반으로 하여 상인들간에 내부적으로는 상호경쟁을 배제하고 밖으로는 배타적인 독점권을 행사하려는 목적에서 결성한 동직조합을 말한다. 중세도시의 발생은 대개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곳에서 교환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항시적인 수요가 있게 되자, 종래 정기적으로 열리는 주시(週市)나 연시(年市) 등 시장 혹은 영주의 저택 등을 상대로 돌아다니던 행상들이 정착하여 좌상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발생한 중세도시는 영주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도시자치권을 획득하여 장원질서와는 이질적인 특수한 도시질서를 만들어 냈다. 이 과정에 있어서 주동적인 역할을 한 것이 도시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던 상인길드였다. 상인길드가 시민의 대표기관인 시(市)참사회를 지배하면서 도시에서 대(大)상인들의 귀족적 지배가 성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영국의 경우 상인길드의 조직은 상인 외에 수공업자까지 포함하는 소위 종합길드(general guild)가 지배적이었으나, 대륙에 있어서는 다른 계층을 배제한 상인만의 길드가 지배적이었다. 상인길드는 이처럼 상업에 종사하는 자기계급의 이익신장을 위해서 구체적인 시책을 세웠는데, 그 원리는 어디까지나 영업의 독점과 기회균등의 보장이었다. 대외정책으로는 판매독점을 위하여 조합원 외에 타인의 상행위금지, 대내적으로는 길드 내부의 각종 규약을 설정하여 상인상호간의 이익을 도모했는데, 영업시간·영업종목·가격 등에 대한 단속, 상호간의 이익을 방해하는 경쟁의 금지 등을 실시하였다. 상인길드의 이와 같은 협조정신은 ‘중세 유기체정신과 상통되는 것이며 따라서 근원적으로는 촌락단체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본다면 중세도시에 있어서 한정된 상품수요를 상대로 하는 상인으로서는 이와 같이 판매독점을 하지 않고서는 특권적인 자기계급의 보존이 불가피한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이 아닌 권력을 구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기업가협동과는 전혀 다르다. 상인길드보다 약 반세기 혹은 1세기 뒤 수공업자의 동직자조합(craft guild, Zunft)이 성장하게 되었다. 수공업자는 시초에는 상인길드에 종속되어 있었으나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경제적인 역량이 증대하게 되고 동업자끼리 직종별 조합을 구성하여 상인길드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장기에 걸친 투쟁 끝에 상인세력의 기반에서 벗어나서 독립하여 결국 중세 후기의 도시를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중세 말 지리상의 발견과 중앙집권적인 근대국가의 형성 및 중상주의정책에 의해 다시 상인들의 활약이 눈부시게 되고, 춘프트(Zunft)는 그 존재의의가 줄면서 점차 와해되고 그 대신 매뉴팩처와 공장제기계공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천과정에서 활약한 상인단체 중 해외무역을 주로 하는 영국의 모험상인조합단(merchant adventurers), 스테이플 상조조합(merchant of staple)이 유명하다. 모험상인조합 冒險商人組合 [영] merchant adventurers 10∼11세기경에 부활한 유럽의 상업은 13∼14세기에 이르러 번영하기 시작하였다. 북해와 발틱해를 중심으로 한 북방상업권에 있어서는 한자동맹에 가담한 여러 도시상인이 중심이었으며,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한 남방상업권에 있어서는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상인이 중심이었다. 한자 및 이탈리아의 상인들은 기본적으로 영주경제의 번영과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에 14세기부터 시작된 인구의 감소와 생산력의 저하로 인한 영주경제의 위기 및 그에 따르는 경제구조의 변화 등으로 말미암아 영주경제와 그 운명을 같이하였다. 특히 15세기 말 이후의 신항로 발견은 그들의 독점적 지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여 그들의 교역로 지배에 종말을 가져왔다. 즉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여 동방무역을 독점하고 있었던 이탈리아상인은 포르투갈인에 의한 아프리카 남단 우회의 동인도항로가 개척됨으로써 완전히 그 독점적 지배를 상실하였으나, 스페인 및 포르투갈의 상인은 스페인을 기지로 하는 아메리카 대륙과 서인도항로가 개척됨으로써 신시대의 세계무역에 있어서 왕자가 되었다. 이 시대의 역사는 세계무역을 이분하여 독점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상업자본에 대하여 네덜란드·영국·프랑스 등 신흥의 중상주의적 상업자본이 출현하여 그들이 상호대립하면서 다투고 있었던 상업자본투쟁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상업자본은 절대주의국가의 무력적 배경을 수반한 중상주의정책의 수행자이었지만 그 활동은 식민지의 정복과 지배에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났으며 그 과정에 있어서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의 사명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 활약한 상업자본에는 그 이전의 상업자본계통이라든가 혹은 군주 등의 자본도 있었지만 그 중심세력은 신흥의 상업자본에 있었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그 중심세력의 형성계층은 이 시대의 중산계층으로부터 출현한 새로운 상인층이었다. 이러한 상인층은 자기의 존립을 위하여 일찍부터 조합이라든가 단체 등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국가권력과 결부되어야만 비로소 독점과 특권을 가진 강력한 상업자본으로 발전되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특히 외국무역을 담당한 자본가로서, 그 전형이 이른바 모험상인이었으며 그들은 생명을 내걸고 외국무역에 종사하였으므로 상업은 필요하지만 생명은 필요 없다는 것이 그들의 구호였다. 이와 같이 이 시대에 있어서의 상업자본의 가장 현저한 활약무대는 외국무역에 있었지만 또한 국내경제에 있어서의 그들에 의한 지배의 확대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즉 상업자본가의 일부는 가령 모직물공업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스스로 생산을 장악·조직하여 산업자본가로 전환한 것으로서 그 발전정도는 국제 상업투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하여 산업의 각 방면에 세력을 뻗치고 있었던 영국의 상인층은 그 후 18세기 중엽까지 영국의 정치·경제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장인(匠人)길드 [영] master guild 동직조합의 장인간의 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수공업에 있어서 수공업자의 동업조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수공업에 있어서 동업조합은 장인이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동직장인조합은 마스터길드라 부르지 않고 춘프트(Zunft) 또는 크래프트길드(craft guild)라고 부른다. 따라서 여기에서 마스터길드라는 것은 직인조합(journeyman’s guild)에 대(對)하는 말로서, 그 유래를 보면 15세기 이래 직인들이 장인이 될 수 있는 길이 막혔기 때문에 장인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개 도시에 걸쳐서 직인조합을 결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소위 직인길드라고 한다. 이와 같이 춘프트 내에 있어서 장인과 직인의 투쟁은 춘프트 내에 있어서 상호간의 온정관계를 타파하고 춘프트붕괴의 요인이 되었으며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춘프트는 그 존재의의가 없어지게 되어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춘프트 [영] craft, guild [독] Zunft, Innung [프] corps de metier, corporation de metier 대략 12세기 중엽 이후 서구 각 도시에 발생한 수공업자의 동업조합으로서 수공업자 상호간의 공동이익을 위해, 안으로는 동직자간의 경쟁을 배제하고 밖으로는 독점권을 행사하였다. 중세도시의 발생과 더불어 도시에 거주한 것은 주로 상인·수공업자였으며 그 중에서 특히 상인은 경제적으로 부유했기 때문에 도시경제를 장악하였다. 길드는 먼저 상인의 주도권하에 수공업자도 참여하는 종합길드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러나 수공업자들은 동직자끼리 동일한 이해관심을 가지게 됨으로써 상인길드에서 분리, 독립하여 수공업자만의 조직인 춘프트를 결성하고 상인들의 도시지배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것을 소위 춘프트투쟁(Zunft kampf)이라고 하는데 대개 12∼13세기의 현상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춘프트가 승리하면서, 중세 후반기 도시의 세력은 수공업자가 장악하게 되었다. 수공업자가 도시 행정권을 장악한 도시를 이전의 상인들의 귀족도시에 대해서 베버(M. Weber)는 평민도시(Burgerstadt)라고 불렀다. 춘프트의 결성은 도시경제 전체의 유지발전을 위한 도시정책으로서의 산업통제, 예를 들면 생활필수품의 가격통제, 수출품의 품질 통제를 실시하는 데 매우 편리하였으므로 지방에 따라서는 도시가 춘프트결성을 종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춘프트는 동직자의 공동이해를 위해 조직되었기 때문에, 춘프트의 대내외 정책은 실질상 도시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대내 정책의 방향은 동업자간의 경쟁방지와 기회균등의 보장이었으며, 이를 위해 자기가 전승한 기술 이외의 다른 기술의 이용금지, 조합원이 고용하는 보조원의 숫자제한, 사용하는 도구의 종류와 수의 제한, 노동시간의 제한 특히 야간노동의 금지, 원료품의 공동구입, 제품의 품질검사와 가격조정, 기업발생의 방지를 위한 상인자본도입의 금지, 선매행위, 고객쟁탈행위, 한 곳 이상의 작업장설치의 금지 및 공동시설의 공동이용 등이며, 그 외에 종교적 의식과 제례도 공동으로 행하고 관혼례와 노약병자를 상호 부조하기도 하였다. 또한 유력한 춘프트는 독자적인 재판소와 학교도 운영하였다. 대외정책의 기조는 배타성원칙에 따른 독점정책으로서, 조합원 이외의 영업금지, 외국상품의 수입제한 또는 금지, 춘프트의 가입강제의무 등이었다. 춘프트는 결성 이후 영업범위의 확장과 조합원의 증가율의 불균형으로 인해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즉 장인들이 기존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습기간의 연장, 춘프트 가입금의 인상 등에 따라 장인이 될 수 없는 많은 직인들은 수개 도시를 망라한 직인조합(journeyman guild)을 결성하여 장인에 대해서 임금인상, 춘프트참가 등의 요구를 내걸고 동맹파업 기타 수단으로 장인과 대립하였다. 이에 대해서 장인들도 장인길드를 따로 결성하여 대항하기도 하였다. 그 외 춘프트 내에서도 기술의 분화에 따라 경계가 불분명해짐에 따라 조합 상호간의 전문분야에 대한 분쟁이 속출했다. 이러한 문제점에 봉착한 춘프트에 대해 결정적으로 타격을 가한 것은 농촌수공업의 발흥이었다. 농촌공업의 발흥은 춘프트의 존재 의의를 점차 축소시켜 나갔다. 그 후 춘프트는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진전과 더불어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되었다. [참고문헌] : 「一般經濟史」, 1962.「新經濟史」, 1961. 「增訂 一般經濟史」, 1960. 읽을거리 어사이즈 오브 브레드 앤드 에일 [영] assize of bread and ale 중세 길드시대에 있어서 빵과 맥주의 공정가격을 규정한 법률이다. 공정한 대가(justum pretium)를 객관적으로 결정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3세기 말 이후 교회법학자들에 의하여 주창되어 왔으나 특히 중세도시 발생 후 길드가 그 독점적 특권을 남용하여 상품가격을 높이자 국가가 소비자보호의 목적에서 빵과 맥주 등의 생활필수품의 공정가격을 법률로서 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국에 있어서 최초로 공정가격이 법률로서 규정된 것은 1202년 존왕시대의 어사이즈 오브 브레드(assize of bread)이며, 그 후의 1266년 헨리 3세의 어사이즈 오브 브레드 앤드 에일(assize of bread and ale)이다. 이 규정들의 내용은 대략 빵과 맥주의 가격은 원료인 소맥 및 대맥의 시세에 따라 변동할 수 있게 하는 소위 활준법(滑準法: sliding scale)에 따르고, 그 밖의 빵과 맥주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이윤을 가산한 것을 그 가격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규정을 어기면 처벌되었다. 감독은 최초에는 각 도시 당국자의 임무였으나 14세기 말에는 치안판사의 임무로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부터 길드특권의 폐지, 영업자유의 원칙의 수립과 더불어 이 법률도 폐지되었던 것이다. [문헌] Rogers, J.T., A History of Agriculture and Price in England, 1916 Ashley, W.L., An Introduction to English Economic History and Theory, vol. 1, 1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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