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 앞의 광경은 참혹했다. 모두 872개의 말뚝이었다. 말뚝에 박힌 시체는 2616 구 이었다. 역한 악취에는 악마들 역시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것이다.
 어느 말뚝에 박힌 한 시체는 몇 개월 전에 죽은 것 같은데, 그 살은 자연적인 부패와 굶주린 까마귀들에 의하여 형체를 알아볼 수 가 없어서 성별 조차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시체의 깨진 두개골 윗부분에는 까마귀들이 둥지를 틀고 그 위의 새끼들은 희생자들의 썩어 문드러진 살을 주워올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 보트에 실려진 말뚝들 처럼, 이곳 역시 말뚝 하나에 여러 사람들이 꿰어져 있었다. 

 “세상에, 이런 맙소사.”

 한 병사가 탄식을 하였다. 그는 용병단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 병사가 보고 있는 시체는 약 20년 전, 미르슈아의 해적들이 카나리아 제도 일대를 점령 했을 때 희생당한 것 같아 보였다. 심하게 부패한 시체에 그나마 약간의 흔적이라도 남아있는 옷을 보아, 여성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병사가 탄식한 것은 단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 시체의 오른쪽 가슴 위에 꽂혀있는 짧은 말뚝에 한 시체의 머리가 같이 꿰여있었는데, 그 것은 아기의 시체였다.
 


 그 날 밤, 내성의 홀 안에서는 회의가 분주하였다. 가장 먼저 의견을 꺼낸 사람은 오프루트 후작이었다.

 “해적들의 주력이 모두 남쪽으로 도주하였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 이 
 겠소? 적들은 지금 유인책을 쓰려고 하는 것이오 .“

 “만일 저들이 유인책을 쓰는 것이라면”

 용병단의 브리튀치엘 아드비고 장군이 말을 꺼냈다.

 “차라리 마데이라까지 회군하여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우리에겐 군량이 한정되어있습니다. 저들에게 끌려 다닐수록 우리에게
 불리해 집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회군 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
 그러자 홀 안은 금방 벌집을 쑤신 꼴이 되어버렸다. 서로들 자기의 의견만을 말하며 떠들어댔다. 

 “그만! 다들 조용히 하시오!”

 미르슈아가 앉는 자리인 상석에 앉아 방관하고 있었던 타라고나 백작이 말하였다.

 “나 역시 오프루트 후작의 의견과 동감하오. 그리고 아드비고 장군의 말씀처럼 
 군량 역시 한정되어 있고. 그렇다면, 적들이 우리를 남쪽으로 유인 함 으로써 
 어떤 전술로 우리들의 허를 찌를지 누구 의견을 제시할 사람 있소?“

 사방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 졌다. 그 때, 누군가 말을 꺼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자경단의 스테판 호니커트 일세.”

 펠릭스 장군이 나에게 속삭였다.

 “소장은 카나리아 제도의 최남단에 있는 텔데 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소. 보통 
 이 맘 때 쯤 이면, 카나리아 제도의 남단에는 예고 없이 폭풍이 몰아칩니다. 
 해적들이 노리는 것이 그 점이 아닐까 생각되오. 우리 함대들이 폭풍에 휩쓸려 
 전투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그 때 해적들이 우리들을 기습 할려는 전략을 가지
 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홀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 포르투칼 사관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며, ‘폭풍은 갤리에게 더 치명적인 법이 아니냐 ’며 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만, 그만! 다들 주목!”

 총사령관의 고함에 그제 서야 다시 사방이 조용해졌다.

 “놈들의 의도가 무엇이든, 우리에게 회군이란 없소. 창밖을 바라보시오. 2600   여 명의 억울한 자들이 희생을 당했소. 이틀 뒤, 우리는 해적들을 추적하기 위   해 기꺼이 항로를 남쪽으로 정할 것이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해적들이든,    폭풍이든, 죽음이든 끝까지 적들을 추적할 것이외다. “


 
 핀타호에는 새로운 미즌 마스트를 세우는 일로 분주했었다. 마스트 위에는 다시 망루를 세웠고, 스팽커를 달기 위한 작업도 시작 되었다.
 나와 후아니타는 여느 때 처럼 고물의 뒷갑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도망치지 못했다면 계속 비참하게 살다가 결국 저렇게 말뚝에 꽂혀 고
 통스럽게 죽었겠죠. 도망치고 난 뒤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고, 
 한 번은 자살을 할려고 손목을 그어 봤어요. 하지만 상처만 나고 정맥이 안 끊
 어 지더군요. 그 뒤에는 ‘내가 잘못 한 게 없는데 왜 내가 억울하게 죽어야 하   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악물고 12년 동안 복수를 위해 힘든
 수련을 했죠. 이제야 복수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김 빠지네요.“

 “후아니타, 복수가 끝나면 우리 뭐 할까?”

 “음... 우리 단 둘이서 마데이라의 해변을 따라 걷고 싶은데요.”

 “후아니타.”

 나는 그녀의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불쑥 이 말이 튀어나왔다.

 “후아니타, 나와 결혼해 줄래?”

 그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질, 우리가 서로 만난지 몇 일이 됐죠?”

 “16일이지.”

 내가 왜 갑자기 불쑥 청혼을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녀가 거절하면 어떻게 대처할지조차 생각해 두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이 말을 농담이라고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항상 언젠가는 그녀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으니까.

 “우리가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해요?”

 “글쎄.”

 “그리고 난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죠. 그런 여자와 결혼한 것이 당신에게 오점
 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요?“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 거절 하는거야? 아니면 기다렸다   가 다시 청혼해도 되는 건가?“

 “물론,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그 말에 나는 모든 힘이 쭉 빠졌다. 키스는커녕 말 한 마디로 하지 못하고 다만 파도가 출렁이는 싸늘한 바다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