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레일은 꿈을 꾸었다. 
어렸을 적에 병에 걸려 돌아가신 어머니의 품에 안겨,
편안하게 잠을 자는 꿈을.
어머니의 품은 너무나 편안했다. 온 갖 슬픔과 고통을
씻어준다. 평화롭던 날들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난다. 비첼은 여전히 아름답겠지.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귓가에는 철썩 철썩 파도 소리가 울린다.
바닷물이 차갑게 볼을 적신다. 
그 차가움에 놀라 로자레일이 눈을 뜬다.
로자레일이 쓰러져 있던 곳은 한 모래 사장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해변가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넓게 펼쳐진 숲뿐이었다. 이상하게 시야가 좁았다.
로자레일이 얼굴을 더듬었다. 왼쪽 눈꺼풀이 닫혀있다.
마르코에게 왼쪽 눈이 베었던 일이 생각난 로자레일은 
가슴섶을 짚어보았다. 옷자락은 베어져있지만 상처는
찾아볼 수 없다. 넝마가 되어버린 상의를 벗자 군살이 없는
매끈한 몸이 드러난다. 몸 어디에도 상처가 없다. 
이마도 만져보았지만 노예인장도 없는 듯하다.
로자레일은 이 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해변을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로자레일은 너무나
목이 말랐다. 한 번 갈증이 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로자레일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꼇다.
해군학교의 혹독한 훈련으로 갈증과 굶주림을 참는 것은
그에게 매우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로자레일이 바다를 쳐다보았다. 거대한 양의 물이 넘실댄다.
바다를 보자 오히려 더 갈증이 심해진 로자레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는 벌컬벌컥 바닷물을
들이 키기 시작했다. 이성을 상실한 듯한 태도에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로자레일은 멈추지 않고 계속
바닷물을 마셨다. 수 리터를 들이킨 로자레일이 갑자기 
괴로워 하기 시작했다. 로자레일이 귀를 감싸쥐고 괴로워 하며,
숲속으로 미친 듯 달려간다. 수 십미터를 달린 로자레일은
그제야 진정이 된듯 숨을 고른다.

"이, 이 무슨.....!"

자신의 손을 본 로자레일이 눈을 부릅뜬다.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생겨 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귀 뒤쪽을 살피자 살이 갈라져 있다.
신발을 벗어보자 발에도 물갈퀴가 있다. 
로자레일은 자신의 모습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담수를
찾으려 숲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잠시 숲 속을 헤맨 로자레일은 물소리를 듣고 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몇 십미터를 걸어가자 작은 계곡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간 로자레일은 계곡 물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괴물이 따로 없군."

계곡 물에 비친 로자레일의 얼굴은 평소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얼굴의 형태에는 변함이 없지만 귀가 지느러미로 변해 있다. 
좌우로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귀 뒤로 아가미가 보인다.

"내 신세가 기구하구나...."

로자레일은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고는 신세를 한탄한다.
여전히 계곡 물속의 얼굴을 살피고 있는 로자레일의 시야에
본인의 얼굴을 흐트러뜨리는 물고기 한 마리가 들어온다.
문득 허기를 느껴 재빨리 손을 뻣자 물고기가 도망가지 못하고
잡혀 버린다. 로자레일은 자신의 손에 잡힌 물고기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인간의 모습일 때보다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잡아올린 물고기를 구워 먹기로 한 로자레일은 계곡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일어났다. 그러자 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로자레일이 고통에 몸부림 친다. 로자레일의 손에서 빠져나온 물고기가
땅에 떨어져 펄떡인다. 약 30여 분간 괴로워 하던 로자레일의 모습이
인간으로 돌아와있다. 로자레일도 그 것을 느꼈는지 다시 계곡 물에 
얼굴을 비추어 본다. 

"허허...."

로자레일이 헛웃음을 흘린다.

"바닷.....물을 먹으면 괴물이 되는 건가...."

로자레일이 옆에서 여전히 펄떡이고 있는 물고기를 집어 들고 일어난다.
계곡 건너 편에 한 노인이 물통을 들고 서 있다.

"자네는 누군가?"

노인이 로자레일에게 질문을 건넨다. 로자레일은 혹시 방금 전의 모습을 
보였나 싶어 그의 표정을 살펴보지만 그는 그저 낯선 사람을 이 곳에서
만난 것이 놀랍다는 듯한 태도이다.

"배를 타다 조난을 당했습니다. 이 곳이 어디쯤입니까?"

로자레일은 혹시 모르기에 일단 적당히 거짓말을 한다.

"허허, 이 곳은 메데이로스 섬이라네. 이 곳까지 흘러들어오다니.
자네도 참 운이 없구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 곳은 블레야 제도에서도 남서 쪽으로 한 참을 가야하는 곳일세."

"예? 블레야 제도에서 더 서쪽에 있는 곳에도 마을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로자레일이 노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한다.
일반적으로 대륙의 최서단은 블레야 제도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더 서쪽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이해할 수 없어
되물은 것이다.
 
"마을이 있다라.... 반은 맞고, 반은 틀렸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정을 설명하려면 길지. 일단 내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감세."

물통에 계곡 물을 가득 담은 노인이 돌아서며 말한다.

"아, 제가 들겠습니다."

로자레일이 첨벙첨벙 계곡을 건너가 노인의 물통을 뺏어들며 말한다.
계곡 물에 발을 들인 후에 혹시 다시 변할까 싶어 걱정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노인과 로자레일이 두런두런 대화를 하며
숲 속으로 사라진다.


*      *      **      *      **      *      **      *      **      *      *


숲 속을 빠져나오자 넓게 펼쳐진 밀 밭이 나왔다. 
황금빛 밀밭에서 열 댓명이 밀을 베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아낙들이
대다 수를 이루고 있다. 남성은 노인들만 보일 뿐 건장한 남성은 보이지 
않는다.

"말론 님, 벌써 다녀오셨습니까?"

밀을 베던 노인들 중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 말론에게 모자를 벗고
깊게 허리를 숙이며 말한다.

"허허, 마실 물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네. 
늙은이가 소일이라도 해야지."

"저희가 해도 되는데...옆에 분은 뫼시던 분이 아닌데
 새로 오신 분이십니까?"

"허허, 오늘 온 도착한 아이이니, 신경쓰지 말고 가서 일보게나."

"예예, 알겠습죠. 그럼 쇤네는 마저 일하러 가겠습니다요."

말론과 로자레일이 밀 밭을 가로질러 얼마간 걸어가자
 어설프게 목재로 만든 산채가 나온다. 
산채에는 많은 사람이 살지는 않는 듯, 대 여섯 채의 통나무 집만 
덩그러니 있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로자레일이 산채 주위를 둘러보니 산채 남쪽 인접한 바다에는
간이 선착장도 있다. 

"말론씨, 저들은 노예입니까?"

"그렇다네, 몇년 전부터 이 섬에서 일을 하고 있지."

말론이 산채에 있는 한 통나무 집의 문을 열며 대답한다.
로자레일이 그 말에 이마를 쓰다듬는다. 매끈한 감촉만 느껴진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노예였던 그였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마에 찍혀있던 노예 인장이 사라졌으니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났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설사 그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노예의 인장이 찍혀 있지 않으니 아무도 로자레일이 노예였다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불에 지져진 인두로 새긴 노예인장을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안들어오나?"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갔던 말론이 고개를 내밀며 말한다. 생각에 빠져 있던 
로자레일이 그 말에 얼른 통나무 집쪽으로 걸어갔다.
로자레일이 막 통나무 집 안쪽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선착장 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말론이 그 소리를 들었는지
다시 나온다.

"그들이 벌써 도착했구만..."

말론의 말에 로자레일이 선착장 쪽을 바라보았다. 소형 캐러벨로 보이는
배에서 이십 여 명이 내리고 있다. 
열 세 명의 거친 사내들과 밧줄로 포박되어 있는 여섯 명의 남녀노소였다.
사내들은 어깨에 상자나 포대를 하나씩 들고 무엇이 그리 기쁜지
연방 대소를 터뜨리며 시끄럽게 떠들고, 포박된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인채
걷는다. 

"해적....."

"자네는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내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로자레일의 굳어진 표정을 본 말론이 말을 건네지만 굳어진 로자레일의
얼굴은 펴지지 않는다.


--------------------------------------

lisbon 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던 디케 썹이에여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