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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따라 런던의 발길은 이른 아침임에도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귀족부터 시작하여 평민까지 이
동하는 수단은 달랐지만 목적지는 한곳이였다. 그들의 발길을 뒤쫓아 도착한 곳은 이미 외각부터 모
여있는 군중으로 인산인해였지만 그들의 머리위로 보이는 고풍스럽고 장엄하기까지한 그 건물은 오
늘의 일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귀족들이 탄 마차가 도착할때면 건물의 큰 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손수 길을 터주었고, 얼마 남
지 않은 건물 안의 자리가 그와 같은 계급층으로 만석이 될때까지 이러한 행동은 반복될 예정이였다.
건물 안은 상당히 부산스러웠다. 목적과는 별개로 그곳에서 만나는 다른 얼굴들에게 가식 서린 미소
와 선심으로 악수를 청하고 내리깔은 목소리로 담소를 나눈다. 개개인의 목소리는 그렇듯 오늘 날의
일이나 이 건물의 의미를 염두한듯 작았지만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와 같으니 소리는 합쳐 적지않게
웅성거렸다.


「노튼놈은 어디에 있나?」

「런던에 입성했다고 합니다.」


 건물의 구석에서 자리를 가득 메운 귀족들을 힐끗 본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에 젊은 남자또한 빠르
게 답하며 둘의 대화는 아주 잠깐만에 끝이났다.  낯익은 얼굴들이였다. 바로 미런 제독과 크로헨 칼
슨이였다. 오늘 날의 이 순간은 바로 둘의 작품이였다.


「루에르는?」

「…안정을 찾고는 계십니다만….」


잠시후 미런은 자신의 보물을 입에 담았다. 왜 이 자리에서 그녀에 대해 묻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
만 칼슨은 말꼬리를 흐릴 뿐 확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별 심회가 없다. 그의 길어지는 말꼬리가 의미
하는건 크게 변함없는 루에르의 상황을 뜻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미런이 내리 깔았던
눈을 취켜들며 칼슨을 향하자 그의 이마에는 수많은 주름살이 갈라졌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이유가 뭐냐. 루에르는 말도 못해. 증언이 될 수 없다고! 내가 나서면 모
든게 해결될것을!」

「루에르양의 그러한 상태 자체가 바로 증언입니다. 그리고 노튼… 아니, 죄인은 현재 대중의 지지를
받고있는 상태입니다. 순전히 권력으로 그를 처분하기에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저또한 이 신성한 법
정으로까지 그런놈을 인도하는 이 상황이 못내키지만 놈을 처벌하려면 거쳐야할 과정입니다.」

「증언이 필요하다면 노튼놈의 부하를 쓰면 될것 아니냐!」

「모든건 노튼에 대한 세간의 의식을 허물어 버리기 위함입니다.」

「흥! 만일 내 딸의 상태가 악화되기라도하면 네놈도 노튼과 마찮가지로 만들어버리겠다.」

「… ….」


혈육에게 있어서는 그토록 헌신적이면서 그 외의 관계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단호하고 비정한 미런이
였다. 어느덧 어깨를 스쳐 멀어지는 미런을 주시하던 칼슨은 결코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어느덧 법정의 자리는 귀족으로 가득 찼고, 그뒤가 되서야 건물 외각을 가득 매웠던 평민층 인파들이
물밀듯 몰려들며 건물의 외각을 가득 매꾸었다.
 발 하나 들이기도 어려운 부산함으로 건물안은 숨막혔다. 미런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고 잠시뒤
칼슨이 그의 곁에 앉았다. 얼마나 있었을까, 문득 고풍스럽게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들이 일렬로 재판
석에 가 차례대로 앉았다. 그들이 바로 오늘 날을 주관할 재판관들이였다.


「모두 재판관님들께 예를 갖추시오.」


 재판관의 등장 이후 조금의 말소리도 없이 엄숙해진 법정 안에서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법
정에 울려퍼지는 음성에 귀족을 포함한 모든 군중이 모자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잠
시후 “착석하시오.” 란 목소리가 이어졌고 일어섰던 귀족들 모두가 다시 앉았다. 총 여섯의 재판관들
이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을 정리한 문서들을 펼치며 확인했고 그와중에도 재판을 시작하기위해 곁에
있던 보좌관에게 묻는다.


「피고는 도착했나?」

「예.」

「들여보내게.」


보좌관에 발빠르게 건물 밖으로 향하였고, 잠시후 법정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그 사이로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처한 위기와는 상관없이 입구에 잠시 멈춰선 그는 곧은
눈매와 변함 없는 냉철한 표정으로 법정 안을 한번 훑어보았다.


「… ….」


그것은 잠깐이였다. 남자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하고 성큼 성큼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 죽
여 지켜보는 그의 행보가 멈춰선 것은 재판석 앞이였다.


「재판관님들께 예를 갖추시오, 노튼 윌터스경.」


남자 ‘노튼’ 은 지긋히 눈을 감고 한 손을 왼쪽 가슴에 얹은채 고개를 숙였다. 


「노튼 윌터스. 소환에 응해 본 법정에 출두했습니다.」


 그가 이곳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꺼낸 말이였다. 그의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들은 재판관은 한동
안 노튼의 정수리를 바라보더니 그에 답했다.


「자리에 가 앉으시오.」


노튼의 자리는 미런 일행이 앉은 반대편 자리였다. 그가 착석하고 난뒤, 재판관들이 자리에서 일어섰
다. 선언을 하고 공정히 재판을 행할것을 다짐하는 재판관들의 긴 말이 끝난뒤 드디어 재판이 시작되
었다. 


「원고측 현 런던 해군총독 ‘미런 윈슬릿’. 피고측 더블린 해군함대 제독 ‘노튼 윌터스.’」


절차는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호명하는 목소리가 있자 미런과 노튼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둘의 얼굴
을 확실히 확인한 재판관이 정의봉으로 목판을 두드리며 재판의 개행을 알렸다.  이 시간부로 법정에
서의 최고 군림자는 바로 재판관이였다.


「원고는 전선이탈과 명령에 불복하고, 도피 등을 죄목으로 피고를 본 법정에 소환하였소. 사실이오?」

「예. 전선이탈과 명령불복, 도피 모두 피고에게 해당되는 죄목입니다.」

「정확한 경위를 말해보시오.」


미런은 표정을 굳히며 열변을 시작했다.


「나 미런 윈슬릿은 노튼 윌터스 대령에게 포르투칼과의 우회 무역항로인 아조레스로의 출항을 명하
였소. 헌데 저놈은…」

「언행을 준수하시오.」


판관의 단호한 요청에 미런은 인상을 살짝 찌뿌린뒤 다시 말을 이었다.


「노튼 윌터스 대령은 명령을 기각하고 아조레스에서 이탈하였소. 그로인해 발생한 해적피해는 상당
하였고 이는 노튼 윌터스의 명령불복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소.」

「피고에게 아조레스로의 출항을 명한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해주시오.」


그때였다. 곁에 있던 칼슨에 자리에 일어서며 미런대신 답했다.


「미런 총독께서는 포르투칼과의 신 무역항로인 아조레스의 해역치안을 강화하고자 노튼을 파견하였
습니다. 그 과정에서 총독의 따님이신 루에르 윈슬릿 양도 동행하였으나 노튼대령의 불찰로 해적피해
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이곳 법정에서 증인으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칼슨의 대답에 재판관의 눈은 서로를 향하였고 묵언의 상의끝에 증인을 소환했다.


━두극, 두극.


모습을 드러낸건 아름답지만 초췌한 젊은 숙녀였다. 그녀의 초점은 허공에 향해있었고, 혼자서는 거동
도 힘든듯 양 손은 하녀의 부축을 받아 한발 한발 떼고 있었다. 모두가 그녀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담은
아우성을 흘렸으나 뒤이은 판관의 조치에 다시 법정은 엄숙해졌다.


「… ….」


자리에 앉은 여인은 바로 미런의 딸 루에르 윈슬릿이였다. 그녀의 호전되지 않은 모습에 미런은 가슴이
아팠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재판은 절정으로 무르익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등장이 이 재판에 쐐기
를 박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칼슨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루에르 윈슬릿양. 그대는 이번 사건의 증인으로서 본 법정에 소환되었소. 그대의 증언은 재판에 있어
큰 영향으로 작용하니 거짓없이 사실만을 말할것을 맹세하시오.」

「… ….」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휑한 시선만이 허공에 떠있을 뿐이였다.


「루에르 윈슬릿양.」


판관은 다시한번 그녀를 불렀으나 마찮가지였다. 재판관들이 다시금 서로를 돌아보며 웅성거리자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칼슨이 나섰다.


「보시는 바와 같이 지금 루에르 양은 그날의 일로 인해 큰 충격을 받고 말을 잃고, 저처럼 초췌한 모습
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아름답던 루에르 양이 어찌 저리 ㅤㄷㅚㅆ는지는 피고인 노튼에게 묻고 싶군요.」

「사실인가, 피고?」

「… ….」


 이제까지 그는 한마디도 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체념 했다기에는 너무나도 곧은 눈매였다. 판관들은
루에르의 떳지만 감은 눈을 지켜보며 다시금 서로간에 상의를 거쳤고 결국 결론을 낸다.


「증인의 상태가 본 재판의 실마리가 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한바 그녀의 상태를 고려해서라
도 가택으로 귀가시키도록 하겠소.」


어느덧 루에르는 등장했던것처럼 하녀들의 도움을받아 자리를 벗어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애처롭
게 바라보던 판관이 미런을 쳐다보며 재차 물었다.


「증언을 할 다른 증인은 없소?」

「있습니다.」


역시 대답은 칼슨이 하였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수많은 준비를 한 모양이였다.


「바로 노튼 휘하에 있던 그의 부관인 ‘해롤드 톰첸’ 중위입니다.」


 그 낯익은 이름에 자리에 앉아있던 노튼은 힐끗 시선을 돌렸다. 편지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조차 확인
할 수 없었던건 그가 귀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런에게 해코지를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는데 결국 저들의 뒤에 서게된 것이였다. 어느정도 짐작은 했던 일이였지만 막상 직면하니 어딘지 모
르게 씁쓸한 노튼이였다. 잠시후, 그의 이름이 호명되자 해롤드는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해롤드 톰첸 중위. 그대는 증인으로서 본 법정에 출두하였다. 거짓없이 사실만을 말할것을 맹세하라.」


잠시 안본 사이 미런의 밑에서 여러 지원을 받은듯 복장또한 품격있었고 피부또한 윤기가 흘렀다. 그가
늘 출세와 권력을 바라던 것을 떠올리면 이런 결과가 결코 이상할것도 없는 모습이였다. 해롤드는 일부
러 노튼의 눈을 안마주쳤다. 그저 재판석 앞까지 묵묵히 걸어간뒤 고개를 숙이고 답할 뿐이였다.


「맹세하겠습니다.」

「증언을 시작하라.」


해롤드는 잠시 마른침을 삼킨뒤 입을 열었다.


「미런 총독께서는 노튼 대령에게 아조레스로의 출항을 명하셨습니다.」

「출항의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라.」


결코 총독의 딸의 마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일전에 당부들은 바이니 그또한 말을 맞춰야했다.


「아… 아조레스를 경유하는 무역항로의 치안확보를 위함… 이라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말인가?」

「…노튼대령님께…」


 거짓을 말하는게 이토록 어려운 것인줄은 상상도 못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 떼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의 못 미더운 모습에 칼슨과 미런은 초조했지만, 증언 중에는 어떠한 발언도 할 수 없었다. 판관은 어
느덧 고개숙인 해롤드의 머리를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증언을 계속하게.」

「…아조레스까지는 순조로웠습니다. 순풍에 날씨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아조레스에 도착한 뒤가 문
제였습니다.」


 머리속에 혼란스러웠다. 있었던 일이 자꾸 떠오르자 지금부터 자신이 입에 담아야할 말들의 글자가 자
꾸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그러기 전에 어서 빨리 답해야했다.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지만 해롤드는 주
먹을 웅켜쥐고 말을 이었다.


「며칠째 아무일도 없자 노튼 대령이 헤이해졌고, 자군 함대를 이끌고 저… 전선을 이탈했습니다…!」

「이탈한 이유가 무엇인가.」

「…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인지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해롤드의 증언이 끝나기 무섭게 칼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더이상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최대한
신속하게 이번 일을 매듭짓고 그가 감옥으로 호송되는 모습을 보고싶을 뿐이였다. 


「증언의 말대로 노튼 윌터스 대령은 전선이탈은 물론이오,  본분을 잃고 아조레스에서 출항한 것은 명
령 불복이며 또한 그 책임을 묻기위해 런던의 미런 총독님께서 소환을 하자 이를 기각하고 자신의 함대
가 주둔하는 더블린으로 도피하였습니다. 이는 중죄에 해당되며, 죄인은 마땅히 형을 당해야 함이 옳습
니다.」


 노튼은 이 법정에 나서서 참으로 많이 놀랐다. 물론 내색은 한번도 안했지만 말이다. 제일 먼저 놀랐던
건 교묘히 자신을 모함하는 저 증언들이며, 두번째로는 해롤드의 변심. 마지막은 미런총독의 밑으로 들
어갔다는 옛동문인 칼슨이 저처럼 노골적으로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추진함에 있었다. 그가 자신을 시
기하는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노튼또한 그를 좋게 여기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놀란것이라고 보자면, 그 시기가 이처럼 법정으로까지 이어져 와 자신의 형 집행까지 요청하는
점에 있었다. 변함없는 그의 모습이 살짝 웃기기 까지 했지만, 법정 안은 이미 그의 쐐기로 웅성 거리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형을 당할 처지였다.


「피고, 할 말이 있는가?」


모든게 이해된다. 저 칼슨이 미런의 곁에 있었더라면 조금더 시간을 끌고자 했던 자신의 의도를 간파하
는건 물론이고 자신이 왜 시간을 끌려고 했는지또한 파악해 조사를 취했을 것이다. 모든건 해적 저지를
붙잡기 위함이였다. 그렇기 위해 출병요청서를 상소했는데 이를 미런이 가로챈 것이다. 그 요청의 기각
문서가 떨어진건 며칠 전의 일이였다.
해적 토벌에 있어서는 어디보다 적극적이였던 자국의 확답과는 거리가 먼 결정. 그리고 직감했다. 미런
이 손을 쓴 것이라고.


「… ….」


여러가지 잡념 속에서 노튼이 일어섰다. 이제는 시간 문제였다. 


「저의 출항은 미런 총독의 명에 의함이였으나, 그 출항의 목적은 해군 총독의 소임의 범주안에 있음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노튼은 고개를 들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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