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은가 보지? 그깟 꼬마들한테 줄 돈이 있으면 나한테 좀 주지 그래? 흐흐.”

 

브리엘이 부들부들 떨며 건달을 두려워하자, 데제가 브리엘을 꼭 끌어안아주었다. 브리엘의 두려워하는 모양새가 꼭 저 건달을 아는 것 같았다.

 

“리엘~ 어디 갔다 왔니~? 이 오빠는 걱정했잖아~!”

 

말은 걱정했다고 하지만, 뉘앙스는 전혀 아니었다. 폭발하기 직전의 짜증을 꾹꾹 눌러서 참고 있는 뉘앙스였다.

 

브리엘이 두려움에 아무 말도 못하자, 건달이 가까이 다가왔다.

 

“흐흐, 사실은 다 알고 있단다. 노예사냥꾼, 세미올 씨한테 잡혀 갔었다며? 이렇게 무사히 빠져나오다니, 너무 기쁘구나!”

 

“당신은 뭐요?”

 

“당신? 흐흐, 기분이 좋으니 한번은 봐주도록 하지. 내가 누구냐고? 얘들아 내가 누구냐?”

 

건달의 뒤에 서있던 다른 건달들이 휘파람을 불며 호응했다.

 

“베레로크를 주름잡고 있는 팜눌 님 이지요!”

 

로자레일이 보기에는 뒷골목 건달에 불과했다. 로자레일은 브리엘과의 관계를 물은 것인데 저 건달은 멍청하게도 부하들과 으스대고 있다.

 

“당신 이름 말고, 브리엘과 무슨 관계요?”

 

로자레일의 질문에 팜눌이 얼굴을 찡그리며 인상을 썼다. 자신을 무시하는 로자레일의 말이 기분 나쁜 것이다.

 

“허참, 이거 안 되겠네. 내가 누군지 몸으로 가르쳐줘라.”

 

팜눌의 명령에 그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팜눌을 제외한 5명 모두 우람한 체구를 자랑했다. 팜눌도 키가 180cm 정도로 보였지만, 그의 부하들은 그보다 한 뼘은 더 커봉ㅆ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싸움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로자레일은 데제와 브리엘을 구석진 곳으로 가도록 하고 자신은 그 앞을 막아섰다. 데제와 브리엘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아작을 내버려!”

 

“꺅!”

 

팜눌의 외침과 함께 그의 부하들이 로자레일에게 달려들자, 브리엘이 비명을 질렀다.

 

로자레일은 제일 먼저 달려드는 건달의 주먹을 쳐내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발로 쓰러진 건달의 머리를 차버리자 뒤늦게 달려들던 건달 4명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로자레일의 실력을 확인한 팜눌이 칼을 빼어들며 앞으로 나섰다.

 

“한 가닥 하는 놈이었군.”

 

팜눌이 칼을 빼들자 그의 수하들도 같이 칼을 빼어들었다. 로자레일에게 머리를 차여서 기절한 자를 제외한 5명 모두 칼을 들고 거리를 좁혀온다.

 

팜눌이 칼끝으로 로자레일을 가리켰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 모르지만,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거다! 죽여 버려!”

 

5개의 칼이 로자레일을 향해 휘둘러졌다. 검술과는 거리가 먼 움직임이지만, 칼날 사이를 피하는 로자레일로써는 간담이 서늘해잘 일이다.

 

사실 로자레일은 뒷골목 무뢰배 네댓은 간단히 제압할 실력을 가지고 있다. 원래 기사에 가까운 검술실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아직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지만 경매장에서의 일로 미약하나마 상승된 육체적 능력이 더해진다면 기사와도 맞상대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로자레일이 무기를 가지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1:1의 대결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검술을 모르는 건달이라고 할지라도 급소를 한 번만 베이면 저세상 사람이 되어 버리는 이상,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뒤쪽의 데제와 브리엘을 보호하며 싸우고 있다. 가까스로 칼날을 피하고  있지만, 저들을 제압할 방법이 없었다. 처음 몇 번은 칼날의 옆을 쳐서 공격할 틈을 만들기 위해 노력 했다. 그러나 그 기술에 몇 번 당하자 건달들은 이내 로자레일의 팔을 노렸고, 그 바람에 로자레일은 더욱더 몸을 사려야 했다.

 

다섯 갈래로 휘둘러지는 칼들을 피하는 로자레일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불찰이었다. 뒤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도망갈 수도 없었다.

 

고개를 숙여 머리를 노리는 검을 피하자마자 배를 향해 찔러 들어오는 칼을 살짝 비켜서서 피한 로자레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검! 검만 있다면!’

 

로자레일의 안색이 어두웠다. 어린애들을 잡으러 간다고 방심을 하고 무기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

 

“으헉!”

 

로자레일이 자책을 하는 동안 빈틈을 보였던지, 오른쪽 허벅지를 살짝 베이고 말았다. 발이 꼬여 땅바닥을 뒹굴었다.

 

“목을 길게 빼어라! 한 방에 댕강, 잘라주지! 흐흐!”

 

“하하하!”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팜눌의 말에 그의 부하들이 폭소했다. 이렇게 건방떠는 것이 그의 성격처럼 보였다.

 

비가 와 질척해진 땅에 나뒹군 로자레일은 무릎 꿇은 채로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절망에 빠졌다. 이 상황이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죽는가. 이건 개죽음이야!’

 

넘어지지 않기 위해 지탱하고 있는 양손에 힘을 주자 진흙이 쥐어졌다. 주먹 쥔 오른 손을 들어 펴보자 손 위에는 흙만 남고 빗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비가 로자레일을 적셨다.

 

로자레일의 머리를 향해 발길질이 날아왔다. 장정 서넛에게 발길질을 당하자, 온 몸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고통이 로자레일의 뇌리를 강타했다.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어! 검! 검만 있다면!’

 

로자레일은 이를 악물었다. 포위는 무너졌지만 허벅지를 다친 이상 도망가는 것도 힘들었다. 로자레일은 살고 싶었다. 얼마나 살고 싶었는지 여태껏 이렇게 강하게 열망해본 적은 생전 처음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자 생존욕구가 제 멋대로 로자레일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로자레일이 쓰러진 채로 아무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자, 팜눌이 으스대며 다가왔다.

 

“이봐, 살려달라고 구걸이라도 해봐. 혹시 알아? 팔 한 개로 끝날지? 흐흐!”

 

팜눌이 칼로 로자레일의 머리를 툭툭, 치며 조롱했다. 로자레일은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팜눌의 부하들이 로자레일이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도록 칼을 겨누고 있었다.

 

“이봐, 뭐라고 말 좀 해보라니까?”

 

“미친 거 아닐까요?”

 

“그래, 들어본 적 있어. 죽음을 앞에 두면 미치는 사람이 있다더군. 에이, 재미없게 시리 말이야.”

 

팜눌이 칼을 번쩍 치켜들었다. 꼴을 보아하니 단칼에 로자레일의 목을 베어버릴 셈인 모양이었다.

 

“꺄악!”

 

팜눌의 칼이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모두가 로자레일의 죽음을 의심치 않았다. 브리엘은 비명을 질렀다.

 

챙! 경쾌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팜눌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로자레일이 반투명한 검을 들어 자신의 칼을 막은 것이다. 그 칼에서는 물이 뚝뚝, 흘렀다.

 

“너, 너!”

 

팜눌이 너무도 놀라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로자레일의 눈동자가 파충류의 그것처럼 번들거렸다. 피부도 마치 비늘이 일어선 것처럼 보여서 잘못 봤는가 싶어 눈을 비비자, 눈과 피부 모두 사람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로자레일이 물이 흐르는 검을 들고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 거였어.”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그 검에 머물다가 로자레일의 손을 타고 땅으로 흘렀다. 아무리 보아도 물로 만들어 진 것처럼 보였다.

팜눌의 눈에서 욕심이 넘실거렸다. 얼른 일어나 자세를 잡은 팜눌은 로자레일에게 달려들었다.

 

“뭐야! 마법 검인가! 놀랐잖아, 이 새끼야!”

 

챙! 팜눌의 검이 너무도 쉽게 로자레일에게 막혔다. 여태껏 얻어맞은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는 몸놀림이었다.

 

팜눌은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로자레일과 칼을 맞대고 힘을 겨루며 소리쳤다.

 

“죽여! 저 검이면, 평생 놀고먹어도 된다! 죽이고 빼앗아!”

 

건달들이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었으나 결과는 로자레일의 압승이었다. 칼질 한번에 건달들의 팔다리가 베어졌다. 팜눌은 피가 철철 흐르는 오른 손을 붙잡고 죽어라 악을 쓰며 비명을 질렀다.

 

“으악! 내 팔! 팔이 잘렸어! 내 팔!”

 

로자레일은 비명을 지르며 땅을 뒹구는 건달들을 지나치고 데제와 브리엘에게 다가갔다.

 

“움직이지 마!”

 

아까 로자레일에게 걷어차여서 기절해있던 건달이었다. 데제와 브리엘을 앞세우고 어깨에 칼을 올려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