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학교를 졸업한지도 어언 10년이 넘었었다. 이제 디아스도 30살이 훌쩍 넘어있었고 마리와의 사이에는 아기도 생겨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아조레스 곶이나 서아프리카 곳곳을 탐험하며 세월을 보내고있을때 본국에서 엔리케왕자의 호출이 왔다. 바로 귀국한 디아스를 본 엔리케 왕자는 이미 백발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허허. 어서오게 디아스경."
"예. 왕자님의 명을 받들어 신 디아스경 귀국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내가 또한번 탐사계획을 세웠다네. 자네도 꼭 같이 해주었으면 해서 말이야."
"계획이라하시면?"
"최근 질 아이네스경의 활약을 잘 들었을것이네."
"예. 저로서는 아직 발끝만큼도 따라갈 수 없는 분이지요."
"질 아이네스경을 함장으로 하여 저 미지의 해역인 베르데곶을 탐사할 생각이네. 선원들이나 풍문으로는 끓는물과 태양만이 있는 저주받은 지옥의 해역이라고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미신이라는게 대부분 허풍선이들의 헛소리가 아닌가. 난 베르데곶이 평범한 해역이라는것을 밝혀내고싶네. 자네도 당연히 허락해주겠지?"
"그런일이라면 얼마든지 맡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좋아. 자네를 베르데곶 탐사함대의 부함장으로 임명하겠네. 일주일 후 함대가 출발할터이니 아이네스경과 상의해서 좋은 결과 있길바라네."
"옛, 저하."

디아스가 아이네스경의 집을 찾았을 때 아이네스경은 한참 바쁜 상황이었다. 그래도 디아스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어서오게 디아스경. 이런 누추한곳까지 어인일인가?"
"이번에 베르데곶을 탐사하러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오오. 자네도 들었는가? 안그래도 그 일때문에 바쁘다네. 보통 준비할게 많아야말이지."
"실은 저도 엔리케왕자저하로부터 참가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부함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오 축하하네. 부함장이라면 날 좀 도와줘야겠네. 안그래도 부함장이 누군지 결정되지않아서 모든일을 혼자 하고있었다네."
"그러셨군요. 제가 할일이라면?"
"음. 일단 선원들 모집하는 문제가 급하다네. 베르데곶에 대한 미신때문에 용기있다는 선원들마저도 탐사계획에 참여하려하질 않아. 그리고 배말일세. 미신이라지만 어느정도 근거는 있을것이네. 지옥의 해역이라고 불릴정도라면 어느정도 험악한 해역아닐까? 폭풍이 자주 친다거나 말일세.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서 튼튼한 배를 준비시키고있는데 세우타공략에 나섰던 함선들이나 마데이라를 발견했던 함대의 함선들은 다 낡아서 쓸수가 없어. 배들을 좀 준비해줘야겠네. 조선공들을 끌어모아 건조하고있지만 계획대로라면 함선 15척쯤을 사용할 생각인데 일주일 후라면 6척도 채 안될것 같아서 말이야."
"예. 선원이라면 로팔라 상단에서 쉬고있는 사람들중 일부를 끌어보겠습니다. 배도 튼튼한 배들을 곳곳에서 구입해오겠습니다."
"음. 고맙네. 그것만으로도 한시름 놓겠어."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나고 함대가 출발하는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해역에 도전한다는 함대의 출발을 보려고 바글바글 모여있었다. 배에서 출항준비를 하는 선원들의 표정에는 다들 조금씩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선원들의 가족들이 모여나와서 부디 안전하게 돌아와주기만을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배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순조롭게 출발했다. 마데이라를 지나 카스티야 왕국(에스파냐의 통합전 이름)령의 라스팔마스제도를 지났을때부터 선원들의 분위기가 조금씩 험악해져갔다. 불안때문에 사소한일로도 서로 다투기도했다. 선장들은 그때문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선원들 안정시키는것이 주요일중 하나가 되었다. 마침내 아르긴을 지나 한참을 내려가 베르데곶 주변에 도착했을때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에메랄드빛의 아름다운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평온해보이는 섬이 오른쪽으로 보일뿐이었다. 선원들은 몇번씩이나 태양의 위치를 보고 하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었다.
"뭐야. 아무일도 없잖아!"
선원들에게서 안도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질 아이네스경의 표정은 더욱 환했다. 엔리케 왕자의 명을 수행한데다가 새로운 섬들도 발견한것이다. 질 아이네스경은 섬들을 탐사해보고는 그중 가장 커다란 섬을 카보베르데(Cape Verde)라고 명명했다. 함대는 만약 베르데곶이 안전하다면 더 밑으로 탐사할 계획도 있었기에 계속해서 밑으로 항해를 했다. 긴 항해를 한 끝에 함대가 시에라리온에 도착했을 때였다. 본국으로 보고를 위해 보내었던 부속용 배인 핀네스한척이 함대를 발견하고는 항구로 들어왔다. 핀네스에서 내린 전령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아이네스경이 물었다.
"무슨 일인가? 본국에 안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엔리케왕자께서 승하하셨습니다..."
"지금 뭐라고했나?! 승하하셨다고?"
전령의 말에 선장들과 디아스, 아이네스경의 표정은 충격 그자체였다. 항해왕이라 불릴만큼 항해자들사이에서는 명망높은 분이었다. 각종 탐험계획을 후원하고 계획하여 많은 발견을 이끌어내었던 왕자가 죽었다는 소식에 선원들마저도 울먹였다.
이윽고 아이네스 경이 입을 열었다.
"본국으로.. 귀환한다.. 더이상의 탐사는 중지한다. 즉시 본국으로 귀환할 준비를 해라."

본국으로 귀환했지만 함대를 맞이하는 뜨거운 함성은 없었다. 평소 국민들로부터도 존경받던 엔리케왕자의 장례식이 끝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에 참여하지못했던 베르데곶탐사함대원들은 왕자의 묘지를 방문해 대원들끼리의 약식 장례식을 올리고 헤어졌다. 디아스로서는 또하나의 소중한 사람이 떠난것이었다.
'언젠가 하나둘씩 떠나가겠지.. 마르코처럼 엔리케왕자저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