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월비화 제 2화
아포리아가 시작되다

눈이 흩날리는 성도 이슈가르드에서 편지를 받았다. 길드십의 동업자를 통해 전해진 그것은, 요컨대 의뢰서였다.
알고 있는 정보를 전해줄 테니, 할 수 있다면 협력해줬으면 한다……요약해서 그런 내용으로, 말미에는 쿠루루・발데시온의 사인. 일전 라비린토스에서 만났던 기묘한 집단을 떠올리며, 에렌빌은 "그러면, 어떻게 할까." 라며 웅얼댔다.

넘어가 볼까 말까, 결정하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왔을 무렵 업무용의 링크펄이 울린다. 응답해 보니, 길드십의 사무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철수래! 이 별에서의!"

사무원은, 조금 전 철학자 의회가 발표했다는 내용을 떠들었다.
종말, 별의 의지의 예언, 달로의 탈출계획…… 거짓말이라 말하고 싶은 한 편, 최근 느끼고 있던 의문에 답이 맞춰져 간다. 마지막으로 "너도 하던 게 마무리되면 당장 본국으로 돌아오도록."라고 고하자마자, 통신이 황급히 끊겼다.

그로부터 3일. 에렌빌은 포획해 놓았던 동물을 각각의 서식지로 돌려놓았다. 자신의 몸 하나라면 전송마법으로 본국에 귀한할 수 있다. 그 사이에도, 근동방면에 나가있던 동업자로부터 심상치 않은 재액이 일어나고 있다는 비명과 같은 보고가 도착해 있었다.
그렇기에, 올드 샬레이안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망설일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 재빠르게 발데시온 분관에 향해, 문앞의 접수원과 이야기하고 있는 쿠루루를 발견하기 무섭게, 품에서 그 편지를 꺼내 알렸다.

"일단 이야기를 들려줘……!"

쿠루루는 돌연 등장한 내방자에게 놀란 듯 하면서도, 곧바로 얼굴을 가다듬으며 끄덕였다.

그 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철학자 의회가 발표 이상으로 믿기 힘든 것이었다. 새벽의 혈맹이 알아낸 진짜 역사. 고대에 일어난 종말이 재래했다는 것. 달로 도망치는 것 만으로는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기 위해, 다른 발버둥을 찾고 있다는 것…….
에렌빌은 평소부터, 사물을 적극적으로 배우려 마음먹었다. 그리너(조달꾼)인 이상,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물론, 세계의 문화나 정세, 여행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알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에오르제아가 안고있는 문제를 해결로 이끈 조직이 있다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고, 그곳에 영웅이라 불리는 인물이 있다는 것도-통통쥐의 포획으로 만나, 토드에 걸린 모습으로 재회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지만-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뚜껑을 열어 보면, 갖고 있던 정보 따위는 한낱 파편에 불과했다는 것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의 진상과 마주하고 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 별에는, 미지의 것들이 잔뜩 존재한다.
자신의 보고 들어왔던 범위 안에서조차 그러한데, 쿠루루가 밝힌 이야기에까지 발을 뻗는다면, 대체 어느 정도의 발견이 아직 묻혀있다는 것일까.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 없이 이 별을 떠나는 것은-단순히, 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물음이 입을 움직였다.
쿠루루는 감사를 표하는 듯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그리너의 발과 연락망을 빌려달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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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곧 이루어지게 된다.
방주에 설치된 에테르 축퇴로의 개량, 그것을 위해 필요한 인재의 수배의 일부를, 그리너즈・길드십이 맡은 것이다. 지신의 항구에 모인 사람들은 센트럴 서킷에 자재를 운반해, 곧바로 작업을 개시했다. 별바다에서 돌아온 새벽의 혈맹의 요청, 그리고 철학자 의회의 승인을 받고, 지금은 하늘의 끝-울티마 툴레-을 향한 배를 완성시키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달의 도약항행장치를 수송해 오는 것과 병행해, 방주에 쌓아둔 각종 샘플을 배 밖으로 옮겨내지 않으면 안된다. 라비린토스의 직원과, 일사바드 파견단 같은 지원 인력이 온 한편, 에렌빌을 포함한 그리너들은, 타우마제인으로부터 보관원의 빈 창고까지 무아지경으로 화물을 옮기고 있었다.
또 하나의 나무상자를 승강기에 쌓아넣는다. 익숙하다곤 해도, 이미 전신이 삐걱댄다. 다음 물건을 옮기기 전 기지개를 켜자 말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이슈가르드 기병의 갑옷, 그 옷깃에서 빛나는 황금의 내갑은 포르탕가를 의미하는 것이던가. 해적 청년과 시도때도없이 불꽃을 튀기던 인물이라고, 얼굴을 보고 떠올렸다.

"쿠쿠로의 공방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이 화물을 그 쪽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받았지만 말이야……"

"그곳이라면……아냐, 내가 옮기는 편이 빠를 거야. 이리 줘."

"엇, 진짜로? 고맙다 야!"

포르탕가의 청년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품고있던 화물을 에렌빌에게 전했다. 역시 피로가 쌓여있었던 것이겠지, 손이 비자마자 신음을 뱉으며 허리를 두드린다. "대신 이 쪽을 부탁할게." 라 전하자 서러워하며-그러나 거부하지는 않고- 화물의 산으로 발을 돌렸다.

"이럴 거 같았으면 창천거리의 용들한테도 와달라고 하면 좋았을걸……"

자신도 모르게 말소리에 반응했다.
드래곤족은 대체로 신체능력이 뛰어나, 다가가는 것 조차 어렵다. 용시전쟁의 종결이래, 사람과의 관계도 변하기 시작했다고 듣기는 했다만, 잡일을 가볍게 부탁할 정도로 좋은 관계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인가?
자세하게 물어둔다면 이후 드래곤족에 관한 의뢰가 들어왔을 때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잠시 말없이 고민하다 결국 뒤돌아보지 않고 쿠쿠로의 공방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번 일을 완료하지 못하면 다음 일도 없는 것이다. 거기에, 저런 망설임 없이 거리를 좁혀오는 상대에겐 적극적으로 엮이지 않는 것이 신조였다.

곧이어 도착한 공방에서는, 요구되었던 애테르 축퇴로의 개량이 진행되고 있었다. 둥글게 서 있는 건물들엔 기술자들이 조급히 드나들며, 안에서 쿠쿠로・탄쿠로가 지시를 내리고 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에렌빌이 가까운 기술자에게 화물을 보여주자 어렵지 않게 전달해 줄 수가 있었다. 전해준 화물이 건물 안으로 운반되어가는 모습을 왠지 모르게 눈으로 쫓는다……그러자, 대신 산뜻한 노란빛 생물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세계각지에서 협력자를 데려온 에렌빌에게는 짐작이 갔다. 저것도 갈론드 아이언웍스의 일원이다. 직업상 굉장히 신경쓰였지만, 그냥 캐묻고 다니지 않았던 '무언가'…… 이번에야말로 정체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접근해 본다.



노란 생물에겐 갈론드사의 제복을 입은 라라펠족의 기술자가 딸려 있었다. 아마, 웨지라 불렸을 터였다. 우선 그 쪽에 '수고가 많네'라 말을 걸어본다.
그도 에렌빌을 기억하고 있던 건지, '수고하심다'라며 싹싹한 대답이 돌아왔다.

"휴식시간인가?"

"안타깝지만, 심부름 중임다…….
알파네도 같이 감다!"

아무래도 노란 생물은 알파란 이름을 가진 듯 하다.
어째서 '네'인가 했더니, 알파의 등 뒤에 딱정벌레같은 모형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대상을 쫓아 달리는 장난감 종류인 것인가. 짐을 옮기게 하려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아, 이 수수께끼는 점점 깊어져갔다.

"알파는 대체 뭔가?"

"뭐라니, 우리 사원이지 말임다?"

"그런 말이 아니라……무슨 생물이냐는 거야."

"물론 초코보지 말임다!"

초코보.
물론 모를 수가 없다. 에오르제아에선 대표적인 탈것으로 취급되어, 3대도시를 중심으로 수많은 아종이 존재하는 것, 그것들 모두의 특징까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형태를 한 종류는 도감 중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할 말을 잃은 에렌빌을 올려다보며, 알파가 "꾸엑!"하고 울었다.

"……울음소리는, 확실히……초코보처럼 들리지 않는것도 아닌……가……?"

자신있게 엄지손가락을 들고 긍정하는 웨지.
돌연, 모형이 그 다리를 노리고 돌진했다. 그다지 아파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만, 놀란 것과 함께 그는 지금 상태를 생각해 낸 듯 해

"대장이 기다리고 있으니 서둘러야함다! 그럼 나중에!"

라고 말하며 달려나간다. 알파는 한 번 울고는 그를 쫓아가고, 거기에 모형이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따라가, 이상한 무리는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에렌빌은 어안이 벙벙해 멀뚱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노란색이 점이 되어 사라질 즈음, 깜빡 잊어버릴 뻔한 사고가 겨우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필이면 '초코보인지 아닌지'가 알 수 없을 줄이야.
물론, 알파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종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그런 생물을 포획했던 경험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것들은 빠짐없이 조사되고, 분류되고, 이름지어졌다. 알파 또한 연구자에게 맡긴다면 그것에 마땅한 정의가 지어질 게 분명하다.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최근 노도와 같은 만남에 의해 깎여나갔던 사고가, 생각하라며 재촉해왔다.
샬레이안에서 정해진 것들이 진실 그 자체라고 할 수는 없다.-새벽의 혈맹이 밝혀낸 것 처럼. 진실은 언제나 바뀌어간다.-용이 반드시 인간의 적이어야 하지 않게 된 것 처럼.
그렇다면 이 머리는, 무엇을 '미지'라고 하며, 무엇을 '기지'로 친단 말인가.
생각해라. 계속 생각해라. 그럼으로써 진짜 발견이 가능해질거라, 자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목소리가 울린다.

멈춰 선 에렌빌의 곁을, 기술자나 직원들이 허둥대며 지나갔다. 서서히 시선을 향하면, 그들에게 각각의 얼굴이 있다는 것이 묘하게 새롭게 느껴진다. 그곳에서 나타나는 말 하나하나가 갑자기 수수께끼가 되어, 풍경을 구성하는 세세한 것들이 유난스레 주장하기 시작한다.
정말로 아직 아무것도 몰랐던 거구나, 라고 에렌빌은 생각했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새벽의 혈맹은 이겨주지 않으면 안 돼.
숨을 토해냄과 동시에 힘껏 기지개를 켜며, 다시금 앞을 본다.
-자, 해야할 일은 아직 산더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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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중 가장 바쁜 시기를 더욱 농축한듯한,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 지났다.
짐을 옮기는 사람들의 사이를, 레포릿이 구르듯 돌아다닌다. 작으면서도 능숙한 입에서부터 차례차례 나오는 달의 지식을 살레이안의 철학자가 받아들여, 계획에 반영시켜갔다. 의원들조차 종종걸음을 치며, 각소의 진척을 재빠르게 정리해간다. 에렌빌이 다음으로 공방에 방문했을 때, 쿠쿠로・탄쿠로는 쉰 목소리로 여전히 소리치고 있었다. 타우마제인에서는 밤낮으로 갈론드사의 누군가를 보았고, 화려한 색의 옷을 두른 라자한의 연금술사가 기술자와 얼굴을 맞대고 작업을 해 갔다. 실험농장이나 낙농원이 제공하는 식재를 요리해 나눠주는 건, 직원들의 가족이나 하인, 믿음직스러운 라스트 스탠드(마지막 보루)의 직원들이다. 끊기는 일 없이 커피나 차이나 영양제 등이 제공되었다. 쪽잠에 쓰인 모포를,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에게 슬쩍 걸쳐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 비가 그치는 것 처럼, 점점 손이 비는 사람이 늘어갔다. 에렌빌이 리틀샬레이안에서 마지막 짐을 둔 즈음에는, 과반수가 지산의 작업을 마쳤던 것일까.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은, 그럼에도 라비린토스에 남아, 지시가 있으면 언제든 일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머리 위, 인공 하늘에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어 각 장소에 설치된 확성기로부터, 약간의 잡음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모두들 들리는가. 철학자 의회의 프루슈노 르베유르다."

모든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마른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였다.
프루슈노는 사람들의 분투에 다시금 감사를 전하며, 몇가지의 확인작업이 여전히 속행중임을 전한다. "다만"이라는 말이 이어지자, 한 번에 청중의 기대가 부풀어올랐다.

"방주는 완성했다. 우리가 뻗은 손은, 머나먼 별을 붙잡겠지."

각자가 그의 말을 이해하는, 짧은 순간.
곧바로 그것을 박수와 환성으로 뒤덮었다. 리틀 샬레이안은 물론, 라비린토스 전체가 끓어올라, 웃는 자, 우는 자, 서로 끌어안는 자에 옆 사람의 등을 두드리는 자, 십인십색의 기쁨이 여기저기서 피어났다.
에렌빌은 혼자서, 안도의 한숨을 토해낸다.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지만, 속을 채우고 있는 열기는 분명 주위와 다르지 않다.
그저 한 마디, 닿아라고 빈다. 하늘의 끝까지. 아직 보지 못한 이 별의 내일까지.

-그것이 들렸던 것일까.
하늘은 개어 종말은 지나가고, 평온을 되찾은 지식의 도시에서, 에렌빌은 다시금 발데시온 분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번엔 의뢰서 없이, 대신 제안을 하나 가지고 있다.
발데시온 위원회와의 협력의 계속. 대신 대철수의 뒷처리를 도와달라는, 구실 세우기 정도의 조건을 붙여서. 그들에게 엮이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의 일을 이루었기 때문일까, 어울리지도 않는 기대감 쪽이 더욱 컸다.

까딱하면 이 길 너머에서, 미뤄뒀던 과제에 당면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너를 목표로 해 온 계기이기도 하며, 에렌빌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고르기도 전 먼 고향에 던져질 뻔한, 그 과제에-

분관의 문을 열자, 쿠루루는 또다시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이번에도 3시간쯤 걸렸네요. JLPT 2급 겨우 딴 일본어 초보라 오역, 오타 엄청 많을건데 용서해주세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