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을 잔뜩 품은 하늘에서 성가신 우렛소리가 그칠 줄을 모르고 내려앉았다. 나는 해초로 풀을 먹인 검은색 우의 자락을 새삼 여미면서 서둘러 목책 사이로 난 높다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깜깜한 판자 거리에서는 아래로 까마득히 펼쳐진 만으로부터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전등 불빛들 사이로 새어 나오는 떠들썩한 뱃사람들의 고함이 뒤섞여 을씨년스러웠다. 귀퉁이를 바다뱀 비늘로 장식한 현상금 게시판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늦췄다. 저 멀리서 비바람에 요동치는 선술집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갈고리와 모루는 판자 거리에 즐비한 여느 선술집과는 다르게, 뱃사람과 대장장이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술과 도박 따위로 가산을 탕진하고 비루한 여생을 그림자 군도에서 마감할 요량이라도 품은 듯해 뵈는 초췌한 행색의 뜨내기들이 룬테라 이곳저곳에서 빌지워터로 흘러들어오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선박이나 부둣가 변두리에서 허드렛일로 사나흘은 먹고 마실 돈푼깨나 손에 쥔 이들도 있었는데, 데본은 그런 자들을 자오틀리라는 이름으로 싸잡아 부르며 불쾌함을 드러내기 일쑤였다. 

끌 모양의 길쭉한 청동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쌉싸름하면서도 매캐한 냄새가 풍겨왔다. 내부는 지난번에 들렀을 때보다 훨씬 한산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지만, 데본이 거의 탁자 크기만 한 술통을 안은 채로 걸어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활기찬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벽감에는 증류주 병이 잔뜩 진열돼 있었다. 족히 쉰 개는 넘어 보이는 의자들은 왼편 구석에 위아래가 맞물리게 쌓아놨고, 반대편 구석에는 탁자들을 죄다 몰아놨다. 저 거구에서 나오는 힘만 보자면, 아마 자울치와 맨손으로 싸운대도 이길 게 틀림없다.  

"왔으면 인사라도 하던가, 멀뚱히 서서 옛날 생각이라도 하는 거야?"

데본은 카운터 아래에 비명목 술통을 쿵 내려놓고 만족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 문간에 기대어 선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툭툭 털면서 능청을 떨었다. 맡길 일이 생겼다는 소리다. 

"또 올가미 때문에 허탕 쳤답니까? 그래서 내가 그 양반들은 안 된다고 했잖아요. 고가 풀리는 것 아니면 쓰는 손이 문제라니까..."

데본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아쉬운 쪽이 예의를 차리기 마련이니, 평소였다면 배가 뒤집어지도록 웃어댔을 게 뻔하다.

"아이구 이 친구, 나만큼 자네 솜씨 좋은 거 잘 아는 사람이 또 어딨나? 지난번 그건 그냥 사소한 실수였지. 암, 그렇고말고. 이번엔 올가미 말고 페인이 필요하다는데, 관심 있나?"

"저 말하는 겁니까? 헤엄도 못 치는 사람을 사냥선에 태운다고요?"

"헤엄을 못 치니까 배에 태워서 데려간다는 거 아니겠나."

데본은 싱긋 웃으며 양손을 들어 일곱 표시를 하더니 이어서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바다 괴물 사냥에 물길을 잘 아는 이나 나 같은 야공, 심지어는 점쟁이들까지 태우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보통 작살잡이들이 한 번 출항해 지급받는 보수보다 많은 액수를 그런 곁다리들에게 지급한다는 건, 이번 건이 뭐가 됐든 아주 불길하거나 아주 고될 거라는 얘기다.  

"주책없는 소리긴 한데, 메릴 생각도 해야지 않겠나. 여기 있는 꼬맹이는 고사하고 집에 있는 두 녀석 키우는 것만 해도 아마 등골이 휠 테니까, 아하하!"

"그것도 부흐루식 농담입니까? 그래서, 어디로 간대요?"

웃음기를 싹 거둔 데본은 두 손가락으로 미간을 슥 문지르더니 과하게 내리깐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디어메인."

푸른 불꽃 제도 남서쪽에 자리잡은 쐐기꼬리 곶에는 발로란과 수호자의 바다 그리고 빌지워터를 오가는 수많은 상선과 사냥선들이 정박하곤 한다. 그리고 바다뱀은커녕 거친 파도 한 번 겪어본 적 없는 내륙인들이건 갈고리와 올가미를 휘두르는 데 이골이 난 베테랑 작살잡이건, 누구든 저 멀리서 기괴하게 솟은 바다뱀 뿔의 윤곽을 어렴풋하게나마 포착하게 되면 빌지워터의 불빛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직감하며 한시름 놓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감히 정해진 항로 바깥으로 키를 돌릴 용기가 없는 겁쟁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하렐 항만 위쪽에 위치한 바다뱀 삼각주는 잔뼈가 굵은 빌지워터 토박이 뱃사람들조차 그 악명높은 그림자 군도가 늘어선 남동부만큼이나 접근하길 꺼리는 곳이다. 소문, 괴담, 전설, 뭐라고 부를지는 알아서 고르시기를. 그걸 직접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간다면 아마 죽음이 당신을 고를 테니까. 퇴적 지형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이상 해류가 원인이라는 말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해양학자가 아니다. 사실 몇 년 전, 서남쪽 항로를 단축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용맹한 선구자들 여섯이 출항한 적이 있긴 했다. 배의 이름이 뭐였냐고? 지금쯤 백골이 되어 저 깊은 곳 어딘가 누워있을 머튼 디어메인에게 물어보라.   

"데본, 내가 왜 당신이랑은 저 아래에 있는 멍청이들과 달리 허물없이 지내는지 알아요?" 

느닷없이 꾸르륵거리는 천둥 소리가 들이닥쳤다. 데본은 마치 그게 극적인 장치라도 되고 또 거기에 부응이라도 하려는 양, 내가 지금껏 봐왔던 것 중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쾌한 양반이야, 정말로 한 대만 걷어차 봤으면.

"평생을 가도 못 만나볼 터프한 놈들이랑 엮어 주고, 끝내주는 요리 솜씨를 가진 데다가, 바다뱀 은화 칠백 닢이 걸린 건을 쥐여주면서도 일흔 닢밖에 안 떼 가서?"

"멍청한 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거든요. 끝내주네요, 오늘 처음으로 벌써 두 번이나 하셨어요."

"자넨 도통 빌지워터 사내 같지가 않아. 저기 핏빛 항구 부두 쥐들이 자네보단 더 용감할 걸."

"용기와 만용을 구분하..."

"나 원, 알았으니까 대답하기 전에 이거나 잡숴 봐."

빌지워터의 대장장이들은 피 냄새를 맡을 일이 없다곤 하지만, 쐐기꼬리 요리를 맛보면 그게 얼마나 구시대적인 말장난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 놈들은 겉모습이 부두 쥐를 닮았지만, 갈기털과 다리가 없고 꼬리에 유독 지방이 가득하다는 점에서 사랑받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 생물이다. 데본은 쐐기꼬리 덩어리가 아니라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적어도 빌지워터에서는.

데본은 카운터 뒤로 넘어가더니 양 손에 쐐기꼬리 한 마리를 통째로 들고 돌아왔다. 

"이게 바로 디어메인 근처에서 잡은 쐐기꼬리야."

"근해에서만 잡히는 놈들 아니었습니까? 농담하는 거죠?"

"바다뱀 삼각주는 무슨 페트리사이트라도 쌓여서 만들어진 줄 아는가? 그건 그렇고 또 오기로 한 치가 있는데, 도통 언제 도착할는지."

"나 말고 누굴 또 불렀어요? 어쨌든, 쐐기꼬리 좀 먹어보겠다고 인간 닻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줄 아세요."

"으ㅡ흠."

데본 말마따나 나가카보로스님께 맹세컨대, 누군가 장난질을 하는 게 틀림없다. 처음은 데본, 두 번째는 웬 노크할 줄도 모르는 작살잡이 여자라. 세 번째 천둥이 치면 내 입에서 디어메인 탐사호 뭐시기에 동행하겠다는 소리가 나오길 바라기라도 하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지. 누군진 몰라도 날 너무 얕봤다. 날 너무 과소평가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