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져주는 경기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원인과 그 해결책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져주는 경기가 발생하느냐 보다도 왜 져주는 경기를 했냐에 비난의 촛점이 맞춰진 이유는 

팬들은 프로게이머들의 스포츠맨쉽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있어서 입니다. 단순히 팬들의 기대를 져버려서는

안되기에 그런 경기를 펼쳐선 안되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왜 그래야만 했느냐에 대해서 좀더 고민해보면 금방 여러가지 원인이 있음을 알아챌 것입니다.

우선은 시스템과 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은 '이기면 승리하는 게임'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져도 승리하는 게임' '져야만 승리하는 게임'구조를 만든 것은 시스템의 책임이고 게이머는 

그에 따른 것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게이머에게 어떤 맨쉽을 기대하는 것은 가장 나중에 해야할 일입니다.

우선은 룰과 시스템이 있고 그 뒤에 맨쉽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왜 게이머에게 맨쉽을 기대해선 안되냐고 물으신

다면 그것이 한국 프로게이머 역사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스타와 롤은 다른 게임이지만 스포츠맨쉽 역사에 있어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스포츠맨쉽

은 어떠했는지 기억하시나요.

맨쉽에 관한 가장 오래전의 키워드는 아마도 임요환이었을 것이고 가장 나중의 키워드는 아마도 마재윤일 겁니다.

이렇게만 써놔도 이해하실 분은 이해하시겠지만, 게이머의 아이콘이었고 다수의 팬을 보유한 임요환이야말로 스포츠

맨쉽에 대한 논쟁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삼연벙에 분노했고 논쟁했던가요. 왜 우리는 귀맵에 분노하고 

얼라이마인에 치를 떨었을까요. 그것이 프로로서의 매너였고 상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승부에 앞서서 그 모든

방법과 수단을 상식선에서 검증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서였죠. 임요환은 주로 버그,채팅시스템,게임내 전략요소를 모두

사용하여 승리하고자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것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적어도 그 당시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에 거부감을 느꼈을 겁니다. 왜 그는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하지 않는가.

그러던 것이 삼연벙에서 완전히 폭발했습니다. 전략이긴 하지만 꼭 그래야했던가 하고 우리는 되물었습니다.

이 임요환의 파격은 채팅금지, 얼라이마인 패치 등의 시스템적인 보호로 이어졌지만 맨쉽의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

입니다. 게이머로서의 매너와 상식은 조금씩 가치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승리의 쟁취가 

프로로서의 가치기준이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도 이런 가치변화는 시스템적인 보호를 통해서 일부 통제되었

지만 마인드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승부조작이라는 극적인 사태까지 이어지게 되죠.

즉 맨쉽의 유전자에 자정력은 없다 라는 것입니다. 단지 게임패치와 시스템통제로 그 오염을 강제로 저지해온 것뿐이죠.

더군다나 후반후에 기업논리까지 끼어들면서 더더욱 게이머 본인의 자긍심이나 상식 매너같은 이데올로기는 힘을 잃

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이기면 장땡, 우승하면 장땡, 우리가 원한 건 코치 감독이 핏줄세워가며 심판에게 항의하

여 얻는 그런 승리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기업의 노예가 된 게이머들은 가슴속에 순수함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은 채워넣

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의 후손격인 lol게이머들에게 홍진호 조용호 박정석세대나 가능했던 자정력을 기대한다는 건 우스운 

일입니다. 기본적인 것은 져도 되는 게임이나 져야하는 게임을 만들어낸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이 시스템에 기댈 수 밖

에 없는 것이 피폐해진 지금 게이머들의 스포츠맨쉽의 현실인 것입니다. 왜 그들은 눈맵을 하고 귀맵을 하죠?

방음이 안되어서 그렇고 고개를 돌리면 화면이 보여서 그렇습니다.

왜 그들은 게임을 던질까요? 지는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게이머들의 스포츠맨쉽과 프로의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상식이 없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