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가 말랑말랑해지려면 결국 경쟁 콘텐츠의 열기를 식히거나, 아예 불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주간 보스를 뺄 때를 보면,
레이드 보스를 다 같이 합심해서 "죽였다!!" 하고 뿌듯해하기보다는
같이 잡는 공대원들끼리 서로 딜을 더 잘 넣으려고 경쟁하는 게 보통이죠.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하찮은 배럭을 뺄 때도 전투력이 비슷하면 괜히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아싸! 밑줄잔혈!"
"OOO 따~잇! 컷!"
"나? 뇌군죽부돌로심군이클."


꺼드럭 도파민, 참기 어렵죠.

누군가에게는 이런 도파민이 게임을 계속 접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고,

RPG 게임에서 이런 승부욕 자체는 분명 옳게 된 경쟁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승부가 벌어지는 경기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겁니다.


비록 이벤트 보스라고 하더라도,
'개발자가 지정한 선'을 넘지 못한 유저들, 특히 애매한 선발대 라인은 상당한 좌절감을 맛보게 됩니다.

모르둠처럼 허수아비 레이드에서 상대적으로 약세인 타대 유저들은 더더욱 그랬을 것 같고,
버프 효율을 극고점까지 끌어내야 하는 레이드에서는 도아가님들도 많이 좌절하셨을 것 같습니다.

모르둠마저 소중한 휴가시간을 다 갈아 넣어야 겨우 깨거나, 아예 못 깨는 수준으로 나왔는데

카제 익스는 얼마나 더 어려울까...

유틸 부족한 캐릭터들은 지옥이 시작될 것 같고,
벌써부터 저 또한 하기 싫습니다.

모르둠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허수 DPS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밸런스 패치를 진행했는데,
이번 카제 익스에서는 반대로 약세인 사멸이나 유틸 부족 캐릭터들의 저점을 보완하는 밸패를 해주는 걸까요?

이걸 또 기대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진절머리 나네요.


실제로 이번 모르둠을 계기로 주변에서도 접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에스더 도아가님, 에스더 건슬님, 에스더 배마님...

아마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냥 버스 타면서 해본 망상입니다.

그나마 조금 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봤습니다.


1. 스펙에 따른 딜 편차를 크게 한다

전투력 7000은 7500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어떤 직업이든, 손이 조금 안 좋더라도 스펙이 높은 사람이 밑잔을 먹는 세상.

장점

  • 스펙업 동기부여가 확실해짐.
  • 전투력 1점이라도 더 올리고 싶어져 골드 소모가 촉진됨.
  • 결과창을 보고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음.
  • 직업 밸런스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음.
  • "서폿이 어쩌고", "내가 더 금손이 어쩌고", "기믹이 어쩌고" 전부 셧업 가능.

단점

  • 딜 인플레이션이 심해질 것.
  • 딜찍팟은 슈슈슈슈퍼 딜찍.
  • 끼리끼리팟은 하루종일 걸림.
  • 결국 버스방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음.
  • 개발자 입장에서는 콘텐츠 소모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움.

특히 로아가 1년에 레이드 2개 정도 출시하는 속도라면 컨텐츠 수명이 너무 빨리 녹을 것 같습니다.


2. 직업 변경권을 출시한다

단, 같은 대륙·종족끼리만 변경 가능.

장점

  • 밸런스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음.
  • 직업 변경으로 인한 경제 활성화 가능.

단점

  •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낭만이 사라질 수 있음.
  • "이번 시즌 OP는 기공사야?" → 딸깍.
  • 결국 사기 캐릭터로 도배된 필드맵을 볼 수도 있음.

3. 옛날 로아처럼 MVP에서 밑줄을 삭제한다

MVP창 자체를 없애면 재미가 너무 떨어지니,
MVP는 그대로 두되 밑줄만 삭제하는 방식.

장점

  • 치열한 딜 경쟁의 열기를 식힐 수 있음.
  • 사람들이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레이드를 할 수 있음.
  • 딜 경쟁보다 기믹 수행에 집중할 수 있음.
  • 워로드처럼 딜 외적인 기여도가 높은 직업들도 상대적으로 편해짐.

단점

  • 딜빵이나 건피를 원한다면 결국 직접 소통해야 함.
  • 서로 전분을 공유해야 정확한 비교가 가능함.

개인적으로는 이게 가장 말랑말랑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4. 그냥 수직군단장 뚝심 있게 밀고 갑시다

마음 약해지지 말고 레이드는 더 어렵게!

칭호와 심볼 같은 명예 보상으로 희소성을 확실하게 보장하고,
말 그대로 적자생존으로 가는 겁니다.


장점

  • 명예 보상의 희소성이 확실하게 보장됨.
  • 유저 간 목표의식이 명확해짐.
  • 대재학의 선을 넘지 못하는 유저들을 자연스럽게 걸러낼 수 있음.

단점

  • 유저 콘크리트층, 특히 애매한 선발대 라인이 뜯겨나갈 수 있음.
  • 칭호에 대한 박탈감이 커질 수 있음.
  • 결국 방제도 이런 식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음. (방제: 카제 익스 죽부 + 뇌군 + )

5. '개발자의 선'을 [죽부자] 선으로 낮춘다

로아는 이게 맞다.

어려운 건 일부 금손들의 도전 영역으로 남겨두되,
일반 유저들은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선을 낮추는 것.

장점

  • 재미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말랑말랑해짐.

단점

  • 스트리머나 금손, 퍼클 및 저격 유저들에게는 로아가 너무 라이트하게 느껴질 수 있음.

6. 전부 리셋하고 시즌4에서 새로운 전투 메커니즘을 도입한다

그냥 싹 갈아엎는 겁니다.

장점

  • 새로운 게임, 새로운 재미.
  • 뉴비와 복귀 유저 유입.
  • 골드값 상승.
  • 나이스단 문제 해결 가능.

단점

  • 기존 선발대들의 통수와 대가리 봉합
  • 공수표.
  • "기다려."
  • 그리고 업데이트 전까지는 결국 재탕으로 버텨야함.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합니다.

로아가 너무 경쟁적으로 변했고

이 경쟁의 열기를 받쳐줄 그릇이 준비가 안되어있다는 말입니다.


레이드에서 같이 보스를 잡고
"내가 쟤보다 딜을 잘 넣었나?"

"왜 쟤가 밑줄이지?"
"내 직업은 왜 이 모양이지?"
"이번 레이드는 이 직업이 유리하네."

"밸런스 개판이네"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RPG에서 경쟁 자체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경쟁이 게임의 재미를 잡아먹기 시작하면 한 번쯤은 불판을 갈아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로아가 조금만 더 말랑말랑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