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오오오...”

 

 

설원의 한복판에서 좀비 하나가 으르렁거렸다.

 

 

좀비는 팔다리를 결박당한 채 장대에 묶여 있었다. 저잣거리에 매달린 죄인 같은 모습이었다.

 

 

뀨잉?”

 

 

주니어 예티 한 마리가 호기심이 동한 듯 좀비에게 접근했다. 조심스럽게 다가온 주니어 예티는 기다란 팔로 좀비의 다리를 몇 번 건드렸다.

 

 

크륵?”

 

 

좀비의 핏발 선 눈이 주니어 예티를 향했다. 화들짝 놀란 주니어 예티는 눈물을 흘리며 달아났다.

 

 

뀨아앙!”

 

 

주니어 예티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좀비는 그 주니어 예티를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결박당해 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좀비는 이 상황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비는 허공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쿠오오오오!!”

 

 

인간에 대한 분노. 산 자에 대한 질투. 리치의 명으로 몇 인간을 잡아다 바치긴 했으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이 있었다. 좀비는 그들 또한 마저 없애고 싶었다.

 

 

묶여 있는 상태로는 불가능한 바람이었다.

 

 

좀비는 분노에 차 소리 지르며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장대가 삐걱거리며 흔들거렸다. 장대는 그리 튼튼하지 않았다. 만약 앞으로 하루 정도 더 몸부림친다면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퍼억!

 

 

갑작스럽게 나타난 쇠사슬이 좀비의 머리를 터뜨렸다. 장대가 부러지고, 남은 좀비의 몸이 꿈틀거렸다.

 

 

설산의 마녀였다.

 

 

쿠웅! 쿠웅!

 

 

설산의 마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멈추지 않고 쇠사슬을 내리쳤다.

 

 

좀비는 이미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졌음에도, 설산의 마녀는 섬뜩할 정도로 집요하게 남은 뼛조각과 덩어리들을 부쉈다.

 

 

그 때문에 설산의 마녀는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설산의 마녀의 뒤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난 것 같군. 설산의 마녀. 어쩌면 메리엘이 제대로 짚은 걸지도 모르겠군.”

 

……!”

 

 

설산의 마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타일러스는 검면으로 설산의 마녀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대검의 육중한 충격에 설산의 마녀는 힘을 잃고 땅에 떨어졌다.

 

 

메리엘, 지금이네.”

 

!”

 

 

숨어 있던 메리엘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뛰쳐나왔다. 메리엘은 설산의 마녀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죄송해요.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니까, 조금만 더 엿볼게요!”

 

 

메리엘은 외쳤다.

 

 

마나 이터!”

 

 

그와 동시에, 메리엘의 시야가 암전했다.

 

 

-----

 

 

여성은 긴장한 표정으로 시약에 용액을 한 방울 흘려 넣었다.

 

 

순간, 시약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시약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부글거렸다. 여성은 손톱을 씹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약의 반응이 조금씩 가라앉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안정되었다. 긴장이 풀린 여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켜보던 노인이 축하를 건넸다.

 

 

축하하네, 엘미나. 성공했군.”

 

다 알케스터 님 덕분이에요.”

 

 

엘미나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여기서 순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을 줄은... 역시, 최고의 연금술사가 곁에 있으니 든든하네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엘미나는 즐거운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좋네요. 이대로라면 새 포션의 효과는 기존의 11배에서 12배 정도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허허... 굉장한 도약이로구만. 그나저나, 조금은 의외로군.”

 

?”

 

자네, 전쟁에서 크게 활약했다고 들었네만... 자네가 연구하는 마법은 전투와는 별로 관련이 없지 않나.”

 

호호. 저는 또 뭐라고...”

 

 

실험 기구를 정리하던 엘미나는 손을 멈추고 자신의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한때는 그런 마법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죽고 죽이는 짓은 이제 지긋지긋하니까요. 앞으로 그런 마법은 사용하지도, 연구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런가.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미안하군 그래.”

 

아니에요. 도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했어요.”

 

 

그때 누군가가 연구실의 문을 두드렸다.

 

 

알케스터 님! 계십니까?”

 

들어오게.”

 

 

상점 주인이었다. 그는 물건이 가득 든 상자를 들고 있었다.

 

 

저번에 부탁하셨던 물품입니다.”

 

, 그 옆에 놔두면 되네.”

 

 

상자를 내려놓은 상점 주인은 너스레를 떨었다.

 

 

, 제가 특별히 품질 좋은 것들로만 모아 왔습니다.”

 

고생했네. 남은 대금은 내일 마저 치르지.”

 

하하. 편할 때 주십시오. 설마 하니 알케스터 님께서 돈을 떼먹지는 않으시겠죠. 그런데 저분은...”

 

 

상점 주인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상점 주인은 연구실 한편에 서 있던 엘미나를 발견했다.

 

 

……!”

 

 

엘미나를 발견하자마자 상점 주인은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그러나?”

 

, . , 아무것도 아닙니다!”

 

 

상점 주인은 허둥지둥 연구실을 나섰다.

 

 

, 알케스터 님. 다음에 또 이용해 주십시오.”

 

알겠네.”

 

 

알케스터는 엘미나의 안색을 살폈다. 엘미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럼. 알케스터 님. 저도 이만 가볼게요.”

 

“...알겠네. 조심히 들어가게.”

 

 

엘미나는 연구실을 나갔다. 알케스터는 안타까워하며 중얼거렸다.

 

 

저렇게 훌륭한 마법사가 왜 이런 취급을 받게 된 건지 원...”

 

 

엘미나가 연구를 위해 엘나스에 온 뒤로, 엘나스의 주민들은 알게 모르게 엘미나를 배척했다.

 

 

꺼림칙하게 여겨 근처에 가지 않으려 했고, 그녀가 말을 걸거나 가까이 다가오려 하면 두려워하며 자리를 피했다. 상점도, 여관도 이용할 수 없던 엘미나는 알케스터가 마련해 주는 물자로 생활을 이어갔다.

 

 

알케스터는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해치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적어도 알케스터가 알기로 그런 적은 없었다. 오히려 엘미나는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엘나스의 분위기를 알고도 그들에게 친절하려 노력했다.

 

 

알케스터가 그동안 봐온 엘나스의 모습과는 달랐다. 적어도 외부인을 이유 없이 함부로 대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왜 엘미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안 좋은 소문이라도 퍼진 건 아닌지 모르겠군.”

 

 

이유를 알아내려 해도 쉽지 않았다. 그저 이유 모를 따돌림이 해결될 때까지 엘미나가 너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엘미나는 거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도 엘미나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줄 거라 믿었다. 안 좋은 생각은 치우고,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 연구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엘미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지날 때, 느닷없이 누군가가 엘미나의 앞을 막아섰다.

 

 

멈춰라.”

 

 

신전의 기사였다. 엘미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쪽에도 이미 기사 하나가 나타나 길을 막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신전과 사이가 나쁘지 않던 엘미나는 그들이 갑자기 이렇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어진 기사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엘미나, 신의 이름으로 너를 체포한다.”

 

“...?”

 

 

엘미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기사가 엘미나를 끌고 간 곳은 엘나스의 하나뿐인 신전이었다. 인자하게 생긴 프리스트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기사는 엘미나를 그의 앞에 무릎 꿇렸다.

 

 

프리스트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네.”

 

 

기사는 고개를 숙인 뒤 옆에서 대기했다.

 

 

프리스트는 뚜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엘미나에게 다가왔다. 엘미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엘미나는 프리스트의 이름을 불렀다.



메데르 님.”

 

 

그는 엘나스의 존경받는 프리스트였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병든 자에게, 가난한 자에게, 약한 자에게 아낌없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던 프리스트. 엘미나가 머무는 거처를 마련해준 것 또한 그였다.

 

저를 체포하라 한 게 당신인가요?”

 

 

메데르가 말했다.

 

 

그렇다네.”

 

이유가 뭔가요?”

 

그래, 궁금하겠지.”

 

 

메데르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자네는 금지된 마법에 손을 댄 혐의로 체포되었다네.”

 

 

엘미나는 당황했다.

 

 

어떻게 알았지?’

 

 

전쟁터에서 그녀가 금단이라 여겨지던 마법을 사용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 당시에는 허가를 받고 사용했으며, 금지된 이유도 단순히 그 마법이 지나치게 강력했기 때문이지, 사악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심지어 엘미나는 이미 그 마법을 버린 뒤였다.

 

 

메데르가 어떻게 그걸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전부 설명 가능한 일이었다.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저는 결백해요.”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상관없네.”

 

 

엘미나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

 

상관없다고 했네. 자네가 금지된 마법에 손을 댄 적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르네. 애초에 그런 것은 중요하지도 않고.”

 

 

메데르는 허리를 숙여 엘미나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진실이 어떻든, 자네는 지금부터 사악한 흑마법사일세.”

 

 

엘미나는 여전히 메데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엘미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항의했다.

 

 

잠깐만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죠?”

 

큭큭큭...”

 

 

메데르는 그런 엘미나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였다. 메데르가 말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죽음을 지켜보았네. 행복하건, 명예롭건, 비참하건, 고통스럽건. 모든 죽음의 공통점은 상실이네.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모든 능력을 잃지.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메데르의 말이 이어졌다.

 

 

세계와의 지독한 단절이지. 생명의 불꽃이 꺼지는 그 순간. 하나의 세계가 사라진다네. 그럼에도 세상은 냉정할 만큼 아무런 변화가 없지. 나는 그것이... 참을 수 없이 두려웠다네.”

 

 

메데르는 자신의 주름진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이가 들고, 죽음이 점차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네. 시간이 없었어. 죽음을 피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네.”

 

 

메데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운명적인 만남으로 나는 한 마법사에게 불사의 마법을 배웠네. 신께서 인도하심이 틀림없지 않나? 내가 두려워하고 있을 때, 시련을 헤쳐 나갈 방도를 알려 주신 것이네.”

 

 

엘미나는 긴장한 채 말했다.

 

 

이걸 저한테 말씀하시는 이유는 뭐죠?”

 

불사의 마법에는 제물이 필요하다네. 적절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때마침 자네가 나타났지.”

 

 

메데르는 엘미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력은 강하지만 마법을 쓸 수 없고, 엘나스에 연고도 없지. 내가 자네를 이단으로 몰아 추방한다면, 누가 나를 의심하겠나?”

 

 

믿기 힘든 선언에 엘미나는 경악했다. 엘미나는 메데르를 노려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저를 피한 것도... 당신 때문인가요?”

 

이제 눈치챈 건가? 자네가 엘나스에 왔던 그날부터 자네에 대한 소문을 흘렸네. 자네가 위험한 마법사라고 말이야. 자네가 사라지고 나면, 자네는 사람들의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 숲에 은둔한 것으로 처리될 걸세.”

 

 

그 음험함에 엘미나는 치를 떨었다.

 

 

메데르가 손짓하자, 대기하던 기사들이 엘미나를 일으켜 세웠다. 엘미나는 격하게 몸부림치며 외쳤다.

 

 

이 비열한 자식! 프리스트라는 놈이 죽음이 두려워서 이따위 짓을 벌이다니! 부끄럽지도 않은 거냐!”

 

허허. 부끄러워하는 것도 살아야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리고 자네만 사라지면, 그 누구도 나를 의심하지조차 못할 것이네. 나의 불사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생길 때쯤, 난 이미 엘나스를 떠나 다른 곳에 가 있을 테니.”

 

 

기사가 검 손잡이로 바둥거리는 엘미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엘미나는 축 늘어졌다. 기사들은 엘미나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커다란 자루에 담았다.

 

 

메데르는 두 팔을 벌리고는 경건하게 선언했다.

 

 

드디어 불사의 의식을 거행할 준비가 끝났으니, 때가 되었다. 오늘 나는 불사의 존재로 거듭나리라.”

 

 

달이 떴을 때, 메데르와 그를 따르던 기사들은 자루 하나를 짊어지고 마을을 벗어났다. 엘나스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설원에 미리 마련해 놓은 제단에 도착한 뒤, 기사들은 자루에서 엘미나를 꺼냈다. 엘미나는 그새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기사들은 엘미나를 거대한 얼음에 쇠사슬로 고정했다. 엘미나는 짓씹듯 말했다.

 

 

네놈을 저주한다.”

 

그런가. 개인적인 감정은 없네. 단지, 내 목적을 이루기에 자네가 제일 적합했을 뿐이네.”

 

 

엘미나는 핏발이 선 눈으로 메데르를 올려다보았다.

 

 

크흐흐... 이것이 존경받던 프리스트의 실체인가. 추악하기 그지없구나. 기다리고 있어라. 언젠가, 반드시, 내가 너를 찾아가 복수할 테니.”

 

그래. 기대하지.”

 

 

의식을 거행할 준비가 끝나고, 기사들은 제단의 아래로 내려갔다. 메데르는 손을 들어 올렸다. 엘미나를 묶은 사슬이 검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엘미나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강력한 흑마법의 파장이 일대를 뒤덮었다. 기사들은 감탄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의식을 바라보았다.

 

 

메데르는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제단의 마법진이 활성화되며 이계와 연결되었다.

 

 

사악하고도 거대한 존재의 시선이 메데르에게 닿았다.

 

 

메데르 또한 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메데르는 웃으며 말했다.

 

 

계약하겠다.”

 

 

악마에게 엘미나의 영혼을 바치고, 그 대가로 생명력을 빼앗는 능력을 얻는다. 악마는 계약에 응했다.

 

 

일순 엘미나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악마가 영혼을 거두어간 것이다.

 

 

동시에, 메데르는 죽음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쇠약한 노년의 육신은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듯 활력이 넘쳤다.

 

 

하하하하!”

 

 

메데르는 광인과도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불멸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의식이 진행된 순간, 메데르를 바라보던 것은 악마뿐만이 아니었다.

 

 

어떠한 예고도 없이, 메데르의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콰콰쾅!

 

 

어억!”

 

, 무슨!”

 

 

제단은 산산조각 났고, 메데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격노한 신이 메데르에게 벌을 내린 것이었다. 사악한 존재와 계약하여 타락한 자의 허무한 말로였다.

 

 

당황한 기사들은 메데르의 시신을 챙겨 어딘가로 급히 도망쳤다.

 

 

남은 것은 엘미나의 시신뿐이었다. 메데르가 죽고 제단이 부서지는 순간에도 엘미나만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본디 엘미나의 운명은 그렇게 끝이 났어야 하지만, 엘미나가 품은 깊은 원한은 그녀를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엘미나의 몸은 얼음과 동화되었고, 주변에 남은 흑마법의 잔재가 마력과 원한에 반응하여 엘미나에게 스며들었다. 그로 인해 엘미나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눈을 떴다. 원한과 증오밖에 남지 않은 괴물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괴물은 주변을 배회하며 눈에 띄는 인간들에게 분노를 쏟아내었고, 엘나스의 사냥꾼들은 두려워하며 그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