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아크의 신규 어비스 던전 '혼돈의 상아탑'이 화제다. 군단장 레이드 '일리아칸' 출시 후 182일 만에 나온 새로운 최종 콘텐츠로, 아직 1주 차지만 반응이 뜨겁다.

볼다이크는 일리아칸에서 이어진 균형 있는 협동 패턴과 다양한 시도, 여기에 더해 성장 동기를 끌어올리는 새로운 성장 요소 '엘릭서'가 등장했다. 노말/하드의 경계가 모호했던 다른 엔드 콘텐츠와 다르게, 구간별 구분을 확실히 해 모험가들의 성장 동기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 적당한 어려움? 순수 재미 추구한 볼다이크 어비스 던전

볼다이크 혼돈의 상아탑은 어비스 던전 '카양겔'에서 이어진 '기믹 완화'의 결정판이라고 봐도 된다. 어렵지 않고 직관적인 협동 기믹, 즉사가 아닌 익수 등으로 기회를 주는 형태의 던전 디자인, 딜 중지가 없는 여유로운 협동 패턴 간격 등 최종 콘텐츠의 부작용으로 꼽힌 이른바 '사이버 유격'을 적절하게 해결했다.

전체적인 던전 난도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상위권 파티의 최초 클리어 속도만 봐도 아브렐슈드 노말(57시간), 일리아칸(19시간)이 걸린 반면, 혼돈의 상아탑은 6시간 20분 만에 최초 클리어가 나왔다. 이것만으로 단순히 난도를 비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평가는 '할 만하다'라는 의견이 많다.

협동 기믹들은 라카이서스 정도를 제외하면 직관적인 경우가 많으며, 패턴 겹치기로 인한 '억까' 상황도 적다. 무력화와 부위 파괴라는 큰 콘셉트 안에서 다양한 변주를 보여줘 일리아칸에서 보여준 직관적인 협동 기믹이 한 층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리아칸에서 가장 안 좋은 평가를 받았던 3관문 '내부조' 기믹도 볼다이크에서는 한 차례 개선, 최대 3인까지 내부조를 지원할 수 있고, 내부로 넘어간 시간이 길지 않아 협동하는 느낌도 살아 있다. 특히, 서브 딜러가 안 좋은 역할을 해야 했던 일리아칸과 달리 혼돈의 상아탑은 에이스 딜러 1인이 내부를 캐리하는 느낌을 준다.

2관문의 보스 라카이서스는 새로운 전술적인 기믹(택틱)을 보여주기도 했다. 로스트아크 던전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기믹은 여럿 있었지만, 쿠크세이튼의 '빙고' 정도를 제외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대표적으로 아브렐슈드의 메테오 택틱이 있다. 라카이서스의 구속구 택틱은 페널티로 전멸이 나오는 것은 같지만, 전멸을 피하는 것이 쉬운 편이고, 오히려 공략에 따라 딜 타임을 늘리거나 안전한 공략이 가능하게 하는 등 장점이 더 많다. 파티마다 다양한 공략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믹을 선보였다는 평이다.

순수하게 페널티로 작용했던 장외 기믹, '추락'도 3관문의 파이어혼에서는 강력한 화상 디버프를 끄거나 특정 패턴에서 생존을 위해 활용하는 등, 발탄의 추락과 일리아칸의 익수보다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 라우리엘이 생각나는 4관 보스 '라자람'

▲ 4관문 '라자람'의 협동 패턴


■ 대미지 쏠림 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무력, 부위 파괴 중요도 증가

전재학 수석 팀장이 공언했듯, 로스트아크의 던전은 '특정 콘텐츠를 깨지 못하는 클래스가 없도록' 나온다. 특정 기믹이나 보스에서 특정 클래스가 불리한 경우, 공개 파티 취업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을 겪었던 것이 시즌 1의 주간 레이드다. 순간 딜몰이에 유리하지 못한 일부 클래스들이 파티 모집부터 애를 먹었고, 큰 문제로 이어졌다.

하지만, '특정 콘텐츠를 깨지 못하는 클래스가 없도록' 하면서 개성 있는 던전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최종 던전에 높은 수치의 '무력화' 기믹이 있다면 무력화가 낮은 클래스는 자연스럽게 배척될 것이다. 반대로 최종 던전의 무력화 수치가 널널하다면, 굳이 무력화가 높은 클래스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 특정 클래스는 취업 자체가 힘들었던 시즌 1 콘텐츠


어려운 기믹이 클래스 배척으로 이어진다면, 쉬운 난도, 쉬운 기믹의 문제도 있다. '느슨한 기믹'은 대미지 집중 현상을 불러온다. 누구나 기믹을 쉽게 수행할 수 있다면, 간편하고 쉽게 높은 대미지를 넣을 수 있는 클래스가 최고가 되고 다른 개성을 가진 클래스의 가치가 내려간다.

주간 레이드의 악몽을 겪은 로스트아크는 '보스의 개성'과 '균형 있는 난도' 사이에서 고민해왔다. 꾸준히 무력화 패턴이나 부위 파괴 기믹을 집어넣으면서도, 문제가 될 경우 바로 하향시키는 이유다. 무력화, 부위 파괴 등이 문제가 됐던 칼엘리고스나 아브렐슈드 4관문이 대표적이다.


▲ 특정 기믹 중요도가 높은 던전은 언제나 하향을 당했다


볼다이크 혼돈의 상아탑에서는 어떨까? 이번 어비스 던전은 '무력화'와 '부위 파괴'를 콘셉트로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무력, 부위 파괴가 모든 관문에 걸쳐 등장하고, 중요도도 높다. 대신 특정 클래스가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클리어는 가능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높은 부위 파괴 기여도를 가진 클래스가 있어 '파이어혼'의 뿔을 바로 파괴한다면, 위협적인 패턴이 봉인되어 안정적인 공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파티 부위 파괴가 낮더라도 돌진 기믹을 신경 써서 수행해 2~3회에 걸쳐 부위 파괴를 하거나, 패턴을 잘 피하면 동일하게 공략이 가능하다. 부위 파괴가 필수는 아니지만, 있으면 이득을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한 셈이다.

4관문의 라자람도 비슷하다. 라자람은 지형이 점점 좁아지는 '아브렐슈드'와 비슷한 디자인의 던전이다. 아브렐슈드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무력화로 지형 파괴를 막을 수 있다'는 부분이다. 무력화 기여도가 높은 클래스가 있다면, 보스를 꾸준히 누적 무력화시켜 지형을 하나하나 복구할 수 있고, 거울 무력화에서도 더 많은 거울을 무력화, 지형 파괴를 애초부터 막을 수 있다. 거울 카운터에서도 무력화 기여도가 높다면, 일부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 무력화 클래스가 없다면? 없는 대로 상황에 맞게 공략하면 된다. 이렇게 특정 클래스의 이점을 살리면서도, '없어도 공략이 되는' 절묘한 기믹 설계가 돋보인다.


▲ 무력화, 부위 파괴가 중요한 혼돈의 상아탑

▲ 트라이의 신이지만
던전이 숙제화되면 의존도가 낮아지는 클래스 '워로드'


■ 성장 체감의 한계를 넘으려한 '볼다이크'의 성장과 보상

로스트아크의 던전들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는 언제나 보상이었다. 주간 콘텐츠라는 특징을 가진 로스트아크의 던전들은 눈에 띄는 큰 보상을 주기 어렵다. 던전이 숙제화되고 다수의 모험가들이 콘텐츠에 진입하는 순간 재화 가치가 급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많은 모험가들이 최종 콘텐츠에 진입하길 원하는 로스트아크의 특성상 그런 식의 보상을 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최소한의 골드, '에스더의 기운' 같은 확률성 보상 정도가 최대다.

성장 체감도 비슷한 문제였다. 로스트아크는 시즌 1의 '스크롤' 인플레이션 사태 등을 겪은 뒤 대미지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이렇다 보니 한 번에 강해지는 성장 요소를 주기 어렵고, '장비 계승' 같은 식으로 소소하게 대미지를 올려가는 것이 로스트아크가 추구하는 '성장'이었다. 콘텐츠를 따라가면 1%, 2%씩 착실하게 강해지고는 있지만, 정작 얼마나 강해진 것지는 체감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 아브렐슈드부터 일리아칸까지, 계승 위주의 성장 방식이었던 로스트아크


하지만, 볼다이크부터는 이런 로스트아크의 방침(가능한 많은 모험가들이 최종 콘텐츠에 도전하는 것)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레벨 제한이 높게 설정됐다. 대륙 입장 레벨과 비슷한 레벨대로 출시되는 다른 콘텐츠와 달리, 이번 볼다이크는 훌쩍 높은 1,600/1,620레벨 컷으로 설정되었다.

레벨 대가 높은 만큼 소수의 모험가만이 즐길 수 있지만, 그만큼 강력한 성장 콘텐츠를 배치해 성장 동기를 확실하게 만들었다. '엘릭서 연성'은 기존 팔찌나 장비 계승보다 높은 수준의 능력치 성장이 가능하다. '더 강해지고 싶다면 여기까지 올라와라'는 성장 동기를 분명히 한 셈이다. 대미지 인플레이션은 생기겠지만, 꽤 파격적인 수치의 성장으로 확실하게 '먹을 것'을 만들었다.

노말/하드를 분리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아브렐슈드, 일리아칸 등은 낮은 관문, 낮은 난도만 클리어해도 상위권 모험가와 약간의 시간차만 있을 뿐, 모두 비슷한 장비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혼돈의 상아탑에서는 1,620레벨에 진입하지 못하면 영원히 전설 엘릭서를 만들 수 없다. 이에 따라 '가능하면 1,620부터 찍어라'라는 말이 벌써 나오고 있다. 노말/하드의 구분을 확실히 하고, 1,600에 도달한 모험가도 더 높은 레벨을 달성할 동기가 생기게 되었다.


▲ 볼다이크는 하드를 가야할 이유를 분명히 했다


엘릭서 연성 콘텐츠 자체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의미하게 재련 실패화면을 반복 시청해야 하는 재련, 한 번 세공 실패에 희비가 갈리는 어빌리티 스톤, 기약 없는 옵션 돌리기를 해야 하는 팔찌 등 로스트아크의 기존 콘텐츠들은 '골드를 쓰는 맛'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엘릭서는 실패하더라도 한 번의 연성 안에 다양한 변수와 등락이 존재하다 보니 연성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진다. 한 번 연성을 제대로 성공하면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도 있다.

성장 체감하면 떠오르는 서포터의 문제도 간접 해결했다. 엘릭서에서는 상당히 많은 옵션들이 서포터를 위해 할당되어 있어 엘릭서 작업을 끝낸다면 어지간한 재련이나 각인보다도 강력한 서포팅 능력을 가질 수 있다. 파티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성장 체감 문제로 상위권 레벨까지 성장 동기가 없었던 서포터 모험가들을 배려한 것이다.

'제압, 인내, 숙련'처럼 단순히 '꽝'으로 치부되는 옵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포터/딜러의 옵션이 고르게 분배되어 있어 꽝처럼 느껴지지 않는 효과도 있다.


▲ 재미와 보상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엘릭서 연성'

▲ 훌륭한 서포터 전용 옵션으로 화제를 모은 '엘릭서 연성'


골드 소모 측면에서도 한 번 연성을 돌리는 것이 판매에 유리하다 보니,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 자연스럽게 연성을 통해 골드를 소모한다. 횟수에 제한이 걸리긴 했지만, 반대로 5회 제한으로 인해 엘릭서를 안 돌릴 모험가들도 괜히 엘릭서를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골드 소모가 아닌 모험가들의 거래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로스트아크의 콘텐츠에서, 가장 확실하게 골드를 소모할 동기를 만들어낸 셈이다.


▲ 현자들의 조언은 확실히 흥미롭다



■ 성장과 보상에서 새로운 대안 보여준 '볼다이크'...'카멘'은 어떨까?

로스트아크의 던전과 레이드는 언제나 '보상'과 '성장 동기'가 문제였다. 훌륭한 던전 기믹과 디자인을 만들었지만, 골드 없는 보상으로 인해 애매한 포지션을 가지게 된 '카양겔', 성장의 목표가 되어야 했지만, 어려운 난도와 보상 체계로 모험가들의 성장 동기를 오히려 꺾어버린 '아브렐슈드[하드]' 등, 좋은 던전들이지만 보상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거나 애매한 위치를 가지게 된 경우가 많았다.

1주 차인 지금 모든 것을 판단하긴 어렵겠지만, 볼다이크와 혼돈의 상아탑에서는 '성장'과 '보상'에 대한 대안을 찾으려 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어비스 던전이지만 높아진 골드 보상과 '엘릭서'라는 차별화된 보상, 노말/하드의 확실한 구분 등은 로스트아크의 엔드 콘텐츠가 가야할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조금 쉬운 난도와 여전히 부족한 보상, 대미지 인플레이션은 단점이 될 수 있지만 말이다.

카양겔에서 시도됐던 '사이버 유격'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가 일리아칸에서 결실을 보았듯이, 다음 군단장 레이드 '카멘'에서는 혼돈의 상아탑보다 발전한 성장과 보상이 나올 수도 있겠다.


▲ 보상과 난도 등의 문제로 성장 의욕을 꺾었던 아브렐슈드

▲ 잘 만든 던전이나 보상 문제가 컸던 '카양겔' 어비스 던전

▲ 혼돈의 상아탑은 성장 의욕을 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