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어비스(대표 허진영)가 지난 3월 검은사막에 선보인 '아침의 나라'는 우리 역사 조선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다. 펄어비스는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며 장소와 이야기를 수집했고, 게임 콘텐츠로 개발했다. 펄어비스가 왜 '아침의 나라'를 개발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주재상 게임디자인실장이 지콘(지스타 콘퍼런스)에서 소개했다.

▲ 펄어비스 주재상 게임디자인실장

1. 왜 조선인가?

주 실장은 먼저 개인적인 얘기를 꺼냈다. 과거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던 주재상 어린이는 왜 한국인 캐릭터가 없는지 의문을 가졌다. 일본 게임사 캡콤이 개발한 '스트리트 파이터' 주인공은 일본인이다. 그리고 미국, 중국, 인도, 브라질, 소련 캐릭터가 등장한다. 주재상 어린이는 캡콤이 가까운 나라 한국 캐릭터를 만들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아랑전설'과 '더 킹 오브 파이터즈'의 김갑환, '철권'의 화랑, '오버워치'의 송하나 등 다양한 한국 캐릭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주 실장은 "뭔가 공허하더라"며 "아무래도 우리나라 게임사가 만든 게 아니다 보니, 공허한 마음이 들었던 거 같다"고 평가했다.

▲ 동양적이긴 했으나 한국적이라 할 수는 없던 '금수랑'

이후, 펄어비스가 동양적 캐릭터를 선보였다. 2015년 초 '금수랑'이다. 금수랑이 일부 한국적 색을 보였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공격 동작이 중국 전통 무술 '우슈'여서 완벽한 한국적 캐릭터라고 자랑하긴 어려웠다.

검은사막 내 완전한 한국적 캐릭터는 '무사'가 처음이다. 펄어비스는 무사 공격 동작을 무예도통봉지에서 참고할 만큼 완전한 한국적 캐릭터로 개발했다. 주 실장은 "무사의 한국적 콘텐츠에 모험가분들이 열광해 주셨고, '매화' 캐릭터로 이어졌다"라고 소개했다.

주 실장은 펄어비스가 '무사'를 글로벌 버전에서 영어로 어떻게 옮겨야할지 고민했었다. 여러 회의를 거쳐 '블레이더'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해지기 직전 'MUSA'로 그대로 적어 해외에 내보냈다. '매화' 역시 'MAEHWA'로 나갔다. 글로벌 유저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 블레이더가 아닌 MUSA로 글로벌에 진출한 '무사'

주 실장은 "길게 소개한 이유는 '검은사막'이라는 게임이 어느 날 갑자기 '아침의 나라'를 만든 게 아니라, 조금씩 한국적 요소를 녹이려 노력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2. '아침의 나라'를 품은 어머니, 랏 항구


펄어비스가 2019년 검은사막에 '대양의 시대'를 업데이트했다. 주 실장은 "대양을 건넌 모험가가 신비로운 땅을 만나길 바랐기에 동양적인 항구를 만들었고, 이게 '랏 항구'이다"라며 "원래 랏 항구 뒤 넓은 땅에 신비한 동양의 땅을 구현할 계획이었다"라고 소개했다.

랏 항구는 처음에 "어느 지역인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당시 동양을 개발하기로 하였으나 게임 콘텐츠로 참고할 자료는 중국과 일본만 많았을 뿐 한국은 적었다. 이에 주 실장은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그들의 자료를 따르며 흉내 내기보다 과감히 조선을 선택하게 되었다"라며 "처음에는 랏 항구를 조선시대 항구로 꾸미고 조선의 학자로 머무는 섬으로만 개발하려 했는데 반응이 뜨거워 제대로 개발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랏 항구는 한국적인 이름 남포항으로 지어졌다.


3. '아침의 나라' 태동기

'아침의 나라'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첫 게임은 아니다. 주 실장은 펄어비스가 어떻게 한국적 게임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정하지 않기로 했다. 펄어비스 검은사막 스튜디오 내에는 여러 부서가 있다. 몬스터 담당자가 자유롭게 조선을 상상하며 디자인하고, 배경 담당자가 자유롭게 그리며, 시나리오 담당자가 마음껏 이야기를 썼다. 그렇게 각각의 담당자가 상상한 조선을 하나로 묶었다.

처음 만들어진 것은 배경 원화다. 주 실장은 "원화를 처음 보고서 벅찼다"라며 "원화에 있는 게 실제 '아침의 나라'에 대부분 구현됐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호랑이 입 모양 절벽인 '호구'가 있다. 십리대숲은 조선이 아닌 삼국시대 설화를 배경으로 했다. 주 실장은 "조선시대에도 삼국시대 설화는 들었을 테니, 십리대숲에서 관련 설화를 퀘스트로 접할 수 있게 했다"고 소개했다.






▲ 아침의 나라 초기 원화들

몬스터는 전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구미호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호랑이를 모티브로 했다. 호랑이는 정형적으로 가면 재미없을 거 같아 조선이란 분위기에 맞게 그려냈다. 주 실장은 '구미현' 컨셉이 나오는 순간에는 모든 개발팀이 기뻐했다고 전했다. 구미현은 익숙하게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탈피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로 평가됐다.

'우사'와 '매구'는 한국적인 매력을 갖춘 캐릭터다. 당시 펄어비스 모션실에서 이례적으로 "캐릭터 두 개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하여 자매 컨셉으로 낼 수 있었다. 주 실장은 "'아침의 나라'를 위해 모션실이 큰 결정을 해줬다"라며 "그동안 한국적 캐릭터는 날을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도사 컨셉으로 제작했다"고 전했다. 주 실장은 우리나라 도사 문화를 공부하니 '우도방'과 '좌도방' 개념을 알게 되어 게임 캐릭터에 적용했다.

2022년 미국 LA에서 진행된 칼페온 연회서 캐릭터가 처음 공개됐다. 당시 펄어비스는 미국에서 한국 캐릭터를 소개할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 걱정이 컸다. 주 실장은 "공개되자 열정적인 반응이 나왔고, 그때 '통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4. '아침의 나라' 개발기


펄어비스는 '아침의 나라'가 기존 대륙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우선 전투는 기존 아이덴티티인 몰이사냥을 없앴다. '아침의 나라' 개발 당시 기존 전투 방식에 대한 피로감이 문제시됐다. 그런데 '아침의 나라'도 같은 사냥 방식이면 더 피곤해질 것이로 판단됐다. 주 실장은 "마침 '아침의 나라'는 기존 대륙과 분위기가 달라서 새로운 것을 추가하기에 적절했다"라며 "주요 전투를 보스와 1:1로 개발했다"라고 소개했다.

이야기는 '서사적인 당위성'에 집중했다. 주 실장은 '아침의 나라'가 이전 어떤 콘텐츠보다 이야기 분량이 많으며, 소설책 2권 분량이라고 설명했다. 컷씬만 60개 이상을 준비해 모험가가 '아침의 나라'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아침의 나라' 모든 메인 퀘스트에 더빙을 준비해 모험가가 전래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주 실장은 '아침의 나라' 그래픽 고증에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실제 건축물, 유물을 스캔해 제작했기에 틀릴 수 없어서다. 그는 "만약 우리가 틀렸다면, 문화재청이 틀렸던 거다"라며 "종종 모험가분들이 게임 내 건물을 보며 감탄할 때, 베꼈으니 틀릴 리가 없어서 좀 찔리기도 했다"라 농담을 섞어 전했다.


5. '아침의 나라' 스토리와 연출

펄어비스는 일단 우리 설화를 굉장히 많이 수집했다. 그리고 어떻게 풀어야 덜 지루하고 새로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 조선은 글로벌 유저에게 생소하지만, 게임 내에선 우리나라 유저에게도 생소한 지역일 수 있다. 우선 인기와 재미가 보장된 설화를 적극 차용했다. 그리고 우리 문화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글로벌에서 통하는 이야기를 선별했다. 첫사랑, 부모와 자식 관계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어 약간의 '국뽕'을 첨가했다.


게임 내에서 '우사'와 '매구'는 '아침의 나라'가 고향이다. 캐릭터에 맞게 고향에 왔다는 느낌이 들도록 전용 이야기도 추가됐다. '검수랑'은 스승의 무덤을 간다거나, '우사'는 아버지 무덤 앞에서 절을 하는 등이다. 우리보다 낯설 글로벌 유저를 위해선 가이드 NPC를 만들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성우도 신경을 썼다. 캐릭터가 충청도 배경이면, 충청도 출신 성우를 기용했다. 또 펄어비스 직원 중 충청도 출신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시작은 '우사', 다음은 '매구'였다. 갑자기 '아침의 나라'를 선보여 유저들에게 가라고 한다면, 좀 황당할 수 있다. 우선 캐릭터를 공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 '조선이 오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줬다. 두 캐릭터는 '검은사막 모바일'에 먼저 공개되기도 했다. 당시 모바일 유저는 오리지널 캐릭터를 원하는 상황이어서, 이를 해소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대미는 '수궁'으로 장식했다. 주 실장은 수궁을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에 있는 용궁에 대한 모든 정보를 조사했다.


6. '아침의 나라'를 통해 배운 것들


주 실장은 "무엇보다 '한국 게임에 한국이 나온다'라는 반응이 정말 뿌듯하더라"며 "스트리머들이 '아침의 나라'를 플레이하면, 다들 일단 감탄부터 하고 시작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적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나만 있던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으론, 앞으로 만들 한국적 콘텐츠가 많이 있는데 잘 만들지 않으면 정말 많은 욕을 먹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많은 국가에 '검은사막'을 서비스하는데, 펄어비스가 조금이라도 한국을 알리는 데 도움을 준 거 같다고 생각했다.

주 실장은 "'아침의 나라'는 새로운 도전을 많이 했다"라며 "기존 간단히 사냥만 하는 구조에서 플레이 자체가 역사를 끌고 가는 형태여서, 기존 '검은사막'과는 정반대의 도전을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한계점도 느꼈다. '아침의 나라'는 스토리 콘텐츠가 대부분을 차지해서, 일회성 플레이에 그치는 약점이 있었다. 주 실장은 "이런 부분은 앞으로 계속 보완해 나가겠다"라며 "그래도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유저도 많이 좋아해줘서 계속해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