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리안 스튜디오의 발더스 게이트3는 오랜 얼리 액세스 끝에 여러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많은 시상식에서 최고의 게임으로 꼽혔다. 그중에서도 아스타리온 역의 닐 본이 여러 시상식에서 최고의 연기자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배우와 함께한 퍼포먼스 부분은 이전의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와 차별적인 부분임과 동시에 많은 팬의 호평을 끌어낸 부분이기도 하다.

3D 캐릭터 뒤에 있지만, 많은 연기자, 제작진, 그리고 그들의 연기를 이끈 퍼포먼스 디렉터의 역할 역시 무시할 수 없다. GDC2024에서는 발더스 게이트3 개발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업에 접근했고, 기억에 남는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는지 오랜 경력의 퍼포먼스 디렉터 그렉 리드스톤이 그 방법을 분류해 설명했다.



효과적으로 캐릭터를 찾아내는 연기자

TV 작업은 물론 2005년 매스이펙트를 통해 게임 업계에서 작업을 시작하며 20년 넘게 업계에 몸담은 베테랑이다. 하지만 그런 그 역시 수많은 작업에서 실수나 실패를 겪었고, 또 자신보다 윗세대 디렉터들이 실패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경험에서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을 배웠다고 전했다.

그는 연기자들이 효과적으로 작업에 임하고, 그것이 게임에 잘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을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우선, 연기자를 준비시킬 것, 그리고 디렉터나 퍼포먼스 캡처 작업자 스스로 준비하는 것, 마지막으로 촬영 당일에 생각해야 할 것으로 말이다.


우선 연기자를 준비시키는 단계의 출발은 오디션이다. 특히 대형 게임일수록 모션 캡처처럼 음성과 신체적인 액션을 함께 담아내는 경우가 많아 이 단계에서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셀프 테이프를 통한 오디션은 선택지를 좁혀나가는 좋은 방법이지만, 2차 오디션을 진행해야 한다.

오디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대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동시에 스스로 그들과 정말 함께 일하고 싶은지 질문하는 것이다. 그렉 리드스톤은 이날 강연 많은 부분에서 작업 간에 필요한 관계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음은 연기자들에게 촬영에 필요한 장소, 게임사 등 다양한 장소를 미리 방문하게 하는 것이다. 그렉은 연기자들과 함께하는 첫날은 항상 작업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촬영 장소를 녹음 전 미리 찾고, 그들이 게임이나 작업에 관해 간단하게 질문하고 답할 기회를 준비해주라고 조언했다. 또한, 이러한 팀 소개는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단계에서 연기자들에 관해 알아가는 단계도 필요하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작업하는 만큼 긍정적인 관계,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과 함께할 때 연기자들은 일이 틀어졌을 때 디렉터를 믿고 따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디렉터의 협조와 지시에도 더 잘 따르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연기자들에게 작업에 필요한 숏 리스트를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 여기에는 실제 녹음 작업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담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연기자들이 가질 수 있는 질문에 답변하고, 반대로 디렉터가 연기자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단, 정보의 양이 너무 과해선 안 된다. 너무 많은 정보를 넘겨준다면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 게임에서 원하는 스타일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연기자 스스로 그 캐릭터를 찾지 못한다면, 완벽한 녹음이 이루어질 수 없다. 숏리스트 작성에도 상황을 이해여하고 이벤트를 단순화하면서도 강조하는 핵심 포인트만을 찾아내 담는 게 중요하다.

연기자가 캐릭터를 찾아내는 것은 준비 단계에서 가장 마지막이자 중요한 과정이다. 이날 영상에서는 아스타리온, 민스크, 고타쉬의 캐릭터 애니메이션과 함께 실제 적용된 그들의 연기를 비교해서 소개됐다.

아스타리온은 플레이어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개방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를 위해 가슴을 열고 빈 손을 앞으로 내밀며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을 드러낸다. 민스크는 강력한 전사의 스테레오 타입같은 모습을 하지만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또 성실하면서도 다양한 제스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연기자의 성격이 녹아있기도 하다.

이처럼 세분화된 캐릭터 특징을 살려 작업이 이루어졌고 강연에서는 실제 모션 캡처를 통해 게임의 동작을 수행하는 연기자들의 모습도 함께 소개됐다.



연기 디렉터도 게임을 알아야 한다

연기자들에 대한 준비 이후에는 디렉터나 담당자 스스로 준비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우선 마인드적인 부분인데 촬영 전 스스로 준비되어 있고, 문제를 조정하고 적응할 수 있다고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실질적으로 촬영 현장을 통제하는 일이다. 연기자, 제작진, 프로듀서 모두 디렉터가 이 모든 걸 손에 쥐고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그렉은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결례를 범하고 무례한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유쾌하게 하는 것. 그것이 전문성과 공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스스로 무례하게만 행동한다면 연기자나 함께 작업하는 크루 역시 디렉터를 똑같이 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중요한 것은 게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사실 모션 캡처나 성우 연기는 업계 초창기 게임보다는 영화 쪽에 더 어울리는 작업이었고 관계자들 역시 이를 게임과 분리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리고 그렉은 이러한 분리가 과거 많은 문제를 낳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바뀌었고 애니메이터, 연기, 캡처 담당자들도 게임을 깊게 이해해야 한다. 연기자, 혹은 촬영 당시의 상황에 따라 창의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때로는 작업 목표에 반하기도 하고, 게임 작업자와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큰 그림으로 작업을 내다봐야 한다.


게임 내부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기술 부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프리 렌더링 무비가 아니라면 촬영하는 모든 것은 게임의 신과 거의 비슷한 선상 위에 존재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캡처 촬영에 특별히 제작된 세트가 주어지지 않고, 게임 개발 단계에서도 예산에 제한이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인지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을 인지하는 것. 스스로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해당 파트에 대한 전문가를 통해 기술 부분의 허점을 메우고, 안무나 전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스턴트 인스트럭터나 코디네이터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된다.


디렉터는 팀의 주장이 아니라 선수를 위한 트레이너가 되어야

본격적인 촬영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디렉터가 자신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다. 가장 간단한 것은 연기자와 크루의 피로도, 그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잘 지켜보는 것이다. 디렉터는 연기자들에게 테이크를 한 번 더 요청할 수는 있고 그들은 배우로서 그걸 수행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이 스스로 휴식을 요청하기 전에 휴식 시간을 내어줄 수 있다.

당연히 이러한 휴식은 신체적인 한계만이 아니라 감정적인 상황의 해소에도 필요하다. 심리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어둡거나 연기자를 몰아붙이는 장면은 그 장면에 몰입한 연기자에게 굉장히 힘든 상황으로 이끈다. 때로는 그런 상황에 먼저 휴식을 제안해도 연기자가 거부하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충분히 확인하고,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이러한 배우를 보호하는 역할은 섹스신이나 성적인 콘텐츠가 다양한 방식으로 여럿 포함된 발더스 게이트3의 경우 더욱 필요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성적인 관계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고 이는 사람마다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범주, 상황이 일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곰으로 변신하는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있는 게임에서 연기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친밀감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원할한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연기자들이 이런 작업에 불편해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하고 전문 코디네이터를 찾을 수도 있다. 교육 과정을 통해 직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방법도 있다.

그렉은 이번 사전, 사후 작업을 통해 여러 부분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연기자와 크루에게 지금 하는 작업이 단순히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을 하고 있다는 목적 의식을 심어줄 수 있길 바랐다. 동시에 배우들이 불편해하는 조금의 상황도 만들지 않도록 배려했다.


촬영에서 중요한 또 다른 것은 겸손함이다. 모션, 애니메이션 디렉터는 이쪽에서 모든 작업을 총괄하는 인물이지만, 업계에 오래 몸담은 그렉마저도 자신 스스로를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이라고 표현했다. 디렉터의 일은 연기자들의 연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제고하는 일이며 애니메이터와 시네마틱 아티스트, 나아가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무언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에셋을 만들어 간다.

결국 이 역시 일종의 팀 스포츠고 디렉터의 일은 팀의 주장이 아니라 트레이너에 가깝다고 그렉은 주장했다. 사람들을 올바른 사고방식으로 이끌고, 그들의 작업이 개선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음악을 활용한 분위기 전환도 촬영 단계에서 꽤 효율적으로 쓰였다고 전해졌다. 멋진 음악으로 상황에 맞는 공간감을 주는 것. 또 음악은 짧게는 2분 정도 안에 배우에게 훌륭한 영감을 주기도 한다. 물론 현장에서 이걸 하나하나 찾아가며 작업할 수는 없으니 미리 캐릭터와 연관된 재생 목록을 마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일종의 패턴을 만드는 것은 심리적 안정감과 친숙함을 주는 방법 중 하나로 쓰인다. 아마 모든 디렉터들이 이러한 패턴을 가지고 있을 것인데 콜 패턴 같은 게 그런 종류 중 하나다. 그렉은 A-Pose라는 말로 배우들이 캐릭터에 집중하도록 했고 액션을 외친다. 그리고 컷 대신 다시 A-Pose를 부르고 논의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조율했다.

연기 조율의 경우 그렉은 경험 많은 감독들로부터 그것에 한계를 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세가지, 혹은 생각보다 조정할 것이 적으면 2개 정도의 조율할 점을 고르고 그것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작업에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면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게 실패한 작업으로 남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발더스 게이트3의 작업 과정에서 때로는 연기자들을 신뢰하고 작업한 장면들이 오히려 게임 적용 과정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실제 출시 후 팬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은 부분도 있다. 결국, 자신을 믿는 것 만큼 연기자들을 믿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면, 게임 전체에 길이 남을 장면이 탄생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