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네놈들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오크가 말했다.


구원자 마라아드와 파수대 사령관 리알리아는 그를 무시했다. 녀석을 포로로 잡은 이후 매일 밤 비슷한 위협을 들어 왔다. 리알리아는 한쪽 문글레이브로 모닥불을 들쑤셔 장작 위치를 바로잡았다. 불길이 잠깐 동안 맹렬히 솟구쳤다. 마라아드의 망치에 반사된 불꽃이 그의 갑옷에 깜박거리는 얇은 보라색 무늬를 그렸다.


"나이트 엘프가 먼저 죽는다." 몇 분 후 오크가 말했다. "계집이 죽어가는 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해주마, 드레나이. 꼭 그리할 것이다." 오크가 자세를 바꾸자 손목에 채워진 족쇄가 가볍게 절그럭거렸다.


마라아드는 대답 따위 하지 않았다. "리알리아, 오늘 밤엔 잠을 자야 합니다." 드레나이가 말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죠." 리알리아는 말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니, 나도 안 자겠어요." 모닥불의 재를 휘저으면서도 그녀의 눈은 드넓게 펼쳐진 대지를 훑고 있었다. "게다가 저놈이 오늘 말이 많네요. 드디어 자기 이름을 알려줄지도 모르죠." 그녀는 침착하게 오크를 쳐다봤다. "싫어? 우리가 오늘 밤도 넘기지 못할 거라면 이름 정도 알려줘서 나쁠 거 없잖아? "


녹색 피부의 포로는 그녀를 응시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음대로 해." 그녀는 말했다.


태양이 지평선에 닿았다.


***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냐?" 하오한 머드클로가 물었다. "'우레가 터질 땐, 크게 터질 거다'라는 게?"


호젠 일꾼은 골짜기 심장부를 꿰뚫는 길 위에서 하오한의 수레 속도에 맞춰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었다. "대장 가고 나서, 우레 안 해."


"안 해?"


뭉뭉은 뭔가 나쁜 냄새라도 나는 것처럼 코 앞에서 손을 휘저었다. "삼 일치 응가 나올 때 근처에 있기 싫어."


"끝내주는군." 하오한은 말했다. 변비에 걸린 무샨을 돌보는 것이 오늘 해야 할 마지막 일이었다. "녀석의 먹이에 올리브 기름을 좀 섞어. 그러면 장이 깨끗해지겠지."


뭉뭉이 몸을 떨었다. "했어. 이틀 전에. 아직 안 해."


하오한은 못 믿겠다는 눈초리로 뭉뭉을 쳐다보았다. "이틀 전에 기름을 먹였다고? 근데 아무 일도 안 벌어져?" 하오한도 몸을 떨었다. '우레가 터질 땐...'


그들은 침묵 속에 몇백 미터를 더 갔다. "저기 있잖아, 농부 펑, 일찍 도착했어. 지금 대장 집에 있어." 뭉뭉이 말했다.


"잘됐군. 잠깐." 하오한은 수상쩍다는 눈초리로 뭉뭉을 보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뭉뭉은 그 투덜이가 비료에 푹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오한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새로운 성분을 비료에 넣어 보고 싶어할지도 모르지. 요 몇 주 동안 들어 본 것 중 가장 좋은 생각이로군." 문제 하나는 해결됐다. 아마도. "집에 또 누가 있지?"


"영감." 늙은 힐포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농사꾼 연합 의원은 아니지만 이웃이었다. "지나." 하오한의 딸이었다.


"또 누구?"


"그게 다야." 뭉뭉이 말했다.


"나나랑 미나, 티나랑 덴은?"


"비취 숲. 아직."


"아직?" 하오한이 찌푸렸다. "오늘쯤이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의원들이 다 참석한 상태에서 회의를 열고 싶다고. 윤은?"


"거기 같이 갔어."


"아." 이제야 기억이 났다. 윤은 농사꾼 연합을 대표해, 무슨 드워프 석공들에게 식료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으러 갔다.


하오한은 가볍게 고삐를 잡고 수레를 오른쪽으로 몰았다. 두 마리 말은 머드클로의 집으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틀었다. 뭉뭉은 여전히 수레 옆에서 걷고 있었지만, 말 등에 뛰어오를 낌새는 없었다. 뭉뭉은 말을 믿지 않았다. 하오한도 무샨을 더 선호하지만, 사자의 상륙지에 있는 얼라이언스 병참장교가 당근 한 수레와 건강한 말 두 마리를 바꾸자고 했다. 그 거래는 도무지 놓칠 수가 없었다. 말이 훨씬 다루기 쉬운 건 사실이었다. 무샨은 아무리 훈련시켜도 고삐가 이끄는 곳을 좀 벗어나는 경향이 있다.


뭉뭉이 갑자기 달려나가 표지판에 기어오르더니, 먼 곳을 응시했다. "아이고." 그는 말했다.


"뭐냐?"


"들어 봐, 대장."


"네가 귀가 밝잖냐." 하오한이 말했다.


"토깽 소리 들려." 뭉뭉이 말했다.


하오한은 한숨을 쉬었다. "녀석들 때문에 짜증 나서 죽는 사람이 나오기 전에 냉큼 쫓아 버리자."


II





흰 줄무니가 난 털가죽에 요상하게 구부러진 앞니를 지닌 커다란 수컷 토깽 한 마리가 펄쩍 뛰어오르며, 구원자 마라아드에게 나뭇조각 한 움큼을 내던졌다. "여기 돈. 당근 내놔!"


드레나이는 토깽들이 뛰어올라 얼굴이며 가슴보호구에 부딪치게 내버려 두었다. "난 당근이 없는데."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세 명을 둘러싼 붉은 눈의 설치류 사이에서 화난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몇 놈은 위협적으로 땅에 발을 굴렀다. 마라아드의 옆에 선 리알리아는 문글레이브 손잡이에 손을 올렸지만, 허리띠에서 뽑아 들지는 않았다.


"문제가 될 놈들일까요?" 그녀는 가볍게 물었다.


마라아드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것 같진 않습니다." 그는 말하고, 목청을 높여 물었다. "당근을 사고 싶나?" 토깽들의 아우성이 열광적으로 커졌다. "실망시켜서 정말 미안한데, 난 너희한테 팔 당근이 없다."


나뭇조각을 가진 토깽이 화가 난 듯 뒷발을 굴러 펄쩍 뛰어올랐다. "언덕골 봤다! 시장 봤다! 너같이 큰 놈들 동그란 거 주고 당근 받는다." 녀석은 다시 나뭇조각 한 움큼을 내던졌다. "이제 당근 내놔!"


작은 나뭇조각들이 포로에게 날아갔다. 오크는 으르렁거리며 발길질을 했지만, 토깽을 맞히진 못했다. 족쇄가 절그럭거렸다.


구원자 마라아드는 계속해서 오크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말했지 않나. 난 팔 당근도, 줄 당근도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상인들은 금화로 거래를 하지. 너희가 가진 그... 화폐가 아니라."


"이놈들!" 소음 사이로 외침이 들려왔다. 리알리아는 판다렌 하나와 호젠 하나가 씩씩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토깽 무리에서 경고하는 듯한 외침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땅에서 나가!" 판다렌이 고함쳤다.


토깽들은 흩어졌다. 한 놈은 드레나이의 발굽 근처를 내달리며 그 "돈"을 열심히 주워모았다. 호젠이 그 토깽에게 돌멩이를 던졌지만,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깽들은 모두 자기 굴로 물러갔다.


"멍청한 응가쟁이들." 호젠이 투덜거렸다.


"욕 보셨습니다." 판다렌이 말했다. "사실 몇 달 전에 날뛰던 거에 비하면 얌전해진 건데, 그래도 아직 가끔 손을 봐 줘야 하거든요."


리알리아가 미소 지었다. "해치려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이트 엘프가 말했다.


호젠은 나뭇조각을 살펴봤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히죽 웃었다. "어이, 대장." 뭉뭉은 말했다. "굴대 조각." 뭉뭉은 우끼끼 소리를 내며 웃어댔다.


판다렌은 이를 악물고 뭔가 욕설을 내뱉었다. "저 바보 천치 토깽 놈들... 굴대를 갉아서 수레를 세 대나 망친 게 이것 때문이로군? 물론 그렇겠지. 내가 동전을 내는 걸 보고는 수레 굴대가 동전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게야." 그는 머리통을 긁적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으레 있는 일입니다. 골짜기에서 살려면 녀석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죠.


전 하오한 머드클로라고 합니다. 이 농장 주인이죠."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리알리아입니다. 판다리아에 있는 파수대의 사령관이죠. 여기 제 친구는 엑소다르에서 온 구원자 마라아드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름을 몰라서 제대로 소개해 드릴 수가 없네요."


판다렌의 눈길이 오크를, 그리고 족쇄를 훑었다.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일행이시군요."


"무단으로 침입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저희가 떠나길 바라신다면, 그리하겠습니다." 마라아드가 말했다.


하오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들이 앉아 있는 곳엔 아무것도 안 자라니, 상관없습니다." 그는 구속된 오크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당신네들 사이의 문제는 이제 다 해결된 줄 알았습니다만." 판다렌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휴전은 아직 유효합니다." 리알리아가 말했다. "이놈은 두 주 전에 조그만 호드 상단을 쓸어버렸고, 그 열흘 후에는 제 파수대를 습격하려고 했어요. 휴전 이후였는데 말입니다." 나이트 엘프의 말투는 차가웠다. "양쪽 진영 모두에서 살인을 저지른 거죠. 굳이 추측해 보자면, 헬스크림이 몰락한 게 못마땅한 모양입니다."


"그럼 군인이 아니라 범죄자로구먼." 하오한이 중얼거렸다. 오크는 뭐라고 낮게 중얼거렸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오한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호드는 당신들이 그를... 구속하는 걸 받아들였습니까?"


"저희는 호드를 철저히 피하기로 했습니다." 구원자 마라아드가 말했다. "작은 오해 때문에 혼란이 커질 수 있으니까요. 양 진영 사이의 긴장감은 아직 높습니다. 저희는 평화가 깨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면, 신경을 쓸 수도 없을 거란 말이군요." 하오한은 턱을 긁적였다. "그렇긴 하죠. 뭐, 일단 따라오십쇼. 저 언덕배기 근처에 수레를 세워놨으니."


리알리아와 마라아드의 눈이 마주쳤다. "어디로 가자는 말씀이시죠?" 리알리아는 물었다.


"저희 집으로요. 세 분 주무실 침대는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만," 마라아드가 말했다. "죄송하게도 사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셔도 괜찮다니까요."


"아니요. 감사합니다."


"토깽이 다시 올 겁니다."


"저희가 상대할 수 있어요." 리알리아가 말했다.


"이해를 못 하시는구먼." 하오한이 말했다. "제가 토깽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녀석들은 지금 굴 안에서 계획이 왜 안 먹혔는지 따져 보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새 계획이 나오면, 다른 굴에 들러서 더 많은 수를 모아 오겠지요. 몇 시간 후면 침을 질질 흘리는 토깽 몇천 마리가 당신들을 노려보면서 당근이 어쩌고 외쳐 댈 거고, 놈들이 원하는 걸 내주지 못하면..."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러분 몸을 지킬 수 있을진 몰라도, 글쎄요, 녀석들을 모조리 때려눕히는 걸 즐거워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구원자 마라아드는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알겠습니다. 밤을 보낼 다른 장소를 찾겠습니다."


"참말로 이해를 못 하시는구먼." 하오한이 말했다. "앞으로 삼십 분 안에 몇십 킬로 떨어진 곳까지 이동하지 못하면, 녀석들이 당신들을 찾아낼 겁니다. 놈들이 얼마나 끈질긴지 상상도 못 하실 걸요. 아마 당신들이 심각하게 화가 났다는 걸 보여주려고 몇 놈 죽이고 싶어지실 겁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농사꾼의 집엔 가까이 가지 않는다는 건 몸에 익혔어요. 농사꾼한테는 갈퀴가 있고, 저희는 그걸 어떻게 휘두르는지 잘 알죠. 저희 집에선 안전하실 겁니다."


"그래도," 리알리아가 마라아드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던지며 말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얼라이언스를 도와주려고 하지 마라, 농부." 그는 말했다. "놈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하오한이 눈을 깜박였다. "아, 알겠습니다." 그는 드레나이와 나이트 엘프를 보고 빙긋 웃었다. "포로가 위험한 놈이다, 이거군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리알리아는 오크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만한 거리로 판다렌을 데려갔다. "당신이 위험을 감수하게 할 순 없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저흰 놈이 누구인지, 혹시 한패가 있는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들키지 않고 사자의 상륙지로 놈을 데려가려고 크라사랑의 호드를 피해 멀리, 아주 멀리 둘러서 가고 있어요. 놈이 혼자 일을 벌인 게 아니라면 저흰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하오한은 오크를 찬찬히 살폈다. "헬스크림에게 충성하는 놈이다? 헬스크림에게 충성하는 다른 놈들이 구하러 올지도 모른다? 네, 결정된 겁니다. 저희 집에서 주무시는 걸로요."


"그럴 수 없어요."


"에, 여기 머무실 순 없습니다. 토깽 이야긴 진짜 진지하게 드린 거라고요." 하오한이 말했다. "돕고 싶습니다. 저런 놈들이 이 땅에 이미 많은 피해를 끼쳤어요. 내일 아침에 제 수레로 세 분 다 사자의 상륙지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리알리아는 망설였다. 그렇게 하면 여정이 짧아질 터였다.


"안 된다는 대답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하오한이 말했다.


***


농부 펑은 머드클로의 땅에 도착한 이방인들을 쏘아보았다. "또 손님인가, 하오한? 게다가 이방인?" 그는 말했다. "이런 식으로 날 움직이려고?"


"토깽이 이분들을 괴롭히고 있었네." 하오한이 말했다. "그냥 하룻밤 재워 주려는 거야."


"수작 부리지 말게." 펑은 하오한의 가슴을 쿡 찔렀다. "이방인에 대해서 의논하는 밤에, 어쩌다 보니 이방인을 데려왔다? 적어도 농부 윤은 여기 없네. 그는 운이 좋았지. 좋은 사람하고 손을 잡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이방인 하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우리 골짜기에 이방인이 득시글거리길 바라진 않는다고."


"자네 의견은 잘 알았네, 펑." 하오한이 지겹다는 듯 대꾸했다. "이봐, 뭉뭉, 펑한테 얘기할 거 있다지 않았어? 무샨 얘기였지? 비료 성분 얘긴가?"


"정말인가?" 펑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뭉뭉은 짜증스러운 눈초리로 하오한을 쳐다보며 펑의 집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하오한," 새로운 목소리였다. 하오한이 몸을 돌렸다. 늙은 힐포우가 무샨 우리 근처에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아픈 무샨이 있군."


"뭉뭉이 얘기해 줬습니다, 어르신." 하오한은 힐포우 옆으로 가 울타리에 몸을 기댔다. 둘은 무샨 우리를 쳐다보았다. 우레가 건초를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 눈엔 괜찮아 보이는데요."


무샨이 요란하게 트림을 했다. 끔찍한 냄새가 퍼졌다. 하오한은 코를 찡그렸다. 근처의 농작물이 시들지 않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트림 소리는 북쪽의 산에 막혀 메아리쳤다. 냄새도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 것 같았다. 하오한은 한숨을 쉬었다. "네, 아프네요."


"기름을 좀 먹이게." 힐포우가 말했다. 하오한은 두통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


리알리아는 오크가 수레에서 내리는 걸 도왔다. 마라아드가 뒤따라 내려왔다.


나이트 엘프는 늙은 판다렌이 하오한 옆에 서 있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무샨에게서 눈길을 돌려, 이방인 셋을 찬찬히 뜯어보는 것 같았다. 리알리아는 목례를 했다. 그는 답례하지 않았다. 테가 넓은 밀짚모자가 그의 눈에 그늘을 드리웠다. 뺨에 난 털이 긴 수염을 이루고 있었다. 아까 만난 펑이라는 농부는 이방인에게 적대적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 노인이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다.


리알리아는 다시 자기 임무로 관심을 돌렸다. 포로, 그리고 포로를 구출하려고 들지도 모를 적에게. 그녀의 눈이 지평선을 훑었다.


머드클로의 집은 작은 언덕 꼭대기쯤에 있었다. 영원꽃 골짜기와 네 바람의 골짜기를 가르는 산맥과 가까운 곳이었는데, 주위에 펼쳐진 농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전망을 자랑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는데도, 리알리아는 거대한 채소와 다른 식물들이 줄지어 아주 멀리까지 뻗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집과 산맥 사이에서는 땅이 급격히 경사져 호수와 만나고 있었다.


위협이 될 만한 거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잡일을 처리할 때다.


"잠시만 오크를 혼자서 봐주시겠어요?" 그녀는 마라아드에게 물었다. 그는 알겠다는 듯 음 하고 대답했다.


리알리아는 빈 물주머니를 집어들고 조심스럽게 호숫가로 내려갔다. 잠시 후, 그 늙은 판다렌 힐포우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들어가지는 말게." 그가 충고했다.


커다란 호수의 수면은 잔잔할 뿐이었다. "왜죠?"


"보게." 힐포우가 말했다. 그는 팔을 휘둘러 수면에 돌을 던졌다. 물수제비가 생긴 곳마다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 뭔가 거대한 것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수면을 뒤흔들었다. 커다란 눈이 물가에 선 두 형체를 노려보았다. 리알리아의 여섯 배나 일곱 배는 족히 될 만큼 큰 생명체였다. 어쩌면 더 클지도 몰랐다.


그것은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아 시야에서 사라졌고, 수면은 다시 평온해졌다.


"저게 뭐죠?"


"부들개지 농어라네." 힐포우가 말했다. "가끔 크게 자라는 놈들도 있지."


"크다는 표현으론 부족한 것 같은데요." 리알리아가 말했다.


"그래서 개체 수를 줄이려고 하지. 아니면, 그래야만 한다는 말이 정확하겠군. 뭉뭉이 요새 게으름을 피웠구먼." 늙은 힐포우가 툴툴거렸다. "물가는 안전하네. 저놈이 자넬 미워하기로 마음먹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물속에 뛰어들지만 말게."


"기억하겠습니다." 리알리아는 물주머니에 물을 채웠다.


늙은 힐포우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크가 찬 족쇄를 봤네. 백호의 문장이 있더군." 그가 말했다.


"아."


"음영파의 수갑 말일세. 그 물건은 뭐랄까... 특이한 힘, 알 수 없는 힘을 지닌 이를 구속할 때 쓰이지."


"맞습니다." 리알리아가 말했다. "선물로 받았습니다."


"남한테 선물을 주는 버릇은 음영파에게 없는데." 힐포우가 말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선물이라기보다 대가라고 보는 게 맞겠군요." 리알리아가 말했다. "자신들을 힘들게 할지도 모를 자를 최대한 신속하고 조용하게 이 땅에서 제거해 주는 대가 말입니다."


"이제 좀 음영파 얘기 하는 것 같군."


"전에 그들을 상대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늙은 힐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알리아는 더 캐묻지 않았다.


"자네와 자네 친구는 판다리아에 온 지 얼마나 됐나?" 힐포우가 물었다.


"구원자 마라아드는 비교적 최근에 도착했고, 곧 떠나지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족 중에서 여러분의 해안가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이들 중 하나입니다." 리알리아가 말했다.


"왜? 무슨 일로 여기 왔나?"


그녀는 망설였다. 힐포우는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궁금해서 묻는 건지 수상해서 묻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직하게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저희 지도자 중 한 명이 축복받은 땅의 환영을 봤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무언가를 찾아서 여기 왔고요." 갑자기 아버지의 기억이 떠올라 리알리아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우리 함대가 출범한 건 그 환영 때문이었습니다. 영원꽃 골짜기가 그 환영의 정체였죠."


"그래서 자넨 거기서 뭘 했나?"


'몇 달 동안 모구를 물리치고는, 오크 폭군이 그곳을 망쳐버리는 걸 봤죠.' 솔직하게 말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전 그곳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낮았다. "엘룬께서는 제가 노력했다는 걸 아십니다."


침묵이 호수를 덮었다. 수면에 잔물결이 일었다. 마침내, 힐포우는 다시 끙 소리를 내고는 다른 말 없이 그녀를 남겨두고 떠났다.


리알리아는 다시 호수를 바라보았다. 아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조짐은 전혀 없었다.


***


스러져 가는 모닥불의 재를 굵은 녹색 손가락이 휘저었다. "아직 따뜻하군. 오늘 밤에 여기 있었어." 오크는 다른 여덟 명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해가 뜨기 전에 잡는다. 2인 1조로 움직여라. 준비해."


한 명이 거북한 듯 자세를 바꿨다. "정령들이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겁니다, 제르틴."


"이곳 정령들은 약하고 버르장머리 없어, 키쇼크." 제르틴이 화가 나서 윽박질렀다. "놈들은 교육이 필요한 어린애들이다. 애 하나도 못 다룬다면, 내가 네 배를 가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게 지금 스스로 혈관을 끊어라."


더는 반대가 나오지 않았다.


"좋아. 움직여."


그들은 명령에 따랐다. 조용하게. 밤의 어둠이 그들을 덮었다.


III





"양념을 다 넣지 말라고, 지나." 농부 펑이 말했다. "고기가 아주 양념에 빠져 죽겠네."


"그거 끔찍하겠는데요." 지나 머드클로의 말에는 빈정거리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 하오한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는 지나를 보지 않았다. 야채를 다듬는 일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 많은 고기가 부드러워지고, 향이 풍부해지고, 한 입 뜯을 때마다 살살 녹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비극도 없죠." 사실은 빈정거림이 섞여 있었던가 보다.


펑은 얼굴을 찌푸렸다. "신선한 고기에는 양념을 그렇게 많이 할 필요 없다. 아, 하지만 이 고기는 힐포우 어르신네 닭에서 나온 거지? 그럼 말 되는군. 내가 닭을 키운다면 그렇게 냄새 나는 고기가 나오진 않을 텐데. 왜 그렇게 양념을 많이 넣고 싶어하는지 알겠군. 그래도 반만 넣어라."


"자네 입은 말일세," 늙은 힐포우가 말했다. "자네한테 도움이 안 되는구먼, 펑."


지나는 한쪽 입꼬리만 올려 펑에게 웃어 보이고는 양념을 부었다. 전부 다. 펑은 혀를 쯧쯧 찼다.


"손님들은 어디서 주무시죠?" 지나가 물었다.


"지하 저장고에서." 하오한이 말했다. 그는 딸의 반응을 보고 움찔했다. "내가 아니라 자기들이 그러겠다고 한 거다, 얘야."


"거긴 비좁은데." 지나가 중얼거렸다. "수확한 당근이 잔뜩 쌓여 있다고요."


"셋이 지내기엔 충분하지. 서로 사이만 괜찮다면 말이다. "


"혹은 한 명이 족쇄를 차고 있고, 거기에 대해 불평할 자격이 없다면 말이지." 펑이 말했다.


"그렇지. 그들이 오늘밤엔 문을 잠그고 자라고 부탁하더군."


지나는 그릇 세 개에 국을 담고 국자를 펑에게 넘겼다. "자, 어디 제 요리를 살려내 보시죠." 그녀는 장난기 섞인 투로 말했다. "전 손님들에게 이걸 가져다 주겠어요." 그녀는 팔에 올린 그릇의 균형을 잡으며, 펑이 항의하기도 전에 방을 나갔다.


***


굴 속은 토깽들의 아우성으로 귀가 먹을 만큼 시끄러웠다. "갈퀴앞니가 우리 당근 얻는다 그랬다!" 토깽 한 마리가 소리쳤다. "돈 주면, 당근 받는다! 훔치는 거 아니다! 사는 거다! 갈퀴앞니가 그랬다!"


갈퀴앞니도 지지 않고 고함쳤다. 목털이 곧추서고, 흰 줄무늬가 섞인 털이 빳빳하게 뻗쳐 있었다. "우린 수레에서 동전 갉았다! 네가 그러자고 했다! 큰 놈들 수레 동전 안 받는다. 반짝이는 동전 좋아한다. 내 잘못 아니다!"


굴어미가 포효하며 땅에 발을 굴렀다. 토깽들은 조용해졌다. 번들거리는 수많은 붉은 눈이 그녀를 향했다. 굴어미는 갈퀴앞니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며 굴 안을 천천히 돌았다. 갈퀴앞니는 털을 곤두세운 채 잇새로 공기를 빨아들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갈퀴앞니 말이 맞다. 큰 놈들 반짝이는 거 원한다. 수레 동전 아니다. 내일 큰 놈들한테서 반짝이 훔친다. 반짝이로 당근 산다!"


"왜 반짝이 훔쳐?" 조그만 토깽 하나가 물었다. 좀 더 큰 토깽이 그의 귀를 물었다. 세게. 작은 놈은 펄쩍 뛰어 안전한 거리로 도망갔지만, 입을 다물진 않았다. "전처럼 당근 훔치면 되잖아?"


"당근 훔치면 큰 놈들이 갈퀴랑 삽으로 때린다. 사면, 안 때린다." 굴어미가 말했다.


"반짝이 훔치면 뭘로 때려?" 작은 놈은 집요했다.


다른 토깽들은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언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갑자기 갈퀴앞니가 위를 쳐다보았다. "조용히!" 굴 속이 잠잠해졌다. "들어 봐!" 작은 진동이 땅을 울렸다. 발걸음이었다. 바로 머리 위에서. 토깽이라 하기엔 컸다. "큰 놈들 또 있다! 당근 있을지도 모른다!"


토깽들은 굴 입구로 우르르 달려갔다. "수레 동전 가져와라!" 굴어미가 외쳤다.


순무밭을 따라 아홉 명이 걷고 있었다. 길로 다니지 않다니 이상하네, 갈퀴앞니는 생각했다. 아홉 여행자는 순식간에 토깽에게 포위됐다.


"당근! 당근!" 토깽들은 외쳤다. 갈퀴앞니는 펄쩍 뛰어올라 대장 같은 놈의 얼굴에 수레 동전 한 움큼을 뿌렸다. 그러고는 얼어붙었다. 큰 놈의 표정에 순수한 분노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갈퀴앞니는 주춤하며 수레 동전을 한 움큼 더 던지고 무리로 되돌아왔다. 이방인의 눈에 담긴 무언가가 그를 불안하게 했다.


굴어미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 동전 있다. 당근 원한다. 너 우리한테..."


굴어미 옆으로 돌풍이 불어닥쳤다. 다른 토깽들은 잠잠해졌다. 때로는 바람이 일고, 때로는 땅이 울린다. 하지만 그럴 땐 언제나 경고가 있었다. 토깽들은 조짐을 읽는 법을 알고 있었다. 폭풍이 몰아칠 것 같으면 지하에 숨고, 지진으로 굴이 무너질 것 같으면 도망쳤다. 정령들은 장난기 많고 가끔 짓궂기도 했지만, 잔인하게 구는 일은 드물었다. 그리고 그들은 절대로 아무 이유 없이 토깽을 공격하지 않았다. 게다가 큰 놈이 시킨다고 토깽을 공격할 리는 절대로 없었다.


굴어미는 다시 일어났다. 당혹스러웠지만, 그 기분은 몇 초 가지 않았다. 분노로 깩깩거리며 굴어미는 다시 펄쩍 뛰어올랐다. "당근 내놔! 동전 받아!"


다시 한 번, 아무 경고도 없었다. 굴어미의 발치에 강풍이 불어, 그녀를 공중으로 날려보냈다. 굴어미는 비명을 질렀다. 정령들도 그녀와 함께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바람이 갑자기 굴어미를 바닥에 내던졌다. 땅이 솟아올라 그녀를 맞았다.


대지와 바람이 함께 울부짖었다. 그리고 함께, 굴어미를 짓눌렀다.


토깽들은 뒤로 물러났다. 굴어미의 몸이 생명을 잃고 털썩 내려앉았다.


큰 놈들이 미소 지었다.


갈퀴앞니는 목청껏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 다른 토깽들과 함께 굴로 도망쳤다. 그들은 모두 최근 몇 달간 이상한 일을 많이 겪었다. 샤의 어두운 에너지가 그들을 미치게 했고, 호젠의 공격도 있었고, 수많은 이방인들이 네 바람의 골짜기를 짓밟았다. 이 아홉 명이 휘두르는 새로운 힘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토깽들은 한데 뭉쳐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였다. 큰 놈들이 어서 떠나길 바라면서.


***


지나는 김이 오르는 그릇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드레나이와 나이트 엘프는 수확한 당근 더미에 몸을 기대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크는 북쪽 흙벽에 등을 대고 앉은 자세였다. 그는 웃음 짓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지?" 지나가 물었다.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저도 물어보겠습니다." 구원자 마라아드가 말했다. 드레나이는 아직도 갑옷을 걸친 모습이었다. 손 닿는 곳에 그의 망치가 있었다.


지나는 리알리아와 마라아드에게 국이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마지막 한 개는 오크의 발치에 내려놓았다. 포로는 그릇도, 지나도 쳐다보지 않았다. "두 분은 함께 자주 여행하시나요?" 그녀는 물었다.


"처음입니다." 리알리아가 말했다.


"선택하신 건가요, 필요에 의한 건가요?"


"둘 다죠." 마라아드가 말했다. "전 음영파가 호송대를 습격한 범인을 찾는 걸 돕겠다고 자원했습니다. 그 지역에 파수병도 몇 명 있었죠. 저희는 2인 1조로 수색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거죠."


"드레나이가 음영파랑 볼일이 있나요?"


마라아드가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쪽으로는 아닐 겁니다. 여러분의 땅에서 저희 임무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예언자 벨렌 님께서는 판다리아의 모든 이들과 관계를 공고히 하길 바라십니다. 그래서 직접 여기 와 계시죠. 비록 대부분의 시간을 북쪽에서 보내실 테지만 말입니다. 흥미로운 역사를 자랑하는 흥미로운 곳이죠. 여긴 배울 게 많습니다." 그는 국을 홀짝였다.


"저흰 함께 잘해내고 있는 것 같아요." 리알리아가 말했다. "둘 다 엿새나 잠을 못 잔 것치고는 말이죠."


지나의 눈이 커졌다. "엿새나요?"


"마라아드는 저 오크를 감시합니다." 성기사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주문 시전을 막는 능력이 있다고 설명하는 게 좋을지 리알리아는 망설였다. 비록 판다렌들이 몇 달이나 이방인들과 어울려 지냈다고는 해도, 일반적인 판다렌이 그런 것들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지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 여자는 아는가 보다. "저는 다른 누군가의 위협에 대비해 바깥쪽을 감시하고요." 나이트 엘프는 얼굴을 찌푸렸다. "영원꽃 골짜기 방어가 중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파수꾼을 몇 명 더 데려올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제 밤호랑이라도요." 잿그늘은 몇 주 전에 다리에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리알리아는 녀석이 아직 이런 긴 여정을 소화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영원꽃 골짜기요? 왜 아직 방어가 필요하죠?"


"음영파는 대부분 북쪽의 쿤라이로 갔습니다. 백호사요." 마라아드는 말했다. "소식 못 들으셨..."


... 둥 둥 둥 둥...


마라아드가 입을 다물었다. 지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게 무슨 소리죠?"


… 두둥 둥 둥 둥 두둥 둥 둥 둥...


오크가 눈꼬리를 올렸다. 얼굴에 띄운 미소가 음산해졌다. 소리가 저장고의 흙벽을 울렸다. 흙이 조금 바닥에 떨어졌다.


"마라아드?" 리알리아가 문글레이브를 천천히 들었다. "땅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요. 정령일까요?"


"제가 주술사는 아니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마라아드가 조용히 말했다. 그의 망치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리알리아는 건틀릿을 조였다. 녹색 눈썹이 아래로 처졌다. "이제 우리 친구의 정체를 알겠군요."


"그렇네요."


***


하오한, 힐포우, 펑은 땅이 이상한 리듬으로 울리자 이야기를 멈췄다. 두둥 둥 둥 둥...


"저건 안 좋은데. 그렇지?" 펑이 물었다.


저장고 문이 홱 열렸다. 지나가 뛰쳐나왔다. 두 얼라이언스도 오크의 등을 떠밀며 따라나왔다.


"네." 나이트 엘프가 말했다. "안 좋은 일입니다."


***


"이 응가쟁이들 봐라." 뭉뭉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머드클로의 집 바깥 나무에 있는 자기 횃대 위에서, 뭉뭉은 아홉 오크가 넓게 반원 모양의 대형을 이룬 걸 볼 수 있었다. 북쪽엔 산이 있으니, 그들 사이를 지나가지 않고서는 도망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두 오크의 팔이 땅울림과 박자를 맞춰 움직였다.


두둥 둥 둥 둥...


겁을 주려는 거였다. 그들은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허세를 부린다는 게 어떤 건지 뭉뭉은 알고 있었다. 여섯 살 때 (그리고 이름이 그냥 뭉이었을 때) 큰 호젠 하나가 그를 밀쳐서 넘어뜨렸다. 다른 호젠이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나서지 말라고, 포기하라고, 들새 사냥은 "진짜 그루끼끼"한테 맡겨 두라고 뭉뭉을 비웃었다.


두둥 둥 둥 둥...


큰 호젠은 쓰러졌다. 뭉은 그날 새 이름을 얻었다. 뭉뭉이라는.


"진짜 그루끼끼랑 한번 해보겠다고?" 그는 중얼거렸다. "뭉뭉은 상관없어."


그는 다시 수를 셌다. 오크 아홉 명이라.


***


"우리 포로와 바깥의 오크들은 암흑주술사입니다." 구원자 마라아드가 말했다. "이건 좋은 소식이 아니죠."


포로가 똑바로 섰다. "저들은 진정한 호드의 일원이다." 그는 말했다. "그리고 저들은 내 명령을 따르지. 나는 코르크론의 마쇼크다. 이 대륙에 있는 암흑주술사들을 지휘하지." 그는 리알리아를 보며 히죽거렸다. "네 말이 맞다, 얼라이언스. 넌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테니, 이 정도 얘기 못 해줄 것도 없지."


"코르크론?" 농부 펑은 그리 감명받은 것 같지 않았다. "헬스크림의 똘마니들? 오그리마에서 잘 안 풀린 모양이던데."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지나가 맞장구를 쳤다.


"원시용에 샤의 힘까지 얻고도 못 이겼지." 하오한이 덧붙였다.


마쇼크가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족쇄에서 절그럭 소리가 났다. "혀를 잘 단속하는 게 좋을 거다. 그게 계속 붙어 있길 바란다면. 네놈들 중 몇 명한텐 떠오르는 해를 다시 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두둥 둥 둥 둥 두둥 둥 둥 둥…


마쇼크가 족쇄 찬 손을 들어올려 손가락을 튕겼다. 소리가 즉시 멈추었다. 리알리아는 깜짝 놀란 듯 마라아드를 쳐다보았다. 드레나이는 오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망치를 잡은 자세를 약간 바꾸었다. 음영파의 족쇄. 그녀가 알아차렸단 걸 알 수 있었다. '저 물건이 놈의 힘을 대부분 억누를 수 있을진 몰라도, 전부 억누르지 못하는 건 분명하군.'


침묵이 머드클로의 집을 채웠다.


잠깐 동안만.


"그래서, 암흑주술사들이 음악도 할 줄 아나 보군." 농부 펑이 비웃었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하는 건가? 더 나은 음악도 들어 봤는데."


"네가 들은 건," 마쇼크가 즐거운 듯 말했다. "너희 땅의 정령들이 우리 명을 따라 전진하는 소리다. 그들은 이미 우리 손아귀에 들어왔지. 우리는 듀로타에서 훈련했다, 멍청한 판다렌 놈들아. 거친 땅이지. 그곳의 정령들은 이곳 놈들처럼 나약하고 건방지고 어린애 같지 않다. 여기 정령들은 우리에게 반항할 꿈도 꾸지 못했지."


늙은 힐포우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서 있기만 했었다.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래. 암흑주술사. 정령의 지배자. '진정한 호드'의 일원.'" 그가 마쇼크를 향해 다가갔다. "고작 얼라이언스 두 명한테 붙잡혔군. 참으로 끝을 모르는 힘일세. 이 둘한테 붙잡히기 전에 호드 야영지는 왜 습격했나? 그들이 '진정한 호드'의 일원이 아니라서?"


마쇼크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음을 터트렸다. "놈들은 대족장님을 배신했다. 내게 당한 것보다 더 큰 벌을 받아야 마땅해."


늙은 힐포우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코르크론 암흑주술사 무리가 왜 이곳 판다리아에 있는 건지 설명해 보게. 자넨 오그리마에 있지 않았군. 자네의 대족장이 우리 땅을 더럽힌 후에 자네를 버렸나?" 오크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힐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라 생각했지. 자넨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었나 보군. 헬스크림이 오그리마로 돌아갈 때 데려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너희 농부들에게 제안할 거래는 이거 하나뿐이다." 마쇼크가 으르렁거렸다. "지금 밖에는 동료 코르크론 열다섯 명이 있다. 네놈들은..."


"아홉. 아홉 명 있다." 뭉뭉이 달려들어와 탁자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겨드랑이를 긁고는 오크를 보고 히죽 웃었다. "뭉뭉이 두 번이나 세봤다."


마쇼크가 씩씩거렸다. 마라아드와 리알리아는 심각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암흑주술사 아홉 명?' 늙은 힐포우 말대로 그들이 헬스크림의 최정예 부하들은 아니라고 해도 심각한 전력 차이였다. 어쨌든 열다섯 명보다 나은 건 사실이었다. '마쇼크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니, 흥미롭군.' 마라아드는 생각했다.


"너희 판다렌한테 지성이라는 게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새겨들어라." 마쇼크가 드디어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날 풀어줘라. 당장. 그러면 너희는 죽이지 않겠다. 저놈들만 죽이지." 그는 구원자 마라아드와 리알리아 쪽을 가리켰다. "너희는 안 죽인단 말이다. 하지만 너희가 조금이라도 저항한다면, 이 집을 박살 내서 너희 귀와 함께 땅에 흩어 버리겠어."


늙은 힐포우는 차갑고 순수한 분노로 화답했다. 그는 오크에게 바싹 얼굴을 들이댔다. "이 땅은 네가 맘대로 할 수 있는 땅이 아니다." 그는 말했다. "이곳은 내가 자식을 키운 땅이다. 가족을 묻은 땅이다. 이 땅은 영원히 나와 그들의 것이다. 정말로 우리가 너 따위에게 항복할 거라고 생각하나?"


마쇼크는 늙은 판다렌을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거래는," 마쇼크는 말했다. "이제 네놈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나머지 놈들은 빨리 마음을 정하는 게 좋을 거야."


"신경 끄라고." 하오한이 말했다. "우리가 바본 줄 아나? 네놈은 아무도 살려두지 않을 거잖아." 농사꾼 연합의 다른 일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라아드는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만약 농부들이 항복하고 싶어했다면…


"저희가 놈들을 최대한 막아 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마라아드와 심각한 눈빛을 교환하며 나이트 엘프가 말했다. 아홉 대 둘이었다. 기껏해야 몇 분이나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언덕골로 달아나십시오. 이 사태를 알리세요. 얼라이언스가 여러분을 도울 겁니다. 아마 호드도 그리하겠죠." 그녀는 마지못해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그것도 신경 끄세요." 지나가 말했다. "저흰 안 도망가요."


"이건 여러분의 싸움이 아닙니다." 마라아드가 말했다.


"여긴 제 집입니다." 하오한이 말했다.


"저놈한테 한 말은 빈말이 아닐세." 늙은 힐포우의 눈빛이 사나웠다. "난 놈들에게 항복하지 않을 걸세. 이 땅은 그리 쉽사리 굴복하지 않고, 우리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싸우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자네들은 우릴 잘 모르는 걸세."


농부 펑이 쑥스러운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게 열변을 토하실 건 없잖습니까, 힐포우 어르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암요. 저도 안 도망갑니다."


"멍청한 놈들." 오크 포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제불능의 약해 빠진 천치들. 너희 모두 이제부터 벌어질 일을 당해 마땅해."


모두 그를 무시했다. 마라아드는 빙긋 웃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저장고에 포로를 묶어 둡시다. 제가 먼저 밖으로 나가 적의 주의를..."


어떤 소리가 그의 말을 멈췄다. 강철이 철컹거리는 소리였다. 그러고는 쿵 하는 소리.


마쇼크의 족쇄가 바닥에 떨어졌다.


작고 가느다란 덩굴이 바닥 널 틈새를 통해 땅속으로 재빨리 물러갔다. 그 덩굴이 족쇄를 푼 것이다. 오크가 풀려났다.


가시투성이 갈색 나무뿌리가 집안 세 곳에서 바닥을 뚫고 올라왔다. 구원자 마라아드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오크에게 빛의 힘을 휘둘렀다. 오크는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무뿌리가 축 늘어졌다.


하지만 잠시 후, 오크는 웃었다. 다시 일어났다. 뿌리가 홱 고개를 쳐들었다.


마라아드는 계속해서 빛을 집중해 오크를 압박하며 그가 힘을 발휘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암흑주술사가 자신의 의지를 확장시키며 점점 힘을 되찾아가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바깥에 있는 다른 암흑주술사들이 정령들에게 놈을 돕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지나가 족쇄를 주워들었다. "제가 다시 채우죠."


"거기 그대로 계십시오." 마라아드가 말했다.


"전 놈이 두렵지 않아요. 제가..."


"한 발자국도 더 가까이 가선 안 됩니다." 지나가 물러서자 드레나이는 안도했다. 그는 오크의 자세를 보았다. 마쇼크는 그녀를 인질로 붙잡거나 즉시 죽였을 것이다. 마라아드는 바깥에서 밀려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의 파동을 버티며 오크의 힘을 억누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일단 놈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면 족쇄는 아무 소용도 없을 터였다.


빛의 힘은 무한하다. 구원자 마라아드는 그것을 믿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저 도구일 뿐이었다. 그리고 도구에는 한계가 있다. 결함도 있다. 마라아드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아홉 오크, 마쇼크까지 합하면 열 명의 오크는 결국엔 자신을 압도할 것이다. 누군가는 마쇼크를 억제하고, 누군가는 바깥의 암흑주술사들을 방해해야 했다.


리알리아가 문글레이브를 들어올렸다. 마라아드는 그녀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괜찮아요?" 그녀가 물었다.


"마쇼크와 전 할 얘기가 좀 있습니다." 마라아드가 말했다. "저장고에서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을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리알리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눈으로 소리 없이 질문했다. '정말 괜찮아요?' 마라아드가 끄덕였다. 리알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마쇼크는 둘의 소리 없는 대화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지만, 마라아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부 빛을 오크 주변 바닥에 비추었다. 빛을 받은 땅에 에너지가 튀었다. 바로 오크 발아래에 작은 원만 남아 있었다. 천천히, 마라아드는 그 빛의 고리를 저장고 문 쪽으로 움직였다. 마쇼크는 재미있다는 듯 따라 움직였다. 마라아드는 주술사가 마음만 먹으면 그 급조된 고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려면 놈도 힘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놈도 아플 것이다. 많이.


마라아드가 자신을 저장고로 몰아넣고 있다는 걸 깨달은 마쇼크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좋다, 드레나이. 빨리 끝내지." 오크가 말했다. 그는 저항하지 않고 저장고 계단을 내려갔다.


"우리 뒤의 문을 막으십시오." 마라아드가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리알리아에게 눈길을 던졌다. "빛이 그대와 함께하길. 잘 싸우십시오, 파수꾼이여."


"합류할 수 있게 되면 바로 오십시오, 구원자여." 그녀가 말했다.


마라아드의 등뒤에서 문이 닫히고 저장고가 어둠에 잠겼다. 망치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그가 조금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오크는 다시 한 번 북쪽 흙벽에 몸을 기대고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시작할까, 성기사?" 마쇼크가 물었다.


"그러지." 마라아드는 말하고 빛을 한껏 끌어올렸다.


***


하오한은 엄청난 크기의 식칼로 저장고 문에 빗장을 질렀다. 이러면 문을 여는 데 조금은 시간이 걸릴 터였다.


판다렌은 바닥에 늘어진 나무뿌리를 응시했다. "꿈틀뿌리로군." 농부 펑이 말했다. "언제부터 꿈틀뿌리를 키운 겐가, 하오한?"


"언덕골 시장에서 광물이 얼마나 비싸게 팔리는지 봤나? 이방인들은 광물이 한도 끝도 없이 필요한가 보더군." 하오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땐 아주 좋은 생각 같아 보였는데. 어쩌면 아직도 그럴지도 모르지. 바닥을 수리할 돈이 필요할 테니."


호젠이 문 바깥을 훔쳐봤다. "오크들 기다린다. 안 움직인다." 뭉뭉이 말했다.


"이길 수 있을까요?" 지나의 목소리와 눈빛은 침착했다. "기적 따위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저... 암흑주술사를 아홉 명이나 때려눕히실 가능성이 있나요?"


리알리아는 그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쓰러진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는 아닐 겁니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할지 결심했다. "누구도 무적은 아니죠."


"놈들이 왜 더 일찍 공격하지 않았을까?"


모든 이가 늙은 힐포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씀이시죠?" 리알리아가 물었다.


"길 위에서 자네 둘을 공격했다면, 아홉 명 대 두 명 아닌가. 지금은 아홉 명 대 일곱 명이고. 뭐, 여섯 명이라고 해두지." 늙은 힐포우는 저장고 문을 흘끗 바라보고 발톱 하나로 자기 뺨을 톡톡 두드렸다. "어째서 자네 둘을 더 일찍 공격하지 않았을까?"


"저흰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빠른 건 아니었는데.


"그럴지도 모르지." 힐포우는 납득한 표정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유가 하나뿐만은 아닐지도 모르네. 이... 마쇼크라는 자가... 무리에서 가장 강한 모양인데. 어쩌면 저놈들은 마쇼크 없이는 잘 싸우지 못할지도 모르지. 어쩌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어르신?" 펑이 끼어들었다.


"놈들이 공격을 서두르지 않은 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 하지만 머릿수가 이렇게까지 차이 나는데, 대체 그걸 넘어설 만한 이유가 뭐겠나? 뭔가 중요한 게 있었을 걸세." 힐포우의 목소리가 속삭임처럼 낮아졌다. "어쩌면 우리에게 유리한 게 있을지도 모르네. 저놈들은 이 땅을 몰라. 우리는 알지."


"그건 물론 도움이 될 겁니다." 리알리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형에 대한 이해는 언제나 중요하죠."


"아니." 힐포우가 말했다. "우리가 이 대지를 안단 얘길세. 우린 농사꾼이지 주술사가 아닐세. 정령에게 말을 할 순 없지. 하지만 우린 매일매일 정령과 함께 일하네." 그는 두 손을 들어올렸다. "우린 그들을 보살피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네. 수세대에 걸쳐 우리는 그들을 도왔지."


리알리아는 그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암흑주술사들은 가혹합니다. 제가 그 주술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이 땅의 정령들이 과연 저항할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마쇼크는 여기 정령들이 나약하다고 했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른 놈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들 단단히 착각하는 게지." 힐포우가 말했다.


하오한의 얼굴에 알았다는 표정이 번졌다. "어린애 같다고, 그는 정령들이 어린애 같다고 했죠."


리알리아는 다른 모두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틀렸나요?"


지나는 사납게 미소 지었다. "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요." 그녀는 말했다.


"저 이상한 소리, 땅을 울리는 리듬 말인데," 펑이 말했다. "정령들한텐 매우 재미있는 놀이였을 겁니다. 하지만 땅에 물을 주고 흙을 가는 사람들을 죽이라고 하면 재미있어 하지 않을 걸요."


"자네는 호수를 봤지, 나이트 엘프." 힐포우가 말했다. "거대한 우리 농작물과 함께 거대한 포식자도 자라네. 이 골짜기는 길들여진 골짜기가 아닐세."


"그렇군요." 리알리아는 문밖을 훔쳐봤다. 아직 움직임이 없었다. 주술사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요?" 지나가 다시 물었다.


"무기를 갖고 계십니까?" 리알리아가 물었다.


"바깥에 괭이와 갈퀴가 있죠." 하오한이 말했다.


"뭡니까, 그 표정은." 펑이 말했다. "우리 몸쯤은 지킬 줄 압니다."


리알리아는 다시 침착한 표정을 되찾았다. 그들은 전사가 아니었다. 훈련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겐 자기 고향을 위해 싸울 권리가 있었다. "물론이죠." 그녀는 지나를 마주보았다. "이길 수 있냐고요? 이걸 말씀드리죠. 전 영원꽃 골짜기에서 몇 개월을 보냈습니다. 그곳을 보호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죠. 헬스크림이 그 골짜기에 저지른 짓을, 놈들이 여러분의 고향에 저지르게 두지 않겠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는요." 그녀는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제가 먼저 나가죠. 놈들은 제가 가장 큰 위협이라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 생각보다 놈들이 강하다면, 내 빠른 죽음이 경고가 되어 당신들이 도망가게 해주겠지.' 암울한 생각이었다.


"가볼까요." 리알리아가 말했다.


IV





"그걸 쓸 작정인가?" 오크가 물었다. 사방이 막힌 비좁은 저장고에 그의 목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울렸다.


마라아드는 망치를 내려다보았다. 빛나고 있었다. "당장 쓸 건 아니다."


둘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당근이 쌓여 있지 않은 좁은 공간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채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들이 전투를 준비하며 명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몇몇은 이미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라. 에너지가 희미하게 빛나는 것을 이미 볼 수 있었다. 티끌처럼 자그마한 노란색 빛이 마라아드 주위에 맴돌았다. 어두운 갈색과 붉은색 섬광이 마쇼크 주위에서 번쩍였다.


마라아드는 빛으로 오크를 압박했다. 다음 공격을 기다리면서. 그것은 금방 왔다. 오크는 대지를 장악하려 애쓰며 잽싸게 한 방을 날렸다. 마라아드는 공격을 피했다.


"그걸로 날 한 번만 치면 모든 게 끝날 텐데." 마쇼크가 이죽거렸다. "그러지 못하면, 난 약속을 지키겠다. 놈들이 죽는 꼴을 지켜보게 해주지."


마라아드는 미끼를 물지 않았다. 심지어 눈도 깜짝이지 않았다. 망치로 오크를 내리치려면 집중력이 필요했고, 그것은 제한 없이 정령과 접촉할 한순간을 암흑주술사에게 허락할 터였다. 그게 더 위험했다. 힘이 아니었다. 속도였다. 마쇼크는 빨랐다. 마라아드는 망치를 겨우 한 번만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마라아드는 기다릴 것이다. 그 기다림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오크는 탐색을 시작했다. 이곳, 저곳. 한 번 더. 점점 더 빠르게. 마라아드는 그에 맞춰 모든 시도를 막아냈다.


곧 둘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빛깔들이 더욱 밝게 소용돌이쳤다.


***


"복종하라." 암흑주술사 키쇼크가 으르렁거렸다. 불의 정령들은 서로 겹치는 혼란스러운 아우성으로 대답했다.


'... 이해 안 돼, 하기 싫어, 몰라, 왜, 미워, 못 해, 안 해...'


오크는 토템에 의지를 집중하며 세게 억눌렀다. 정령들이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그는 웃음 지었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령들은 제르틴의 명령에 따라 억지로 굴어미를 죽인 후에 잠시 저항했지만, 코르크론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자 순식간에 장악되었다.


"넌 내게 힘을 빌려줄 것이다." 키쇼크가 말했다. "하수인을 내줄 것이다. 너희 중 가장 굳세고 강한 존재를 내보내라. 내게 바쳐라." 고통과 공포의 울부짖음이 높아졌다. 그들은 저항했다. 싸웠다. 마침내, 그들은 항복했다. 키쇼크는 하수인이 나타나기 전부터 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좋아." 그는 꼿꼿이 서고 두 팔을 벌려, 이 땅에서 가장 강력한 불의 정령을 기다렸다.


휙.


키쇼크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령은 그와 눈을 맞추려고 목을 길게 뺐다. 겨우 키쇼크의 무릎에 닿을 만한 크기였다. 장식용 가면을 쓴 듯한 얼굴이었다. 장난기 많은, 어린애.


그는 분노하며 정령들을 흔들었다. "날 조롱하다니!" 그는 고함쳤다. "감히 이딴 걸 보내?" 정령은 뒷걸음질 쳤다. 큰 눈에 공포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젖먹이 같은 걸! 내가 요구하는 건 힘이다. 내가 요구하는 건..."


"저기 나왔다!" 다른 오크가 판다렌 집 쪽을 가리켰다. 코르크론 사이에 경계의 외침이 일었다.


길쭉한 형체가 문밖으로 달려나왔다. 나이트 엘프였다. 얼라이언스였다. 달빛 아래에서 그녀는 검고 흐릿했다. 문글레이브의 날 네 개가 드러났다. 그녀는 싸우다 죽을 작정이었다.


'잘됐군.' 키쇼크는 생각했다.


아홉 암흑주술사는 힘을 한데 모았다. 대지가 신음했다. 바람이 울부짖었다. 키쇼크는 불의 정령을 내려다보았다. "어둠을 몰아내라." 그는 명령했다. "저 계집이 어디에도 숨을 수 없게 해라.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는 경멸하듯 덧붙였다.


작은 정령이 한 손을 들어올렸다.


하늘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지름이 오십 보쯤 될 것 같은 커다란 푸른 불덩이가 땅에서 백 보쯤 떨어진 곳에서 잔물결을 일으키며 타올랐다.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데도 빛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키쇼크는 손을 눈 위에 댔다. 열기에 피부가 그슬릴 것만 같았다. '이런 힘이...' 그는 작은 정령을 잘못 판단했다. 버르장머리 없고 어린애 같은 건 사실이지만, 쓸모가 없진 않았다.


"훌륭하군!"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자, 이제..."


끔찍한 비명이 밤을 가르고, 주변이 잠잠해졌다. 바람이, 바람의 정령이, 조용해졌다.


'뭐지?' 키쇼크는 밝은 빛 때문에 찡그린 채 들판으로 눈을 돌렸다.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다시 들려왔고, 키쇼크는 나이트 엘프가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무기에서 어두운 빛깔의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바람은 여전히 잠잠했다. 두 명의 코르크론이 바람을 조종하고 있었을 터였다. '혼자 둘 다 죽였단 말인가?'


분노가 치솟았다. 정령의 빛이 코르크론이 아니라 나이트 엘프를 도운 것이다. "저걸 없애라!" 불덩이가 사라졌다. 그러자 완벽한 어둠이 땅을 삼켰다.


키쇼크는 혼란에 찬 외침을 들었다. 오크들이 시야를 잃은 것이다. "내가 말하는 대로 해라. 우리에겐 빛이 필요하다. 그러니..." 아무런 조짐도 없이, 불덩이가 다시 나타났다. 이전 것보다도 더 밝았다. 키쇼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의 핏줄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순수한, 눈먼 분노가 키쇼크를 사로잡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얼라이언스를 본 곳으로 몸을 돌려 자신의 분노를 퍼부었다. 천둥 소리가 공중을 메웠다.


그는 다른 형체들이 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


늙은 힐포우는 몸을 낮추고 남쪽으로 갔다. 가는 길에 직접적인 공격은 없었다. 그는 하오한의 갈퀴 한 개를 낚아챘다. 날은 유령무쇠로 되어 있었다. 비싸고 오래가는 광물이다. 날카로웠다.


완벽했다.


분노에 찬 외침은 좋은 신호였다. 나이트 엘프가 적어도 한 명은 처치한 게 틀림없었다.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는 빛무리는 정령들이 새로운 주인에게 완전히 복종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 불규칙적인 깜박임 덕분에 그는 오크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리알리아를 쫓아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놈들이 그녀를 발견했다. 혼돈 속에 밤이 솟았다. 대지가 전율했다. 힐포우는 가장 가까이 있는 오크 한 쌍에게 계속 다가갔다.


놈들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힐포우는 자리를 잡았다. 사부 멍든손이 아주 오래전에 가르쳐 준 대로. 그리고 갈퀴 자루로 한 오크의 목을 쳤다. 연골이 박살 났다. 그 불운한 오크는 땅에 쓰러졌다. 망가진 목구멍에서 쌕쌕거리는 높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암흑주술사가 놀라서 고함쳤다. 그 둘은 물의 정령을 조종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더럽고 어두운, 기름기가 있는 불쾌한 액체 방울이 자신과 오크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정령은 두 명의 오크가 정신을 집중해서 강요하는 게 아니라면 더는 그들의 명을 따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방울이 거품처럼 터지더니, 쏟아져 내렸다. 힐포우는 처음 몇 방울이 그의 털을 태우는 것을 느끼고 가볍게 몸을 굴려 옆으로 피했다. 독물이 얼굴 위에 떨어지자, 죽어 가던 오크의 헉헉거림이 꼴깍거리는 소리로 변했다.


다른 오크는 독물에 흠뻑 젖었다. 그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비틀거리며, 큰 호수가 있는 북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피부가 불타며 벗겨지고 있었다.


힐포우의 발 언저리에서 꼴깍거리는 소리가 계속됐다. 판다렌은 마지막으로 갈퀴를 한 번 휘둘렀고, 드디어 오크는 잠잠해졌다. 힐포우는 축 늘어진 시체에서 갈퀴를 빼내느라 용을 써야만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른 오크는 호숫가로 내려가는 비탈길로 모습을 감췄다. 따라가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면 전투에서 빠지게 될 터였다. 힐포우는 그 오크를 따라가는 대신 새로운 목표물을 찾아 몸을 돌렸다.


***


번개가 몇 발자국 뒤에서 땅에 깊은 골을 새기자 리알리아의 몸에 닭살이 돋았다. 폭풍이 다시 번쩍이며 닥쳐오는 듯했다... 잠시 후, 그녀는 번개가 내리친 지점이 자신에게서 떨어진 곳임을 깨달았다. '적어도 한 명은 나보다 더 눈이 멀었나 보군.' 거대한 불덩이가 다시 번쩍였다. 오크 한 놈이 멀리서 화난 듯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계속 달렸다.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흙길 건너편, 꿈틀뿌리가 자라는 밭으로 들어갔다. 다리가 가시에 긁혔다. 하나는 종아리에 깊숙이 박혔다. 그녀는 찡그렸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번개가 그녀 앞의 들판을 밝혔다. 토템을 사이에 둔 두 형체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 안됐군.' 그녀는 생각했다.


리알리아는 빙긋 웃고, 문글레이브가 이끄는 대로 팔을 휘둘렀다.


***


"저 나이트 엘프 참 빠르군. 하오한이 말했다.


"아버지도 좀 본받아 보세요." 지나가 말했다. 나이트 엘프는 침입자들의 주의를 동쪽으로 끌고 있었다. 머드클로 부녀는 서쪽으로 멀리 돌아, 혼자 서 있는 오크 뒤로 갔다. 이상하게도 이놈은 혼자 서 있었다. 다른 오크들은 둘씩 있는데.


"같이?" 그녀는 물었다.


"같이." 하오한이 말했다.


하오한이 어깨를 낮췄다. 지나는 두 발자국 더 앞으로 가서 괭이를 땅에 단단히 박으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녀의 발은 오크의 목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제르틴! 조심하십시오!" 다른 코르크론이 들판 저쪽에서 소리쳤다.


오크가 뒤돌았다. 놀란 외침 소리와 함께 몸을 뒤로 날려, 지나와 하오한의 공격을 모두 피했다. '실력이 좋은걸.' 하오한은 생각했다.


오크가 그들을 바라보고 팔을 쳐들었다.


"아버지!" 지나가 하오한에게 몸을 내던져 함께 나동그라졌다. 하오한이 서 있던 자리에서 이빨이 딱 맞부딪혔다. 머드클로 부녀는 재빨리 일어서 검은 그림자의 불타는 눈을 들여다 보았다. 들판 어딘가에서 번개가 번쩍여 그 형체를 비춰 주었다. 늑대였다. 늑대 정령이었다. 그것은 머드클로 부녀에게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엔 분노와 고통이 담겨 있었다.


오크는 잔인하게 미소 지었다. "너희 땅엔 늑대가 많더군. 지금은 그 수가 약간 줄었지." 그는 말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나이트 엘프가 싸우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사나운 정령이 두 판다렌에게 달려들었다. 지나는 괭이를 휘둘렀다. 늑대 정령은 옆구리에 정통으로 괭이를 맞고 옆으로 날아갔다. 정령은 그녀에게 으르렁거리고는 갑자기 하오한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는 겨우 공격을 피했다.


"지나, 괭이 이리 다오!"


그녀는 괭이를 던졌다. 하오한은 괭이를 낚아채서 휘둘렀다. 오랜 세월 토깽의 머리를 후려치는 데 너무 익숙해진 터라 힘들지도 않았다. 괭잇날이 공기를 가르며 휙 소리를 냈고, 늑대가 본능적으로 물러났다.


하오한은 망설였다. 그러고는 괭이를 다시 휘둘렀다. 늑대는 그 소리에 다시 한 번 물러났다. "착한 늑대야." 하오한은 확신 없이 말했다. "착하지." 그는 계속 괭이를 휘둘렀다. 늑대의 붉은 눈이 괭이를 쫓았다.


"아버지," 지나가 속삭였다. "뭐 하시는 거예요?"


"수가 약간 줄었다..." 하오한이 말했다. "늑대 수가 약간 줄었다, 오크가 그렇게 말했지." 하오한이 갑자기 괭이를 땅에 박았다. 늑대는 괭이를 바라보았지만,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 늑대는 이 골짜기에 살던 녀석 같구나." 정령은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앉았다. 불안한 듯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디서요? 동쪽에 있는 농장들이요?" 지나가 물었다.


"가끔 늑대 무리가 지나가잖냐. 그렇지?"


"네, 그렇죠." 지나가 말했다. "이 녀석은 농부들을 기억하는군요."


하오한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저놈의 오크들이 이 늑대를 죽였지. 그러고는 영혼을 노예로 삼았어."


"그렇군요. 착한 녀석." 지나의 말에도 확신은 없었다. "착하지. 아버지? 다른 늑대 정령들도 농부들을 알아볼까요?"


"다른 정령들이라니?" 하오한은 지나 쪽을 쳐다보고는 얼어붙었다. "아, 저놈들."


빛나는 눈 일곱 쌍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르틴이라는 오크의 작별 선물이 틀림없었다.


"그러길 바라는 수밖에."


"끝내주네요." 그녀는 조그맣게 말했다.


V





저장고 안 공기가 태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윙윙거렸다. 흙벽에 천천히 금이 갔다. 땅이 흔들렸다.


구원자 마라아드도 오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싸움은 의지의 싸움이었다. 마라아드에게 저지당하기 전에 마쇼크는 각 원소에 겨우 손을 댄 정도였지만, 시도를 거듭할수록 머리카락 한 올 만큼씩 힘을 되찾고 있었다. 오크의 얼굴에 떠오른 재미있다는 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조금씩 커지는 자신의 힘을 마라아드가 따라잡을 수 있다는 건 분명했다.


마라아드는 조그만 빛을 공중에 흘려보냈다. 그 빛 안에, 그는 간단한 전갈, 감정을 실었다.


'난 너희 적이 아니야. 난 너희와 싸우지 않아.'


그 전갈은 마쇼크에게 보내는 게 아니었다. 마쇼크의 희생자, 정령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마라아드는 성기사이지 주술사가 아니었지만, 어쩌면 정령들이 알아들을지도 몰랐다.


"얼마나 버틸 성 싶으냐, 얼라이언스?" 마쇼크가 물었다. "넌 이번 주 내내 잠을 못 잤지. 난 네 덕분에 실컷 잘 잤고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넌 조금씩 밀리게 될 테지."


마쇼크는 시시때때로 마라아드를 대지로 덮치려 하고, 불로 태우려 하고, 폐를 물로 채우려고 했다. 마라아드는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오크의 말이 맞았다. 피로가 마라아드의 정신을 무겁게 짓눌렀다. 결국엔, 그는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드레나이는 내심 웃음을 지었다. 마쇼크를 도우러 달려온 오크는 없었다. 모두 지상에서 다른 볼일로 바쁜 것이다.


'잘하고 있습니다, 리알리아.' 그는 생각하고, 다시 공격을 막아냈다.


***


"여기 있는다." 갈퀴앞니가 속삭였다. "아무도 위에 안 간다."


커다랗게 쾅쾅거리는 소리가 대지를 뒤흔들자 토깽들은 공포에 질려 벌벌 떨며 웅성거렸다. 번들거리는 붉은 눈은 대부분 꼭 감겨 있었다. 위에서 벌어지는 싸움 때문에 이미 다른 굴이 하나 무너져 내렸다. 이 굴은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갈퀴앞니, 우리 도와야 한다." 작은 토깽이 말했다. 굴어미의 계획에 의문을 제기했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땅 아프다. 녹색 큰 놈들이 상처 입히고 있다."


"우린 여기 있는다." 갈퀴앞니가 다시 말했다.


"땅이 너무 많이 다치면?" 작은 토깽이 계속 말했다. "큰 놈들 죽거나 땅 너무 다치면 큰 놈들이 당근 못 키운다."


토깽 몇 마리가 눈을 뜨고 갈퀴앞니를 바라보았다.


"우린 여기 있는다." 갈퀴앞니는 말했다. 확신이 옅어진 채로.


***


"저기서 누군가 다쳤을 수도 있겠는걸." 농부 펑이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는 머드클로의 집 뒤쪽 경계선에 쭈그리고 앉아, 탁한 공기가 소용돌이치며 들판을 휩쓰는 걸 보고 있었다. 펑이 집밖으로 나오자마자 그 사나운 소용돌이가 바로 머리 위에 나타났었다. 자신을 노리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 소용돌이가 나이트 엘프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건 적어도 일 분은 지난 후였다.


발밑에서 불쾌한 소리가 들려 왔다. 저장고였다. '드레나이랑 오크가 바쁜가 보군.' 그는 생각했다.


불쾌한 냄새도 풍겨 왔다. 펑은 코를 찡그리고 뒤돌았다. 하오한의 무샨, 우레 녀석이 전투에 놀라 커다란 발굽을 구르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변비는 나은 게 분명했다. 녀석의 배설물이 아직도 쌓여 가고 있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다 정리되고 나면 펑의 새 비료에 훌륭한 밑바탕이 될 것 같은 배설물이.


"펑은 밤새 응가만 쳐다보려고 하나?"


뭉뭉이 집 처마에 거꾸로 매달려 펑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저기서 싸우는 것도 못 봤다만." 펑이 쏘아붙였다.


"응가쟁이들이 회오리 만들었어. 뭉뭉은 그거 지나갈 때까지 집에 있는다." 호젠은 몸을 뒤집으며 처마에서 뛰어내려 펑 옆에 자리를 잡았다. "멍청한 주술사 어떻게 때려줄 거야?"


"생각 중이다." 평의 눈이 못 미더운 듯 우레의 몸을 훑었다. 그는 무샨을 타고 전장에 나갈까 잠깐 생각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하오한의 무샨은 수레는 아주 잘 끌지만, 무거운 판다렌을 태우고 전장에 나가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펑은 턱을 긁적이고 뭉뭉의 몸을 살폈다. 그러고는 다시 우레를 바라보았다. 씩 웃었다. "이봐, 뭉뭉." 그는 말했다.


뭉뭉은 그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그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해. 뭉뭉은 안 한다고 했어!"


"좋은 생각이 있다니까." 펑이 밝게 말했다.


"안 해!"


***


'셋 잡았고.' 리알리아는 몸을 돌려 찔렀다. '넷.' 그녀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혼돈 속에서도 면도날만큼 얇은 안전 지역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코르크론은 다시 모였다. 새로운 공격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소용돌이가 들판을 가로질렀다. 폐는 이미 화염을 삼킨 것처럼 뜨거웠다. 마지막 오크 한 쌍이 보이지 않는 독 연기를 만들어냈었다. 그걸 겨우 한 번 들이마셨을 뿐인데, 이젠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사포에 쓸리는 것 같았다. 뾰족한 대지의 파편들이 그녀의 머리를 향해 홱홱 날라왔다. 하나는 목을 스쳐, 지금까지 그녀가 모은 많은 상처에 또 하나를 더했다.


암흑주술사 두 명이 그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하나가 손을 들어올렸다. 이번엔 피할 수가 없다. 불타는 재가 일렬로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폭발의 충격이 그녀를 쓰러뜨렸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재와, 불붙은 작은 돌멩이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리알리아는 땅에 납작 엎드렸다. 이를 악물고 비명을 억누르며 머리를 감쌌다. 불타는 돌들이 그녀를 후려쳤다.


'넷 잡았어.' 그녀는 생각했다. '넷. 나쁘지 않아.


아버지, 곧 뵐 수 있겠네요.'


그녀는 자신을 죽이기 직전인 오크를 올려다보았다.


***


나이트 엘프의 눈은 키쇼크에게 못박혀 있었다. 그는 웃음 짓고, 경멸하듯 그녀를 향해 한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곧바로 불길에 휩싸였다.


'끝났군.' 그는 재의 비를 멈췄다. 어둠 속을 바라보니 제르틴이 판다렌 집 근처에 있었다. 저장고에 들어가 그 안에 남아 있는 얼라이언스 멍청이를 끝장내려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완벽하군.' 키쇼크는 토템 주머니를 땅에 내려놓고, 끈을 점검하고, 남은 전투를 준비했다. 그의 짝인 트로크라는 이름의 조용한 오크도 자기 주머니를 점검했다. 농부들을 처치하는 일이야 손쉬울 터였다. 몇 놈이 도망갈지도 모르지만 놈들을 쫓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만약 바람만...


커다랗게 쉿 하는 소리가 그의 생각을 방해했다.


키쇼크는 뒤돌았다. 나이트 엘프가 누워 있던 곳에서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길은 사라지고 없었다. 불의 정령이 키득거렸다.


희미하게 빛나는 푸른 빛이 커다란 순무 뒤에서 힐끔거렸다. 다른 정령이었다. 물의 정령이었다. 그 정령이 불을 끈 것이다. 물의 정령은 작은 물덩이를 수줍게 공중에 띄웠다. 불의 정령이 하얗게 빛나는 작고 뜨거운 불의 창을 쏘았다. 창과 충돌하자, 물덩이는 불꽃을 튀기고 증기를 피워 올리며 사라졌다.


두 정령이 다시 키득거렸다.


'저것들이... 놀이를 하는 건가?'


홧김에 키쇼크는 소리를 지르고 불의 정령을 밟으려고 했다.


"키쇼크, 잠깐!" 트로크가 외쳤다.


불의 정령은 옆으로 피했고, 오크의 발은 자기 토템 주머니에 명중했다. 발밑에서 토템 몇 개가 으스러지는 게 느껴졌다.


키쇼크는 트로크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침을 뱉었다. 트로크는 현명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만!" 키쇼크는 으르렁거렸다. 정령이 복종하길 거부한다? 놀고 싶어 한다? 좋다. 이것이 진정한 호드에 암흑주술사가 필요한 이유였다. 오그리마의 정령들이 대족장의 주술사들의 명에 따르길 피하기 시작했었다. 그들의 반항적인 태도는 즉시 교정됐다.


키쇼크는 이 정령을 파괴할 생각이었다.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다. 그는 의지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불의 정령은 부서진 토템을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다시 키득댔다.


"난 그 물건들이 필요 없다." 키쇼크는 조용히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다른 방법으로도..."


"야, 응가쟁이야!"


땅이 흔들렸고, 조심하라는 트로크의 외침은 엄청난 충돌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잠시 후, 한 야수가 측면에서 키쇼크에게 달려들었다. 키쇼크는 얼굴을 땅에 박았다. 그는 으르렁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무샨의 육중한 몸은 근처 순무밭의 높이 뻗은 줄기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오크는 야수가 천천히 돌아, 다시 돌진할 준비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 키쇼크는 쭈그리고 앉아 주위를 돌아보았다. 트로크는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머리 쪽이 끔찍했다. 무샨에게 밟힌 것이다.


키쇼크는 누군가가 자기 왼쪽 흙바닥을 가볍게 밟는 소리를 들었다. 굉장히 가까웠다. 그러고는 갑자기 몸통 왼쪽에 감각이 없어졌다. 오크는 검은색과 흰색이 쏜살같이 자기 시야를 스치는 걸 느끼고 필사적으로 오른팔을 들어, 머리를 향한 공격을 막아냈다.


판다렌 농부 하나가 그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의 손에는 이상하게 생긴 날카로운 무기가 들려 있었다. "난 이방인이 싫어. 아니, 대부분의 이방인이 싫어." 농부가 말했다.


감각이 없던 부분에서 이제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 이상한 무기가 키쇼크의 옆구리에 꽂혀 있었다. 그는 제정신을 잃지 않고 현실을 직시했다. 오크는 잘 훈련되어 있었다. 그는 모질게 그 고통을 무시하고 똑바로 섰다. 다른 저열한 생명체라면 이런 고통에 무너질지 몰라도, 코르크론은 그러지 않는다.


판다렌은 키쇼크의 오른쪽으로 넘어갔다. 그 동작은 어설펐지만, 키쇼크의 반응은 고통 때문에 굼떠진 상태였다. 몸통 다른 쪽에도 감각이 없어졌다. 키쇼크는 팔을 휘둘렀고, 그의 주먹이 농부의 얼굴을 가격했다. 농부는 흙바닥에 나가떨어졌다. 키쇼크는 으르렁거리며 무기 하나를 몸에서 뽑아냈다 휜 모양새에 이상한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폐금속으로 만든 것 같았다.


"이게 뭐냐?"


"가위다." 판다렌은 부러진 코를 붙잡고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양털 깎을 때 쓰는."


키쇼크는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두 번째 가위를 뽑아냈다. "네가 상대하는 게 누군지 깨달아라, 농부. 나는 그저 그런..."


"응가쟁이 아직 살아 있나?"


땅이 다시 흔들렸다. 무샨이 되돌아와 키쇼크를 덮쳤다. 그는 나동그라졌고, 거대한 발굽은 그의 머리통에서 겨우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을 뭉갰다. 오크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대지의 토템은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은 상태였고, 그는 가까스로 대지의 정령을 하나 붙잡았다. 땅이 폭이 넓은 띠처럼 솟아오르고, 무샨이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무샨을 타고 있던 호젠은 화가 나서 우끼끼거렸다. 정령은 꿈틀거리며 빠져나가려고 용을 썼지만, 키쇼크는 정령을 놔주지 않았다.


동쪽에서 다른 판다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 하나와 젊은 여자 하나였다. 훨씬 더 나이든 판다렌 하나가 서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무샨과 나머지 판다렌들은 남쪽에 있었다. 키쇼크는 비틀거리며 북쪽을 향했다. 신중하게 행동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부상당했다. 놈들에게 맞서려면 거리와 시간이 필요했다. 커다란 호수로 내려가는 비탈길이 있었다. 키쇼크는 언덕 가장자리에 서서, 자기와 판다렌 사이에 높이가 다섯 걸음쯤 되는 장벽을 세우라고 정령에게 명령했다.


정령은 복종했다. 바로 키쇼크가 밟고 선 땅을 이용해서.


키쇼크는 떨어졌다.


그는 비탈길을 계속 굴러 호수 가장자리의 얕은 물에 떨어졌다. 새로운 고통이 그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잠깐 동안 그는 숨을 몰아쉬며 고통이 가시길 기다렸다.


'되갚아 주리라.'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분노가 샘솟았다. '되갚아 줄 것이다!' 그는 무릎 언저리까지 잠기는 물속에서 똑바로 섰다. 자기 피가 물속에서 검게 소용돌이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오른발이 무언가에 부딪혔다. 그는 몸을 구부리고 그것을 건져 올렸다. 주머니였다. 주술사의 토템 주머니였다. 반쪽이긴 했지만. 키쇼크는 주의 깊게 그것을 조사했다. 주머니는 반으로 찢어진, 아니 물어뜯긴 것처럼 보였다.


소름이 돋았다. 다른 코르크론 하나가 물가에 왔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키쇼크 앞에서 물결이 사납게 일었다. 그 아래에서 거대한 형체가 입을 쩍 벌리고 이빨을 달빛에 빛내며 솟구쳤다. 공포에 찬 외침과 함께 키쇼크는 철벅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 거대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크기의 물고기는 앞으로 돌진해 입을 턱 다물었다. 그 소리가 북쪽의 산에 메아리쳤다.


토템 주머니가 다시 얕은 물속에 가라앉았다. 물고기는 천천히, 깊은 물속으로 돌아갔다.


***


"이래서 이방인들은 좀 더 많이 먹어야 한다니까." 농부 펑이 말했다. 그는 부러진 코를 감싸고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말랐어. 살집이 좀 있었으면, 당신은 지금도 괜찮았을 겁니다."


"그럴지도요." 리알리아가 앓는 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등을 대고 똑바로 누워 있었다. 불길은 겨우 몇 초만 지속됐었다. 바라건대, 그녀를 심각하게 상처 입힐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라건대. 아직도 아픔이 느껴졌다. 그녀를 살린 물의 정령이 근처 들판을 활보하며 불의 정령과 놀고 있는 게 보였다.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한번 해보죠." 그녀는 말했다. 펑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심장이 몇 번 뛸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리알리아는 자신이 당장 죽지는 않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마라아드가 한 시간 안에 그녀를 치료해주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그리 높을 것 같지는 않았다. "몇 명이나 남았죠?"


끔찍한 비명이 호수 쪽에서 들려왔다. 그러고는 침묵이 이어졌다. 물가로 내려가는 비탈길을 막고 있던 흙벽이 무너져 내렸다. "하나 줄었군요." 평이 말했다. 무샨이 발굽을 쿵쿵 내딛고, 뭉뭉이 우끼끼거리며 무샨의 머리를 토닥이고 있었다.


"제 생각엔 이제 한 놈만 남은 것 같습니다." 하오한이 말했다. 그는 통증에 찡그리며 왼팔을 감쌌다. 흰 털가죽에 붉은 상처가 두드러졌다. "저장고에 있는 놈 하나하고요."


"뭘 머뭇거리는 거죠?" 지나가 말했다. 늙은 힐포우는 끙 하는 소리로 동의를 대신했다.


"놈은 강합니다, 리알리아." 하오한이 경고했다. "아주 강해요."


리알리아는 자기가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 시험해 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통이 퍼져 나갔지만, 적어도 문글레이브를 휘두를 수는 있었다. 그거면 충분할 터였다.


"여기 있으세요..." 그녀는 머뭇거렸다. 정중하게 말하면 이들이 여기서 기다릴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태도를 바꿨다. "지금은 제 뒤에 있으세요. 그가 절 쫓아오면, 그때 치세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잘 돌아갔으니."


펑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녀의 상처를 살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


제르틴은 판다렌의 집 옆에 무릎을 꿇고 손가락으로 흙을 지그시 눌렀다. 그는 웃음 지었다. 그의 발아래에서 정령들이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며,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복종했다. 마쇼크는 곧 풀려날 것이다.


발자국 소리. 뒤쪽이었다.


제르틴이 뒤돌았다. 나이트 엘프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부상을 입은 듯했다. 검게 그을려 있었다. 판다렌 동료들이 그녀의 뒤에 넓게 퍼져 있었다. 심지어 무샨에 올라탄 호젠도 끼여 있었다.


"그래," 그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내가 수적으로 불리하군. 내가 항복하리라 생각하겠지. 안 그런가?"


리알리아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니." 그녀는 말했다.


"완전히 바보는 아니군." 오크가 말했다. 그는 판다렌 부녀가 나이트 엘프와 함께 전진하는 것을 발견했다. 제르틴은 그들에게 소리쳤다. "내 애완동물이랑 노는 건 즐거웠나?"


"그들은 이제 갔어." 딸이 말했다. "예전에 자기들한테 먹이를 줬던 농부들을 죽이는 데에는 흥미가 없더군."


"그렇군." 제르틴이 말했다. "그럼 내가 듀로타에서 데려온 녀석들을 소개하지."


귀기 서린 울부짖음이 밤을 흩트렸다. 늑대 정령 한 무리가 달려들었다. 나이트 엘프는 농부들을 보호하려고 늑대와 싸우기 시작했다.


제르틴은 그녀를 무시했다.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바로 저기, 저장고 문이 있었다.


***


저장고 안의 모든 것이 흔들렸다. 모든 것이 몸부림쳤다. 오크와 드레나이를 제외한 모든 것이. 정령들의 비명과 소용돌이치는 빛이 끊임없이 감각을 자극했다. 마라아드는 찡그린 채, 눈을 감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의 뒤에서, 그의 위에서, 저장고 문이 덜컹거렸다.


"그들이 왔군." 마쇼크가 악문 잇새로 말했다. "넌 실패했다. 그들이 바로 우리 위에 있어."


'난 너희 적이 아니야. 저들의 적이야.' 마라아드는 다시 한 번 정령들에게 말을 걸었다. "바로 내가 바라던 바다." 그는 말했다.


마쇼크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저장고 문이 활짝 열렸다. "마쇼크 님!" 오크가 외쳤다. "제가 구하러..."


마라아드는 무릎 위의 망치를 잡아채서 던졌다. 으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망치는 새로 나타난 오크의 턱 밑을 가격했고, 오크는 쓰러졌다. 마라아드는 벌떡 일어나 두 걸음만에 저장고 계단을 올랐다. 뒤쪽에서 분노에 찬 울부짖음이 들려오고, 마쇼크가 드디어 정령들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그의 힘이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마라아드는 망치를 낚아채고 현관문으로 달려가, 저장고에서 뻗어 나와 꿈틀거리며 사냥감을 찾는 두꺼운 뿌리를 겨우 심장이 한 번 뛸 정도의 시간차로 피했다.


그 이후엔, 모든 일이 무척 빠르게 벌어졌다.


VI





"무샨이 집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세요." 리알리아가 소리쳤다.


"응가쟁이 말을 안 듣는다!" 뭉뭉이 마주 소리치고는 죽어라고 무샨의 목에 매달렸다. 늑대 정령들은 그저 환상일 뿐이었지만, 무샨은 완전히 겁에 질려서 마구 날뛰고 있었다. 다행히도 무샨은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나무가 구부러지고 부러지는 소리가 리알리아의 주의를 끌었다. 구원자 마라아드가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서 머드클로의 집을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놈이 풀려났습니다!" 마라아드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 명이나 남았습니까?"


"그 둘뿐이에요." 리알리아가 말했다.


"그럼 이게 마지막이군요!" 마라아드가 판다렌들을 흘끗 보았다. "가능하면 도와주십시오."


두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르틴은 크게 한 방 맞은 것처럼 턱을 누른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다른 오크는 마쇼크였다. 포로였던 오크가 팔을 들었다. 꿈틀뿌리의 두꺼운 줄기가 머드클로의 집 지지대들에 얽혔다. 뿌리가 조여졌다. 집은 산산조각 나서 폭삭 내려앉았다.


"뿌리네요. 놈이 드루이드가 아닌 게 확실한가요?" 리알리아가 말했다. 마라아드가 한숨을 쉬었다.


리알리아의 발밑에서 뿌리가 더 튀어나왔다. 그녀는 춤추듯 몸을 피했다. 땅이 들썩거렸다. 마라아드가 다른 뿌리를 피하고, 그의 망치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작전은?" 그녀가 소리쳤다.


"정령들과 싸우지 마십시오. 저놈들과 싸우세요."


리알리아는 그가 어떤 뿌리도 망치로 내리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잘됐군요. 너무 쉬울까 봐 걱정이었는데." 그녀는 말했다. 오크가 밖으로 나온 지 겨우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그녀의 일은 어려워졌다. 그녀는 스멀스멀 다가오는 뿌리를 잘라 길을 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이리저리 피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당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길 바라요, 마라아드.' 갑자기 그녀의 발밑에서 땅이 입을 쩍 벌렸다. 그녀는 가까스로 그 틈을 뛰어넘었다. 저 아래 붉게 성난 용암이 보였다.


두 암흑주술사는 그녀가 전진하자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녀와 두 오크 사이에 돌덩어리가 튀어나왔다. 꿈틀뿌리가 그녀의 목으로 다가왔다. 거리를 좁히는 건 불가능했다.


한 형체가 뒤쪽에서 오크를 덮쳤다. 지나였다. 리알리아는 그녀가 치고 빠지는 빠른 공격을 하길 바랐지만, 판다렌 아가씨는 마쇼크의 등에 뛰어올라 그의 머리채를 잡아뜯고 목에 팔을 감았다.


다른 오크, 제르틴은 망설였다. 옆쪽에서 다른 형체가 다가왔다. 농부 펑이었다. 리알리아와 마라아드는 돌격했다. 마쇼크는 지나를 등에서 떼내 던졌지만, 바로 하오한의 공격을 받고 넘어졌다. 제르틴은 펑의 날카로운 가위를 피하다가 리알리아의 공격 범위에 들어왔다. 나이트 엘프는 문글레이브를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제르틴은 첫 번째 공격은 피했지만, 두 번째 공격에 팔에 상처를 입었다.


"그만!" 등을 바닥에 댄 채 누운 마쇼크가 두 손을 들어 손뼉을 치자, 지나와 하오한이 갑자기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뿌리가 그들의 목을 휘감았다. 다른 뿌리가 펑의 발목을 낚아챘다.


"과연." 구원자 마라아드가 말했다. 그의 망치가 허공을 갈랐다. 마쇼크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몸을 굴렸다. 그러나 망치는 그의 오른쪽 허벅지에 맞았다. 리알리아는 뼈가 쪼개지는 소리를 들었다.


곧바로 날카로운 뿌리 세 개가 마라아드의 배 쪽으로 날아와, 그의 갑옷을 꿰뚫었다. 그는 신음하며 무너졌다. 어두운 푸른색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제르틴은 성난 함성을 내질렀지만, 판다렌의 앞발이 턱에 명중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힐포우였다. 제르틴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두 개의 뿌리가 늙은 판다렌의 어깨를 꿰뚫고, 질질 끌고 갔다.


"힐포우!" 리알리아는 제르틴의 가슴팍에 사납게 문글레이브를 박았다. '다섯.'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움직이기 전에, 뿌리가 자기 목을 감고 잡아당기는 게 느껴졌다. 허공에 붕 뜬 그녀의 몸 속에 가시가 깊이 박혔다.


'나 혼자 다섯 명. 다 함께 열 명 중에 아홉 명 잡은 거야. 나쁘지 않아.


***


마쇼크는 손을 들어올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팽팽해진 뿌리가 판다렌의 몸을 반으로 접어 꽁꽁 옭아맸다. 호젠만이 자유로웠다. 마쇼크는 멀리서 호젠이 화나서 우끼끼거리며 무샨을 제어하려고 애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이트 엘프는 목에 뿌리가 감긴 채 대롱거렸고, 드레나이는 배를 움켜잡고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배에 아직도 뿌리가 박혀 있었다.


끝났다. 정령들이 오크의 마음속에서 흐느끼고 울부짖었다. 승리에 어울리는 노래였다. 제르틴은 몇 걸음 저쪽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고는 잠잠해져, 죽은 다른 암흑주술사들과 합류했다. 그렇게까지 끔찍한 손해는 아니라고 마쇼크는 생각했다. 부하들은 언제나 발목을 잡는 존재였다.


"이제," 이 순간의 차가운 만족감을 즐기며 마쇼크가 말했다. "난 약속을 지킨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뿌리가 구원자 마라아드를 내리눌러 무릎 꿇게 했다. "너와 나이트 엘프는 마지막에 죽는다. 너희가 지키지 못한 이 농사꾼들을 내가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린 다음에."


"상관없어." 늙은 힐포우가 통렬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깨와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넌 혼자다. 이 땅은 네가 자신의 적인 걸 안다."


"잘됐군." 마쇼크는 웃음 지었다. "너흰 세대를 이어 이 땅을 가꾸었지? 잘 들어라. 난 이 대지를 망가뜨릴 것이다. 정령들이 그 멍청함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이야. 이 골짜기를 황무지로 만들겠다." 그는 멸시하는 눈빛으로 판다렌을 내려다보았다. "정령들은 네놈이 싸우길 선택했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그리고 네놈이 이룬 그 모든 것을 결국 자신들이 파괴하게 될 거란 것도."


"정령들은 이미 안다. 넌 그들을 없애고 싶어하지. 우린 너에게 맞섰다." 드레나이가 말했다. 고통에 겨워 불분명한 소리였다. "그들은 알아."


마쇼크는 그를 무시했다.


대지는 잠잠했다. 정령들은 조용해졌다. 더는 자비를 구하고 있지 않았다. 도망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흐느끼지도 않았다. '드디어 굴복하는군.' 마쇼크의 등 뒤 들판에서 작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호젠은 아직도 멀리서 목청껏 고함치고 있었다. 위협이 되지 않았다.


"너희 땅을 재로 뒤덮어 버리겠다. 불길이 흙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와 진드기까지 찾아낼 것이야. 이 땅에서는 다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제서야..."


"당근도 안 자라나?" 농부 펑이 물었다. 목을 휘감은 뿌리 때문에 힘겹게 말이 나왔다. 마쇼크는 움직이지 못하는 판다렌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 땅에 당근도 자라지 않을 거라고?"


긴 침묵이 흘렀다. "지금까지도 날 조롱하는 건가?" 오크는 부드럽게 물었다. " 지금까지도..."


"간단한 질문이잖아." 펑이 물었다. "이곳에서 당근이 다시 자랄까?"


"아니!" 침이 튀었다. 마쇼크의 말이 들판에 메아리쳤다. "그 누구도 여기서 다시는 당근을 키우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농부 펑이 웃고 있는 것일까? 마쇼크는 가시가 펑의 살을 뚫어 버리도록, 농부의 목을 감은 뿌리를 더 꽉 죄었다. "네놈을 먼저 죽여야겠어." 오크가 말했다.


갑자기 마쇼크는 멈췄다. 정령들이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너무 순종적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그는 뒤돌았다.


번들거리는 붉은 눈의 바다가 그를 맞이했다. 토깽이었다. 수백 마리, 수천 마리였다. 그저 가만히 서서 보고 있었다.


'아까 그 바스락거림...' 정령들은 마쇼크에게 경고하지 않았다. 한 마리가 무리에서 앞으로 나왔다. 흰 줄무늬가 난 털가죽에 요상하게 구부러진 앞니를 지닌 그놈이었다. 토깽이 킁킁거리며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쇼크는 경멸하듯 손짓했다. "꺼져라. 당장." 오크가 말했다.


앞니가 구부러진 토깽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너... 당근 죽이나?"


마쇼크는 이를 드러냈다. "꺼져." 대지가 그 말에 흔들렸다. 적어도 대지의 정령들은 질문 없이 그에게 복종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토깽들의 몸은 대지의 진동과 함께 흔들렸지만, 불안한 기색을 띤 붉은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너 당근 죽인다 그랬다." 앞니가 구부러진 토깽이 말했다. "당근 왜 죽여?"


정말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었다. '본보기가 필요하겠군.' 마쇼크는 대지에게 차갑게 명령했다. 대장 토끼의 발밑에 틈을 열어 놈을 삼켜 버리라고.


'싫어.' 대지가 말했다.


마쇼크는 정령 하나를 쥐어짰다. 정령은 고통에 차 비명을 질렀지만, 여전히 거부했다. '내게 복종하지 않으면 존재하는 모든 순간이 순수한 고통으로 점철될 것이다.' 마쇼크는 정령에게 말했다. 다른 정령들에게도 같은 뜻을 전했다. '다시는 감히 내게 반항하지 마라. 굴복해라.'


"다른 큰 놈들은 당근 키운다." 앞니가 구부러진 토깽이 말했다. "커다란 당근 키운다. 너 당근 못 죽인다. 너 큰 놈들 못 죽인다."


'놈들을 재로 만들어 버려라.' 마쇼크는 불의 정령에게 명령했다.


'싫어.' 정령이 말하고, 울부짖었다.


바람의 정령은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복종하지 않을 거야.' 정령이 말했다.


'나도.' 물의 정령이 말했다.


마쇼크는 의지를 집중해 정령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 그래도 그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쟤네는 우리랑 안 싸웠어.' 불의 정령이 말했다. '너 안 도와줄 거야.'


판다렌과 얼라이언스를 휘감은 뿌리가 느슨해졌다. 뾰족한 뿌리가 드디어 몸에서 뽑히자 드레나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안 돼." 마쇼크는 속삭였다.


"너 당근 못 죽인다." 앞니가 구부러진 토깽이 다시 말했다. 토깽 무리가 그 말을 반복했다.


"당근 못 죽인다... 당근 못 죽인다..."


"복종해라!" 마쇼크는 목청껏 외쳤다. 정령들이 들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니면 죽거나! 영원히 저항할 수는 없다!"


'우린 그럴 필요 없어.' 정령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몇 초만 저항하면 돼.'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마쇼크는 머리 옆을 얻어맞았다. 뺨을 땅에 묻은 마쇼크의 눈에, 구원자 마라아드의 빛나는 망치가 땅에 떨어지는 게 보였다.


토깽들이 우르르 밀려들었다. "당근 못 죽인다!"


마쇼크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번들거리는 눈과 이빨의 홍수를 피하려 몸부림쳤다.


***


꿈틀거리는 끔찍한 토깽 무리 한가운데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오크는 싸웠지만, 그가 던져버린 토깽은 곧바로 다시 깡총깡총 뛰어와 사냥감에 달려들었다. 하오한은 무릎을 꿇고 힘겹게 숨을 쉬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토깽이란 놈들도 어딘가 쓸 데가 있을 줄 알았지. 지나, 괜찮으냐?"


그의 딸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지만, 하오한은 딸의 털가죽이 피에 물드는 걸 볼 수 있었다.


드레나이가 하오한의 주의를 끌었다. "녀석들을 멈출 수 있으십니까?" 마라아드가 물었다. 그는 딱 봐도 고통스러운 듯, 배에 난 상처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서 있었다. 마라아드는 절뚝거리며 늙은 힐포우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주변이 은은히 빛나고, 판다렌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어깨의 상처가 사라졌다.


"토깽들을 멈추라고요?" 하오한은 자기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투극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암흑주술사는 아직 살아서 발버둥치고 있는 듯했지만, 가까운 토깽 굴로 끌려가고 있었다. "제가 왜 그러고 싶겠습니까? 저놈이 제 집을 무너뜨렸는데요."


리알리아는 천천히 하오한에게 걸어갔다. "저도 그 기분 압니다. 정말로요." 나이트 엘프가 말했다. "저놈은 무슨 일을 당해도 싸지만, 그래도 산 채로 데려가는 편이 더 나아요."


"정의를 위해?"


"저자는 암흑주술사입니다." 리알리아가 말했다. "생포된 암흑주술사는 거의 없을뿐더러, 저놈만큼 강한 포로도 거의 없죠. 뭐든 알아내면 도움이 될 겁니다." 잠시 후, 그녀는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정의를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하오한은 욱신거리는 어깨를 문지르고 씁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이건 오히려 너무 쉬운 최후지요." 그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 한때는 그의 집이었던 폐허로 걸어갔다. "자, 어디 있지...? 아." 그는 지붕 잔해를 좀 치우고는, 저장고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아냈다. 동 트기 전의 어둠 속에서도 커다란 당근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지나, 네가 초대할래?"


지나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목을 골랐다. "당근이다!" 그녀는 외쳤다.


토깽들은 즉시 조용해졌다. 번들거리는 붉은 눈들이 그녀를 향했다.


"여기 당근 있다! 고맙다는 표시야! 수확한 당근은 이렇게 끝이군." 마지막 말은 중얼거림이었다.


하오한은 저장고를 가리키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수확한 당근 전부! 자, 가져가!"


토깽들은 서로를 보고, 오크를 보고, 다시 판다렌을 보며 망설였다. 앞니가 구부러진 토깽이 가장 먼저 암흑주술사를 버렸다. 수백 마리가 그를 따랐다.


구원자 마라아드는 밀려드는 토깽을 힘겹게 밀쳐냈다. 모든 토깽이 오크를 물고 패는 걸 그만둔 건 아니었다. 드레나이는 남은 토깽을 부드럽게 옆으로 밀쳐냈다. 그들은 툴툴댔지만, 금세 당근의 유혹에 굴복해 저장고로 향했다.


마쇼크의 눈이 크게 뜨여 있었다. 몸은 다진 고기 같았다. 마라아드는 마쇼크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를 치료할 준비를 했다. "아마도," 마라아드가 말했다. "네가 상상한 결말은 이런 건 아니겠지."


동이 텄다.


VII





수레가 요란하게 삐걱거렸다. 머드클로의 집은 곧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구원자 마라아드는 계속해서 오크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갑옷은 벗어서 옆에 둔 채였다. 지난 전투에 부서지고 망가져서, 수리를 하거나 바꿔야 할 터였다.


리알리아는 평원을 살폈지만, 시선이 자꾸 그들 뒤의 길을 향했다. 서른 마리는 넘어 보이는 토깽이 마쇼크를 노려보며, 하오한의 수레에 바싹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밝은 대낮에 보니 번들거리는 그 붉은 눈이 그렇게까지 흉악해 보이지 않았지만, 녀석들 중 하나가 깩깩거릴 때마다 마쇼크는 몸을 움찔했다. 오크는 다시 족쇄를 차고, 동이 튼 이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라아드는 오전 내내 다른 이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치료했다. 리알리아는 오크에게 꼭 붙어 있었다. 하오한은 집을 다시 짓기 위해 인부들이 필요하다는 전갈을 언덕골로 보냈다. 이방인도 얼마든지 지원해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펑은 마지막 말에 강하게 반대했다.


"생각해 봤는데," 하오한이 말했다. 그의 앞발은 고삐를 느슨하게 쥐고 있었다. "저희가 항복하고 싶어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항복하지 않으셨잖아요." 리알리아가 말했다.


"그래도요. 우리 친구가 제안했었죠. 당신네들 목숨이랑 우리 목숨을 바꿔 주겠다고. 우리가 저놈을 믿고 그 말을 받아들였다면, 당신네들은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침묵 속에서 수레가 삐걱거렸다. "두 분께 아주 곤란한 상황이었을 텐데요.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우리랑 싸웠을까요? 아니면 놈의 제안이 무샨 똥처럼 구린내 나는 거짓말인 걸 알고 있는데도, 그냥 포기하고 목숨을 버렸을까요?" 하오한이 껄껄 웃었다. "만약 두 번째를 선택했다면, 누군가는 당신 둘을 머저리라고 할 겁니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지요."


"또 누군가는 얼라이언스 전체가 머저리 무리라고 할 겁니다. 패배한 적을 처치하는 대신 포로로 삼다니요. 그것도 그 적이 위험한 놈일 수도 있단 이유로 말입니다." 하오한이 말했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지요." 마라아드가 말했다.


"흠." 하오한이 고삐를 잡아당기자 수레가 갈림길에서 남쪽으로 향했다. 크라사랑 쪽으로, 사자의 상륙지 쪽으로. "제가 이렇다니까요. 주책맞게 여행길 내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그렇게 긴 밤을 보낸 두 분을 괴롭히고 있군요."


리알리아와 마라아드는 짧게 눈빛을 교환했다. 드레나이는 즐거운 듯 머리를 흔들고 다시 오크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토깽 한 마리가 수레 뒤쪽에 뛰어올라서 깩깩거리고는 다시 길로 돌아갔다. 마쇼크는 또 한 번 몸을 움찔했다.


"어쨌든, 제가 생각해 봤는데," 하오한이 말을 이었다. "농부의 개똥철학을 조금 더 들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전 당신들을 머저리라고 할 사람들이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규범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걸 지키며 사는 게 맞죠. 그러지 않으면 그 규범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닌 게 되잖습니까. 당신네 얼라이언스 친구들은 갖가지 규범을 따르죠. 누군가는 상황이 안 좋아질 때 바로 그런 태도가 당신네들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지요." 리알리아가 말했다.


"흠. 어쨌든 제가,"


"생각해 보셨다고요?" 마라아드가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생각하던 건 이겁니다. 그렇게 규범을 따르는 게 실제로 당신네들 발목을 잡는다고요. 만약 사람들이 당신은 절대로 자기 뒤통수를 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면, 자기들은 쉽게 당신 뒤통수를 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하오한이 고삐를 잡아챘다. "하지만 그건 실수입니다. 그렇죠? 교양 있는 사람이 욱하면 엄청나게 무서운 법입니다. 누군가는 착한 사람이 자기한테 덤빌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고, 이거 장난이 아니라고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마라아드가 동의했다.


"저 토깽들이 우리가 바닷가에 도착할 때까지 따라올까요?" 리알리아가 물었다.


"아마도요." 하오한이 말했다. 오크가 몸을 떨었다.


수레가 계속 굴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