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렌 부족에서는 그동안 많은 영웅들이 있었지만, 케른 블러드후프만큼 종족의 부흥에 힘쓴 영웅은 없을 겁니다. 오랜 세월 동안 유목 생활을 하던 타우렌을 하나로 모으고, 동맹을 결성해 켄타우로스로부터 부족이 멸망하는 것을 막았을 뿐 아니라, 타우렌 역사상 최초의 수도를 건설하였습니다. 케른 블러드후프의 업적은 이 밖에도 셀 수 없이 많지요.



새로운 대부족장으로서 바인 블러드후프는 아버지가 일구어낸 유산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가로쉬 헬스크림은 타우렌 부족에게 점점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불모의 땅에서는 얼라이언스가 출몰하고, 가시멧돼지가 주민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젊은 부족장의 지도력을 시험할 유례없는 시련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뮬은 머리를 비우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우린 오크가 이 세계에 도착하기 전부터 살아왔다. 너도 기억하겠지. 우리 종족을 도와준 스랄에게 네 아버지는 빚을 졌다고 했었지만, 이제는 호드도 달라졌다. 다른 타우렌들이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더구나. 어떤 이들은 지금의 호드에 우리가 계속 참여하고 있어야만 하는 건지 의아해하고 있다.” 하뮬은 코웃음을 쳤다. “호드는 정말 많은 일을 했고, 우리도 많은 빚을 지고 있어. 하지만 우리 내부의 그런 의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너도 인정하겠지.”



바인은 책장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서 멀고어에 있는 모든 우물의 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말씀하신 대로 저희 아버님께서는 스랄에게 빚을 지고 계셨죠. 하지만 그분은 자신이 직접 일으켜 세운 호드를 믿고 계시기도 했습니다. 이제 아버님께서는 떠나셨고, 우리도 이렇게 변화를 맞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호드를 믿습니다.”



☞ 공식 홈페이지 아제로스의 지도자들 : 아버지의 약속 바로가기




당장에라도 부서져 내릴 듯 낡은 짐마차가 덜컹거리며 대 관문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관문에는 멀리 떨어진 비행선 탑승장까지 짐마차를 호위할 소규모 경비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탑승장에
도착하면 짐마차에 실린 물은 비행선에 실려 최근의 가뭄으로 큰 피해를 본 듀로타 지역의 여러 오크
거주지에 배분될 예정이었다. 수레를 끄는 어린 코도는 이미 여러 번 지나다녀 익숙해진 길을 따라 느긋한 속도로 걸었고, 언덕 꼭대기를 지나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고블린이 사라지는 짐마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짐마차가 바로 그 뒤를
따르고 있어야 했지만, 바람이 멈춘 탓에 풍력 양수기가 작동을 멈췄고, 그래서 그는 아직도 우물 곁을
떠나지 못했다. “서둘러! 이번 여행길에 경비대와 동행하려면 저 수레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고블린은
짜증을 내며 발을 굴렀고, 분노의 화살을 온통 양수기 손잡이를 붙들고 씨름 중인 젊은 오크에게 돌렸다.



“진정해, 이즈윅스.” 옆 풀밭에 누워 있던 오크 전사가 말했다. “얼라이언스 피라미 몇 놈이 쫓아온다고
해서 뭐 달라지겠어? 놈들이 움찔하기만 해도 머리에 도끼 세례를 받을 거야.” 그는 수풀에서 잔가지
하나를 꺾어 이를 쑤셨다.



“얼라이언스도 꽤 골치 아픈 놈들이라고, 그로츠!” 고블린은 딱 잘라 말했다. “네 엉성한 솜씨에
의존하느니, 차라리 제대로 된 경비병들을 고용하겠어. 저 녀석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말하며 그는
수풀 아래 웅크리고 앉은 암살자를 가리켰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이즈윅스.” 은신처에서 갑자기 몸을 드러내며 드라스가 말했다. “누구든 내게
다가오는 자는 등에 칼침을 맞게 될 거야. 얼라이언스 똥개들도 어디 한 번 덤벼 보라지.”



이즈윅스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놈들하고... 응?” 갑자기 우물 주변의
수풀이 흔들렸고, 고블린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모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로츠는 도끼를 들고 일어섰다. 소리는 갑자기 그쳤다.
그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 내딛자, 수풀 한쪽 지점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점차 반대쪽 끝까지 이어졌다.
가지들이 모두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즈윅스는 조심스럽게 물러나며 물이 실린 짐마차에 매어놓은 코도를
향해 서서히 움직였다. 드라스는 잎사귀가 격렬하게 부스럭거리는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며, 손에 쥔
칼을 천천히 흔들었다.



멧돼지를 닮은 야수 수십 마리가 기워 붙인 방어구를 입고 창을 비롯한 각종 무기로 무장한 채 폭발하듯
달려나와 이들을 덮쳤다. 그로츠가 도끼로 한두 마리를 쓰러뜨렸지만 결국 힘에 부쳐 제압당했고,
이즈윅스는 뒤로 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드라스는 엄폐물을 지나 적의 우두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시멧돼지는 다가오는 오크를 향해 몽둥이를 거칠게 휘둘렀고, 드라스의 옆머리에 공격이 적중했다.



상단의 다른 구성원들도 하나둘 쓰러졌고, 우물 주변의 숲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즈윅스는
가까스로 코도의 고삐를 풀고 올라타 달렸지만, 어느새 날아온 창이 그를 안장에서 떨어뜨렸다. 코도는
주인 없이 계속해서 달렸고, 가시멧돼지들은 수레를 뒤져 물품을 챙겼다. 그리고 다시 수풀 속으로
사라진 야수들은 칼날가시 협곡으로 향했다.



* * * * *




이 공격이 있기 얼마 전, 타우렌의 대부족장 바인 블러드후프는 썬더 블러프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서
가로쉬 헬스크림, 대드루이드 하뮬 룬토템과 함께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단순한 만남의 자리는
아니었다. 호드 지도부의 단합을 위해, 바인은 가로쉬에게 아버지 케른 블러드후프의 죽음을 복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호드가 살아 남으려면 강인한 지도자가 필요했고, 가로쉬는 모두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삐걱거리고 있었다. 바인의 아버지가 살해되는 사건에
일조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간 행동거지를 조심하던 가로쉬는 이제 예의 허세와 거만을 되찾은 태도로
멀고어를 찾아와 지나치게 많은 요구를 퍼붓고 있었다.



좁은 거처 안에 격앙된 목소리가 오르내렸다. 보통은 차분하고 조용한 태도를 유지하던 하뮬 역시,
고집 세고 경솔한 젊은 오크를 보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뮬이 보기에 가로쉬가 호드를 지배하는
방식에는 부족한 점이 무척 많았고, 타우렌의 지도자 중 가장 위대했던 케른 블러드후프가 이런 강아지
같은 애송이에게 쓰러졌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바인의 조언자로서, 하뮬은
오그리마에 공급하는 방안에 대해 협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대화에 진전이 별로 없었다.



바인은 묵묵하게 이 모습을 지켜봤다. 한 손에 철퇴를 굳게 잡고 있던 그는 다른 손을 정중하게
들어 올렸다. 잠시 후, 나머지 둘은 말을 멈추고 바인을 바라봤다.



“가로쉬, 물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성난남녘 강이나 다른 강줄기는 어떻게 됐소? 거기서 필요한 물을
모두 구할 수 있지 않겠소?”



가로쉬는 비웃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평상시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 강도 모두 오염됐다. 작물에
물을 대는 데는 쓸 수 있지만 마실 수는 없어. 그래서 우리 도시와 듀로타에 자리 잡은 오크 거주지가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지.”



가로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하뮬은 짧게 말했다. “강을 오염시키는 건 누구지?”



가로쉬는 이를 악물었다. “아즈샤라에서 고블린들이 공사를 벌였는데 다소... 부작용이 따르더군. 녀석들
이 땅을 파내느라 누출된 오염원이 강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고, 그래서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다.”



바인은 하뮬과 잠시 눈을 맞췄다. “왜 그냥 고블린에게 작업을 중지하라고 지시하지 않소? 땅이 치유될
시간을 주고 나중에 계속하면 될 텐데?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앞일을 내다볼 수만 있다면, 고블린도
대지를 과도하게 훼손하지 않고 제한적으로 공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오.”



가로쉬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공사는 이번 전쟁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호드 세력을 약화시킬 수는 없어. 멀고어에는 아직 수원이 풍부하니, 그 물을 오그리마와 그 밖의 거주지에 공급해.”



하뮬이 조용히 말했다. “난 바인의 의견에 동의하네. 자네도 바인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고블린이 잠시 물러나거나, 아니면 건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네. 그래야 대지와 강이 회복될 수 있어.”



“안 그래도 내게 매일 수천 가지 조언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내가 너희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
가로쉬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이건 부탁이 아니야. 명령이다.”



목소리는 다시 한 번 높아졌다. 하뮬과 가로쉬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고, 격분한 바인도 결국 고함을
쳤다. “그만! 이렇게 싸워봐야 되는 일이 없소!”



바인의 폭발적인 기세에 나머지 둘은 말을 뚝 그치고 그를 바라봤다. 바인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가로쉬, 당신이 원한 물을 보내 주겠소. 하지만 향후에는 고블린의 공사 현장에 반드시 타우렌
공식 대변인을 고문 자격으로 참가시키시오.”



가로쉬는 바인에게 차가운 시선을 고정시켰다. “내가 원한다면 물이든 뭐든 당연히 보내야지. 난 호드
전체를 안전하고 굳건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내 지도력과 마음가짐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나도 참고
있지만은 않겠다.” 이 말만 남기고 가로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천막을 떠나며 어깨너머로 소리쳤다.
“우리 사절이 곧 운반 일정을 통보할 것이다!”



하뮬은 떠나는 가로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녀석이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만 알았다면...”



바인은 슬프게 미소 지으며 거대한 손을 하뮬의 어깨에 얹었다. “시간을 주시지요, 하뮬. 가로쉬와 같은
이들의 시간은 덧없을 만큼 빠르게 흘러갑니다. 언젠가 정신을 차리거나, 아니면 저대로 목을 매달 겁니다. 그의 미래에는 그 두 가지 선택밖에 없습니다. 어느 쪽이건, 인내심이 우릴 이롭게 할 겁니다.”



하뮬은 머리를 비우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우린 오크가 이 세계에 도착하기 전부터 살아왔다. 너도
기억하겠지. 우리 종족을 도와준 스랄에게 네 아버지는 빚을 졌다고 했었지만, 이제는 호드도 달라졌다.
다른 타우렌들이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더구나. 어떤 이들은 지금의 호드에 우리가 계속 참여하고
있어야만 하는 건지 의아해하고 있다.” 하뮬은 코웃음을 쳤다. “호드는 정말 많은 일을 했고, 우리도 많은
빚을 지고 있어. 하지만 우리 내부의 그런 의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너도 인정하겠지.”



바인은 책장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서 멀고어에 있는 모든 우물의 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말씀하신
대로 저희 아버님께서는 스랄에게 빚을 지고 계셨죠. 하지만 그분은 자신이 직접 일으켜 세운 호드를
믿고 계시기도 했습니다. 이제 아버님께서는 떠나셨고, 우리도 이렇게 변화를 맞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호드를 믿습니다.”



* * * * *




곧 멀고어 전역의 여러 수원에서 물을 실은 짐마차들이 오그리마를 향해 이동하는 모습이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오그리마에서 물은 여러 거주지로 배분되었고, 듀로타 거주민들의 가정에는 다시 한 번 신선한
물이 공급되었다. 도적떼에 의한 공습이 있었다는 소식이 이따금 들려왔지만, 전반적으로 물 공급에는
크게 우려할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멀고어에서 발생한 첫 번째 습격 사건에 바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영토 한가운데서 자행된
만행이었을 뿐 아니라, 잔혹한 학살이기도 했다. 사건을 조사해 봐도 공격자에 대한 단서나 그들의 동기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시체에서 없어진 물품도 없었고, 짐마차는 파괴되었지만 그 안에는 주의를 끌 만한
물품도 전혀 없었다. 사실 수레는 물주머니를 운반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풀밭에 난 혈흔을 보면
공격자들이 일부 시체를 끌고 간 흔적도 있었지만, 나머지 모두의 시체는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바인은 당혹스러웠다. 처음에는 추방당한 그림토템 부족의 복수가 아닐까 우려했지만, 먼길잡이
정찰병들은 그림토템이 관련된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바인이 사건과 관련된 보고서를 살펴보고
있던 어느 날, 오크 전령 하나가 다가와 헛기침을 했다. 바인은 고개를 들고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래, 이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신가?”



“대족장님의 전갈입니다.” 전령은 말려 있던 편지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타우렌의 대부족장
바인 블러드후프에게, 호드의 대족장 가로쉬 헬스크림이 전한다. 물 공급이 차질 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전달받은 물이 알 수 없는 성분에 오염되어 있다. 이 문제를 바로잡길
기대하겠다. 지금 즉시.”



바인은 근심스럽게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이라면 윈터후프 우물에서 채취한
물인데... 가로쉬에게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고 전하라.” 이 말을 들은 전령은 돌아갔고, 바인은 썬더 블러프 관리를 타우렌 용사 중 하나에게 맡긴 후, 멀고어 남부로의 여행을 준비했다.



* * * * *




바인은 엄숙하게 우물 주변의 시체들을 관찰했다. 완연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세 대의 짐마차가
손쓸 수 없을 만큼 부서졌고, 못 박혀 있지 않은 모든 것은 도둑맞은 채였다. 짐마차가 운반하던 세 개의
물 주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마차를 끌던 코도 역시 사라졌고, 마차 경비병 여덟 명은 보호하던 작업자
여섯 명을 둥글게 둘러싼 채 숨져 있었다. 이번에는 경비병들도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던 덕분에 최소 십여
마리의 가시멧돼지 시체도 주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 가시멧돼지들이 더 강하게 무장했군. 저 방어구 보이나? 호드 여러 종족의 방어구를 짜집기해서
만든 거야. 이렇게 조직화된 가시멧돼지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네.” 바인은 생각에 잠겼다. “멀고어의
평화를 위협하는 장애물은 언제나 고집스러운 가시멧돼지였지. 아버님께서도 그들과는 대화하지
못하셨어. 하지만 그들의 지도자가 바뀌었다면, 이번에는 협상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바인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먼길잡이를 향해 돌아섰다. “나라체 야영지에 전갈을 보내서 칼날가시 협곡에
있는 가시멧돼지와 접촉을 시도하도록 하라. 살육을 살육으로 갚아서는 안 돼. 내 땅에서 전쟁을
확대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블러드후프 마을의 옛 거처에서 며칠간 머물겠다. 상황 변화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 보고하도록.”
이 말과 함께 바인은 전령을 향해 돌아섰다. “이번 사건의 범인을 찾았고, 상황을 처리하고 있다고
가로쉬에게 전하라.”



가로쉬는 몇 시간 후 답을 보내왔다. 바인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대족장은 병력을 쏟아 부어 영토를
되찾고 적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전갈은 이렇게 끝났다. ‘직접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할 테니.’



바인은 코웃음을 쳤다. “이래서는 안 돼. 또 한 번의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로쉬가 알아주길 바랐는데... 알겠다. 가로쉬에게 제안은 고맙지만, 아직은 군사 작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우선은 협상이 어떻게 풀려갈지 확인해야 한다고 전하라. 협상에 결실이 있길 대지모신께 기도할 수밖에...”



* * * * *




다음 날, 그 먼길잡이 정찰병이 바인의 옛 거처에 찾아왔다. “가시멧돼지 상황에 대해 추가로 알려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대부족장님.”



바인은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혹시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가시멧돼지들과 대화하려 시도했지만, 저희 사절은 눈에 띄는 즉시 공격을
받았습니다.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가시멧돼지의 피로 뒤덮인 채 돌아오곤 합니다.” 정찰병은 바인의 눈에 어린 실망한 기색을 보고 재빨리 덧붙였다. “하지만 피해자 수는 최소한으로 유지했습니다. 사절단은
퇴각하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전투를 벌였습니다.”



바인은 한숨을 쉬었다. “좋아. 우선 협상 시도를 중단하라. 불필요하게 피를 흘리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그들이 이렇게 공격적으로 변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바인의 조언자 한 명이 말을 꺼냈다. “대부족장님, 주제넘은 말씀입니다만, 소규모 병력으로 놈들의
거주지에 몰래 침입해 들어가서 지도자를 암살할 수도 있습니다. 놈들이 혼란에 빠지면 손쉽게
전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절대 안 될 말이오. 평화로운 방법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오. 군국주의적 행동의 유혹에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건 가로쉬의 방식이지, 내 방식은 아니오.”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먼길잡이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가서 내 말을 전하라. 내가 직접
허가하지 않는 한 누구도 가시멧돼지의 영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번의 새로운 위협에 대한 해결책을
내가 직접 찾아내겠다.” 정찰병은 달려갔고, 바인은 아버지의 집으로 왕복 여행을 준비했다.



바인은 천막을 나서기 전, 다시 한번 조언자들을 바라봤다. “세상이 갈라졌소. 얼라이언스가 우리 국경을
침입하고, 호드는 내부에서부터 곪아 무너져가고 있소. 난 유혈 사태가 아닌 다른 해결책을 시도하고
싶소.”



앞서 말했던 조언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동의하고 싶습니다만, 가시멧돼지들은 벌써 몇 년째
우리를 괴롭혀 온 적대적인 짐승입니다. 그런 평화도 그리 오래 계속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바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잠깐뿐인 평화일지도 모르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우리 고향에서, 정말 또 하나의 갈등이 필요하겠소?” 이 말만 남기고 바인은 썬더 블러프를
향해 떠났다.


* * * * *




어느 늦은 밤, 마지막 공격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체 야영지의 몇몇 타우렌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다. 가시멧돼지의 공격 빈도는 증가했고, 다른 종족에게 물을 대느라 타우렌의 땅에서는 물이
점점 말라가는 것만 같았다.



가장 나이가 많은 타우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땅은 이렇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바인은 지금까지
그 허풍선이 가로쉬의 말이라면 아무리 사소해도 모두 들어주고 있지 않더냐.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바인이 우리 모두를 오크에게 넘겨주는 꼴을 멍하니 보고만 있어야 하겠느냐?”



다른 젊은 타우렌이 덧붙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우리뿐일 리는 없습니다. 누구 다른 부족 타우렌과
이야기해 보신 분 안 계십니까?”



처음 말을 시작했던 나이 많은 타우렌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했었다. 하지만 스틸레이지와 스톤후프
부족이 얼마나 고집 센지는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그들은 바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그의 행동이
멀고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더구나.”



바인은 그의 아버지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그가 하는 행동도 모두 타우렌을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타우렌 전체의 번성만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사는 것이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다. 우리 파원더러
부족은 한 곳에 머무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계속 움직이면 어떨까? 몇 년 전, 모두가 함께 이동하던 때를
기억하나? 이제 우리 집이라고 부를 땅이 생겼지만, 이건 모두 우리의 자유를 희생해서 얻은 것이지.”
그 타우렌은 한숨을 쉬고는 다른 이들을 향해 손짓했다.”기억나겠지, 매달 다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일이?
지금까지 언제나 자유로웠는데, 왜 지금 이렇게 하나의 땅에 묶여야 하는가?”



“그러면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나이 든 타우렌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모닥불을 뒤적였다. “완벽한 계획이라고는 하지 않았었네...”



* * * * *




바인은 먼길잡이 정찰병들에게 가시멧돼지의 움직임과 최근의 지나치리만큼 폭력적인 공격을 주시하라고 명했다. 가시멧돼지는 언제나 공격적인 생물이었지만, 놈들의 적개심은 커져만 가고 있었다. 정찰병
다수로 물샐 틈 없는 감시망을 구축해도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거기에서는 어떤 답도 얻을 수 없었다.
하뮬과 이야기를 나눈 지 시간이 꽤 흘렀음을 깨닫고, 그는 대두르이드라면 뭔가 단서를 찾아냈기를
바랐다.



바인은 썬더 블러프의 밑자락에서 야생 동물들을 관찰하는 하뮬을 찾아냈다. 소중한 조언자인 하뮬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바인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조언을 구합니다, 하뮬 님.”



하뮬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그래, 젊은 바인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다.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아시다시피, 최근에 더욱 공격적으로 변한 가시멧돼지들에 대해 정찰병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 부하들은 모두 당황하고만 있어서 어떤 답도 찾아내지 못하더군요. 최근 들어 대지모신과 더 자주
교감하고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알 수 없는 문제에 광명을 비춰줄 답을 얻으셨습니까?”



하뮬은 풀을 한 줌 뜯어내어 냄새를 맡은 후, 바람에 실려 보냈다. 풀이 땅에 내려앉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아직 얻지 못했네. 대지와 교감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야, 바인. 요즘처럼 혼란을 겪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고. 명상을 계속하도록 하겠다. 주술사 한두 명과 대화해 보는
것도 좋겠어...”



* * * * *




하뮬이 중얼거리면서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바인은 마치 먹구름이라도 낀 듯 먹먹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갈등이 너무 많았고, 이번 문제를 해결할
평화적인 방안을 찾아내면, 마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이 개운한 기분이 될 것만 같았다.



승강기로 돌아가며, 바인은 짐꾸러미와 보급품을 든 타우렌 무리를 만났다. “파원더러 여러분!
여행을 준비하십니까?”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고, 무리의 지도자가 말했다. “심히 죄송합니다, 대부족장님. 하지만 저희는
멀고어에 더는 머물 수가 없습니다.”



바인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좋은 기분은 사라진 후였다.
“머물러 줄 것을 부탁하고 싶소, 그레이후프. 지금이 어려운 시기가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때요.”



나이 든 타우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예전의 방식을 기억하십니까? 아직 전쟁의 기운이 서리지 않은 땅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길을
떠난다면, 우리 삶은 평화롭고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옛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소. 유목민은 훨씬 더 넓은 세상에 속한 이들이지만, 이제
전쟁과 여러 세력의 확장 때문에, 그 넓던 세상도 이렇게 작아졌소. 한 곳에 머물면 우리는 고향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지만, 하나로 뭉쳐야만 우리의 고향을 온전히 보호할 수 있소.”



그레이후프는 불편한 듯 몸을 움직였다. “아쉽지만 멀고어는 다른 많은 대지와 마찬가지로 이제 가로쉬의
명령을 따르는 그의 영토에 불과합니다. 우린 단지 그 오크의 오만함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을
뿐입니다. 아버님께서 승하하신 후, 지도자의 책무를 맡아주신 점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만, 우리는 이런
변화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입을 굳게 다물며, 바인은 냉랭하게 말했다. “가로쉬는 호드의 지도자요. 오만하건 그렇지 않건, 우리는
바로 그 호드에 충성을 맹세했소. 호드는 그 지도자만이 전부가 아니오. 스랄과 내 아버지께서 만들어 낸
영구적인 통합의 개념 자체가 바로 호드요. 조금만 기다리면 이런 문제도 자연히 사라지고, 호드는 외부의
적과 내부의 갈등을 모두 극복해낼 것이오. 이 점, 내가 약속하겠소.”



“옳은 말씀입니다, 대부족장님.” 바인은 냉랭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승강기에 올라 썬더 블러프로
돌아갔다. 그레이후프 파원더러는 나머지 타우렌에게 말했다. “나라체 야영지로 돌아가 여행 준비를 하자.
준비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 * * * *




며칠 뒤 하뮬은 덩치가 크고 위압적인 오크를 끌고 바인을 찾아왔다. 오크는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 말했다. “저는 칼바위 언덕의 스와트입니다, 대부족장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바인은 마주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뮬 님께 당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뮬 님의 친구시라면 썬더 블러프에서는 언제든 환영이지요. 어떻게 이렇게 먼 길을
오셨습니까?”



하뮬이 말했다. “좋은 소식이다. 가시멧돼지와의 갈등을 평화롭게 마무리 짓고 싶다고 했었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해결책을 찾아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바인은 미소 지었다. “아,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제 아버지께서는 항상 다른 일에 시달려 가시멧돼지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셨지만, 분명히 이성적인 교류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어서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하뮬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명상에 잠겨 있었는데, 이제야 이번 갈등의 원인을
찾아낸 것 같다. 스워트?”



스워트는 헛기침을 했다. “가시멧돼지 중에는 물 추적자라는 특별한 녀석들이 있습니다만, 최근 대지가
혼란을 겪으면서, 이들이 물을 찾아내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신선한 물을 애타게 찾느라고
더 공격적인 행동을 하더군요. 하지만, 밤에는 녀석들이 가시덩굴의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지역에서 수원을 찾아내 주면 됩니다.
어떻게든요.” 이 말과 함께 그는 하뮬을 바라봤다.



하뮬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등장하는데 말이야...”



* * * * *




바인과 하뮬은 언짢은 듯 꼬리를 홱홱 움직이며 접견실에서 가로쉬를 기다렸다. 가로쉬는 다른 지도자건
아니건 간에 누구를 위해서도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마침내 가로쉬가 도착했을 때, 바인은 그답지 않게
용건을 바로 말했다. “대족장, 우리 물 운송 계획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보를 확보했소. 이 문제를
당신과 함께 논의하고 싶소만.”



바인은 말을 이었다. “가시멧돼지들이 점점 더 뻔뻔하게 공격해 오고 있소. 하지만 우린 문제의 근원뿐
아니라 운송된 물의 오염원까지 찾아냈다고 생각하오. 가시멧돼지는 우리 타우렌들을 벌써 수년째
괴롭혀 온 성가신 존재였지만, 영토 확장 외에 다른 것을 원했던 적은 없소. 그것도 지하에서의 확장만으로 충분했지. 최근 대지의 요동 때문에 녀석들도 물이 필요한 모양이오.”



젊은 타우렌 전령이 접견실 안으로 뛰어들어오며 바인의 말을 가로막았다. “대부족장님! 죄송합니다만
공격이 또 한 번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운송단원들은 모두 사망했고, 물과 장비 역시
도난당했습니다!”



바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줘서 고맙다. 썬더 블러프로 돌아가서 루크 워스톰퍼에게 내가 곧 가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전해라.”



전령이 떠나자, 가로쉬는 접견실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주에만 벌써 세 번째 공격이로군.
누구의 짓인지 알고 있는데, 어떤 처벌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게다가 이제 가시멧돼지들은
국경 지역에서까지 공격을 하면서 당신을 놀리고 있군. 당신에 대한 내 믿음도 흔들리고 있어.”



바인은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가로쉬,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 문제가 바로 타우렌의 대지와
관련된 문제이고, 따라서 우리 타우렌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오. 내가 처리하겠소. 지금 이 순간에도 대지모신의 지혜를 구하고 있소.”



가로쉬는 두 팔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대지모신! 대지모신! 매번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있군. 대체
이 대지모신이라는 양반이 누군데?”



“그분은 우리 타우렌의 창조자이자 대지의 지혜를 목소리에 담아 전해 주시는 안내자이시오...”



“당신네는 대지모신이 무슨 지팡이라도 되는 듯 너무 의존하고 있어.” 가로쉬가 말을 잘랐다. “질질 시간만 끌고 입만 놀리면서 아무런 행동도 직접 하지 못해! 이 가시멧돼지들이 힘을 자랑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호드의 힘도 보여줘야지...”



바인은 심호흡을 하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가로쉬, 부디 우리 전통과 방식을 존중해 주길 바라겠소.
이 문제는 불필요한 유혈 사태 없이 곧 해결될 것이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는
문제요. 가시멧돼지의 공격을 보면 놈들이 자포자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
우리 문제 역시 해결될 거요.”



자신을 노려보는 가로쉬 앞에서 바인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녀석들을 압박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오.
하지만 가시멧돼지는 당신 생각보다 훨씬 교활한 존재요. 정면충돌에는 치명적인 결과가 따를 테고,
내 백성이 고통을 겪을 것이오.”



“놈들이 우리 수원을 공격한 순간, 이건 호드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함께 고통을 겪고 있고,
너희가 시간을 끄는 동안 그런 고통도 하루하루 연장되고 있지. 너희가 호드의 힘과 의지를 조롱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겠어. 이번 사태를 해결해라. 지금 즉시.” 이 말만 남기고 가로쉬는 폭발하듯
접견실을 빠져나가 사라져 버렸다.



하뮬은 가로쉬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군. 가로쉬답다. 그래서
어쩌려는 거지?”



바인은 자신의 철퇴 공포파괴자를 들어 올렸다. 철퇴의 은으로 된 머리 부분에서는 황금 고리가 교차하고
룬 문자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을 기다리는 비행선을 향해 출발했다.
“가로쉬가 이번에 만난 적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는군요. 썬더 블러프에 도착하면,
태양길잡이들을 준비시켜 주십시오. 가로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 * * * *




그날 밤, 썬더 블러프가 잠든 시각에 바인은 자신의 천막에서 초조하게 거닐고 있었다. 평화로운 해결책을
추구한 자신의 고집 때문에 결국 더 많은 짐마차가 습격을 당했고, 또 자신의 영토에서 있었던 가시
멧돼지의 전면 공격으로 대족장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뻔한 사건도 있었다. 하뮬이 천막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바인은 생각에 잠겨 있던 고개를 들고 슬프게 말했다. “이제 제가 원하는 길이 옳은 것인지,
저 자신도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하뮬. 어쩌면 파원더러 부족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대부족장이셨을 때의 호드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전에는 제가
타우렌을 이끌 수 있을지 걱정했었습니다만, 이제는 정말 그래야만 하는 건지 회의가 듭니다.”



하뮬은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은 실의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젊은 바인. 넌 네 아버지만큼 잘하고 있어. 난 네가 보여준 지혜와 이 문제를 옳게 해결하는 데 보여준 열정을 네 아버지도 인정할
거라고 확신한단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떠나버리라고, 자기 갈 길을
가라고 해 버리렴.”



바인은 살짝 미소 지었다. “불과 얼마 전에 그들과 같은 의견을 보이셨던 기억이 납니다만.”



하뮬은 굳어지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좌절한 상태에서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이야기했지.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마. 우린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리고 비록 지금은 네가 지도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진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 * * *




바로 그 순간, 가로쉬는 칼날가시 협곡 공습을 위해 코르크론 부대를 준비시키고 있었다. 열다섯 명의
정예 병사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두 눈에는 다가오는 전투에 대한 악의적인
기대감이 반짝였다.



“타우렌 녀석들은 말로는 코도 꽁무니라도 떼어 놓을 정도지만, 정작 영토가 침략당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가로쉬는 소리쳤다. “우린 진정한 전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우리 목표는
멀고어 남부의 가시멧돼지 소굴이다. 동트기 직전에 공격을 시작한다. 단단히 채비하도록.”



전사들은 경례를 붙이고 전투 준비를 하러 달려갔다. 가로쉬는 왕좌로 돌아가 자신의 도끼,
피의 울음소리를 품에 내려놓았다. 그는 전사들을 이끌고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아버지의 도끼는
다시 한 번 전투의 영광을 노래할 것이다. 가로쉬는 이를 드러내며 날카롭게 웃었다.



* * * * *




정예병으로 구성된 코르크론은 강력한 전력을 자랑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기습 공격이라는 이점도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검은색으로 칠한 비행선이 동트기 전의 하늘을 조용히 미끄러져 가시멧돼지
거주지 인근에 멈췄다. 가로쉬를 선두로, 전사들은 밧줄을 타고 가시멧돼지 정찰병들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검의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가자 열 마리 가시멧돼지가 쓰러졌다. 오직 한 마리의 입에서
작은 끼익 소리가 새어나갔고, 굴 입구에 서 있던 경비병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다가왔다.
또 한 차례 도끼와 검의 폭풍이 지나가자 이들도 앞선 가시멧돼지와 같은 운명이 되었다. 비행선이
안전한 거리 밖으로 이동하자, 코르크론은 동굴을 따라 내려갔다. 저항하는 가시멧돼지는 순식간에,
그리고 효율적으로 제거되었다.



전투는 짧지만 강렬했다. 가시멧돼지는 가로쉬 조차도 놀라게 할 정도로 흉포하게 자신의 영토를 지켰다.
비좁은 동굴 안에서의 전투에 익숙한 그들은 필요하다면 엄니까지 무기로 사용했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광기로 공격을 계속했다. 고향을 지키다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로쉬는 자신 앞의 가시멧돼지가
하나 둘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오늘 이 녀석들에게 공포가 뭔지 가르쳐 주리라.



몇 분 후, 코르크론 부대는 가시멧돼지 소굴의 중앙 방에 도착했다. 승리자의 모습으로 피의 울음소리를
손에 든 가로쉬가 공격 태세를 갖추고 선두에 서 있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는
적의 시체가 널려 있고, 전사들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주변을
돌아보며 무수히 많은 동굴 중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표식이 없나 찾았다. 몇 분 후, 뒤쪽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그들은 잔당 몇 마리가 나타났으리라 예상하며 천천히 돌아섰다.



잔당 몇 마리가 아니었다. 뒤쪽 동굴은 야수들로 가득 차 터져나갈 듯했다. 새로 도착한 가시멧돼지들은
잠시 멈춰 서서 수십 마리 형제가 바닥에 쓰러진 모습을 바라봤다. 가로쉬는 그들을 향해 고함쳤다.
“오늘, 너희는 모두 죗값을 치를 것이다. 바로 오늘, 너희는 호드의 분노를 목격할 것이다!”



가로쉬의 신호와 함께, 코르크론은 모여든 야수들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며 돌진했다. 가시멧돼지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내지르는 비명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가시멧돼지들은 아직 공격하려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도끼가 사냥감을 쫓았지만, 단 한 마리의 야수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뭐냐?!” 가로쉬가 소리쳤다. “이렇게 쉽게 항복한 것이냐?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다. 모두
그 자리에서 베어버리겠다!”



무리를 이룬 가시멧돼지들이 모두 하나가 된 듯 무기를 들어 올리고 크게 울부짖었다. 코르크론 뒤쪽의
동굴에서도 폭발하듯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고, 서둘러 뒤돌아선 오크들의 눈에 또 야수 수백 마리가
밀물처럼 바닥의 굴과 천정의 구멍에서 빠른 속도로 밀려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좌측을 친다! 돌격!” 가로쉬가 소리쳤다. “놈들이 우릴 포위하게 내버려 두지 마라!” 전사들은
가시멧돼지에게 달려들었다. 출구를 등진 채였다. 피의 울음소리는 흐릿하게 보일 만큼 날쌔게 움직였고,
적의 선봉을 공격했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선봉이 모두 쓰러졌지만, 이들을 타고 넘어 더 많은 야수가
몰려왔다.



“앞으로!” 명령과 함께 오크 전사들은 귀가 먹을 듯한 끼익 소리와 고함에 맞서 전진했고, 가시멧돼지들도
망설임 없이 다가왔다. 가시멧돼지 주술사가 전사들의 한가운데 주문을 시전하자, 여러 색으로 번쩍이는
빛이 일그러진 그들의 얼굴을 밝혔다. 두 무리가 충돌할 때마다 우레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와 동굴 전체를
울렸다.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오크 전사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가로쉬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전사들이 쓰러지면서, 그들이 들고 있던 횃불도 바닥에 떨어졌고,
가시멧돼지들은 재빨리 불을 껐다. 활기를 되찾은 가로쉬는 마주 고함을 지르며 더욱 사납게 싸웠다.
그는 헬스크림이었다. 헬스크림은 이렇게 보잘 것없는 짐승들에게 지지 않는다. 전사들을 이끌고 살아남을 것이다.



가로쉬는 피의 울음소리를 점점 더 빨리 휘둘렀다. 대기는 도끼의 움직임을 따라 황천의 노래로 가득 찼다. 울부짖음은 동굴을 따라 퍼졌고, 더 많은 야수의 끼익 거리는 울음소리가 거기 답하듯 들려왔다.
가시멧돼지는 사방에서 달려들었고, 계속 전진하는 가로쉬의 도끼에 절단되었다. 하지만 가시멧돼지의
수는 끝이 없었다. 두려워하는 기색도, 물러서는 자도 없었다. 가로쉬는 지표의 빛이 닿을 수 없는 동굴
깊은 곳까지 밀려났다. 그는 이제 혼자였다. 어둠이 밀려들고, 불쾌한 비명을 내지르는 가시멧돼지의
끝없는 홍수에 둘러싸여 있었다. 가시멧돼지는 그의 방어구를 뜯어냈다. 그렇게 드러난 피부를 할퀴고
깨물며 그를 점점 더 동굴 깊은 곳으로 몰아붙였다.



놈들이 밀어내는 방향으로, 동굴 아래쪽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적의 뜨거운 입김과 기쁨의 고함이
가로쉬에게 닿았다. 그는 돌아서 지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더듬어 찾았지만, 그가 찾아낸 짧은 측면
통로는 막다른 길이었다. 결국, 가로쉬는 동굴 벽을 등져야 했고 피의 울음소리는 옆 벽에 박혀 빠지지
않았다.



거친 포효와 함께, 가로쉬는 해일처럼 밀려드는 털복숭이와 그들의 검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는
적 한 마리에게서 창을 빼앗아 다른 녀석의 머리에 꽂았다. 그 야수가 들고 있던 횃불, 동굴에 마지막 빛을
던져 주던 횃불이 바닥에 떨어져 꺼져버렸다. 어둠이 전부를 뒤덮었다. 적은 계속 몰려왔고, 가로쉬는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지만 적이 모두 시체가 되기 전까지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의 팔이 아파져 왔고
숨소리가 거칠어졌지만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손에 닿는 모든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야수
한 마리가 쓰러질 때마다 다른 한 마리가 합류했다.



서서히 가로쉬도 전투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적중하는 가시멧돼지의 공격도 점점 늘어났다.
어둠 속에 퍼지는 희미한 빛이 보였지만, 그는 눈앞의 싸움 때문에 한눈을 팔 수 없었다. 빛이 밝아지자
많은 적이 공격을 멈췄고, 주 동굴에서 희미한 소동이 들려왔다. 갑자기 불가능할 만큼 밝은 빛의 기둥이
터져 나왔다. 빛의 근원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로쉬 주변의 가시멧돼지는 분노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자신들이 나타났던 곳으로 달려 돌아갔다. 눈이 부셔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로쉬는
이 야수들이 마치 종이 인형처럼 좌우로 내던져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빛은 더 밝아졌고, 가로쉬가 최후의 항전을 벌이고 있던 굽이로 다가왔다. 굽이 너머로 하뮬 룬토템과
나란히 선 바인, 그리고 소수의 태양길잡이들이 보였다. 바인은 동굴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조금만 버티시오, 형제들이여! 어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소!” 공포파괴자가 그의 손에서 밝게 빛났다.
태양길잡이들이 내뿜는 환한 빛보다 더 밝았다. 바인은 과연 안두인 린이 자신의 선물이 이런 식으로
쓰이게 허락할지 의아해 했지만, 그 드워프의 철퇴 앞에 야수들은 하나 둘 쓰러졌고, 결국 가시멧돼지들은
일제히 동굴 속 어둠을 향해 물러났다.



바인은 대족장의 곁으로 달려왔다. “가로쉬, 어서 무기를 들고 나갑시다. 저들이 우릴 포위하기 전에
빠져나가야 하오.” 그는 가로쉬를 일으켜 세우고 벽에 박힌 그의 무기를 빼주었다. “서두르시오.”



그들은 재빨리 땅 위로 올라왔다. 바닥에 흩어진 시체들을 제외하면, 나오는 길을 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바인은 자신의 운을 믿고 있었다. 비교적 큰 동굴을 통과하면서, 그들은 가시멧돼지를 완전히
따돌렸기를 바랐다. 반대쪽에 도착하자 하뮬이 잠시 멈추라고 말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중얼거리며,
밖으로 통하는 올바른 길로 그들을 이끌어 줄 지혜를 구했다. 그가 일어서면서 밖으로 통하는 길 쪽으로
움직이는 순간, 동굴 벽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뒤로 돌아 다시 다가온 공습을 마주했지만, 공격자의
모습을 보고는 우뚝 서고 말았다.



가로쉬가 소음 때문에 소리를 높여 물었다. “저게 대체 뭐지?!”



바인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나도 알았으면 좋겠소, 대족장...”



일반적인 녀석들보다 훨씬 크고 유난히 창백한 가시멧돼지가 자리에 모인 전사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이들의 입에서 부자연스럽게 높은 소리가 들려와 전사들의 귀를 찔렀다. 이들의 몸통은
잿빛으로 창백했고, 역겨운 진녹색 뾰족털로 덮여 있었으며, 얼굴에는 커다란 눈이 튀어나와 있었다.
이들은 타우렌이나 기타 모든 종족이 본 어떤 가시멧돼지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컸다. 또한 그들의
눈에 어린 지적인 악의를 보면, 바인과 하뮬, 태양길잡이의 급습 앞에 쓰러졌던 형제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인은 태양길잡이들에게 멈추라고 지시했고, 양 측은 서로를 마주봤다.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잿빛 야수들이 동굴을 가득 메워오자, 공기는 무겁고 역겨운 대지의 냄새로 가득 찼다. 하지만 놈들은
공격을 하지 않았다. 마치 침략자들의 힘을 평가하고 다음 움직임을 계획하는 눈치였다.



가로쉬는 도끼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이 유령 같은 괴물들! 여기서 끝장을 보자!”



바인은 목소리를 높여 가로쉬의 말을 막았다. “대족장, 넓은 장소로 빠져나가야 하오! 여기 머무르면
승산이 없어!” 하뮬이 손짓을 하자, 작은 덩굴 식물이 대지에서 싹을 틔웠고, 이 식물은 미로 같은
동굴에서 출구를 향해 구불거리며 뻗어 갔다. “어서 쫓아가시오!” 바인이 명령했다.



날뛰는 가로쉬를 질질 끌며, 바인과 하뮬, 태양길잡이들은 땅 위를 향해 달렸다. 다행히 그들은 하뮬의
주문이 끝나는 순간 지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몸을 놀릴 공간을 확보했다. 가로쉬가 동굴
출구를 노려보는 동안, 바인은 가로쉬의 허리띠에서 고블린의 신호용 권총을 꺼내 하늘을 향해 쐈다.
탈출을 위해 비행선이 다가오기 시작했지만, 속도는 느렸다. 비정상적인 야수들이 지면으로 쏟아져 나와,
이른 아침 햇살에 눈을 마구 깜박였다.



바인은 나타나는 야수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자신의 본거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멈칫거렸다. 바인은 하뮬을 향해 돌아섰고, 대드루이드는 앞에 모여 선 가시멧돼지들을 향해 손짓하며
소리쳤다. “더 나은 해결책이 있다. 너희가 모두 외면했던 해결책이지. 대지모신의 축복을 보라!” 이 말과
함께 하뮬은 한 걸음 나아가 큰 소리로 외치며 지팡이를 땅에 꽂았다.



물줄기가 솟아나와 거대한 호수를 이뤘고, 곧 흰 가시멧돼지들을 둘러싼 채 천둥 같은 우르릉 소리와 함께
동굴 안으로 휩쓸고 내려갔다. 남은 야수들과 분노로 이성을 잃은 가로쉬는 폭발의 충격으로 땅에
쓰러졌다. 타우렌은 모두 꿋꿋하게 미동도 없이 자신들이 숭배하는 대지에 발을 붙이고 서 있었다.



* * * * *




하뮬이 지팡이를 꽂은 지점에서 새로운 강물이 쏟아져 나왔고, 바윗길을 따라 흘러 동굴을 타고 지하
깊숙이 흘러갔다. 남은 가시멧돼지가 다시 일어서자, 바인은 그들을 향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 땅을 존중하는 이에게, 대지는 언제나 너그러이 베푼다. 여기 모두에게 충분한 물이 있다. 너희도
이 강이 동굴을 지나 지하의 호수까지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선물을 받고 이제 우릴
괴롭히지 말거라.”



태양 빛이 멀고어를 둘러싼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자, 가시멧돼지들은 천천히 동굴로 돌아갔다. 새벽은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에 모든 타우렌에게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오늘, 대지모신과 모든 은총에 대해
새로운 존경심이 생겨났다. 그들은 처음 공격에서 쓰러진 가시멧돼지들을 조심스럽게 피해 나라체
야영지로 돌아갔다. 가로쉬는 입을 열 수 없을 만큼 분노하여 침묵한 채로 걸었다. 바인은 가로쉬의
뻣뻣한 움직임을 보며 그런 반응이 놀랍지 않았다.



첫 번째 비행선이 마침내 다가와 정지하고 줄사다리가 땅으로 내려왔다. 바인은 비행선을 올려다본 후,
다시 주위에 둘러선 태양길잡이들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잠시 가로쉬에게 머문 후, 다시 비행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가서 호드를 이끄시오. 멀고어에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지면 다시
연락하겠소.” 이 말과 함께 그는 여전히 침묵하는 대족장을 남겨둔 채 썬더 블러프를 향해 걸었다.
태양길잡이들이 그를 바싹 따랐다.



* * * * *




멀고어에 밤이 찾아오며 대지에 긴 그림자를 남겼다. 모든 타우렌이 저녁 준비를 하자, 언덕과 초원
여기저기에 모닥불이 피어났다. 이제 자신들의 대지가 다시 한번 안전해졌음을 알기에, 오늘 밤 그들은
모두 곤히 잠잘 수 있을 것이다. 바인의 숙소 바깥에서 그레이후프 파원더러와 그 부족의 몇몇 타우렌이
머뭇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레이후프가 말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꼭 해야 할 일이다.”



부족민들을 이끌고 그는 바인이 휴식을 취하던 천막에 들어서며 조용히 물었다. “대부족장님,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바인은 지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물론이지요. 무슨 일로 오셨소?”



나이 든 타우렌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저희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지만, 저희 마음에는 아직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떠날 준비를 하고 이른 아침에 출발했었지요. 하지만
대부족장님께서 가시멧돼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았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지도자의
강인함을 지녔지만 지혜에 의존했고, 우리는 모두 눈이 멀어 그걸 알아보지 못했었습니다. 이 땅을
떠나려 했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부디 저희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부족장님.”



바인은 손을 흔들어 상대방의 말을 중단시켰다. “우리는 모두 불확실한 격동의 시대에 살고 있소.
여러분의 마음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하오. 이제 가시멧돼지는 멀고어에서 우릴 더는 괴롭히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내부와 외부, 양쪽의 문제에 둘러싸여 있소. 그리고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모두
힘을 합쳐야만 하오.”



바인은 천막 앞으로 가서 한참 동안 밖을 내다봤다. 시선이 닿는 먼 곳까지, 여기저기에서 모닥불이
피어오르며 썬더 블러프가 저녁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나라체 야영지의 검은 윤곽 속에서
젊은 타우렌 용사들이 훈련을 재개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시련에 그들이 필요하리라.
타우렌 전체의 신념과 우직함을 시험에 들게 할 시련에 그들이 필요하리라.



바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앞에 모인 소수의 타우렌 무리를 다시 바라봤다. “우리 타우렌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 땅을 걸으며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소. 우리 동맹은 우리의 지혜와 지도력을
필요로 할 것이오. 내 아버님께서는 한때 호드에 약속하셨었소. 호드가 우리 종족에게 베풀어 준 호의를
꼭 갚겠다고. 이제 내가,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