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11~13일 차.
딸랑-
딸랑- 딸랑-!
거기 누구야?!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고요한 것이, 적막만이 흐른다.
지난번 바리 숲을 다녀온 뒤로 계속 같은 꿈을 꾼다.
눈을 감으면 딸랑, 딸랑 방울 소리가 미친 듯이 들려오고,
내 발걸음은 어느새 그 소리를 따라가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면, 나는 또 다시 바리숲이다.
하얗다 못해 허연..
핏기가 싹 빠진 귀신들이 파도처럼 내 몸을 밀어붙인다.
그러면 내 몸은 점점 녹아내려서,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어. 무당 할머니 댁에 다시 찾아가 봐야지.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무당 할머니 댁을 다시 찾았다.
뭐라고요.. 할머니?
무당령이 절 점찍었다고요?? 그럼 전 이제 어떡하나요...
문득 떠오르는 곳이 한 군데 있다. 여우고개.
그래. 여우 신선님께 경건히 기도를 올리면 어떻게 해 주실지도 몰라.
찾아오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 밤늦게 가면 내 이야기만 들어주시지 않을까?
그래. 저잣거리에서 좀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면 출발하자.
잠깐 숨을 좀 돌렸을까?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한 화공이 그림들을 게시판에 붙여놓고 사람들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먼저,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꼬리가 여럿 달린 여우.. 머리를 풀어헤친 음산한 여인..
화공은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이게 구미호랑 손각시라고?
으.. 뭐 저런 그림들을 그리고 있담? 생각하고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화공이 말을 건다.
“이보시오. 저 산길을 넘어갈 생각이시오?”
그렇소만.
“날이 밝고 가는 것이 좋을 텐데요...”
사정이 좀 있어서요. 이제 곧 출발할 생각이요.
“그럼, 이 그림들을 가져가시오.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니..”
구미호랑 손각시 말고도 요상한 그림들을 여럿 건네준다.
이런 그림들이 무슨 도움이 된담.. 일단 챙기자.
어느새 밤이 깊어 여우고개로 향했다.
여우 신선님께 살려달라 기도를 드리려는 찰나,
으드득, 으드득..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원망스럽게도, 이럴 때는 꼭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쪽으로 움직인다니까.
하이얀 달빛이 선명하게 비추고 있는 그곳에는,
뚝- 뚝..
입가에 가득하다 못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새빨간 피...
달빛을 따라 눈길을 아래로 옮기면 보이는 꼬리가...
하나, 둘, …, 아홉?!
사... 사람살려!!!!!
어떤 정신으로 여우고개를 뛰어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아까 그건.. 구미호? 구미호가 진짜 있는 거였다고?
따끔- 발목에 생채기가.. 아무래도 급하게 내려오다 발을 삔 것 같다.
휴 이 무시무시한 산속에서 발까지 말썽이라니...
“서방님, 괜찮으세요..?”
귓가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고운 목소리..
...응? 서방님이라니? 웬 하얀 소복의 여인이 말을 건다.
그런데 이 여인,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잠깐만, 그림자가 없잖아?!
설마 나, 아직도 꿈속인가?
딸랑- 딸랑.
또 방울소리가 가까워져 오는데... 기절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