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GM노트는 아름다운 땅, 아침의 나라 플레이리스트를 감상하며 읽으실 것을 권장합니다.
벨리아에서부터 배를 타고 약 한 시간쯤 달렸을까?
저 멀리 나루터가 보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박을 하고, 우린 남포항에 발을 디뎠다.
바다 건너의 물건을 구하려는 사람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
다소 거친 뱃사람들과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받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로 항구부터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남포를 보니 문득 한국의 명소가 한 군데 떠오른다.
바로, 과거 왕성한 해상무역 활동을 펼쳤던 ‘장보고’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청해포구’다.
전라남도 완도군에 위치한 ‘청해포구’는 바다를 가득 물들이는 짙은 노을과
해넘이와 해돋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 (좌) 청해포구, (우) 남포항
선착장, 저잣거리, 선박 건조장...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이 곳곳에 녹아 들어있는 청해포구와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들과 몰려드는 방문객들로 북적이는 남포 무들마을.
항구의 활력이 느껴지는 남포항 곳곳에는
드넓은 바다의 기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청해포구가 섬세히 녹아 들어가 있었다.
이곳의 활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실제로 눈에 담고 싶다면,
전라남도에 위치한 ‘청해포구’에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검은사막에 위치한 ‘남포’로의 방문도 환영이다.
통일신라시대 해로 요충지였던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해적을 소탕함으로써 당나라와 일본은 물론 남중국해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해상 질서를 주도하며 왕성한 해상무역활동을 펼쳤던 ‘해상왕’ 장보고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 곳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합니다.
남포 무들마을에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니, 사방에서 곡소리가 울려 퍼진다.
곤장을 맞고 있는 죄인들,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 도둑에 관한 이야기...
흡사, 과거 시대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은 이곳은 동해도 감영이다.
▲ (좌) 한국민속촌 용구현 관아, (우) 동해도 감영
선조들이 살아온 흔적과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조선시대의 생활문화를 재현하고 있는 한국민속촌에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확신하건대, 용구현 관아와 이곳 동해도 감영과 닮은 점을 찾아보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있는 남포 무들마을을 뒤로하고,
산등성이를 조금 오르니 곧이어 보이는 것은 거대한 장성.
서울로 향하는 관문인 만큼, 많은 수의 포졸들이 지키고 있는 이 곳은 남포 관문이다.
강원도의 설악산을 빼다 박은 남포 관문 뒤쪽 산을 등지고 뒤를 돌아 아래쪽으로 눈을 돌리면,
남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충청북도 청주 ‘상당산성’의 모습을 꼭 닮아 있다.
▲ (좌) 상당산성, (우) 남포관문
청주 상당산성의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 · 청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임을 알 수 있는데,
이곳 남포 관문에서도 바다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뒤쪽에서의 위험에서도 대비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천리장성이 돋보인다.
“이곳은 통행할 수 없습니다. 돌아가 주십쇼.”
‘“당신들 지금 이렇게 강제로 막아도 되는 거야?!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문을 개방하라!”
다소 소란스러운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은 남포 관문으로의 통행이 제한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 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입니다.
지금의 성은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돌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며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여장)은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성 안에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문과 치성이 남아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민속촌은 1974년 건립 초기부터 교육적 가치와 관광적 가치를 염두에 둔 최고의 전통문화 테마의 종합관광지를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한국민속촌의 조선시대 마을은 각 지방에서 이건 및 복원한 실물 가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철저한 고증과 자문을 거쳐 사계절 변화에 따라 생활문화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 감영이란?
감영은 조선 시대 관찰사가 머무르면서 관련 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감영은 순영(巡營)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관찰사 제도는 조선이 군현제(郡縣制)와 도제(道制)를 정비하면서 완비되었다. 원래 관찰사의 정식 명칭은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였는데, 이를 줄여서 관찰사라 불렀다.
조선의 관찰사는 지방의 행정을 책임지는 전임관의 성격을 부여받았다. 관찰사가 한 지역의 장관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된 만큼 업무를 위한 정식 관청이 필요했고, 이러한 목적에 따라 설치된 것이 바로 감영이었다.
남포 관문에서 내려와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울창한 대숲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곳 십리대숲은 전라남도 담양의 ‘죽녹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 (좌) 죽녹원, (우) 십리대숲
입구에서부터 산뜻한 공기가 정신까지 맑게 해주는 것 같은 대나무숲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하면서도 청량한 공기가 아주 신선했다.
근처 주민에게 물어보니 대숲 안에서는 밖보다 온도가 낮아지고,
대나무에서 나오는 음이온으로 인해 상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여러분도 이곳을 지나게 된다면 초록이 우거진 숲을 그저 바라보면서
일상의 지친 마음을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이 아침의 나라의 십리대숲이든, 전라남도 담양의 죽녹원이든 말이다.
죽녹원은 2003년 5월에 조성하여 약 31만㎡의 공간에 울창한 대나무숲과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의 정자문화 등을 볼 수 있는 시가문화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대숲 사이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굳어있던 몸이 풀리고, 일상에 지친 심신이 깨워지는 신선한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해동용궁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한국의 삼대 관음성지의 한곳이며, 고려우왕 2년(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합니다.
2014년 명승 제111호로 지정된 사성암은 해발 531m의 오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백제 성왕 22년(544년) 연기조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그 후 이곳에서 4명의 고승인 의상대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가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1989년 3월 10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삼척대이리굴피집은 사랑방과 안방 사이에 마루와 도장을 두고, 안방 옆에는 부엌을 두고 있습니다. 마루와 부엌 사이에는 흙바닥으로 된 통로와 같은 공간이 있으며, 외양간은 대문 옆에 붙여 돌출시켰고, 지붕은 굴참나무 껍질로 이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