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2년 4월 28일, 아테네.

하나님께 빌었다.
제발 그곳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지 않기를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오늘은 아테네가 오스만 투르크에서 베니스령으로 바뀐 역사적인 날 임과 동시에 마르코 베르티라는 겁쟁이가 탄생해버린 최악의 날이기도 했다.



총 137명의 선원들을 2교대로 노를 젓게 했으므로 배는 쉬지 않고 달려가 고작 5일 만에 전투가 한창인 아테네의 근해까지 올 수 있었다. 선원들은 무척 지쳐있었지만 나와 아그네스는 그들이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아테네 근해에는 도시를 지키기 위한 배들과 공격하기 위한 배들로 가득했다. 1538년 창설 된 신성동맹의 스페인과 제노바 공화국의 배들도 간간히 보였다. 주를 이루는 것은 역시나 포를 무장한 베니스의 군함이었다. 그 외에도 용병으로 고용 된 상인의 배들도 많이 있었다. 신성동맹의 배들도 대부분이 상인 용병일 것이다. 그것을 보니 우리는 용병으로 고용 된 건 아니었으므로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건 상인으로써 용납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방에 난파된 배들이 둥둥 떠다녔고 간혹 나는 대포소리가 이곳이 전투지역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그래서 무척 두려웠다. 나 말고도 모든 선원들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수십 척의 배가 눈 앞에 있는데 어느 편이 우세한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노를 사용하지 않는 스페인 함선을 제외하곤 배 모양이 서로가 비슷했기 때문에 어떤 배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돛 끝에 조그맣게 달린 국기는 허위로 달아 위장을 한 것 일수도 있었기 때문에 같은 편임을 확인해도 먼저 공격을 해오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래서인지 거의 다 총각으로 배를 침몰시키거나 백병전을 하는 등의 교전이 한창이었는데 이 많은 선박 중에서 어느 것이 우리가 찾고 있는 이얀 토마스가 타고 있는 것인지를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 뿐 일 것이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하나님이 내려준 인재인지 바보인지는 몰라도 배를 몰고 앞으로 전진하자고 힘껏 소리쳤다. 그러자 노를 저을 때 내는 북 소리가 전투음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명령을 내린 당사자는 기분을 내기 위해 한 번 해본 소리였다고 사과한 뒤 북소리를 일반으로 바꾸라고 지시하자 선원들은 맥이 빠진듯 했다. 
교전지역에 가까워 질수록 아마도 오늘 죽었을 시체들과 조각난 배의 잔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그네스는 전혀 기죽지 않고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참담한 사태의 복선과도 같은 것이었다. 겉으론 순진무구한 귀수집 아가씨처럼 보이고, 세상물정 모르는 멍청이여도 속에서는 남자 못지 않은 용기와 기민함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찾았다! 저거야!”

그녀가 찾은 것은 2층 주점만한 크기의 범선이었는데 유럽에서 쓸 법한 캐러벨형 모델에 베네치아식 노를 달고 있는 배였다. 한참 공격 받고 있는지 오스만 투르크의 깃발을 단 갤리선 한 대가 돌격하여 캐러벨을 들이받았다. 그러자 총각이 선체를 구멍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동시에 선체는 기우뚱 거릴만큼 강하게 흔들렸다. 총 세대의 배가 먹이를 노리는 상어처럼 둘러 싸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포탄에 맞아 거의 난파하기 직전의 상태였고 나머지 두 대의 배에서 개미집을 나오는 개미떼처럼 밧줄을 타고 스믈스믈 캐러벨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저곳에 가면 죽을 것 같았지만 우리 서슴없는 아그네스 장군은 진격! 이라며 내가 외칠법한 대사를 남발했다. 그래서 난 걱정이 됐기에 그녀에게 말했다. 

“죽음을 자초하지 마! 냉정하게 생각해.”

아그네스의 팔목을 붙잡고 소리치자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고 나를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며 힘껏 말했다.

“겁쟁이....”

결국 이렇게 동생한테 기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선원들은 나보다 아그네스의 편에 섰는지 그녀의 명령을 듣기 시작했다. 모두 갑판 위에서 대기한 뒤 투척용 갈고리를 준비하거나 머스켓이 있는 용병 선원들은 그들 리더의 작전에 따라 총을 먼저 쏘고 그 다음에 칼을 사용하라는 등의 말을 세겨들었다. 이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갑판 아래에서 열심히 노를 젓는 선원들에게 전투태세로 바꾸라고 신경질적으로 소리 치는 것 뿐이었다. 그러자 북의 박자가 빠르게 바뀌며 쉬느냐고 들어가 있던 노까지 모두 나와서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나 웃는 아그네스만큼은 미소를 짓고 있기를 바랬지만 막상 전투가 두려웠는지 얼굴이 새파래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머스켓의 공이를 신경쓰일만큼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오빠로써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신은 우리의 편이야."

그 말을 내뱉자마자 신께서 저주라도 내린 건지 불행이 시작되었다. 바람을 가르는 무수한 소리가 들리며 선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나무가 부셔지는 소리가 소나기 내리듯 들렸다.

“포도알이다!”

누군가 그 단어를 비명지르듯 외치기 전에 이미 갑판에 있던 선원들 대부분이 부상당하거나 죽어 있었다. 상당수가 비오듯이 쏟아진 산탄에 맞고 피를 흘리고 있어서 난 무척 혼란스러웠다. 비극은 한 순간이었지만 그 한 순간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듯 보였다.
일시에 쏟아진 산탄들이 돛을 걸레 짝으로 만들어놨다. 갑판 아래로 내려가보니 노를 젓던 선원 2명이 부상당했고 한 명이 죽어버린 상태였다. 갑판 위에는 부상당한 선원이 22명. 죽은 선원은 7명이나 되었다. 죽은 선원 중에는 용병 선원의 대장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알자 용병들은 오열하며 무척 슬퍼했다. 그 심정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배에서 전투를 아는 유일한 조언자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언제 또 포가 날라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빨리 아그네스의 손을 잡고 그나마 안전한 갑판 아래로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따라오지 않고 그대로 버텼다. 이럴 때 만큼은 내 말을 좀 들어주었으면 좋겠는데 막무가내로 망원경을 잡고 공격한 배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답답해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아그네스! 숨어야해!”

“오빠, 우리 편이야! 그런데 저건... 페르세포네?!”

그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망원경을 빼앗고 보니 공격한 배는 확실히 우리 편이었다. 베니스의 붉은 깃발 세 개가 돛 위에 달려서 펄럭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국기 아래에는 상전 중인 페르세포네 조합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육두구와 머스켓이 교차하고 있는 모양이다.

"페르세포네놈들... 고소하겠어!"

전쟁 지역에서 공격 받았다고 고소하는 것은 어린애 투정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그것 밖에는 내 감정을 표출할 방법이 없었다. 그 사이, 동생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냉철한 지휘관이 되어 있었다. 내가 아무 것도 못한 채 넋놓고 있을 동안 능수능란하게 선원들을 지시했던 것이다. 부상자들을 이끌고 모두 갑판 아래로 들어가, 당장에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야 해. 이러면서 카리스마 있게 외쳤다. 하지만 부상당한 선원들이 엄청났다. 다리가 잘리거나 아예 가망이 없어보이는 선원들도 피를 질질 흘려가며 살기 위해 갑판 출입구를 향해 기어갔다.
그 모습에 참담해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까 배가 다시 포를 쐈다는 게 느껴졌다. 포격소리와 함께 포대에서 연기를 내뿜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 아그네스를 보호하듯 바닥에 누웠다. 순간 슈슈슈슝 하며 바람을 가르는 무수한 소리가 들리며 갑판을 때리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아까보다 공격의 위력이 강했기 때문에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그만 기절할 뻔 했지만 갑판을 때리는 소리가 잠잠해지자 아그네스는 나의 머리를 툭 때려 일어나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손 간수 잘해.”

무안하게도 그녀의 가슴에 내 손에 올라가 있었다. 난 그 말에 흥분하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지금 그런 말이 나오니? 우린 다 죽었어! 죽었다고!”

울부짖듯 말하자 아그네스는 나에게 정신을 차리도록 주먹을 날렸다. 여자임이 분명한대도 주먹이 무척 강했다.

“오빠는 함장이야! 냉철해져!”

말로 냉철해지라고 당장에 냉철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만 현실은 잔혹하다. 난 오돌오돌 떨며 돛에 이어 걸레 짝이 되어버린 갑판을 쳐다보았다. 그 위에는 수많은 선원들이 신음을 내뱉으며 널부러져 있었다. 옷이 흰색이라 그들이 흘린 피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곧 우리 모두 저렇게 될 거라 생각했고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으로 벌벌 떨었다.

“빌어먹을!”

아그네스는 그렇게 소리치며 나보고 한심한 멍청이라고 매몰차게 말한 뒤 갑판에 남아있던 선원들의 생사를 확인했다. 살아있냐고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선원은 거의 없었다. 노를 젓는 지하실에서 북 담당 대장이 지하실은 총 5명이 죽고 19명이 부상당했다는 보고가 들렸다. 약해진 밑판에서 침수가 되고 있다고도 들었다. 아그네스는 일목요연하게 선원들에게 부상자를 옮기고 침수를 막으라고 지시를 내렸고 그들은 그녀의 말을 잘 따랐다. 그리고 노 젓는 속도를 최고 속도인 돌격형태로 바꾸고 당장 키를 돌려 전선에서 이탈하라고 지시했다. 그녀의 카리스마 있는 지휘 덕분에 간신히 전선에서 이탈하여 우리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그 후에 아그네스는 전장의 여신으로, 나는 여자보다 못한 멍청이 취급을 받으며 아테네에 근처의 수많은 섬 중 하나에서 휴식을 취했다. 지도로 찾아보니 오스만 투르크의 땅인 파로스 섬이었다.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의 간소한 장례를 치루고 간이적으로 배를 수리했다. 침수가 되는 곳을 막고 이젠 쓸모 없어진 돛을 뜯어버렸다. 어차피 노를 젓는 배라서 돛은 필요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전히 아그네스의 판단 하에 전투가 불가능한 부상자들을 보조선에 태우고 베니스로 귀환시켰다. 그 중에는 더 이상 못 싸우겠다며 전의를 상실한 용병 선원들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배에 남은 선원은 총 61명이었다. 난 이것으로 항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아그네스의 생각은 달랐다. 해가 저물 때쯤 이얀 토마스의 배를 찾기 위해 다시 배를 움직인 것이다. 선원들은 더 쉬고 싶다며 불평했지만 전쟁의 여신 아그네스에게 직접적으로 싫다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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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신성동맹의 함대는 분명 실존하는 것이지만 재미를 위해 나온 것이며 아테네를 공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재미로 이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