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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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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해적 - 9. 페르 D. 알레바━━━━━━━━━━━━━━━━━━━━━━━━━━━━━━━━━━━━━━━━━━━━━
「… ….」 리지가 미간을 찌뿌렸다. 그것은 작열하는 눈부신 햇살 때문이 아니였다. 짙으면서도 길고 가는 그 녀의 한쪽 눈썹이 힐끗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무엇인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갈수록 그녀의 얼굴에 암운이 드리우는 가운데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것이 다름아닌 노를 젓고 있는 저지였 음을 알 수 있었다. 「… ….」 어째서일까, 티치에게서 극적으로 벗어난 이후부터는 유독 저지의 입가에 멤도는 저 희미한 조소가 자신을 비웃는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전 티치에게 벗어나기 위해 주절거 렸던 거짓의 한구절 한구절이 뇌리에 스치자 착잡한듯 리지는 이마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하아…」 할 수 있는거라곤 그 착잡함을 담은 한숨을 몰아 쉬는것 뿐이였다. 어쩌자고 그런 정신나간 헛소리 를 늘어놨을까… 아무리 상황이 그러했다지만 꼭 그 방법 뿐이 없었을까… 리지는 생각만해도 숨막 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와 잡념에 빠져있었다. 과연 저 능구렁이같은 저지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의 입가를 좀처럼 떠나지 않는 미소 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마음 같아선 한바가지 욕설을 내ㅤㅂㅐㄷ고 싶지만서도, 막상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보면 다시 고개를 떨구기 일수였다. 「리지.」 「어…, 뭐. 무슨 일이지?」 갑작스런 저지의 부름에 리지가 섬칫 놀라며 고개를 든다. 멍청이 같이 말까지 더듬는 자신의 모습 에 본인 또한 분통이 터졌지만 그것을 표출할 수는 없었다. 대신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그를 똑바 로 직시하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눈을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접선지’ 에 다온것 같군. 근처를 잘 살펴보라고.」 리지의 갈색 눈을 향하던 시선을 내리며 품에서 꺼낸 나침반을 본 저지가 말했다. 여러 생각 때문에 이곳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짐작은 되지 않았지만, 쪽배로 이 시간만에 도착했다는 것이면 나소에서 그렇게까지 먼 거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저지의 ‘산타메’ 호 선장실에서 훔쳐낸 계약서의 내용에 담겨져 있는 것 그대로라면 저지의 동업자들은 상당한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였다. 만에하나 나소의 해적들이 그들을 발견키라도 한다 면 유혈사태는 피할 수 없는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 ….」 리지는 저지와 대범한 동업자들의 소재를 감히 추측이라도 해보며 허리춤의 망원경을 꺼내 눈에 가 져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망원경을 통해 근처를 살폈다. 그때였다. 별볼일 없는 에메 랄드빛 수면 뿐이던 그녀의 시야에 문득 까만 점같은게 포착되었다. 「저건…」 무심코 지나칠뻔 했던 그 점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망원경을 보는 한쪽 눈에 보다 집중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경악한다. 「이봐, 저지!」 그녀의 다급한 부름에 저지는 여전히 반쯤 풀린 눈으로 기척했다. 「군함… 군함이야!」 그녀가 본것은 ‘완전무장’ 된 거대한 군함이였다. 쪽배가 더 나아갈 수록 망원경을 통해보는 그 범선 의 모습은 보다 선명해졌고, 그 생김은 여느 선박들이나 대포로는 감히 흠집 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해보이고 거대했다. 리지의 말에 저지는 노를 배 위로 끌어올리고 그녀의 망원경을 낚아 자신의 눈에 가져다 댄뒤, 그녀 가 보던 방향으로 고개를 향하였다. 한참토록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저지는 망원경에 눈도 안뗀체 그 상태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에스파니아의 신군함이로군.」 해상대국… 아니, 해상최강국 ‘에스파니아’. 압도적인 해상력을 갖춰 이 시대를 주름잡고 있는 국가. ‘무적함대’ 란 괜한 허세가 아니였다. 지금 보고 있는 저 선박을 보라. 이 거리에서 망원경을 통해 보 았을 뿐임에도 그 강력함과 웅장함이 느껴지는 바였다. 망원경을 저지가 낚아챈지라 그녀의 눈에는 그 모습이 도로 ‘검은 점’ 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에스파니아 신군함’ 의 모습은 뇌리에서 잊혀지질 않았다. 감탄도 잠시, 문득 그녀는 저지가 한눈에 그것이 ‘에스파니아의 신군함’ 일을 알아챘는지에 의문을 둔다. 「…저게 ‘에스파니아의 신군함’ 인지는 어떻게 알지? 조기같은건 안보이던데 말야.」 「이곳에 올것이라곤 내 거래자들뿐이 없거든.」 「그들이 에스파니아인이란 소리야?」 세상에! ‘무적함대’에스파니아를 상대하다니! 이 저지란 인물의 무모함에 리지는 할말을 잃었다. 그 들의 ‘거래’ 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을 리지가 알게된 계기는 순전히 ‘직감’ 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최 근 나소 연안에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상선의 왕래가 없었다. 고작해야 큰돈도 안되는 교역품을 싣고 다니는 개인상선이나 어선정도. 정작 그들이 노리는 상단의 상선은 씨가 말랐다고 볼 수 있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던 나소의 해적들은 바로 해적 저지가 연 관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번 출항 하면 상당히 오래토록 돌아오질 않던 저지와 그의 산타메는 바 로 카리브로 향하는 상선들의 항로를 귀신같이 간파하여 그것을 급습한 것이였다. 저지로 인해 카리브로 오는 상선들이 강습당하는 것에서 그들의 벌이가 끊어진건 어지간히 분한게 아니였지만 같은 해적으로서 그의 수완은 상당했고 경의롭기까지했다. ━━━━━━━━━━━━━━━━━━━━━━━━━━━━━━━━━━━━━━━━━━━━━ 「젠장! ‘저지’ 가 또 선수쳤군!」 그날도 어김없이 승승장구하며 회항하는 산타메 해적들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해적들은 탄식했다. 최근들어 저지의 수완이 지나치게 좋다. 그전에도 큰 건을 능숙하게 해치우는 솜씨로 실력이 좋다는 평은 세간에 흩뿌려져 있었지만 이것은 단순히 수완이 좋은 정도가 아니였다. 「도대체 어떻게 상선들의 항로를 그렇게 귀신같이 알아채는거지?」 「그러니깐 실력좋은 해적이지….」 덕분에 나소의 해적들은 저지보다 먼저 출항을 하더라도 빈손으로 먼저 회항하기 일수였다. 전 같아 선 쉴새없이 불을 뿜어야할 대포는 창고에 박힌채 소복히 먼지나 쌓이고 있었고 배는 오래토록 출항 을 안해 바다를 떠다니는 해초가 엉키고 있었다. 「선장! 산타메가 돌아왔습니다!」 산타메의 회항을 본 즉시 발길을 재촉한 해적이 들어선 곳은 ‘세상의 끝(End of the world)’ 호의 해 적들이 장악한 주점이였다. 그리고 세상의 끝 호 선장은 우리가 잘 알고있는 대해적, ‘드레이크 블랙’ 의 딸인 리지 블랙이였다. 그날따라 유독 그녀의 예리한 직감은 무엇인가 은닉된 진실을 갈망하고 있었다. 여성의 직감이란건 놀랍토록 정확한지라 그저 추측 쯤으로 경시할게 아니였다. 무엇보다도 그녀 또한 이 바닥에서 제법 잔뼈가 굵었기에 근 몇달동안 저지의 상승세를 그의 실력만으로 간주할 수 없었다. 「…놈이 돌아왔단 말이지….」 리지는 결국 생각을 굳힌다. 오늘 밤 그의 배에 몰래 숨어들어 그 비밀을 찾는것이였다. 물론 쉬운건 아닐것이다. ‘비밀’ 이란게 물체가 아닐수도 있고, 어쩌면 보다 난해한 것일수도 있기 때문이였다. 하 지만 지금 할 수 있는것이라곤 그것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날 세상의 끝 호 해적들은 산타메 해적들의 동향을 살폈다. 그들은 회항 하자마자 자신들이 수탈 한 온갖 보화와 금화를 과시하며 코가 비뚤어질때까지 럼을 마셨고 그 술판은 갈수록 절정을 향하였 다. 리지로서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예정대로 달 밤을 틈타 산타메에 몰래 올라섰고, 제일 먼저 선장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해적 자체가 법에 반하는 범법 요소 였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규칙은 존재했다. 물론 그들의 규칙은 체계적이지 않았고, 상식적이지도 못했다. 그들의 규칙과 그것에 반할시 해당되는 처벌은 오로지 죽 음 뿐이였고 그중 가장 엄하게 다루는것은 바로 ‘배신’ 과 ‘다른 해적의 배를 강탈’ 하는 것이였다. 물 론 명분이나 힘을 등에엎고 행한다면 다를지 몰라도 최소한 지금 리지의 행위는 엄연히 처벌 대상이 분명했다. ━덜컥! 처음 들어선 산타메 선장실은 의외로 깔끔했다. 아니, 별볼일 없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 다. 해먹 하나와 책장 하나. 술을 마시는때 쓰는 것인듯 빈 술병 두어개가 세워져있는 작은 원반식탁 이 고작이였다. 「의외로 쉽겠는데….」 물론 그녀가 찾는 무언가가 이 선장실에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딱히 찾아 헤멜 곳이 없었기에 그 녀가 향한 곳은 바로 낡은 책장이였다. 그 앞에 잠시 멈춰선 리지는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두루 살 폈다. 이것이 과연 ‘컬렉션’ 인지 그의 여가풀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껏 다양한 상선에서 빼앗 은듯 여러 언어의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었다. 잠시 그것을 훑어보던 리지는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맨위 첫번째 책부터 시작한 그 작업은 뽑은 책 의 책장을 빠르게 넘긴뒤 마지막으로 아래를 향해 탈탈털고 책의 표지속을 만져본뒤 별게 없으면 다 시 꽂아넣는것으로 끝났다. 물론 그 책이 꽂혀있던 자리를 더듬어 보는것도 잊지 않았다. ━차르르륵. 하지만 일을 반복할수록 그녀는 이 행동에 대해 왠지 모를 부질없음을 느꼈다. 이미 책의 절반을 훑 었지만 수완은 없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산타메 해적들을 의식하느라 불안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도 자신은 감히 짐작조차 안되는 그 비밀 이란게 이처럼 허접한 곳에 숨겨져있을리 만무하지 않는가 싶은 것이였다. 「…음?」 그때였다. 지긋히 누르던 책표지 속에서 무엇인가 두툼한게 느껴졌다. 별 생각없이 반복하던 행동이 멈추고 그녀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재차 엄지 손가락으로 지긋히 책표지를 누르며 내용물을 추측해보 니 몇번으로 접힌 종이같은것이였다. 「… ….」 리지는 부츠 속에서 나이프를 꺼낸뒤 지체없이 책표지의 옆을 찢었고 그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뒤에 숨겨진 내용물을 검지와 중지 사이로 짚어 꺼냈다. 양피지였다. 게다가 향수향까지 은은하게 퍼진다. 단순히 편지일수도 있고 그보다 더 사소한 것일수 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 양피지 존재 자체였다. 리지는 조심스레 접힌 양피지를 펴보았다. 이것 이 어떤 내용을 담고있는지는 몰라도 결코 흥미롭지 아니할 수 없었다. 「‘저지’… 어디 네놈의 비밀을 봐볼까….」 《해적 에단 테일러. 지난 날의 만담 속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는 결코 발설 되어선 안된다. 이 문서는 열람하는 즉시 소각 할것이며, 내 휘하를 그대의 배에 편입 시키겠다. 그를 통해 수시로 그대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받 을것이며 또한 그를 통해 지령을 전달하겠다. 접선에서는 반드시 무장을 해체하고 혼자올 것이며 접 선일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변심한 것으로 간주하고 제안 하였던 모든 특혜와 권리를 파소하고 어떠한 조치를 취해서라도 그대를 체포해 교수대로 보내겠다. 부디 어리석은 생각따윈 갖지 않길 당 부한다. Fer D. ILeba》 이 문서의 내용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직감했다. 서명에 쓰여있는 이름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문장에 쓰여있는 ‘체포’ 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존재는 한정되 있었다. 그렇다면 ‘저지’ 는 지금 ‘그들’ 과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정확한 문서의 내요을 파악할 필요따윈 없었다. 이 문서의 확보 자체만으로 그를 흔들 수 있다고 판 단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책을 도로 꽂아놓고 대신 문서는 자신의 가슴골에 품은뒤 지체없이 산타메 를 빠져나왔다. ━━━━━━━━━━━━━━━━━━━━━━━━━━━━━━━━━━━━━━━━━━━━━ 그렇게 저지를 꾀어내, 결국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였다. 그녀에게 이 계획은 위험하면서도 충 분히 매력적인 것이였다. 서명에 쓰여있는 ‘Fer D. ILeba (페르 D. 알레바)’ 란 이름은 분명 가명이다. 해적 규칙에 있어 국가의 녹을 먹는 이와의 거래가 배신 행위에 해당되듯 그들에게 있어서도 해적과 의 내통은 중법에 해당된다. 어떤 멍청한 인간이 설사 ‘소각’ 을 문서 내용에 요구했어도 자신의 본명 을 쓸리 만무했다. 리지는 이 신중한 거래자에 대해 몇차례 저지에게 물었지만 그는 답해주지 않았다. 어느덧 작은 모래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먼저와 기다린듯 그 모래섬에는 수명의 무장군인과 접선 자로 보이는 제복의 인물. 마지막으로 저지의 해적선원이였던, 실은 거래자가 파견한 인물또한 자리 에 있었다. 「우리의 동업자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군.」 이제서야 의문의 거래인 ‘페르 D. 알레바’ 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순간이였다. 리지는 긴장하면서도 동 시에 기대에 차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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