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문압트라 : 죽은 자들의 도시.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분명 유럽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맞기나 한 것인가. 방향으로만 따진다면 유럽으로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배가 가는 길은 확실히 유럽을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밝은 미래? 떠오르는 태양만큼이나 희망찬 내일? 그 어떤 것도 맞는 것은 없다. 도덕문제를 가지고 내심 고민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간단한 질문이지만 심오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은 생각을 낳고, 고민은 무덤덤하게 결계를 만든다. 우리는 그 울타리 속에서 고민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은 자들에 대한 처분'을 바라보고 있다.

"하아."

누군가의 한숨소리. 결코 단 한 명이 내고싶은 소리는 아닐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한숨을 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배의 선원이라면 습관이 되다시피한 일일 것이다.

"여기서 몇이나 더 죽어나가야 도착할까?"

그러게. 몇 명이나 살아서 저주와도 같은 놈의 행적을 알릴까? '그 자식'을 죽일 수 있을까? 과연 죽기는 할까? 죽는다면 어떻게 죽을까? 모든 부질없는 망상이 떠오른다. 놈에게 유린당한 선원들의 가족은 뭐라고 할까? 우리의 말을 믿기는 할까? 마녀사냥. 그것이 과연 여자에만 해당될까? 우리가 죽는 것은 아닐까? 살아나가도 살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지는 않을까? 대답없는 망상들은 사그러진다. 그리고 홀연히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제기랄! 또 '그 자식'이다. 줄기를 혓바닥마냥 낼름거리며 우리를 노리고 있다. 우리가 가진 피가 목적인지, 그저 수분을 위한 것인지, 알아도 소용없고 알기도 싫다.

마지막 남은 종이. 이 글은 결국 모두가 죽은 후에야 공개될 것일지, 아니면 몇몇이 살아남아서 남에게 보여질지도 의문이다. 생명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서도 이런 감상에 젖는 행위는 과연 우리가 미쳤다는 의미일까 자연스러운 것일까.

'아니. 아냐.'

고민을 털어낸다. 갑갑하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잡념을 지우자. 우선은 살아남자. 그것만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앗!"

누군가 발을 헛디딘다. 그러나 단 한번의 실수로 그가 죽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생명이 사라지는 그 섬뜩함이 척추로 들어와 모두의 감정을 휘젖는다.

"죽은 자에 대한 처분."

이제는 선장이 말하지 않아도 선원들끼리 알아서 읊을 정도이다. 세뇌교육. 반복숙달. 참 무서운 말이다. 죽음이 계속 반복이 되면 될수록 우리는 전부 적응이 되가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인가.

'아니, 아냐.'

속으로 되뇌인다. 아누비스가 우리를 바라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대답. 나를 통해 대답하고 있다. 아누비스가 내 속에 잠재된 이런 삶. 아니, 아니다. 이곳은 결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하문압트라. 우리는 모두 죽은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