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는 햇빛이 쏟아지고,
바닷내음을 가득담은 바람이 불어오며,
출항준비를 하는 배들은 선원들이 교역품과 식량등을 바쁘게 싣고 있었다.
언제 어느때라도 볼수 있는 항구의 모습.

이곳은 잉글랜드의 런던.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의 할일 때문에 바쁘게 돌아다니는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가끔 구석에서 정체를 알수 없는 무리들이 음모를 꾸미는 듯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길거리 한구석에 벌써부터 거나하게 술에 취한채 쓰러져 있는 선원이 있었지만, 
그런 사소한 일들을 제외 한다면 항구의 모습은 대체로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지금 이 항구의 활기가 견딜수 없을정도로 싫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에 대한 저주 같은 말도 안되는 이유가 아니다.
단순히 자신이 이런 '활기찬 분위기'에 어울릴 수 없다는 질투심의 일환인 것이었다.

"잘들어! 우리는 이제 대 모험을 떠나게 될거야!"

그 활기찬 분위기에 어울릴 수 없는 원인은 나와 동료들 앞에서 
마치 세계 7대 해적을 소탕하러 가는 해군 제독의 표정으로 장대한 연설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찾는 것은 엄청나게 끝내주는 멋진 일이야!"

연설을 하는 것은 잘해봐야 내 가슴정도의 키가 될까 말까한 어린 여자아이.
저래뵈도 무려 나와 동료 선원 4명을 이끌어 나가는 소형 배의 선장이다.
아무리봐도 나이도 나보다는 한참 어린 것이, 내가 10년만 더 늙었다면 저만한 딸이 있을 정도였다.
요즘 세상이 상당히 이상해졌다고는 하지만, 설마 저런 소녀가 한 배의 선장이 되다니,
세상이 말세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눈앞에 그 증거가 있으니까.

"이봐! 존! 내말을 제대로 듣고 있는거야?!"

내가 아까전부터 소녀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소녀가 알아차렸는지,
곧바로 나에게 검지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눈을 부라렸다.
아무리 째려본다고 해도 상대는 아직 어린 소녀, 
이쪽은 해적 한두번은 구경해본 선원이기에 겨우 어린 소녀가 째려본다고 쫄거나 하지는 않는다.

"네. 네. 듣고 있습니다. 듣고 있어요."

"…흐음~ 뭐 좋아! 어쨋든 중요한것은 신비한 유물과 유적, 그리고…!"

내가 대충 대답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아무추궁도 없이 넘어갔다.
아무리 소녀가 무섭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타는 배의 선장이다.
적어도 선장으로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면 배의 기강이나 기타등등이 안좋아 지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 월급은 저 소녀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돈 때문이라면 소녀가 아니라 아예 꼬마아이의 말이라도 넙죽 업드려야 하는게 이 세상의 슬픈 현실이다.

소녀의 연설은 드디어 클라이막스에 돌입했는지 그 눈에서 번쩍이던 눈빛이 점점 그 세기를 더해간다.
아무래도 자신의 연설에 스스로 심취하는 모양이다. 
아마 소녀의 머리속에는 그녀만의 관중들이 열심히 와와 거리면서 호응해 주지 않을까?
하지만 제발 나와 내 선원에게 만큼은 참아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배에서 일하는데는 어느정도 익숙해도 말도안되는 연설을 듣는데는 젬병이니까.
저것봐 벌써 주정뱅이 한스녀석은 고개를 숙인채 드림월드로 떠난지 오래다.

"일어나 멍청한 한스!"

퍽!

선장의 돌려차기가 한스의 배에 꽂혔다.
아니, 원래 선장의 생각은 배를 후려 차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아쉽게도 선장의 신장은 매우 작다. 
덕분에 돌려차기는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 한스의 사타구니에 직격했다.

"#%^#@^%^$#?!?!"

정체불명의 비명을 내지르며 자신의 소중한 부위를 감싸쥐고 쓰러지는 한스.
그 모습에 다른 선원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소중한 부위를 가려버린다.
나는 저 어린 선장의 무시무시한 손속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충성을 맹세했다.
내가 당부하는데 남자의 소중한 보물은 3번째 다리와 허리, 그리고 자존심이다.
참고로 나는 그에 못지않게 돈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우선 패스하겠다.

"어라? 어째서 거기를 맞은거야?"

어린 선장은 자신의 돌려차기가 설마 남자의 그곳에 명중 할 줄은 몰랐다는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표정을 짓고있다.
선장의 의문에 대해서 대답해 주려면 그녀의 신장과 한스의 신장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겠지만,
어제 술집에서 선장의 신장에 대해서 언급한 톰은 머리에 술병을 맞아서 선실에 누워있다.
톰의 희생정신 덕분에 나는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생각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뭐 상관없겠지."

이 여자는 남자의 그곳을 3초의 시간조차 들이지 않고 무시했다.
덕분에 한스의 비통함은 배가 되었지만, 선원중에서 그를 동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섣불리 동정해 버렸다간 저 무시무시한 선장의 손속으로 한스의 동료가 될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출항이다! 목표는 암스테르담!"

선장은 곧바로 기분좋은 미소를 띄면서 우리에게 명령했다.
어린 소녀인데도 불구하고 그 상당히 뛰어난 미모 덕분에 웃을때 만큼은 화사해 보인다.
물론 저 화사한 가면속에 폭군의 기질이 다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원들은 저 미소에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저 미소때문에 선장에게 작업을 걸었던 빌리언은 바다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니까.







깜박하고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군.
내 이름은 존 스미스, '샤크 마리아스' 호의 선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름에 성이 들어가는 것은 내가 있던 집안이 몰락한 귀족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평민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존' 이라는 이름만 쓰고 있는 상황이다.

소녀 선장의 첫 출항때부터 함께 하여 지금까지 계속 그녀의 밑에서 일해온 선원으로,
이제는 다른 선원들의 우두머리, 아니 선장 전용 선원으로 탈 바꿈 한지 오래다.
나이는 20대 중반. 다른 선원들보다 나이가 젊었지만, 이 바닥은 경험이 오래될 수록 선배취급을 받는 곳이다.
적어도 선장의 아래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해온 나에게 젊다고 무시할 녀석은 선장밖에 없다는것.

외모도 내 나름대로의 주간으로는 상당히 샤프하고 준수한 외모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을 선장에게 했다간 마치 럼주 한통을 원샷하고 머리에 술통을 얻어맞은 사람을 보는듯한 표정을 짓겠지.

선장의 이름은 리아 올스타인.
자신에 대해서 그다지 이야기 해주지 않았기에 그녀에 대한 일은 자세히는 알수 없다.
하지만 계속 함께 생활하면서 여러가지 정보를 알수 있었는데,
우선은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어딘가의 귀족집안의 딸이라는점.
그리고 검술실력이 남자이상으로 뛰어나서 이 주변의 허접한 해적은 눈감고도 이겨 버린다는점.
거기에 성격이 괘팍해서 그녀의 손속에 나가떨어진 선원이 마차 한대에 다 못실을 정도라는점.

마지막으로 이상할 정도로 나에게 의지한다는 점이다.

"좋아, 존! 측량시작해!"

물론, 그 의지한다는 것은 대부분 귀찮은일을 나에게 떠 넘긴다는 것을 의미하지,
절대로 남녀간에 그렇고 그런 감정등의 분위기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측량같은 귀찮을 일을 어김없이 나에게 시키고 있었기에, 난 두말하지 않고 곧바로 측량을 시작했다.
원래 측량에 대해서는 그다지 실력이 좋지 못했기에, 처음에는 배의 위치를 잘못 계산하기 일쑤였으나,
선장의 폭력이 섞인 개인수업을 받은 이후로는 이제는 상당히 정확한 측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혀 기쁘지는 않지만.'

그 개인수업은, 아니 정정하겠다. 그 지옥훈련은 나에게는 그저 고문이었다.
측량할때 계산이 조금만 틀려도 선장은 어김없이 검집으로 내 뒤통수를 갈겼고,
나는 그 무자비한 손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측량을 익혀야만 했으니까!

"자! 그럼 가보자! 돛조종 실시!"

"알겠습니다! 선장님!"

선장의 말에 신속하게 움직이는 선원들.
각자 자신이 맡은 구역으로 움직이며 돛이 펼쳐지고 바람을 받아서 배가 움직인다.
아무리 말도안되는 선장 아래에 있더라도 기본은 충실한 선원들이었다.
나 또한 측량기구를 던져버리고 그 행동에 합류하고 싶었으나,

"존! 뭐하는거야! 어서 낚시를 해서 부수입을 올려놔야지!"

내가 평범한 선원일을 하려면 이 선장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얼굴만 예쁜 선장은 여전히 나를 째려보며 낚시대를 내밀었다.
만약 이것을 거절한다면 곧바로 선장의 등에 있는 롱소드가 검집채로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올 것이다.
무엇보다, 만약 내가 낚시를 안하고 일을한다면, 다른 선원이 나 대신 선장의 상대를 해야한다.

'뭐해, 어서 낚시대를 받아!'
'내가 선장과 함께 낚시를 했다간 네놈을 죽여버릴테다.'
'난 차라리 평범한 선원일을 하고만다!'

주변에서 나를 향해 무언의 시선들이 날아온다.
처음부터 선장의 옆에서 일해온 나 이외의 선원에게는
성격이 괘팍무쌍한 선장을 상대한다는 일이 고문보다 더한 고통이다.
그나마 내가 어느정도 선장을 다루는데 익숙해 졌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지,
보통 사람이라면 수십번은 바다로 뛰어내렸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낚시 말이시죠?"

선장에게서 낚시대를 받아들고 신속하게 미끼를 끼우고 찌를 단다.
언제나 항해중에 낚시를 하는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낚시를 준비하는 속도는 신속하고도 정확했다.
바다에 퐁당하고 빠져드는 미끼를 바라보며 제발 이번에는 장화같은 말도안되는 쓰레기가 나오질 않기를 기도했다.
예전에 한번 바다에서 낚시로 쓰레기를 건져올렸다가 선장이 배를 잡고 뒹굴면서 일주일을 쉬지않고 놀려댔기 때문이다.
적어도 선장만 그랬다면 괜찮은데 같은 선원까지 그 놀림에 동참해 버리니 쪽팔리는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낚시찌가 바다위에 동동 떠다리면서 배는 시원하게 바다를 질주한다.
'샤크 마리아스' 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이 배는 겨우 탐험용 바사였다.
사실 조각배라고도 할수 있을정도로 모든것이 미니사이즈 임에도 불구하고,
선장의 행동은 마치 무적함대를 이끄는 듯한 제독의 기상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행동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있는 선원들에게는 그저 민폐일 뿐이었다.

'적어도 이 배가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는 것을 감사해야 하나…….'

하늘은 쾌청하고 바람은 솔솔 불어와 배를 밀어준다.
갈매기들이 배 주변을 날아다니며 끼룩끼룩 울어대는 것이 앞으로의 항해가 순조롭다는 것을 예견하는 듯했다.

첨벙!

큰 물보라 소리가 났기에 돌아보니,
어느새 주변에 다가 온건지 돌고래가 배와함께 헤엄쳐가고 있었다.
돌고래는 배의 순항을 상징하는 귀여운 동물.
그 돌고래가 점프하면서 배와 함께 헤엄치는 것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선장도 어느새 내옆에서 같이 돌고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오늘은 돌고래 고기를 먹으면 되겠군. 한스! 작살가져와!"

"아니! 잠깐 이봐요 선장! 순항을 상징하는 동물에게 뭐하는 짓이야!"

나도 모르게 낚시대를 든채로 선장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제대로 정신이 든 사람이라면 돌고래가 옆에 있는것을 보며 웃는게 대부분인데,
이놈의 선장은 소녀의 마음따위는 좁쌀 반만큼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설마 돌고래를 먹으려는 생각을 그 즉시 실행에 옮기려는 여자아이가 있을줄이야.

"상관없잖아? 기운좋게 펄쩍펄쩍 뛰는것이 잡으면 곧바로 싱싱한 요리로 만들수 있겠구만."

"제발 외모에 걸맞는 생각과 말을 골라서 사용해주세요."

나는 어떻게든 돌고래의 상징성과 선장의 외모와 성격의 상관관계를 열심히 설명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선장도 납득했는지 '그럼 다음기회에 먹으면 되지' 라는 말로 넘어가 주었다.
…이거 정말로 납득한 게 맞을까. 이봐 한스 그 작살 어딘가에 버려버려.

작은 헤프닝을 뒤로하고 배는 순조롭게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