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브레멘의 밤

 

 

4월 8일, 오후 5시경.

 

 

날이 매우 맑았다.

 

하늘의 아주 높은 곳에선 빵을 찢은것같은 구름들이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우리의 이름 없는 바사는 작은 외돛 하나를 달고 빠르게 나아갔다.

 

비록 상업용으로 개조해서 적재를 늘리고, 마스트도 하나뿐이라 다른 배에 비해선 느린편이지만

 

바사치고는 빠른속도였다.

 

이런 작은 바사들은 거의 대부분에 이름이 지어지지 않았다.

 

특별한 연유가 없는 이상에야, 이런 작은 배들은 그저 다루기쉽고 단순하다는 이유로

 

초심자들만이 애용하곤 했다.

 

그래서 그들이 어느정도 성장하게되면 이런 배들은 곧 다른 배들로 바뀌어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곧 더 크고 멋진 배로 갈아탈 그날이 곧 오리라 다들 믿고...

 

이 작은 배로 만족할 날이 봄날의 눈송이처럼 짧을 거라고.

 

그래서 바사는 보통 '상업용 바사'나 그냥 '바사'로 불렸다.

 

이런 우리의 바사, 그 이물, 갑판과 난간 틈바구니에 어쩌다 탄 밀항자가 살았다.

 

 

 

"크랩!"

 

에이미는 이 작고 붉은 게가 강아지라도 되는듯이 쪼그려앉아 손뼉을 짝짝 치며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게는 말을 알아들을만한 지능이 없는것은 뻔했기때문에 그저 더 어두운 안쪽으로

 

쏙 들어가 버릴뿐이었다.

 

에이미는 갑판바닥을 콩콩 두드려도 보고, 어육 조각을 앞에 놓고 흔들어도 보았지만

 

붉은 게는 도무지 나올생각을 하지않았다.

 

"가만히 있어야 나오지."

 

"암만 해봐라, 그게 나오나..."

 

내가 한마디하자 옆에있던 제논도 거들었다.

 

 

 

...

 

4월 8일, 오후 11시.

 

 

바사는 조용히 어둠에 잠긴 브레멘의 항구로 들어었다.

 

온통 사방은 어두운 가운데 예인선의 등불은 가물가물 사그라들고, 선창의 화톳불만이 군데군데

 

몰려드는 어둠을 쫓고있었다.

 

이미 교역소는 문을 닫은지 오래였고,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여기서 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에야 뭐라도 할 수 있을것 같다.

 

나는 부관과 항해사를 데리고 가까운 식당 겸 여관을 찾았다.

 

브레멘은 그로닝겐보단 큰 도시라, 항구 가까이 여관과 식당이 즐비하게 있어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조용한 밤.

 

내가 묵은 2층 창문 밖으로 한차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 문득 잠에깼다.

 

창문을 열고 거리를 내다보니 한무리의 주당들이 뭐가 신나는지 혀가꼬부라져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

 

그리고 그 거리의 벤치엔 발간 점하나가 빛났다.

 

항해사 제논의 얼굴이, 그가 담배를 빨때마다 발갛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고 있었다.

 

다시금 이 독일의 도시는 고요한 심해로 한없이 침전했다.

 

 

 

...

 

 

4월 9일, 이른 아침.

 

 

아침엔 간단하게 감자스튜와 빵을 먹으니 커피가 후식으로 나왔다.

 

커피를 그저 물에 같이 끓여낸 아라비아식 커피로, 매우 쓰지만 커피 나름의 풍미가 그만큼 강했다.

 

어제의 그 조용했던 밤의 도시는 아침이 되어 해가 떠오르자 언제그랬냐는듯이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맨 먼저, 가까운 도시에서 가져온 상품들이 시세가 어떤지를 확인했다.

 

어차피 가까운 도시에서 가져온 것들이 별다른 큰 이유없이 비쌀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나, 오히려 시세가 떨어지면 떨어졌지 오르진 않았다.

 

그로닝겐은 도시가 작아 수요가 없어 거래자체가 문제였지만

 

브레멘은 도시가 커도 상품의 원산지가 가까워 그 물량이 풍부한게 문제였다.

 

그렇지만 이 도시는 예로부터 계승된 수공업과 공업이 발달되어 공업품의 가격이 쌌다.

 

가격이 싼 물건들은 이것저것 있었지만, 자금은 한정되어 있고- 무엇보다 배가 작았다!

 

그래서 나와 에이미가 상의해서 하나 고른것은 면의 원단이었다.

 

뽀얀 목화로 만든 이 면의 원단은 펼치면 사람키만큼 넓은 것인데,

 

이것을 이용해서 각종 의류나 의료용품, 공업품으로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하다.

 

가장 싼 물건은 아니었지만 가장 팔기좋은 물품이기도했다.

 

나는 이것은 30두루마리 정도 사기로했다.

 

 

비록 면 자체는 가벼웠지만 이것을 둘둘말아 접으니 상당히 무거워져서

 

선원들을 이것을 나르는데 꽤나 애를 먹어야했다.

 

게다가 배에 실으니 저번에 실었던 주괴에 버금가는 무게였다.

 

"이게 제값을 받아야할텐데."

 

"선장님, 자금은 괜찮은가요?"

 

"어느정도는 있어. 암스테르담에서의 일로. 반정도 남았어. 이제 함부르크만 들렸다가 런던으로 가자.

런던은 대도시니까 수요는 언제나 있을거야."

 

또 속절없이 항구에서 배는 떠났다.

 

들어올때에비해 나갈때의 바사는 훨씬 움직임이 둔중해져서.

 

선원들과 바다에 경력이 많은 제논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이 파란눈의 아가씨는 상당히 아쉬운듯 했다.

 

그간 계속해서 된다면 그저 잠만자고 물건들만 사모으고 떠났을뿐이니

 

그녀로서는 이 반복되는 생활과 별 신선할게 없는 선상의 일이 따분하기도 할 것이다.

 

"함부르크는 큰 도시야. 거기서 하루나 이틀, 머물렀다가자."

 

"정말요?"

 

"응."

 

아아, 정말이지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족함 없이 수당을 주고,

 

자금이없어 고민하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