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을 포함한 사방에 안개가 깔려서 위치를 분간할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 이곳에 떠있는 한 배가 있다. 크기는 보통 범선보다는 작은 정도이며 모양은 대체적으로 폴리그드형(*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과거 유럽의 선박의 형태)을 띠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주변이지만 선박은 방향을 제대로 정했는지 방향의 흔들림 없이 곧게 나아갔다.

 

"이 방향이 맞습니까 사제님?"

 키를 조종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향해 물었다.

"맞단다, 신도여. 이제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거든... 방향 감각을 최대한 유지해주겠니?"

 사제라고 불리는 사람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높은 톤을 가지고 있었다. 키를 조종하는 사람이 사제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사제의 성별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에 가까웠다. 아니, 바디라인이 전체적으로 모래시계를 연상시킬만큼 잘록한 허리를 가지고 있으며, 외형을 묘사하는데 투박한 직선보다는 유연하고 탄력성인 느낌을 주는 곡선이 필요함을 생각하면 사제의 성별은 여자임에 틀림없다.

 

"저기...저길 좀 보십시오 사제님. 멀리서 날아오는 저것들은 대체 무엇입니까?"

 배에는 약 백명 안팍의 사람들이 타고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선실에 있지 않고 바깥으로 나와있었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욱한 안개속에서 미끄러지듯이 다가오는 비인간적인 존재을 발견했다. 검은색도 아니고 투명색도 아닌 묘하게 바다빛과 유사한 연한 청록색을 띄고 있으며, 사람의 형상을 하고있다고는 해도 해골밖에 가지지 않은 자들이 닳아빠진 망토를 두르고 선박의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합니까 사제님?"

"사제님!"

"이들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밖에 나와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곳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그 시선의 끝에서 집중을 받고 있는 자는 나긋하게 답했다.

"걱정마라... 내가 저들에게서 너희들을 살려내겠다. 나는 여러분들을 데리고 신의 축복을 내려드리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절대로, 그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겁니다."

 말을 마친 사제는 평소보다 눈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붉은 눈동자에 전에 없던 빛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녀의 몸 전체에는 검은색 오오라가 작렬하고 있었다.

 그 외의 외양변화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잠시 후 선박 위 사람들을 두렵게 만든 존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감춰갔다.

"대... 대단합니다 사제님. 역시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군요."

 맹목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수 없는 신도가 사제를 향해 감탄을 했다.

"그런 믿음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도들의 사제찬양을 하기 시작하자 사제는 가볍게 웃어보이며 뱃머리를 향해 걸어나갔다. 이렇게 목적지를 향하는 것도 몇 번째일까. 이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그녀의 일상이니까.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섬으로 보이는 검은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형상은 배를 몰수록 크게 다가왔다.

"여기가 그곳입니까?"

 추종자의 질문에 여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제의 표정은 귀찮다는 의사가 담겨져있지만, 남몰래 올라가 있는 입꼬리와 주변 명암속에 교묘히 숨겨져 있는 눈빛은 딱봐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추종자들은 오랜 항해에 이어서 깊은 동굴까지 쉴틈없이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여자가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행진은 계속되었고, 비슷비슷한 풍경들 역시 계속해서 지나갔다. 나뭇잎이 떨어져있거나, 풀들이 말라버린 풍경들을 추종자들은 의아해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지식을 총동원해도 지구상의 이런 풍경이 자연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떨어져 있으니 아마도 가을, 겨울의 중간 시기인 것 같은데, 막상 풀들은 계속 자라나고 있어. 더군다나 노란색이 아닌 푸른색으로 말라버리고 있다니... 이런 곳은 정말로 거미의 신만을 위한 성소일지도 모르겠군."

 아, 이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 사람들의 머리가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활용되었으면 호랑이 굴에서도 빠져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추종자들에게 그 이상의 이성은 사치로 여기는 듯하다. 거미의 신이 존재하는 성소에서 사소한 의문은 곧 반항을 의미하니까.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이 살고 있는 성소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렇군요. 곳곳에서 보이는 새끼 거미들도 우리들을 반기는 것 같습니다."
"네. 여러분의 신앙심은 보고계시는 거미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는군요."

이어서 동굴 오른쪽에서 나오는 거대한 거미가 나왔다. 여자는 이 거미의 신이라 불리는 생명체에게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 당신들의 신성심을 우리의 심에게 보여줄 때가 왔습니다. 모두들 엎드려서 신을 향해 엎드려 경배를 해주십시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제 그대들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그대들을 위한 마지막 찬송가를 제가 불러드리겠습니다."
 여자의 말투가 의미심장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진정 신성심이 깊은 자는 거미의 포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순진한 추종자들은 우두머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라 거미의 신 앞에서 엎드리기 시작했다. 진짜로 그 자세를 취하라는 의미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여자는 행복함을 감출 수 없어서 추종자에게 등을 보인 채 소리없이 웃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들으면 유용한 작선자의 추천 브금
 
 처음에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사제의 성별에 의심을 줄만큼 낮고 음산했다. 그 목소리 톤이 죽 유지되나 싶었더니 조금의 음상승이 나타났다가 다시 초반의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아아...아↘, 아아...아↘..."
 

"끄아..."
 지르다 만 비명소리가 추종자의 앞줄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래는 가벼운 탄성을 내다가 다시 분위기를 무겁게 깔고갔다. 그러나 가라앉은 노래의 분위기는 처음보다도 더 암울해져가고 있었다.

 

 노래소리에 비명소리가 묻히는 낌새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서 현황을 바라본 그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미의 신이 마구잡이로 추종자를 포식하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만큼의 두께를 가진 두개의 굵은 이빨이 어리석은 신도들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가엾게 죽어나가는 이들의 심정을 반영하는 듯 노랫소리는 커져만 갔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두려워 마십시오... 호호... 이것도 한 과정일 뿐입니다!"

 우두머리 여자가 추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동안에도 거미의 신이라 불리는 생명체는 포식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이제서야 추종자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의 그릇된 신앙과 현실을. 그러나 너무 늦었다.

"어? 이게 뭐야?"
"새끼거미들이... 몸을 타고 올라온다!"
"빨리 떼어내! 여기서 벗어나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들이 살아남기에는. 새끼거미들은 추종자들을 떼거지로 덮쳐서 신체 구석구석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바닥을 잴 수 없을 정도의 무거운 분위기를 깨는 또다른 노래소리가 등장했다. 어둠속에서 명확히 구분되는 한 사람의 높은 소리, 그것은 깊은 동굴속에서 어리석은 추종자를 덮칠때 그들이 지를 수 있는 비명소리의 희망을 골라낸 듯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비명, 쓰러져가는 사람들. 이것들이 많아질수록 한 여자의 웃음소리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이제는 찬송가를 부르는 주체가 사제인지도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체를 알지 못했어도 끔찍함을 배가시키는 노래는 이어졌다.

"사제님, 정신차리세요! 이러다가는 사제님마저..."
"멍청아, 아직도 꿈을 꾸고 있냐? 저 사람은 단지 우리를 저 괴물의 반찬거리로 만드려고 하는거야!"
"반찬거리라면...?"
"그야 당연히 잡아먹는 거겠..."
 도망치는 추종자들의 말문이, 아니 입이 막혔다. 대화의 말문이 아닌, 입이, 그리고 온몸이 막혀졌다. 거미줄, 사제의 거미줄에 몸이 묶였다.

"그 말대로란다."
"우우우, 우웁..."
 사제는 계속해서 거미줄을 내뿜었고, 그 줄은 추종자들의 본모습을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몸을 감았다. 결과는, 그들의 믿었던 거미의 신에게 잡아먹히는 아주 간단한, 그리고 이 현장의 가해자에게는 전과 다름없는 결과였다.

 

"살... 살려주십시오 사제님!"
 평소에 사제가 아꼈던 추종자도 이 행렬에 참가했다. 그 역시 다른 이들처럼 도망을 치다가 사제에게 달라붙어 애원하기 시작했다. 애원소리를 듣는 여자 역시 이 추종자를 평소에 총애했기 때문에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한 모션을 취해보였다. 가장 맹목적인 신앙심을 보여줬으니 결과적으로 먹잇감이라 해도 감사의 표시를 드러내는 것이 도리인듯 했다.

'... 뭐지?'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무언가가 몸속에서 잠시 되살아나는듯한 느낌을 여사제는는 잠시 받았다. 이것은 모션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게 이 추종자의 생사까지 가르는데 미치지는 못했다.

"알았다."
 살려준다는 말은 아니었다. 추종자는 좀 다르게 인지했을지도 모른다. 사제는 그 추종자에게 마지막 선물을 해주기 위해 새끼 거미들을 물러나게 했다. 이어지는 추종자와의 갑작스러운 포옹.

"길은 내가 잘 알아..."

 당황해하는 신도를 무시하고 사제는 입술을 들이밀었다! 얼떨결에 사제와 추종자 사이에서 입맞춤이 이어졌다. 놀라긴 했지만 추종자는 피하지 않는 듯 했다.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순간이지만 이런 순간을 얼마나 고대해왔는지 모른다. 이성의 이성을 사로잡아갈만한 외모의 소유자의 스킨십...

 그러나 환상의 지속시간은 길지 못했다. 무아지경에 빠져 이 순간을 오랫동안 지속시키기 위해 팔을 들어 거센 포옹을 이어가려는 신도는 자신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주는 마지막 안식이다. 느낌이 어때? ...뜨겁지...?"
 사제의 요염한 목소리가 귓가에 전해졌다. 대사뿐만이 아니라 따뜻한 느낌이 귀속을 타고 들어오는 것도, 마음 한구석에서도 그런 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느김은 한시바삐 도망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이성을 마비시켰다. 더이상의 생존가능성은 0%에 육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종자는 할말을 잃었다는 듯이 멍하니 사제가 동굴의 바깥쪽으로 퇴장하는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이 종교에 바친 행위에 대한 후회감이 그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뒤에서 거미의 신이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이어서 끊임없이, 남자여자 구분없이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살려주세요! 여기... 누구 없나요오오오오!!!!"
숨이 멎기 직전까지 한계치의 음량을 출력해내는 인간의 절박함을... 사제는 가만히 즐기고 있었다. 이게 그녀의 삶이었으니까.

"끄흐으으윽!"
동굴 밖에서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밖에도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나보군."
그녀는 하염없이 죽어가는 추종자들을 뒤로하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살아 돌아갈 수 있는 자는, 거미 여왕을 빼고는 단 한명도 없으니까.

<계속>

 

 

<작품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원작vs팬픽 설정 비교>

 

쓰레쉬

 

원작 : 먼 옛날, 비전의 지식을 수집하고 보호하는 사명을 맡은 기사단에 쓰레쉬가 있었습니다. 그의 역할은 이들의 성과를 보존하는 지하 창고의 관리자였는데, 그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방 안을 가득채운 암흑 마법이 그를 타락시켰습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가지고 노는데 흥미가 생긴 찰나, 쇠사슬에 묶여들어온 사내가 그의 눈 앞에 나타납니다. 자신의 몸에 마력을 주사한 나머지 뛰어난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고 쓰레쉬는 이 사내의 고문을 즐겼습니다.

 어느 순간, 군도의 중심부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이 터져 살아있는 모든 생물체를 언데드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시기상 언데드의 몸을 가진 이후 루시안과 세나와 대면을 해 세나의 영혼을 랜턴 안에 가두는데 성공한듯 합니다.

 

이 스토리는 그림자 군도 스토리 개편이 된 이후의, 즉 현재의 배경입니다.

 

팬픽(현 작품) : 쓰레쉬는 죄수들을 고문하는걸 즐겨했던 악명 높은 교도관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교도관에서 죄수들의 폭동이 일어났고 죄수들은 이 악명높은 교도관을 교수형으로 처리합니다. 그가 생전에 고문수단으로 즐겨썼던 사슬은 영혼만 남은채 떠돌아다니는 그의 곁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스토리는 그림자 군도 스토리 개편이 되기 이전의, 즉 예전 배경입니다.

 

 원작과 별 차이가 없음을 감안해도, 이 작품이 지어진 시기를 생각하면 예전 스토리를 떠올리면서 쓰레쉬를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림자 군도 소속 챔피언으로 등록되어있는 그는 최근 전장에서의 활동을 멈추고 자신의 소속지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사건의 중심인물, 루시안에게 접근해서 그동안 쌓아온 악연을 정리하자고 제안합니다.

 

<글쓴이의 말>

 

 전과달리 추천브금을 삽입했기 때문에 최대한 분위기에 맞춰서, 어울리게 묘사를 하려고 시도했는데 분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졌군요... 작품의 배경과 음악의 분위기가 잘 맞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