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황무지,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이 땅은 녹서스와 아이오니아의 전쟁이 저버린 곳이다. 주변엔 수 없이 찢겨진 시체들과 녹아내린 듯한 사람의 가죽, 그리고 사체의 복부와 이목구비에서 터져나온 피들이 끔찍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악취 속에서 리븐이 입과 코를 막고 걷고있었다. 룬 검은 피로 범벅져 있었고 날 역시 많이 뭉개져 제역할을 못할 지경이었다. 흩날리는 천 옷의 옷자락이 전쟁터에서의 외로움을 감추고 있었다. 그녀는 가벼운 재채기를 내뱉으며 끝없이 걸어나갔다. 터를 벋어나려하자 주변에서 풍겨오는 초록빛의 연기가 자욱하게 피부를 찌르는 듯한 자극을 주고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채 쌓여있는 사체들을 넘으며 걸어나갔다. 밟으면 금세 뭉개지는 시체들은 불어오는 바람에라도 시들시들 거릴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쓰러진채 녹아있는 동료들의 시체를 볼때마다 그녀의 영광스럽던 녹서스의 신념이 새까맣게 물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용히 눈시울을 붉히며 소리없이 울었다. 초록빛의 생화학 잔상이 그녀의 눈물과 함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그녀를 집어삼킬 듯 했다.

 

 아이오니아의 일, 이만 정예군과 자신의 일, 이천 군대가 신지드의 손아귀에 놀아난 그 때를 생각하니 등골엔 소름이 돋을 뿐이었다. 복잡한 감정과 함께 어딘가로 향하는 그녀의 손엔 룬 표식이 빛나는 검이 있었다. 그녀는 순간 울컥했는지 검을 잡고있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얼마가지않아 그녀는 주저앉으며 검을 바닥에 내리꽂은채 절규하며 눈물을 훔쳤다. 룬 검을 어루만지는 듯 했지만, 억울함과 분노에 삼켜진 그녀의 손길은 룬 검을 긁어대었다.

 

 외마디와 함께 그녀는 자신의 룬 검을 치켜세웠다. 그녀는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 룬 검을 바닥에 내리쳤다. 날이 무뎌진 룬 검은 푸른빛을 일렁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작은 신음과 함께 리븐은 계속해서 내리쳤다. 그러자 단단하기 그지없던 룬 검이 저버리듯 검 전체에 금방이라도 깨질듯한 금이 갔다. 리븐은 숨을 돌리며 마지막으로 룬 검을 치켜들었다. 있는 힘을 쏟아부으며 바닥에 내리쳤다. 적지않은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린 룬 검. 바닥에 나뒹구는 룬 검의 잔해들은 연기가 일어나며 증발해버렸다. 리븐은 짧막하게 남은 룬 검을 쥐고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그렇게 녹서스를 저버렸다.

 

 

 

 


-녹서스 사령부

 

 

 

 


"아이오니아 침공 작전은 실패인가?"

 

 

 


 애꾸 눈의 녹서스 장군이 탁자에 올려둔 와인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탁자 너머에 있는 다리우스는 고개를 저으며 실패만은 아닐거라고 대답했다. 장군은 와인잔에 든 술을 한모금 들이 마시고는 잔을 탁자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뭔가 고뇌하듯 잠시 와인잔에 남아있는 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 남성. 매우 야윈 신체에 몸 구석구석에 붕대를 감고는 왼쪽 팔엔 자기 덩치만한 방패를 든, 미치광이 화학자 신지드였다. 그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회의실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전쟁터에서의 자신이 저지른 짓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풀어놓았다.

 

 

 


"아이오니아와 아군의 치열한 전쟁속에 생화학 폭탄을 풀어놓았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애꾸 장군과 다리우스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더군다나 다리우스는 꺼림칙한 신지드의 웃음소리와 행동이 화가 난듯 큰소리로 외쳤다.

 

 

 


"그 소린 우리 병사들까지 몰살시켰다는 건가?"

 

 

 


 신지드는 개의치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우스는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애꾸 장군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그저 와인잔에 술을 따를 뿐이었다. 다리우스는 이마에 손을 맞대며 고개를 떨구었다. 신지드의 정신나간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장군님, 제 약의 성능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애꾸 장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신지드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생존자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애꾸 장군은 신지드의 말에 착잡한 표정으로 이빨을 질끈거렸다. 다리우스 역시 미치광이 박사의 거침없는 행동을 저지할 순 없을 것 같았다. 애꾸 장군은 자신의 갑주 안쪽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더니 탁자위에 있는 만년필을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종이 상단 부분이 글씨를 적고는...


[아이오니아 침공 전사자 명단]


 신지드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실을 나선다. 문 중턱을 넘을 즈음, 신지드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눈살을 찌푸리고서 뭔가를 강조하듯이 입을 연다.

 

 

 


"아, 그리고 그 리븐이라는 행동대장 녀석은 꼭 희생자 명단에 넣으시길 바랍니다."

 

 

 


 신지드의 말에 다리우스는 탁자를 쌔게 내리쳤다. 탁자위의 자료집과 술병, 와인잔들이 심하게 흔들렸다. 술병은 심히 넘어져 한쪽에 쏠려있는 자료집들을 적시었다. 애꾸 장군은 고심하는 표정으로 희생자들의 명단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만년필이 종이와 떨어지는 시점에 잠시 머뭇하더니 끝내 이름을 적었다.


[리븐]

 

 

 


"장군, 아직 확신하기엔...."

 

 

 


 다리우스가 말했다. 그러자 애꾸 장군은 고개를 들어올리며 다리우스를 쳐다보았다. 다리우스는 인상을 찌푸린 장군의 표정에 주춤거렸다. 애꾸 장군은 단호히 말했다.

 

 

 


"신지드의 약품들은 죄다 치명적이네. 그러니 쓸데없이 수색군을 보낼 필요가 없을 걸세. 시간 낭비하지말고 병사를 재정비하세. 데마시아와의 전투가 코앞이니...."

 

 

 


 그리곤 희생자 명단을 들고서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겨진 다리우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주먹을 불끈 쥔채 그는 멍하니 밖의 막사들만 응시하고 있었다.

 


-녹서스/ 자운 국경부근

 


 우거진 숲을 격렬하게 헤쳐나가는 리븐. 거친 나뭇가지가 얼굴에 타닥타닥 튀며 지나갔다. 리븐은 꿋꿋하게 수풀을 검으로 헤쳐나갔다. 그러자 눈 앞엔 어느 외딴 지대가 나타났다. 외딴 곳의 중앙엔 무지막지하게 큰 고목 나무가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그 나무의 주변엔 다른 나무들은 없었다. 리븐은 뭔가 낌새를 느끼며 검술 자세를 취했다.

 

 외진곳에 나무 하나만 있자하니 무언가 불안감을 느낀 리븐은 천천히 뒷걸음질 한다. 그러자 고목 나무가 약간 움찔거리더니 나무의 밑뿌리 부분이 스물스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븐은 놀란 기색이 염력했다. 나무의 뿌리 부근은 리븐을 향해 점점 더 빨리 다가왔다. 그리곤 위로 솓구쳐 리븐을 감쌀 것처럼 뿌리를 곤두세우더니, 나무의 본체가 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븐은 룬검을 가로베어 뿌리들을 잘라냈다. 그러나 뒤이어 오는 뿌리들에 쉽게 발이 잡힌 리븐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끝내 나무의 본체는 괴물의 모습을 형상화 하였다. 나무 기둥이 갈라지더니 입과 눈을 만들고 굵은 나뭇가지들이 팔과 다리를 만들어냈다. 나무 괴물은 포효하듯이 울부짖었다.

 

 

 


"워어ㅓ ~ !"

 

 

 


 괴물은 묶여있는 리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표정을 찌푸리고는 리븐을 훑어보았다. 지친듯한 그녀의 몰꼴과 다 부러진채 제역할을 못할것만 같은 검. 괴물은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님을 인식하고는 뿌리를 서서히 풀어내었다. 리븐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하는거지?"

 

 

 

 


 리븐이 말했다. 그러자 나무 괴물은 자신을 마오카이라고 칭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리븐은 강력한 마법을 시전하는 괴물 나무가 눈앞에 있음에 큰 놀라울 따름이었다. 리븐은 검을 내리고서 마오카이에게 다가갔다.

 

 

 


"너는 룬 전쟁으로 인한 피조물...."

 

 

 


"...."

 

 

 


 리븐은 마오카이가  감히 공격을 할거라는 생각을 접고서 말을 이어갔다. 마오카이 역시 이방인이 반가웠는지 리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마오카이, 너는 녹서스를 혐오하나?"

 

 

 


"녹서스, 그곳은 피와 힘만이 결합된 끔찍한 조직이다."

 

 

 


"그래, 혐오하나?"

 

 

 


 마오카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뭇가지들을 흔들어댔다. 리븐은 고개를 떨구고서 자신이 생각했던 영광스런 녹서스가 전부 다 가식과 부정이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룬... 검, 너는 녹서스 병사인가?"

 

 

 

 


 이번엔 마오카이가 질문을 던졌다. 리븐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녹서스... 였었지."

 

 

 


 마오카이는 리븐의 말에 자신의 몸통 뒤에 숨겨둔 나뭇가지를 보여주었다. 금방이라도 주문을 시전할 수 있었던 나뭇가지에선 강력한 주문이 흘러들어 있었다. 리븐은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지만, 마오카이의 녹서스에 대한 혐오심이 우스워 피식 거리기도 했다.

 

 

 


"어지간히 혐오스러운가 보군, 마오카이."

 

 

 


"...."

 

 

 


 마오카이가 몸을 움직이자 끼기긱 거리는 나무 소리가 새어나왔다. 마오카이는 녹서스와 자운의 국경에 자리잡은 숲지기같은 존재였다. 이어 마오카이는 팔같은 가지로 북쪽을 가리키더니 자운이라고 밝혔다. 리븐은 약간 인상을 찌푸린채 마오카이가 가리킨 곳을 응시하였다. 마오카이는 리븐의 기분에 맞춰주려는 듯이 이번엔 북서쪽을 가리키고는 필트오버와 프렐요드가 있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리븐의 표정은 제 모습을 찾았다. 그리곤 그녀는 천천히 북서쪽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너의 이름...."

 

 

 


 마오카이는 살짝 아쉬운 듯이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고선 단호히 대답했다.

 

 

 


"추방자... 리븐."

 

 

 


 마오카이는 리븐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몸에 달려있는 수많은 가지들 중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가지를 꺽어 리븐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곤 그 가지엔 주문의 힘이 깃들어있는 특별한 것이라 말했다. 리븐은 마오카이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마오카이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쇠가시 산맥을 넘어갈 땐 조심하기를."

 

 

 


 마오카이는 서서히 고목 모습으로 돌아갔다. 외진 곳에 주변엔 나무가없는 거대한 나무로 자리를 되찾아갔다. 뒤이어 리븐은 산골짜기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매우 빠른 걸음으로 북서쪽에 있는 프렐요드나 필트오버를 향하는 듯 했다.

 녹서스에서는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리우스는 막사 안에서 둥근 어깨 보호대를 끼워 맞추고는 천천히 중무장하기 시작한다. 그의 낡은 갑옷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칼날에 베인 자국과 화살이 꽂혔던 자국이 덥수룩 했다.

 

 

 


"다리우스, 준비는 다 되었나?"

 

 

 


 애꾸 장군이 막사의 천을 제끼며 들어섰다. 다리우스는 그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대한 도끼를 들어올렸다. 그리곤 걸이에 걸려있는 붉그스름한 망토를 걸치며 무장 준비를 끝냈다. 애꾸 장군은 큰 몸집의 다리우스가 매우 듬직하다는 듯이 표정을 밝혔다.

 

 

 


"병력은 보병과 뒤 쿠토 후속 부대, 자운의 병기들 뿐입니까?"

 

 

 


 다리우스가 말했다. 애꾸 장군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우스는 입을 다문채 막사를 걸어나갔다. 그러자 눈 앞엔 수많은 보병들과 뒤 쿠토 가문의 후속 부대가 다리우스를 맞이하였다. 그는 아쉽지 않다는 듯이 피식 웃고선 눈앞에 있는 거대한 병력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그에 비해 애꾸 장군은 보병들과 후속 지원 병력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치명적인 허점을 들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리우스는 곧내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애꾸 장군은 고개를 절레 저으며 지휘 체계를 다리우스에게 맡기고 사령부로 걸음을 떼려했다.

 

 

 


"아아, 그리고 다리우스."

 

 

 


"...?"

 

 

 


 애꾸 장군의 부름에 다리우스는 고개를 돌렸다. 장군은 조심스레 리븐을 언급했다.

 

 

 


"리븐에 대한 일은 잊게나. 내가 잘 처리해 볼테니..."

 

 

 


 다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꾸 장군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다리우스는 이제 곧 전쟁을 치르려는 자신의 군집에 사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중간중간에 도끼를 들어올리며 손동작을 더했다. 그에 집중하는 병사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 다리우스를 올려다 보고있었다.

 

 

 


"영광스런 녹서스의 형제들이여. 피끓는 전투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제 곧 가여운 데마시아의 졸챙이들과의 장난이 시작될 것이다. 그대들의 피와 살기로 데마시아의 영토를 집어 삼키리라!"

 

 

 


"와아아 - !"

 

 

 


 병사들은 열광적인 함성을 지르며 다리우스의 지휘 아래에 녹서스의 국경을 넘어섰다. 이에 맞선 데마시아는 신속한 첩보력은 데마시아의 군대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자르반 4세는 혹시 모를 변수에 아이오니아와 프렐요드의 아바로사 부족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녹서스는 거대한 군단을 이끌며 데마시아로 진격했다. 뒤이어 자운의 무시무시한 기계들을 더해 녹서스의 무자비함에 힘을 더했다. 두 세력과 연합군의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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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카이는 리메이크 전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팬픽 이렇게 쓰는거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