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군도 어딘가의 동굴속에서 일어난 끔찍한 대량살인사건. 그 사건의 중심에는 그들이 잡아먹히기 직전까지 믿었던 사제가 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녀가 내뿜어내는 거미줄과 거미떼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

"자... 네가 가진 것을 나에게 주겠니?"
 아름다운 곡선미를 돋보이는 옷을 입은 그녀는 자신의 가슴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머그컵정도의 크기를 가진 컵은 아니었지만 소주잔을 떠올릴만한 사이즈의 작은 잔이었다. 그렇다해도 자그마한 물체를 가슴속에 껴넣고다닐 정도라는건 보통 여성들과 비교해서 우월한 크기를 지니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성인 남성보다 더 큰 체격을 가진 거미는 사제가 들이민 자그만 잔에 굵고 긴 이빨 하나를 꽂았다. 그 이빨의 끝에서 정체불명의 액체가 나와서 잔을 채웠다. 그 잔을 들이마신 사제는 출구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러고보니 평소에는 들리지않는 소리가 들려왔었지. 어머, 설마 그 일이 벌어진거야?"

 신도들이 잡아먹히는 동안에도 났을법한 연속성을 가진 소리가 들려왔다. 사제는 쓰러진 신도들을 등뒤로 하고 동굴의 바깥쪽으로 걸어나갔다.

 잔을 다시 자신의 품속으로 넣으면서.

 

영혼 감옥으로 갇힌 공간의 넓이는 넓지 않았다. 넓은 공간을 가둬봤자 루시안에게 더 득이될거라는 생각은 쓰레쉬의 계산내에 있었다. 세나가 썼던 총 한정만을 장비한 채 '같이 싸우고 있다'는 말을 들먹인 루시안과 2차전을 벌인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쓰레쉬가 만들어낸 감옥의 벽 일부는 부서져서 구멍이 뚫린 곳이 있었다. 루시안이 부상당하면서 비의도적으로 깨져버린건지, 쓰레쉬의 사슬이 상대를 맞추지 못해 부서진건지는 모르겠다.

"감옥이 부서졌는데도 넌 이 근방에서 벗어나지 않고있는데, 대체 왜 그런거지? 네 입장에서보면 거리를 벌린채 싸우는게 더 나을텐데?"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루시안의 대결방식에 아리송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나를 위해 배경을 이곳으로 옮겼던 것처럼, 나도 너를 위해 일부러 거리를 좁혀주고 있는거란 말이지."

"내가 보기에는 어차피 질 대결을 핸디캡으로 인해 패배했다고 핑계대는것처럼 보인다!"
 사슬이 춤추고 탄환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마당. 신경전을 끝낸건 루시안이었다. 그는 이번 쓰레쉬의 도발에 반응하지 않고 머리를 겨냥해서 적중했기 때문이다.

"아아악!"

 얼굴을 싸매고 고통스러워하는 틈을 타서 루시안은 쓰레쉬에게 뺏긴 나머지 총 한 정을 주워 무장했다.

"마무리다."
 루시안은 두 총의 슬라이드를 맞부딪쳤다. 총의 심장을 이루고있는듯한 빛이 총구를 붉게 달궜다. 동시에 탄환이 나아갈 궤적을 푸른색 빛이 투사해줬다.

"꿰뚫는 빛."
 그 빛이 사슬과 쓰레쉬를 관통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나."
 나무에 기대어 주저앉은 쓰레쉬를 향해 총을 겨눈 루시안. 쓰레쉬는 말없이 손을 들어 루시안의 총구를 가로막았다.

"과연. 날 이기기 위해 밤낮으로 준비한 결과를 맛보았군. 넌 충분한 자격이 있다. 내 마지막으로 보상을 받을 생각있나."
 보상이라는 말에 눈이 찌푸려진 루시안을 깔끔히 무시하고 쓰레쉬는 랜턴을 집어서 그에게 보여줬다. 랜턴의 내용물을 경계하면서 응시하고 있던 루시안의 표정이 변했다.

"거짓말하지마라... 이건 함정이야! 세나가 어떻게..."
쓰레쉬가 건네준 랜턴 속에는 세나의 얼굴이 있었다. 루시안은 세나를 죽인 놈을 쓰레쉬라 생각하면서 찾아다녔다. 그런데 패배를 시인하면서 녀석이 건네준 랜턴에는 세나가 있었다.

'무슨 의미지? 세나를 다시 살려내겠다는 의미인건가?'

 루시안의 머리는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이겼으니 세나의 영혼을 돌려준다?"
"승자에게 주는 자그마한 보상이다."
 루시안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미 세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더군다나 그녀의 시신은 땅속에 있다. 그 세나에게 다시 영혼을 부여해서 루시안이 원하는 모습의 세나로 돌아올 거라는 보장도 없다.

 뚜렷한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아서 루시안은 다시 쓰레쉬의 랜턴을 바라보았다. 랜턴 속에는 쓰레쉬가 등 뒤에서 몰래 사슬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루시안은 그 랜턴을 쏴버렸다. 랜턴이 깨지면서 그 안에 담겨있던 모든 영혼이 풀려났다. 도깨비불 같은 형상을 한 물체들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꺄아악!"
"끄아악!"
"아아아-앍!"
 영혼들이 빠져나가는 동시에 비명소리가 들렸다. 쓰레쉬는 무수히 많은 영혼들을 모아놨기 때문에 비명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고, 한동안 숲에는 소음으로 가득찼다. 귀를 막으면서 소음을 최소화하려는 루시안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수많은 영혼 중에서 유독 낮익은 영혼이 루시안의 눈을 끌었다.

 루시안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세나는 죽었다. 쓰레쉬가 보여줬던 것들은 모두 허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이렇게 각인시켜도 지금만큼은 사실이었다.

'이건 진짜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니, 굳이 불러야 할까? 세나의 목소리를 들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녀의 얼굴도 본지 오래였다.

"잡았다."
세나를 향해 손이 다가가는 팔. 그리고 그 팔을 사슬로 잡은 쓰레쉬. 사슬에서는 망령들이 나와서 루시안의 몸 구석구석에 침투하고 있었다.

"그래. 왜 네가 걸은 팬던트에 손때하나 안묻었는지 알 것 같군. 아내의 뒷모습만 보여줘도 이렇게 정신이 팔렸다는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루시안은 지금 쓰레쉬의 사슬에 묶여 모든 행동이 일절 금지된 상태. 즉, 루시안에게 있어서 이 이상 벌어질 싸움은 모두 자신이 공격받는다는 뜻이다.

 

 잠시 후 펼쳐진 광경은 참혹했다. 온몸 곳곳이 쓰러져 있는 루시안과 시뻘건 피를 담아낸 낫을 쥐고 당당히 서있는 쓰레쉬, 그리고 같은 소속의 그림자 군도 챔피언 7명이 그 장면을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루시안에게 들릴락말락한 음량으로 그들은 수군거렸다.

 루시안은 약하지 않았다.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스킬들을 써가면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쥘 뻔했으나, 잠시 방황하고 있는 틈에 들어간 쓰레쉬의 기습을 대응하지 못했던 것뿐. 그는 잠시 후 사슬에 손이 묶인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떠한 반전이 있었든지간에 그는 이 싸움의 패자다. 패자의 최후는 '공개 처형'으로 결정되었다.

"유언이라도 할 겸 잠깐 시간을 내줄 수 있나, 쓰레쉬?"

 루시안이 쓰레쉬에게 제안했다.
"좋다. 그러나 그 유언은 내 임의 타이밍에 끊어버리겠다."

루시안은 쓰레쉬의 허락을 받아 시간을 냈는데도 한동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루시안은 한동안 자신이 만들어놓은 침묵을 스스로 깼다.

"내 죽음이 너희들을 얼마나 기쁘게 할 수 있지?"
"뭐?"
"..."
"?!"
 근방의 챔피언들은 모두 할말을 잃었다. 그래도 7명의 챔피언 중 한명이 답을 했다.

"당연한거 아닌가? 동료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다. 그걸 옆에서 같이 축하해주고 기뻐해주는게 잘못된거라고 말하고 싶나?"
"기뻐해? 왜 기뻐해야하는거지? 난 알고있다. 아니, 심지어는 너희들도 알고있지. 너희들은 동료라고 말할 정도의 굳은 유대감을 갖고있지 다는걸. 너희들은 그림자 군도가 가지고있는 언데드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목표는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중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에 지나지 않지. 1년에 한 번, 해로윙을 일으켜서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아갈 정도로 치졸한 수를 쓰는 너희들이 왜 나와 쓰레쉬가 싸우는동안에는 나타나지 않고 내가 패배한 이후에 몰려왔지?"

"그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 않나."
"너희들은 쓰레쉬와 똑같다. 비겁하고, 자기손으로 무언가를 쟁취하기보다는 노력없이 얻으려하지. 귀찮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래서 너희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은 누군가의 불행이지. 그래, 너희들은 자기들의 삶에서 행복하지 못한 거다. 그걸 애써 부정하기위해 남의 불행에 기뻐하는, '새디스트'같은 행동을 하는거지."
 루시안의 말을 듣고있는 모두가 콧방귀를 뀌거나 무시했다.

 단 한 명만 빼고.

 그 한명은 다른 챔피언들과 비교해서 표면적인 불쾌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마력을 집중하는듯한 자세로 돌진하려는 태도는 주변에 의해 중단되었다. 루시안은 남몰래 입술을 씰룩거리고 그 한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있는 너는 왜 화를 낸거지?"
​"왜냐니?"
 그 사람은 당황해하면서 뚜렵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너무 기쁜나머지 루시안을 향해 일격을 날리려 하지는 않았을텐데...

"...가능성이 있겠군.​"

 자신에게 말하는걸 아는 사람이 루시안에게 말했다.

"무슨 가능성을 말하는거지?"
 루시안은 화를 내면서 자신을 향해 달려들려했던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옆에 있는 챔피언들과 마찬가지로 평소와 변함없는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 같았다.

'정말 가능성일 뿐이지만...'

"그건..."
 루시안의 목에 낫이 한차례 지나갔다. 말문이 막힌채 그는 가만히 있었다.

루시안의 숨통이 끊어졌다.

"내가 너무 오랜 시간을 녀석에게 준 것 같군. 이제 볼일 끝났으니 모두 흩어지자. 어차피 녀석의 시체는 알아서 썩겠지."

"그렇겠지. 수고했다 쓰레쉬."
"고맙군 헤카림."
 벌떼같이 모여든 때는 언제고, 루시안의 처형 이후의 챔피언들은 그세 흩어져버렸다. 단 한명이 그의 몸뚱아리와 잘려진 얼굴을 보고 있을 뿐.

''신경쓰지 말아라. 어차피 죽기 일보직전의 자의 발악이었을 뿐이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당신을 섬긴 이후에 잡념이 생기지 않아 기쁩니다. 그리고 이 젊음과 힘을 하사해주심에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좋다. 나를 위한 신념, 마음에 드는군. 너는 나의 뜻을 퍼뜨리는 대리인의 자리로서 적합한 인간이다.''

 그림자 군도에 위치하고 있는 전장, 뒤틀린 숲. 전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생각보다 저조한 이용률을 가진 전장이다. 그러나 단 한명은 저조한 이용률에 이득을 보고있다. 전장의 가운데에 자리잡고있는듯한 거대한 생명체. 사제는 고요한 전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뜨면 전장에 있는 생명체가 거대한 동굴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있다. 어딘가의 장소로 이동한 것이다. 자신의 신과 대화하기 위해서.

"한번도 당신과는 상관없는 활동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 신을 향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하니까요...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을 향한 무한한 충성을 바치겠다고 멩세합니다. 당신을 따르는 엘리스,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순간 뒤틀린 숲에서 엄청난 전율을 내뿌는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계속>​

<작품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원작vs팬픽 설정 비교>

 

뒤틀린 숲

 

<원작> : 아주 오래전의 설정에 의하면 뒤틀린 숲은 자운 근방에 있는 마력이 남발했던 숲으로, 마오카이 역시 이 숲 출신이었으며 녹턴 역시 최초로 발견된 장소라고 합니다. 그러나 맵이 리메이크됨과 동시에 그 설정도 바뀌어 현재의 뒤틀린 숲의 위치는 그림자 군도 깊은 곳의 어느 고대 유적입니다. 마오카이도 이에 맞춰 그림자 군도 출신으로 스토리가 변경되었습니다. 리그오브레전드의 맵 중 하나입니다.

 

<팬픽> : 원작의 설정을 반영했습니다. 추가된 설정은 다른 전장에 비해 이용률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아무도 이 곳을 사용하지 않을 때 엘리스는 자신의 신과 대화를 하는 장소로 이용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전장에서 기도를 올리는 엘리스지만 그녀가 따르는 신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전장에 존재하지 않고 어느 장소로 이동합니다.

 

<글쓴이의 말>

 

 한편당 분량을 줄여야 할 것 같네요. 작성하는데 너무 힘들뿐더러 독자들에게 너무 긴 스크롤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