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른다. 쓰레쉬가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해준 것이, 고정점의 변경이 우연히 루시안에게 옮겨진 것일지도 모르나 분명한 것은 루시안을 상대로 계획한 큰 그림이 만들어졌음은 부정할 수 없다.

 쓰레쉬는 날아가는 와중에도 희열을 숨길 수 없었다. 제아무리 루시안이라고해도 이 사슬에 달린 낫이 적중한 상대는 시전자의 자비 없인 풀려날 수 없는 속박에 걸린다는걸.

 ...그렇게 생각했다. 기쁨에 젖은 나머지 예측 범위 이상의 행동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기 전까지는.

 

"어억...?!"
 자신의 낫에 의해 사슬에 묶여있어야 할 상대가 아랑곳하지 않고 발바닥으로 이동을 저지해낸 것이다. 루시안의 속박이 풀린 것은 물론이다.

 쓰레쉬는 자신이 주춤거리는 와중에도 자신의 몸에 총알 두 발이 박혀짐을 느꼈다.

"틈을 주지는 않겠다."

 루시안은 오른팔을 들어 쓰레쉬를 노린 뒤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를 당긴 직후에 총구에서 튀어나온 탄환은 처음에는 별거 없는 탄환이었지만 어느순간부터 푸른빛이 감돌더니 자신의 출발기점인 총보다 훨씬 커진 에너지를 담아내면서 날아왔다.

"'타는 불길'...!"

 자기를 향해 시전한 그 스킬은 전장에 등록된 그의 스킬 중 하나였다. 틀림없이 탄환을 감싼 빛은 쓰레쉬의 코앞에서 노란빛으로 바뀐뒤 십자표식으로 터질 것이다.

'하지만 '타는 불길'의 투사체는 기본 총알의 속도보다 느리다. 터지기전에 내 앞에서 치워버리거나 충격을 가해 상쇄시키면...!'

 그러나 탄환은 푸른빛을 감싼 상태로 터져버렸다. 예상보다 빠른 폭발로 인해 쓰레쉬는 무기를 장비했음에도 당해버리고 말았다. 이후에도 두 발의 총알이 그에게 적중했다.

 한 번의 스킬시전과 두 번의 기본공격을 딜레이없이 이루어낸 루시안이 자세를 바꾸었다. 그는 싸움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앞뒤로 벌려진 다리를 좌우로 재배열한 뒤 두 팔을 앞으로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쏘아낼 공격의 반동을 대비하는듯 상체를 평소보다 더 숙였다.

 

 앞으로 나란히 뻗은 팔.

 그 연장선에 쥐어진 두자루의 권총.

 무언가를 말해야될듯한 클리셰적인 타이밍의 대사.

 소환사는 '빛의 심판'이라는 작명을 해줬지만 그보다 더 상징적인 시전음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세나의 복수다."

 

 쌍권총에서 나오는 탄환은 한 쌍의 별똥별을 떠올릴 정도로 기다란 빛줄기를 뒤에 달고있었다. 그러한 탄환은 몇 초안에 수십발이 날아갔으니 속도의 측면이나 파괴력의 측면에서나 무시하지 못할 위력을 가진게 틀림없다. 쓰레쉬는 별 대책없이 투사체들이 자신의 몸에 박히는걸 허용한 듯했고 한발한발이 그를 적중할 때마다 작은 폭발이 일어나 연기가 일어나 쓰레쉬의 모습을 잠시 감췄다.

 

 날아간 탄환만 해도 백발은 이미 백 발을 넘어갔을 터. 루시안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연기를 향해 걸어나갔다.

  연기가 걷혀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보여진 것은 방패로 쓴게 틀림없는 랜턴이었다. 그 랜턴에서 희미한 원반이 등장했다. 원반의 색깔은 투명했지만 고유의 형태로 인한 빛의 굴절로 인해 루시안도 무슨 형식의 공격이 이루어질지 알았다. 이 스킬에 처음으로 당한게 아니니까. 그러나 안다고 해서 이 스킬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미 늦었으니까.

 

피잉-

 

 원반이 재빠르게 퍼지면서 원반의 지름 내에 있는 공간에 충격파를 가했다. 당연히 루시안도 충격파에 휩쌓였다.
 루시안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허리를 정확히 뚫고 지나간 충격파인지라 날아가거나 뒤로 쓰러졌어야 했는데, 전자와 후자의 중간격인 몸이 기울어진채로 경직되어있는 것이다.

"오호라, 이 스킬... 오랫만이군."

"그리웠지...? 이 스킬을 다시 너에게 쓸 기회가 와서 반가웠다."
쓰레쉬가 자신의 사슬을 주우면서 루시안에게 들릴듯 말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자... 어떤 고통을 선사해줄까?"
마침내 자신의 무기를 줍고 완벽히 재정비를 갖춰낸 쓰레쉬.

"전처럼..."
촤악! 쓰레쉬의 낫이 처음으로, 루시안의 복부를 갈랐다.

"죽지만 않게 외상을 새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처음의 여유로움과 경박한 태도를 모두 버린 채로 루시안을 낫으로 공격하기 시작하는 쓰레쉬. 사슬을 끊임없이 휘두르면서 루시안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있었다.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루시안의 외형 곳곳에 붉은 색이 등장하고 있었다.

"너나 네 파트너나 똑같이 약해... 내 영혼의 수집품으로써, 네 파트너의 옆자리에 있게 해주고 싶군...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냐면 난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그렇게 될테니까!"
'파트너...'

 상처를 입으면서도 정신을 놓지 않으려는 루시안의 눈빛을 풀게 만든 단어, 파트너.

 

 현재로부터 약 3년 전, 그림자 군도.

 루시안은 반려자와 같이 그림자 군도에서 언데드를 상대로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둘은 모두 훌륭한 언데드 헌터였고, 거너이며, 백전불패의 콤비를 선보였다.

 쓰레쉬의 출현 전까지...

 

"어? 어?"

"제길, 몸이 움직이지 않아. 세나, 조심해!"
"조심해야할 사람은 바로 너다, 이 멍청한 녀석!"
 반려자의 이름은 세나. 2vs1교전중 충격파가 둘을 적중했고 이어서 몸이 경직되었다. 루시안은 이 와중에도 반려자를 걱정하였으나 공교롭게도 상대가 고른 대상은 본인이었다.

 

 루시안은 죽기 일보직전까지 이르렀다. 한번만 더 낫으로 공격하면 죽게 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쓰레쉬는 그에게 쉬운 죽음을 선사하지 않았다.

"한낱 언데드 헌터가 나에게 도전하다니... 뼈저린 고통을 선사해주마."

 쓰레쉬는 속박의 힘을 압도한 뒤 강제로 루시안을 집어던졌다. 땅에서 몇 바퀴를 구른 그가 본 다음 장면은 세나를 향해 크게 휘두른 낫과 그것이 움직인 길의 흔적에서 솟아나는 혈액.

"세나! 세나!"

 루시안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면서 쓰레쉬를 향해 쏘았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당시 루시안과 세나의 총은 언데드 중에서 망령을 다스리는 상위 언데드인 쓰레쉬를 상대하기에는 턱도 없는 스펙을 가지고있었다.

 

 루시안과 세나에게 있어서 최악의 언데드가 가진 랜턴이 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알게된 경직의 수단. 망령들이 랜턴에서 튀어나와 이 둘을 덮친 것이었다. 웬만한 밝기가 아니면 육안으로 볼 수 없어서 충격파로 보이게 된 것.

 랜턴이 빛을 발하자 망령들이 세나를 끌고 랜턴 속으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쓰레쉬의 의도를 알아차린 루시안.

절규하는 루시안. 망령에 저항하던 세나도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끝내는 기절했다. 그 당시 세나의 영혼이 쓰레쉬에게 넘어가는 장면을 볼 수밖에 없는 루시안에게 세나는 입을 열었다.

"안녕, 루시..."
 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술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반려자. 루시안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고 동시에 녀석이 앗아간 것. 이제는 기억속에 새겨진 형상마저 희미해져가는 대상이다. 언젠가 팬던트를 자신의 복장에 포함시킨것 같지만, 단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약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때문.

 

 사슬에 공격당하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루시안은 그녀를 생각하자마자 이를 악물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망령들을 떼어낼 방법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우위를 점하고 패배할 수는 없었다.

"꺼져버릴 녀석은..."
 쓰레쉬의 사슬이 날아오는 도중에 짤막하게 회상된 과거. 루시안은 전에 없던 비장한 표정을 내보이며 소리쳤다.

"네녀석이다!"

 순간 루시안의 몸 주위에서 하얀색 장막이 펼쳐졌다. 망령들은 일제히 장막 밖으로 튕겨나갔고, 이제 그에게는 쓰레쉬의 사슬을 피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루시안은 허리를 낮추고 팔을 뒤쪽으로 젖힌다음 쓰레쉬의 옆으로 뛰었다. 사슬이 빗나가고 낫으로 공격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잠시 당황한 쓰레쉬!

"잊지 않겠다. 세나를..."
 잠시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루시안은 자신의 오른팔을 상대를 향해 들어올렸다. 총구가 평소보다 더욱 밝게 빛나면서 스킬이 시전되고 있었다.

"그리고 네 최후를!"
루시안은 오른손에 쥐고 있는 총을 쏘았다. 총구에서 거대한 탄환이 쓰레쉬에게 날아갔다. 쓰레쉬는 다시 한번 자신의 랜턴으로 방어막을 펼쳐서 탄환을 막아내려고 했으나 탄환이 날아오는 도중 터져버려서 방어막이 깨지고 말았다.
"크아아악!"
 
 언데드라 해도 누적되어가는 피해량에 고통을 호소하는 쓰레쉬. 그러나 입과는 달리 속에서 만들어내는 문장은 달랐다.
'어째서... '사형선고'도 그렇고, 피니셔도 그렇고! 그리고 내 예측을 벗어나는 '타는 불길'도 그렇고! 왜 당하고만 있는거지?'
 방심이라면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의 공격에 진심으로 임하는 순간, 방심에 의한 피해는 없었어야 했다. 그런데 싸움의 주도권은 바뀌지 않았다.
"그때와는 다르군... 언젠가부터 진심으로 임하고 있었는데도 너를 제대로 때릴 수도 없다니..."
"시끄럽다."
 마무리를 갈망하는 자의 돌진이 쓰레쉬를 향했다.
"그래... 조금은 분하단 말이지!"
 평소보다 높은 어조로 화를 표출하던 그는 왼손의 랜턴을 위로 던져버렸다.
"이건...!"
 쓰레쉬의 랜턴이 위로 던져지자 주변에서 연녹색의 반투명한 벽이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이건...'
"흐아아아!"
 처음으로 쓰레쉬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사슬을 휘두른...!'
 재빨리 방어동작을 취했지만 그가 쥐고있는 권총 한자루는 쓰레쉬가 서있는쪽으로 날아갔다.
"크크큭... 얼른 내 앞에 있는 총을 주워보라고 루시안! 넌 줄곧 쌍권총으로 나를 압도해왔는데, 총 하나만으로는 날 이길 수 없잖아!"
"닥쳐라."
 실컷 비웃어주려했던 쓰레쉬의 의도와는 달리 루시안은 즉각적으로 도발을 받아쳤다. 그리고 그는 남은 한 자루의 총을 들어보였다.
"이 총은... 세나가 쓰던 총이었다."
"하아~? 그러신가."
"그러나 지금은 내가 쓰고있지. 그래,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어.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언데드를 없애려했던 그녀의 의지는 '그 날' 이후로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속에... 그녀의 의지가 담겨있다. 내가 이 총을 쥐고있는한, 나와 세나의 의지는 꺾이거나 약해지지 않는다. 나의 강함은, 총의 개수에 달려있지 않단 말이다!"
 루시안은 두 손으로 세나의 총을 잡았다. 쓰레쉬가 세나를 뺏어간 날 이후에는 쓰지 않았던 그립이었다.
"덤벼라! 네녀석의 판단이 그르다는걸, 똑똑히 보여주마!"
<계속>
 
<글쓴이의 말>
 
이런... 분량조절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