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게임 A가 있다고 칩시다. 이후 같은 장르인 게임 B가 출시되었을 때, "A를 뛰어넘고 싶다(혹은 라이벌)"는 말을 하는 순간 다음날 게임 B는 'A의 대항마'로서 등장합니다. 물론 '장르의 다양화'로써 어필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인기게임을 끌어들이는 만큼의 화제성이 적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나봅니다.

 

 

리그오브레전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리그오브레전드의 한국 서비스 이후 경쟁작들은 끝없는 도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장르 풀의 다양화보다는 '롤을 이기는 AOS(MOBA)'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겠죠.



어제, 하이퍼 유니버스라는(넥슨의 AOS) 게임의 CBT가 종료되었습니다. 정말 조-용하게 끝났죠. 이 게임에 대해 굳이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굴지의 게임기업이 '롤'의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었음에도 롤에 대한 언급을 사측에서는 잘 하지 않더라구요.


 

'횡스크롤 AOS'라고 소개되기를 바라고 있는 듯.
 
 

(하이퍼 유니버스야 어떨지 모르지만) '롤의 대항마'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이에 대해 논할 기회가 없었다만, 넥슨에 이어 NC도 MOBA(AOS)장르에 도전한다 하니 준비해보았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조금 편하게, 리그오브레전드와 경쟁 '코스프레'를 한 게임들 이야기를 다뤄보려합니다.

 
 


춘추 '롤 대항마' 시대

 

아직도 참새의 비석이 생각납니다. 리그오브레전드가 나오기 전, 도타 올스타즈와 카오스 등 워크래프트 유즈맵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그리고 '리그오브레전드'가 한국 시장에 돌입할 준비를 할 때, 아발론 온라인, 카오스 온라인, 그리고 사이퍼즈 등의 게임들은 유저 유치에 어느정도는 성공했습니다. 실제로 아발론 온라인이나 카오스 온라인은 잠시나마 '반짝'하는데 성공했고, 사이퍼즈는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여 잘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리그오브레전드가 블레이드앤소울을 찍어누르고 PC방 점유율 1위를 달성한 이후, 이후에 MOBA 장르에 도전장을 던진 게임들의 말로는 씁쓸했습니다. 언론 플레이는 '롤의 대항마'라며 잔뜩 해나갔는데, 실상은 '말로만 경쟁작'이었죠.

 
 


2013년, 도타2, 에이지 오브 스톰
쉿.. 조심해.. 도슬람님을 놀라게 해서는 안돼..!

 

도타2의 경우 기존 도타 올스타즈의 정통성을 계승한 형태를 띄었습니다. MOBA 장르의 맛은 잘 살렸지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죠. 도타2는 망한 게임이다 VS 리그오브레전드는 짝퉁 게임이다 라며 두 게임의 유저들은 나뉘어 싸우고 있는 현실입니다. 스팀 서비스 순위로는 상당히 흥행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 '도타2가 흥할까?'라는 논제 역시 뜨거운 화젯거리였습니다.

 
 
넥슨이 도타 리그도 여럿 열어줬다.

이미 아시겠지만, 넥슨이 리그오브레전드를 서비스하려 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실패했고, 그 대신 도타2를 택했습니다. "얘네가 서비스하면 다 돈X랄 날 것 같다"는 넥슨에 대한 거부감과는 반대로 넥슨은 한국 로컬라이징 서비스 정도만 지원해주는 방식이었죠.

넥슨은 정말 '엔젤넥슨'이 되어버린듯 도타2에 투자를 하기 시작합니다. 상금도 물론이거니와, 리그도 여럿 열었거든요. 게임 밸런스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번역에, 리그에, 추가적인 이벤트까지. 누가봐도 손해인데(...) '할만큼 했다'는 소리가 나올만큼 도타2에 힘을 써줬습니다.


 

 

 

넥슨이 할만큼 했지만 도타2는 끝내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결국 넥슨은 도타2 리본 업데이트 이후 손을 떼게 됩니다. 이후 스팀 차원에서 번역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최근 번역 미숙, 번역진 교체 문제 등이 펑펑터지며.. 도타2 서비스에 있어서는 오늘도 '엔젤넥슨'의 1승이 추가되는 중이네요.


 

서유리 세글자로 설명 가능한 에이지 오브 스톰의 마무리
 

도타2와 서비스 시작이 비슷한 또다른 게임, 에이지 오브 스톰의 이야기도 해봐야겠죠? 에이지 오브 스톰은 본래 MMORPG였던 게임을 AOS로 바꿨다던가, 광고모델이 '롤'로 유명세를 탄 서유리씨라던가, 경쟁작이 리그오브레전드라 언급한다던가.. 여러모로 노린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게임 자체는 1인칭 백뷰 시점의 리그오브레전드사이퍼즈였다고 보시면 될 듯 하네요.


처음에는 서유리씨의 인지도와 더불어 주목을 받았지만, 큰 장점도 없었고 백뷰 방식인 사이퍼즈와도 경쟁이 되지 않았기에 초라하게 서비스 종료를 알렸습니다. 이 게임이 남긴 거라고는 스파캣의 코스프레와 서유리씨의 코스프레가 전부인걸로.

 


 

 


2014년 파이러츠, 코어 마스터즈
대 AOS 시대가 개막했다!

 

2014년 이후 출시된 MOBA 장르 게임들에서는 '롤의 대항마' 지칭이 빈번해지기 시작합니다. 에이지 오브 스톰에서 조금 그런 낌새가 보였는데, 파이러츠, 코어 마스터즈 등을 필두로 '롤의 대항마' 수식어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죠. 이들은 '리그오브레전드'와의 확연한 차이점을 내세웠습니다.

출처 - 만화 '원피스' 일부 장면 패러디

 

그 첫번째 주인공은 파이러츠입니다. 파이러츠는 넷마블이 스페인에서 수입해온 AOS 게임입니다. 그래픽 자체는 구시대적이지만 특유의 빠른 템포와 탈 것이 차별점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실제로 롤을 즐기던 유저들도 "롤과는 다르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뭐.. 밸런스는 일단 논외로 치자구요.

솔직히 처음 기세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유저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허나 2014년 7월에 일주일간 테스트를 한 뒤 무려 8개월 동안이나 밸런싱 작업에 돌입하면서, 그동안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 파이러츠의 장점인 '미니언 걱정 없고, 빠른 교전이 느껴지는 재미'를 가져가버렸죠. 현재로서는 넷마블이 포기한듯 보입니다.



 

그 당시 서비스 담당자 왈 "리그오브레전드와는 다른 게임으로 봐달라"라고 했는데, 광고 영상 중에 대놓고 "레전드를 뛰어넘다"를 넣어놓은 것은... 백프롭니다ㅡ.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파이러츠가 겨울잠에 빠져버린 사이 또다른 국산 MOBA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로 코어 마스터즈. '리그오브레전드'와 다른 플레이를 해야한다는 생각 자체는 굉장히 잘 구현되어있던 게임이었습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블랙하트 항만과 비슷하다면 비슷하겠네요.)

마치 게임 한판 한판이 미식축구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패턴은 단조로운 편이었지만, 상대편과 치고박는 맛은 꽤나 잘 구현해놓았습니다. '롤'과는 차별화되었죠. '롤'과는요.

 

 

 

                            사실 언플은 이 게임이 제일 많이 했다. '자칭'의 대가.

 

이 게임도 열심히 롤의 대항마라며 자신을 어필했습니다만, 1년만에 서비스를 접었습니다. 유저의 의견을 수용한답시고 착한 운영을 내세웠는데... 유저 의견을 지나치게 수용한 결과가 치명적이었습니다. 두달만에 완전히 게임 방식이 바뀌자 혼란을 느낀 게이머들은 다시 정의의 전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이렇게 '롤의 대항마'라며 자신을 한껏 뽐내던 두 게임은 서비스를 시작한지 일년만에 흙으로 돌아가버렸네요.

 

 



2015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ETC

 이 때는 정말 다 이길 수 있을줄 알았어..

 

자, 이제 히오스님의 차례입니다. (사실 블리자드식 베타 서비스는 더 먼저 했습니다. 그래도 정식 오픈일은 2015년 6월이니..) 히오스의 오픈으로 인해 리그오브레전드 VS 도타2 에 이은, 리그오브레전드 VS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막이 올랐습니다.

블리자드가 출시한 MOBA에다가, 블리자드에서 등장했던 영웅들이 함께하는 IP의 위력까지. 기대치만 따지면 따라올 자가 없었을 수준이었습니다. 워낙 블리자드에 충성심이 높으신 분들이 많다보니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 출시되면 롤을 이길 것이다"라는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했죠. 언론에서는 그렇게 부각시키지 않았지만 게이머들이 알아서 대결구도를 만들어줬습니다.


기존에 파이러츠가 가지고 있던 장점 중 다수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을 통해 재어필되었습니다. 빠른 템포, 미니언 막타 걱정이 없는 것 등등(이외에도 영웅의 특색 자체도 뛰어남). 롤 관련 포스트에서 다루지 말아야할 금기
의 네글자인 "진입장벽"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에서도 신성불가침이었던 것은 보너스구요.

 

 

 

서비스 6달, 사람들은 '망겜 망겜'거리지만 성적 자체는 평범한 수준입니다. 흑자도 올리고 있고, E스포츠로서의 가능성도 어느정도 확보하기는 했습니다. 물론 롤을 뛰어넘지는 못했습니다. 롤을 뛰어넘는다 장담하셨던 분들은 지금쯤 눈물을 훔치고 계시겠죠?


'디아블로3 게섯거라'

 

리그오브레전드의 한국 런칭 이후 많은 MOBA(동종) 장르 게임들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빠르게 사그러져갔습니다. 신작 게임들이 어떻게든 주목을 받기 위해 자신을 포장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패착이 되었습니다.

'롤의 대항마'라는 단어는 '독이든 성배'조차도 아닌, 그냥 '독배'가 되었습니다. '롤의 대항마' 수식어가 붙었던 MOBA 장르 게임들은 전부 기대에 못미치는 한국 서비스 성적을 거두었으니까요.


최근 테스트를 끝낸 하이퍼 유니버스는 애써 독배를 피해가려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NC가 만든 MXM의 경우 "롤의 휴면 유저를 흡수하겠다"며 '롤의 대항마' 이미지를 내세운 반면, 넥슨은 일부러라도 언급을 피하고 있더군요. 검색만 해봐도 보이잖아요? '횡스크롤 AOS'가 하이퍼 유니버스의 수식어입니다.

 

'롤'을 바라본 경쟁구도의 참사가 이렇다. -구글 트렌드 검색 참고

 

앞으로 서비스될 MOBA 신작들의 행보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수식어에 '롤'이 들어가는 순간, 그 끝맛이 그리 좋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지만요.


기존 게임들은 '롤'과의 비교에 집중하며 대항마 이미지를 만들어 냈는데, 이번 대형 게임사들의 시도는 장르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바라봐줬으면 좋겠습니다. 게임사측, 그리고 매체들께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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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의 대항마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진짜' 판도를 바꿀 게임은 나올까요?

 
※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