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데타인 기담집]

슈테른 지하시장을 걷던 중 이상한 패널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서자 그곳에서는 문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식의 기록”이라는 그 글은 이퍼트 해넘이라는 사람이 남긴 연구 일지였다.

자신을 아르데타인의 천재 과학자이자 네벨호른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파라디움 대학의 석사 교수를 거쳤다는 그의 자랑 같은 자기 소계 아래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의문.
1. 당신의 뇌를 떼어낸다.
2. 통 속에 넣고 생명을 유지시킨다.
3. 외부에서 자극을 주입해 가상의 환경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전기 신호에 의해 현실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내가 사실은 통 속의 뇌일 수도 있다니. 내가 사는 세상이 가상일 수도 있다니. 나는 꺼림칙한 기분에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던 중 또 다른 패널이 보였다. 나는 홀린 듯 그 패널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번에도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의문에 대한 반박
그러한 질문을 받은 나는 스스로가 통 속에 담긴 뇌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단순한 전기에 의한 신호일 뿐, 내가 생각하는 개념이 의미를 나는 파악할 수 있는가?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나의 앞에 이런 글들이 나타나는거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거지?

그 뒤로도 나의 앞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패널들이 나타났다. 나타날 때마다 그것은 나에게 현실에 대한 의문을 들게 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에게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이때까지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번 모험가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주민들, 공장에서 찍어낸 듯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 물리법칙을 무시한 채 갑자기 생겨나는 탈것들.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가 정말 가짜인 걸까? 내가 살아온 인생은 대체 뭐지? 내가 정말 진짜 나이긴 한 걸까?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건물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슈테른의 야경이 눈부시게 빛났다.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자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내가 만약 떨어져 죽는다면 난 진실을 알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바닥이 느껴지지 않을 때.

나는 눈을 감았다.

***

눈을 다시 떴을 때 눈앞에는 인공적인 빛이 번쩍였다. 나는 깜짝 놀라며 일어서려 했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나의 주위에는 각종 기계장치와 부품들이 가득했다.

무언가 나를 결박하고 있는 듯했다.

입을 벌려 무언가 말해 보려고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 순간 기분 나쁜 기계음이 들렸다.

"누.. 구..  없습니까?"

나 말고 다른 누군가 있는 걸까? 나는 다시 한번 말해 보려고 했지만 역시 입이 얼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섬뜩한 기계음은 다시 들렸다.

"누구 있습니까?"

"오! 드디어 깨어났구먼!"

멀리서 나이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가까이 다가오면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쉽게  삶을  포기해서야..  요즘 젊은것들은 말이야..  에잉 쯧쯧 내가 마침 그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자네는 이미 저세상일 거야. 자 몸은 어떤가? 잘 움직이는가? 아! 내가 자네 몸을 묶어뒀구먼!"

노인은 흰 수염을 기른 키가 작은 노인이었다. 특징이라면 그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외눈 안경을 끼고 공중에 떠 있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와 내 옆에 있던 패널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나에게 말했다.

"자 이제 움직여 보게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을 거야."

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무언가 특이한 기분이었다. 마치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아 자네 아직 자기 모습을 보지 못했지? 잠시만 기다리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의 앞에 큰 화면이 보였다.

그곳에는 아주 끔찍한 모습을 한 로봇이 있었다.

"색깔은 요즘 모험가들에게 유행하는 색으로 했다네. 자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꿔 주겠다만은 이왕이면 그 모습으로 살아 보게나."

검은색과 짙은 붉은 색이 섞인 몸체, 군데군데 푸른빛의 광원이 달린 그것의 손안에는 주황빛의 두 개의 보석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유산스카]가 되었다.